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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역인수
한국학자료원 | 부모님 | 2022.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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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위창 오세창이 조선 초기부터 광복 이전까지 서화가 및 문인들이 사용하던 인장을 모아 엮은 인보이다. 1930년~1937년 사이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적으로 소장되어 오다가 국회 도서관이 이를 인수하여 1968년에 단행본 1책으로 발간하였다.

오세창 자신의 것 225개를 포함하여 총 850명 3,912과(顆)의 인장이 실려 있다. 인장의 종류는 성명·호·자 및 장서인(藏書印)·사장인(詞章印) 등 다양하다. 전각(篆刻), 즉 인각에는 관인(官印)과 사인(私印)이 있는데, 대부분 문인묵객(文人墨客) 들이 기호에 따라 자각(自刻)한다. 이 책에 실린 인장도 대부분 장인에 의한 것보다는 자각이거나 전각가에 의하여 새겨진 것이 많다. 그 중에는 중국인의 명각(名刻)들도 눈에 뜨인다.

시대의 흐름과 사용자의 인품에 따라 다양한 각법(刻法)을 살필 수 있으며, 또한 이들 인장의 각법이 모두 뛰어나 조선시대 전각예술의 우수성을 관찰할 수 있다. 이러한 규모의 인보는 중국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방대하며, 더욱이 한 사람의 손으로 수집되었다는 것은 우리나라 금석예술사(金石藝術史)에 있어 큰 업적이라 하겠다.

  출판사 리뷰

오세창(吳世昌)이 조선 초기부터 광복 이전까지
서화가(書畫家)와 학자들의 인장을 모아 엮은 인보(印譜)

『근역인수』는 위창 오세창이 조선 초기부터 광복 이전까지 서화가 및 문인들이 사용하던 인장을 모아 엮은 인보이다. 1930년~1937년 사이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적으로 소장되어 오다가 국회 도서관이 이를 인수하여 1968년에 단행본 1책으로 발간하였다.
오세창 자신의 것 225개를 포함하여 총 850명 3,912과(顆)의 인장이 실려 있다. 인장의 종류는 성명·호·자 및 장서인(藏書印)·사장인(詞章印) 등 다양하다. 전각(篆刻), 즉 인각에는 관인(官印)과 사인(私印)이 있는데, 대부분 문인묵객(文人墨客) 들이 기호에 따라 자각(自刻)한다.
이 책에 실린 인장도 대부분 장인에 의한 것보다는 자각이거나 전각가에 의하여 새겨진 것이 많다. 그 중에는 중국인의 명각(名刻)들도 눈에 뜨인다.
시대의 흐름과 사용자의 인품에 따라 다양한 각법(刻法)을 살필 수 있으며, 또한 이들 인장의 각법이 모두 뛰어나 조선시대 전각예술의 우수성을 관찰할 수 있다. 이러한 규모의 인보는 중국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방대하며, 더욱이 한 사람의 손으로 수집되었다는 것은 우리나라 금석예술사(金石藝術史)에 있어 큰 업적이라 하겠다.
특히, 이 책은 『근역서화징(槿域書畫徵)』·『근역서휘(槿域書彙)』와 더불어 오세창의 3대편저 중의 하나로, 조선시대 서화연구의 기본자료로서 그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하겠다.

근역인수 [槿域印藪]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작가 소개

지은이 : 오세창
역관 오경석(吳慶錫, 1831~1879)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넉넉한 집안 형편과 높은 학문의 분위기 속에 성장하였고, 8세 때부터 부친의 친구인 유대치(劉大致: 1831~?. 본명은 鴻基, 의원)를 스승으로 모셔 1879년(16세)에 역과에 합격하였다. 1882년(19세) 임오군란 직후 9월에 후원주위청영차비관(後苑駐衛淸營差備官)이라는 벼슬을 받아 창덕궁 후원에 주둔하고 있던 청나라 군사들의 통역을 맡았다. 1886년(23세)에 사역원직장에 임명되었다. 1894년에 군국기무처 총재비서관이 되었고, 이어 농상공부 참서관, 통신원 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1897년 일본공사의 초청으로 동경외국어학교에서 조선어교사로 1년간 체류하였다. 귀국 후 개화파 역모에 연루되어 1902년에 일본으로 망명하였고, 이때 손병희(孫秉熙)의 권유로 천도교에 입교하였다. 4년 뒤인 1906년에 손병희와 함께 귀국하여 「만세보」를 창간하고 사장에 취임하였으니, 이때부터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애국계몽운동의 지도자로 나서게 되었다. 1918년에 근대적 미술가 단체의 효시인 서화협회가 결성될 때 13인의 발기인으로 참가하였으며, 민족서화계의 정신적 지도자로 활약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에는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활약하다 3년간 옥고를 치렀다. 해방 후 서울신문사명예사장·민주의원·대한민국촉성국민회장·전국애국단체총연합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6·25동란 중 피난지 대구에서 사망하여 사회장(社會葬)이 거행되었다.일찍부터 서화골동의 가치를 인식하여 국외로 유출되는 서화를 동분서주하며 수천 점을 구입하였다. 또한 간송 전형필이 10만 석의 사재를 헐어 골동서화를 수집하는데 감식안을 제공하였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현재 간송미술관 소장의 고서화 명품 가운데 상당수가 오세창의 감정과 평가를 거쳐 수집된 것이다. 부친으로부터 이어받은 수준 높은 감식안을 더욱 발전시켜 민족문화의 유산을 지키는 데 크게 이바지 하였다.서화의 수장뿐만이 아니라, 저술에도 많은 공적을 남겼다. 문집이나 국고문헌(國故文獻)에서 인명.미술사 자료를 두루 모아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1928년)을 출간하여 한국미술사의 초석을 놓았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명화(名畵) 251점을 모아 <근역화휘(槿域畵彙)>를 만들었고, 우리나라 문인화가 830여명의 도장 3,930여방을 모아 <근역인수(槿域印藪)>(1937년)를 만들었다. 위창은 이런 여러 편의 대저(大著)를 만들어 불모지인 우리 미술사학에 기초적인 공적을 남겼다.

  목차

서문 - 1
범례 - 3
목차 - 5
인수(印藪) - 43 ∼ 560
採收書名目錄 - 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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