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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염없이 낮잠
시인동네 | 부모님 | 2022.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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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2004년 《내일을여는작가》로 등단한 김자흔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의 존재를 부각하는 김자흔의 시들은 역설적으로 비정하고 냉혹한 세계와 인간들의 넘치는 욕망을 상기시킨다. 경쟁과 약육강식으로 구성된 인간 세계의 생리와는 달리 동물과 식물들은 더 많은 것을 욕망하지 않는다. 김자흔 시인에게 그것들은 단지 더불어 존재할 뿐이다.

  출판사 리뷰

타자의 운명을 향한 따뜻한 눈길

2004년 《내일을여는작가》로 등단한 김자흔 시인의 네 번째 시집 『하염없이 낮잠』이 시인동네 시인선 169로 출간되었다.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의 존재를 부각하는 김자흔의 시들은 역설적으로 비정하고 냉혹한 세계와 인간들의 넘치는 욕망을 상기시킨다. 경쟁과 약육강식으로 구성된 인간 세계의 생리와는 달리 동물과 식물들은 더 많은 것을 욕망하지 않는다. 김자흔 시인에게 그것들은 단지 더불어 존재할 뿐이다.

■ 해설 엿보기

김자흔의 시집 『하염없이 낮잠』에 수록된 시들은, 내면의 소란에 무심한 시간을 응시한다. 시간의 속도는 상대적이다. 고통을 견디는 시간과 쾌감을 만끽하는 시간의 속도는 현저히 다르다. 또한, 시간은 모든 것을 덧없게 만든다. 인간은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시간의 속도와 깊이를 조절하고자 한다. 그러나 삶이 찰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망각하려는 노력은 늘 실패하고 만다. 이번 시집의 1부에는 시간 앞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자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시적 주체는 “가끔은 찾아오는 시간을 긍정시켜 보지만”, “빌려온 시간은 현재를 지나/미래를 통과해 나가 버렸다”(「빌려온 시간」)고 말한다.
타인에게 전달되는 언어는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채 휘어진다. 사람들은 제각각의 확신 아래 자기만의 진실을 바라보며 서로 멀어진다. 그 과정에서 타인의 고통은 축소되고 약자의 목소리는 쉽게 묻힌다. 소외될 가능성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불안과 공포에 쉽게 잠식되고 감각을 닫게 된다. 그러면서 진짜와 가짜는 뒤섞이고, 사람들은 “거짓 속 축제”에 익숙해진다. 이 난장 앞에서 시적 주체는 “진실은 불행하였으므로 오히려 거짓 잠이 편안했”(「장미의 묵시록」)다고 토로한다. 각자가 주장하는 진실은 오해와 폭력을 낳고, 누군가를 소외시킨다. 이 잔혹한 과정은 언제나 합리적인 질서로 포장된다. 그래서 이 시의 화자는 “무섭도록 벌어진 장미의 축제”와 “진실이라는 가면”을 거부하고 수면제를 택한다. 수면제의 힘을 빌려 진입한 잠의 세계에서, 시인은 시를 쓴다. 「장미의 묵시록」은 김자흔 시가 발원하는 지점을 보여준다.

진실은 불행하였으므로 오히려 거짓 잠이 편안했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위험한 노래와
평안함으로 오는 공포,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삶의 건너편,

진실이라는 가면에 떠밀려 대문 밖으로 나가보면

사방엔 온통 장미의 축제,
무섭도록 벌어진 장미의 축제,

곤경으로 누워 있던 묵시록은
진짜와 가짜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지워놓고
거짓 속 축제를 즐겼다

저마다 얼굴이 넷이고 저마다 아흔아홉의 영혼이
돌이킬 수 없는 날개로
등에 기대왔다

이번엔 수면제가 그의 잠을
온전히 받아주었다
― 「장미의 묵시록」 전문

아름다운 꽃 아래 숨겨진 가시처럼, 장미의 축제는 기만적이다. 각기 다른 진실을 신봉하는 자들이 벌이는 축제는 지금 세계의 알레고리일 것이다. 주체는 “생을 위해 나갔다가 생을 접고 돌아온 사람처럼”(「사막의 신」) 과거의 기록, 혹은 잠과 꿈으로 향한다. 그 안에서 “예측되지 않는 시간”(「빌려온 시간」)의 흐름은 잠시 유예된다. 하지만 “잊지 않으려고 죽은 시간을 보관”한 “검은 페이지”를 넘기면 “어김없이 슬픔을 맞이하는 소리”(「깊은 파면」)가 들린다. 시적 주체가 확인하는 것은 시간의 파괴력을 망각한 채 소모와 탕진에 몰두하는 자들의 아우성이다. “거울과 악수하는 법”(「혼자 하는 악수」)을 모르는 자들은 계속 ‘자기부정’과 ‘자기애’의 악순환에 빠진다.

잊지 않으려고 죽은 시간을 보관하고 있어요
종이 위를 스쳐간 소리엔 지난한 시간이 머물러 있어요

검은 페이지를 걷는 시간이 나올 때면
어김없이 슬픔을 맞이하는 소리가 들려요

그 옛날 인신공양으로 처녀를 던졌다는 잉카의 우물이나
귀 잘라낸 고흐보다 더 차가운 귀머거리 고야의
어두운 연작 그림처럼

어제 읽은 문구는 언제 꺼질지 모르는
불길한 예감으로 가득 차 있어요
― 「깊은 파면」 부분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세상의 온갖 작란(作亂)들은, 무의미한 팬터마임(pantomime)에 불과할 것이다. 아득바득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은 이 세계에서 부질없이 사라질 운명을 지닌 객체에 불과하다. 시인은 작란의 풍경에서 눈을 돌려 다른 생명들을 응시한다. 그 대상은 그동안 김자흔 시인이 지속적으로 묘사했던 고양이, 물고기, 암탉, 꽃 등 동물과 식물 등이다. 시인은 인간의 욕망과 질서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자연의 움직임과 세계의 소음을 대비시킨다.
― 이정현(문학평론가)

그러니까 이건 아주 먼 과거를 데려온 게 맞습니다

고생대부터 살아남은 은행잎부터 매머드와 암모나이트,
그리고 바퀴벌레까지

여기가 아닌
곤돌라에서 물고기 아가미가 버금거리면
나는 뮈라엘 바르베리가 지은
고슴도치의 우아함이나 기억해내겠죠

그 별리 사이에서
빨강을 좋아하는 이유가 분명하다면
그건 죄다 무의식일 겁니다

옳게 찾아든 계절을 지워버리고
돌계단 단풍 모서리까지 몽땅 지워버리고
그리고 나면 길 위에 버려둔 공간 사이로 당신은
내 미래로 접어들겠죠

이렇게 소용 닿으려고 들고 나온 것처럼

어제는 시월 단풍에 아무 쓸모없어진 비닐우산으로
마로니에 가로수길 이끼 낀
자갈 속을 뒤적거리고 있었습니다

불안해져 이렇게라도 돌아선 별리를
기억해두고 싶었던 걸까요

다음 시대엔 지금의 과거는 미래의 현재가 돼 있을 겁니다
― 「시대적인 별리」 전문

독거미가 들앉았다면요
독버섯이 들앉았다면요
독사가 들앉았다면요

장난치는 도깨비도 들어 있다면요
수수께끼 스핑크스도 들어 있다면요

방망이로 두드리면 도깨비 소리가 나올까요
아침엔 네 발 점심엔 두 발 저녁엔 세 발
테벳 계곡의 스핑크스가 살아나올까요

(조금 비약으로 들어가서)

라디오란 무슨 물건인가요

빨갛고 뜨거운 접동새 울음인가요
차갑게 목도리 두른 푸른 뱀 질문인가요
홀딱벗고 홀딱벗고 검은등뻐꾸긴가요

(조금 더 비약으로 들어가서)

식욕 접은 뱀은 어느 동물인가 질문 있다고 말할까요
밤새 안경 가지고 노는 부엉이가 있다고 말 전할까요
없는 걸 있다고 발설하는 흰 장미가 있다고 알릴까요

두근두근 이상하고
두근두근 작란하는 라디오엔
진짜 무엇이 들어 있을까요
― 「작란하는 라디오」 전문

고양인 주인 얼굴 따윈 곧바로 잊어버리지
그것이 고양이의 장점이라면 장점,

그렇다고 대충 아무거나 붙여둬선 안 되겠지만

사실 고양이는 식빵을 구우면서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이지

오늘은 오수를 되감는 시간,

나도 모르게 어느새 겨드랑이에 코를 박고 잠이 들지
그러니 날 좀 내버려 두지 그래

우린 할 일 없어 졸고 있는 게 아니거든

내 머릿속에 불쑥 떠오른 것은
나중 생각 따윈 바닥에 내려놓기로 한다는 거야
이봐 우리 이만 뒤돌아 달려 나갈까
말까

가만 있어봐 이러다 정들고 말겠어

날도 더우니 새털보다 좀 더 날래보자고!
― 「하염없이 낮잠」 전문

  작가 소개

지은이 : 김자흔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2004년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고장 난 꿈』 『이를테면 아주 경쾌하게』가 있으며, 2018년 숭의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고양이의 성격을 닮은 AB형 혈액형으로 스무 해째 고양이의 시냥으로 살고 있다.

  목차

제1부

정족의 시촉13/만져지지 않는 잠14/사막의 신16/빌려온 시간18/장미의 묵시록20/불확실한 시절22/깊은 파면24/의미겹겹의 층층26/촛불 날개28/죄 많은 판도라 상자30/그러다가 뚝 멈춤32/당나귀와 함께하는 시간34/끝내 저울질36/우린 진짜 바유였습니다38/라테강의 동굴벽화40/시대적인 별리42/젖은 새가 와서44/연애하는 태양46

제2부

비밀스런 문49/펠리 쿨라50/봄날의 착란52/새빨간 중심부엔54/서로는 딱 좋게56/다만 찔레 순58/싹수 노란 삼춘기 고양이60/이기적인 장미62/겹쳐지는 질문64/파닥파닥 독감66/작란하는 라디오68/뱀과 고양이 안부70/하염없이 낮잠72/빨간 넥타이를 맨 고양이는74/토토의 천국(Tot Le hero)76/날마다 핑퐁 게임78/미안해진 봄80

제3부

정당한 연애83/팔월과 원의 둘레는84/뜨거워서 파멸86/누운 그림자88/모네의 아침90/그러고도 계절92/미니멀한 내면94/일방적 리뷰96/쓰러졌다 일어선 봄98/그런 후에 터지는 확진100/리라 별자리102/미투 혁명 展104/베스트 수갑맨106/안경도 혁명처럼108/밥줄110/혼자 하는 악수112/어정쩡한 입114

해설 이정현(문학평론가)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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