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정치 철학자 마키아벨리가 지은
《군주론》은 인간의 본성과 정치에 대한
현실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한 정치 철학서입니다.
위대한 지도자가 되기 위한 자질과 방법을 담은 이 책은
근대 정치사상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파란만장했던 마키아벨리의 생애권모술수가, 냉혹한 정략가, 악마의 사도, 절대 군주제 신봉자, 근대 정치사상의 토대를 마련한 정치 공학자, 민주 공화정 신봉자... 한 사람의 사상이 이처럼 상반된 평가를 받는 것이 가능할까요? 그 주인공은 바로 이탈리아의 정치 철학자 마키아벨리입니다. 피히테, 스피노자, 마르크스와 엥겔스, 그람시 등 많은 철학자들이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놓고 다양한 평을 내놓았으며, 그의 사상은 지금까지도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마키아벨리는 1469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가난한 법률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스물아홉 살의 나이로 피렌체 공화정에서 외교 업무를 담당하는 직책을 맡으며 뒤늦게 공직 생활을 시작했는데,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들뿐만 아니라 프랑스, 스위스 등 유럽 강대국들에 파견되어 능숙한 외교 수완을 발휘해 능력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때 여러 군주들을 만나고 유럽의 급박한 정치 상황을 몸소 겪으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안목을 기르고 조국 피렌체의 미래와 능력 있는 지도자에 대한 상을 마음속에 그려 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피렌체의 정치 상황은 마키아벨리가 자신의 이상을 실현해 볼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망명을 가 있던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로 돌아와 권력을 다시 잡으며 이전 정부의 관료들을 대폭 물갈이했고, 마키아벨리도 10년 동안의 공직에서 쫓겨났습니다. 그 뒤 마키아벨리는 피렌체 교외에서 은둔 생활을 하며 《군주론》과 《로마사논고》 같은 책을 썼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은둔 생활 7년 만에 다시 메디치가의 부름을 받았지만, 메디치 가문이 무너지면서 다시 직업을 잃을 수밖에 없었고 크게 실망한 마키아벨리는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15세기 이탈리아의 급박한 정치적 상황마키아벨리가 살았던 15세기 당시 이탈리아는 로마의 교황령, 나폴리, 베네치아, 밀라노, 피렌체 등 수많은 공국들로 분열되어 팽팽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탈리아는 전통적으로 로마 가톨릭이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던 나라였는데, 유럽의 다른 국가들이 교회 세력의 약화를 틈타 왕권을 강화했던 반면, 이탈리아는 부패한 교회 세력이 각 공국들과 정치적으로 결탁하며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주변 유럽 강대국들 또한 이탈리아의 분열 상황을 이용해 여러 공국 및 종교 세력과 관계를 맺으며 수시로 이탈리아를 침략했습니다. 이처럼 내부적으로는 각 도시 국가의 정치적 대립, 부패한 교회 세력의 영향력 등으로 큰 분열과 혼란을 겪었고, 외부적으로는 외세의 침략에 시달리며 이탈리아는 다른 유럽 강대국들과는 달리 강력한 통일 국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정치 현실 속에서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조국 이탈리아가 외부 세력에 휩쓸리지 않고 강력한 통일 국가를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외교 사절로 유럽을 방문하면서 여러 군주들을 만나 보았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군주론》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로마사논고》에서 민주 공화정을 신봉하는 글을 쓰기도 했지만, 당시 도덕과 윤리의 상징인 종교 세력의 부패와 사회 전체에 만연한 타락을 보면서 그러한 현실에서는 도덕과 윤리로 당면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고, 공화정이나 민주정 같은 자신이 꿈꾸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종교적 위선과 기만이 사회를 지배하며 도덕규범과 정치적 현실간의 간극이 너무나 컸던 시기를 마키아벨리는 누구보다도 냉철하고 현실적으로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모든 혼란을 잠재울 ‘강력한 군주에 의한 통치’라는 대안을 생각해냈습니다.
근대 정치사상의 주춧돌이 되다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지금까지도 널리 읽히고 있는 고전이지만 역사적으로 숱한 오해를 낳은 책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역사학자들과 철학자들의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으면서 시대적 상황에 따라 금서로 지정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군주론》에 대한 오해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마키아벨리즘’입니다. 이 말은 ‘자신의 이익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위나 사상’을 가리키는 말로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에서 유래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정치에서의 도덕과 윤리는 개인들 사이의 관계에서 작용하는 도덕이나 윤리와는 다르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당시 이탈리아 사회의 낡은 도덕관념과 부패한 종교 이념은 국가와 백성들의 삶을 더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부패와 타락으로 오염된 낡은 도덕과 종교에 휘둘리지 않으며 국가와 백성의 공익만을 고려하는 강력한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마키아벨리의 사상은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물론 마키아벨리의 사상에 대한 비판에도 타당한 측면이 있습니다. 마키아벨리의 본뜻이 어떠했든 그의 사상이 여러 독재자들에 의해 악용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5세기 후반 당시 이탈리아와 유럽의 정치적 상황과 시대적 배경에 대한 맥락 속에서 그의 사상을 놓고 볼 때, 교황·귀족·외세의 세력 다툼이 복잡하게 얽힌 시대를 살았던 마키아벨리가 혼란한 조국의 상황을 안정시킬 강력한 리더십을 꿈꾸었던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군주론》에는 중세의 국가 개념에서 벗어난 근대적 국가관이 드러나 있습니다. 《군주론》은 교회의 종교적 질서가 아닌, 다양한 집단 간의 전쟁과 갈등을 이겨내고 사회를 통합해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질서로서의 ‘국가론’을 다룬 최초의 저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세의 신 중심적 생각에서 벗어나, 국가라는 질서의 중요성과 그 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지도자의 역할을 강조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생각의 전환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군주론》은 ‘국가 중심주의’를 모델로 한 최초의 정치이론서이자 근대 정치사상의 주춧돌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영원한 고전 《군주론》수많은 오해와 비판, 찬사 속에서도 《군주론》이 5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널리 읽히며 영원한 고전으로 사랑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군주론》이 15세기 후반 당시의 이탈리아의 현실을 바탕으로 한 책이긴 하지만, 그 속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 담겨 있습니다. 훌륭한 지도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군중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는 한 집단을 다스리는 리더의 자질과,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 집단을 잘 이끌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현실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며, 크고 작은 집단을 잘 이끌기 위해 사람들의 이기심과 선한 마음을 어떻게 좋은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고민이 담긴 《군주론》은 오늘날 훌륭한 지도자를 꿈꾸는 모든 어린이들에게도 좋은 지침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린이를 위한 고전, 파란클래식《군주론》파란자전거의 어린이 고전 시리즈 ‘파란클래식’의 열여섯 번째 신간 《군주론》은 마키아벨리 원작의 《군주론》을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새롭게 구성한 책입니다.
크게 제1부와 제2부로 구성했는데, 1부에서는 《군주론》을 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정보를 다섯 가지로 나누어 담았습니다. 마키아벨리의 생애와 사상,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와 유럽의 정치적 상황, 《군주론》에 담긴 마키아벨리의 핵심 사상을 다양한 사진 자료와 함께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2부에서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어린이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새롭게 번역해 실었습니다. 생소한 지명과 인물, 용어들은 각주를 붙여 이해를 돕고, 재미있는 삽화를 곁들여 어린이들이 고전을 읽는 재미를 더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