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매문의 및 도서상담은 031-944-3966(매장)으로 문의해주세요.
매장전집은 전화 혹은 매장방문만 구입 가능합니다.
지은이 : 조흥동
음력 1941년 4월 21일 경기도 이천시 효양산 남쪽 기슭 아래 초가집에서 부친 조태환, 모친 김음성의 1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조씨 집성촌에서 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천석꾼 집안이다. 조흥동은 어릴 적부터 누님의 치마저고리를 꺼내입고 유성기에서 흘러나오는 경기민요에 맞추어 춤을 추며 지냈다. 그의 끼를 알아본 동네 아저씨들에게 춤을 배워 걸립패에서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 그의 나이 아홉 살. 열네 살에 서울 유학길에 올라서는 부모님 몰래 정식으로 춤을 배우기 시작하여 수많은 한국춤의 대가들을 사사했다.조흥동은 국립무용단 초대 상임안무자(1990-1992)를 거쳐 국립무용단 초대 예술감독 및 단장(1993-1994)을 지냈다. 서울예술단 예술총감독(1997-1998), 경기도무용단 최장기 예술감독(2000-2014)을 역임했다. 한국무용협회 이사장(1991-2005)이 되어 14년간 행정가 역할을 병행하기도 했다. ‘서울특별시 문화상’(1992), ‘옥관문화훈장’(2002), ‘이천시 문화상’(2003), ‘은관문화훈장’(2014) 등을 수상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2003-현재), 서울특별시무형문화재 제45호 [한량무] 보유자(2014-현재)로서 제자들을 기르고 있다.
1장. 춤의 길에 들어서기까지
어린 시절의 기억: 6.25 전쟁과 춤
경동중·고등학교 시절
대학 시절과 군 생활
2장. ‘엘리트 남성 무용가’로 주목을 받다
동남아 순회공연 그리고 일본에서
귀국 후의 무용 발표회
결혼과 사당동 예술인마을 입성
연구소 개설과 후진 양성
최초의 동인단체 학림회
한국남성무용단 창단 그리고 조흥동류 한량무 ‘회상’
가지 않은 무용평론가의 길
3장. 국립무용단 그리고 초기의 대작
입단에서 인정을 받기까지: ‘맥(脈)’
지도위원이 되다: ‘젊은 날의 초상’, ‘대(代)’, ‘신(神)’
국립무용단 최초의 상임안무가: ‘흙의 울음’, ‘강강술래’
초대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겸 단장으로: ‘환’, ‘무천의 아침’ 그리고 ‘남성 태평무’
장충동 단장실 그리고 작은딸과의 이별
4장. 한국무용협회 이사장으로
세상이 바뀌었다
춤의 해를 이끌며
세기말·세기초의 무용계와 무용행정가의 삶
5장. 경기도무용단 그리고 후기의 대작
서울예술단 이후 경기도무용단으로: ‘김삿갓’, ‘비나리98’
경기도무용단 예술감독으로 15년, 그 기점에서: ‘황진이’, ‘연인’
호평 그리고 예술감독 재임: ‘꿈, 꿈이었으니’, ‘봉수당진찬례와 우리춤의 맥’
장기 순회공연의 새 역사를 쓰다: ‘태권무무 달하’, ‘천년의 유산’
6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되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한량무’ 보유자로
은관문화훈장 그리고: ‘향연’, ‘무원’
춤 80년 집약한 ‘조흥동 춤의 세계’
부록
무용인 조흥동 어머니 김음성 여사 -김태선 편저,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1999) 중에서
고전정신이 살아있는 조흥동의 춤판 -서연호, 『댄스포럼』(2021년 4월호)
월륜 조흥동 약력
월륜 조흥동 연보
도서 DB 제공 - 알라딘 인터넷서점 (www.ala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