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시하늘시인선 5권. 최삼용 시인의 시편들은 일상의 주변에서 건져낸 소시민의 아픔을 간과하지 않고 성찰하면서, 때로는 경쾌하게 새로운 시각의 서정으로 풀어내는 미덕이 있다. 그저 자연으로서 존재하고 있는 ‘물가의 사물들’을 불러와 ‘꽃’을 피우고 ‘향기’를 맡으며 ‘생명의 화음’으로 더욱 선연하게 드러내고 있다.
출판사 리뷰
이 시집을 관통하고 흐르는 최삼용 시인의 물을 향한 끌림은 무엇인가? 한 시인의 첫 시집의 본향을 찾아가는 일은 그 시인의 살아온 세계, 켜켜이 쌓인 생의 지층을 들여다보며 탐색하는 일이다. 최삼용 시인의 시 세계의 출발은 바로 바다에 있다. 보이는 대상, 그 너머에 있는 원형의 세계에 대한 사유. 시인은 바다 가까이 다가가 바다를 건져 올리며 탐구한다. 쉬지 않고 유동하며 울렁이는 바다를 보며 시인은 척박한 현실에 대하여 저항하고 내적 고통과 외로움을 견뎌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세속적 일상의 늪은 도처에서 아가리를 벌리고 시인을 유혹한다. 이러한 고통과 외로움에서 출발하여 시인은 물가에서 사는 작은 생명체에 대해 시선을 고정시키고 노래의 첫 소절을 시작하고 있다. 이 시인의 시 세계의 지층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상상력은 물(=바다)을 매개로 하여 어둠과 삶의 일상에서 부딪히는 소멸과 비상의 변주로 나타난다. 그 소멸은 궁극적으로 비상을 위하여 열려 있고, 생명을 잉태하고 꽃으로 피어나는 놀라운 시적 발견으로 이어진다. 자연에서 식물이 ‘피워 낸’ 꽃이 아닌 ‘바다’와 ‘바위’라는 자연이 내어 주는 상승하는 생명 현상, 즉 새로운 시각의 ‘꽃花’을, 끈질긴 생명력을 도처에서 발견하기에 이른다.
켜켜이 쌓여 굳어지고 발효되는 시간 동안 시인이 방황한 흔적은 오롯이 시로 남았다. 최삼용 시인의 시편들은 결코 현학적이거나 난해하지 않다. 일상의 주변에서 건져낸 소시민의 아픔을 간과하지 않고 함께 성찰하면서 때로는 경쾌하게 새로운 시각의 서정으로 풀어내는 미덕이 있다. 그저 자연으로서 존재하고 있는 ‘물가의 사물’들을 불러와 ‘꽃’을 피우고 향기를 맡으며 생명의 화음으로 더욱 선연하게 드러내고 있다. 길고 지난했던 ‘코로나 팬데믹’이 저무는 시대에 이처럼 아름다운 첫 시집을 선보이는 시인의 노고에 큰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시를 향한 변함없는 ‘황소 걸음’으로, 더 깊고 풍요로운 시적 풍경을 우리 시단에 선사하길 기대한다.
파도 밭에 살다 보니
무늬 또한 파도를 닮았다
간만의 차이가 커질수록
인고의 시간 버티어 탱탱해진 속살은
더 진한 갯내 물고
꽃같이 어여쁜 자태를 갈구해
석화라 이름 붙여진 걸까
희끗한 등에 날카로운 꽃잎 달고
짠물 들이켜며 장미가 바다에서 산다
남겨진 빈 껍질은
먹이기 위해 제 것을 파 주어
쪼그라든 어미의 젖가슴 같다
화석조차 될 수 없어
갯돌에 새겨진 벽화
간조에 비린내를 하얗게 말리고 있다
―「석화」 전문
간혹 삶이 부담스러워
한 번쯤 길을 잃고 싶은 날 있다면
별발이 바다로 마구 쏟아지는 가왕도로 가자
드러누운 묘혈 자리에서 별 헤는 망자의 삭은 가슴 닮아
언제나 침묵한 채 바다를 지키는 작은 섬
은둔이나 칩거를 핑계 삼지 않더라도
인적 떠나 시간까지 멈춘 그 섬에 들면
온통 코발트 빛 눈부심만 낭자하게 춤추리
끝이 또 다른 시작이라면
오늘의 곤궁 또한 풍요의 척도가 되겠지만
겨울이 창창한 햇살 발라 추위를 말리는 갯가에
빨간 입술 벌린 채 동백꽃이 바다와 살고
최신형 내비게이션을 켜도 뭍에서 끝난 지도에서는
그곳으로 가는 길 찾을 수 없어
말품 발품 다 팔아야 하네
그래서 적당히 두고 온 걱정 삭여 두고
오늘은 나 여기서 이만 길 잃으려 하네
―「가왕도 가는 길」 전문
통통배가 겨드랑이 간질이자
파도로 넘겨지는 바다의 책장에
바람이 서술하고 물결이 필사하는
히브리어 같은 굴절 문장들
무엇을 쓰시는지 지금도 필사적이다
바람까지 바다를 빌려 파문 만들며
고인 울음통 비우려
해변에다 몸 뒤집어 파도로 우는데
바람과 바다는 같은 돌림자 쓰는 형제인지
바람 불면 바다가 일고
바람 자면 바다도 따라 잠들었다
그래서 사람과 사랑도 받침 하나 차이라
떼지 못할 관계를 맺는지 모르지만
입춘 넘긴 꽃 절기라 눈부신 햇살은
바다 위에 온통 빛꽃을 피워 문 채
부드러운 파도로 갯돌을 연신 쓰다듬고 있었다
―「그날 만난 봄 바다」 전문
작가 소개
지은이 : 최삼용
경남 사천에서 태어나 현재 김해에 살고 있다. 2005년 진주산업대학교 플로리스트 과정을 수료하고 화훼장식기능사로서 꽃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2007년 〈전남매일신문〉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하였고 시하늘 문학회 동인, 무진주문학회 경남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목차
시인의 말
1부 가왕도 가는 길
가왕도 가는 길 / 통영항 / 그날 만난 봄 바다 / 삼천포 / 송정역 / 석화 / 소금꽃 / 눈 내리는 성포항 / 달아공원 / 무인도 / 파도의 업業 / 남해 / 날비 속의 소록도 / 만해晩海 / 이별을 하려면 을숙도로 가라 / 작천정에 들다 / 파시波市
2부 오선지에 올리지 못한 파도의 음표
겨울 강 갈대밭에서 / 섬진강 하구에 가을이 여물면 / 봄볕 / 산수유 / 봉숭아 꽃물 / 보성 녹차밭 / 고추잠자리의 내공 / 카페 아데초이Salon de the A'de Choi / 오체투지 / 꽃들에게 바침 / 진씨 성 달래 님께 / 커피론論 / 부호 해부학 / 나무 그네 / 꿈 튀기 / 2월이 짧은 까닭 / 활풍
3부 사랑의 온도
안개꽃 / 아사녀에게 / 가시나무새 / 사랑의 온도 / 부치지 못한 4월의 편지 / 봄중 절간 / 할미꽃 / 나팔꽃 / 구절초 / 별빛 여인숙 / 고백을 고백하다 / 차마고도 / 거리의 구도자求道者 / 황혼 상처 / 북회귀선 / 청포도 익을 무렵
4부 도시가 키운 섬
나는 나쁜 남자 / 세상에게 길을 묻다 / 나에게서의 도피 / 병맛 / 바다 잃은 고래 / 수의 없는 수번을 달고 산다 / 아저씨의 반란 / 바람재 달빛에게 / 평택 여자 / 개구리 눈을 읽다 / 내 아내는 장애인이다 / 옥이 엄마, 우리 막내 이모 / 어머니의 빈 의자에서 커피를 마시다 / 봉다방 미스 김 / 부고 / 도시가 키운 섬 / 폐경 / 석양의 시간
해설|바다, 시원始原을 찾아가는 생명의 상상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