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안고의 데뷔 시절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17권의 전집에 이르는 그의 방대한 작품 중에서 가장 많이 읽히고 높게 평가받는 작품 30편을 실은 선집. 사카구치 안고는 근현대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일본 독자들과 비평가들의 관심이 끊이지 않는 작가다. ‘위대한 낙오자’라는 자유인을 꿈꿨던 안고의 정신, 일본인의 자기 기만을 날카롭게 해부하는 허식을 배제한 안고의 문학은 인간 탐구라는 산문의 본령에 속하는 일류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청춘과 연애의 고뇌, 치열한 자기 단련으로 태풍처럼 강렬한 삶을 살았던 안고의 문장 곳곳에는 그의 슬픔이 이슬처럼 맺혀 있다. ‘살아서 타락하라. 그것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정당한 수순이다’라는 안고의 선언은 역설적으로 청춘의 순수한 영혼을 잃지 않고 있는 사람에게 문학의 존재 이유를 확인시켜 주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출판사 리뷰
일본 근대 문학의 ‘위대한 낙오자’ 사카구치 안고, 그의 시간에 바래지 않는 절대 고독의 정신
사카구치 안고는 근현대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일본 독자들과 비평가들의 관심이 끊이지 않는 작가다. ‘위대한 낙오자’라는 자유인을 꿈꿨던 안고의 정신, 일본인의 자기 기만을 날카롭게 해부하는 허식을 배제한 안고의 문학은 인간 탐구라는 산문의 본령에 속하는 일류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펴내는 <사카구치 안고 선집>은 안고의 데뷔 시절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17권의 전집에 이르는 그의 방대한 작품 중에서 가장 많이 읽히고 높게 평가받는 작품 30편이 실려 있다. 다자이 오사무의 자살을 다룬 <불량소년과 그리스도>나 <연애론> 같은 에세이는 정답 없는 삶, 비루한 일상 속에서 타락해갈 수밖에 없는 인간 삶의 부조리에 대한 전적인 긍정이 제시되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신비로움과 기이함이 느껴지는 <구로타니 마을>의 청춘의 방황, 불교의 깨달음을 유머러스하면서도 섬뜩하게 그린 <행운유수>, 추리소설 기법으로 진행되다가 가슴 먹먹해지는 감동을 선사하는 <암호> 등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빛나는 단편들이 곳곳에 즐비하다.
안고의 많은 소설은 에세이적인 요소와 소설적인 요소가 함께 섞여 있다. 이것은 자전적인 요소가 강하다는 점과 함께 그의 작품 세계의 한 특성을 이루고 있다. 그럼에도 안고의 작품 세계는 결코 단조롭지 않다. 오히려 그 어느 작가보다도 세상의 다양한 현상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글 곳곳에서 빛난다. 유치원 때부터 땡땡이를 쳤다는 파천황적인 성격, 사춘기 시절 에드거 앨런 포나 보들레르 같은 ‘위대한 낙오자가 되어 역사에 빛나는 인물로 남겠다’는 결심, 불교에 대한 연구와 구도의 길을 선승처럼 추구했던 대학 시절, 작가에 뜻을 두고 인생을 걸었던 불안한 청춘 시절 등 안고의 그리 길지 않았던 인생은 삶에 대한 치열함과 대결 의식이 지배적이었다. 전쟁의 패색이 짙어져 공습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안고는 주위의 권고를 마다하고 도쿄에 남아 공습을 직접 체험했다. 작가로서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에 도망칠 수는 없다고 생각했고 반드시 살아남아 그 체험을 문학으로 담기 위해서였다. 그러한 체험이 패전 후 선풍적인 반응을 불러온 그의 걸작 <백치> <타락론> 등을 낳게 했다. 미시마 유키오의 말대로 안고는 ‘전후의 혼란스러운 시기 혼란으로 혼란을 표현하는 방법을 그는 작품에서도 삶의 방식에서도 관철시켰다.’
청춘과 연애의 고뇌, 치열한 자기 단련으로 태풍처럼 강렬한 삶을 살았던 안고의 문장 곳곳에는 그의 슬픔이 이슬처럼 맺혀 있다. ‘살아서 타락하라. 그것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정당한 수순이다’라는 안고의 선언은 역설적으로 청춘의 순수한 영혼을 잃지 않고 있는 사람에게 문학의 존재 이유를 확인시켜 주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나는 찾아 헤맸다. 헛되이, 열광하는 자신의 체취를 느낄 뿐이었다. 나는 추억을 파헤쳐 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추억의 가장 깊은 구석에 처박혀 있던, 켜켜이 먼지에 싸인 하나의 모습을 찾아냈다. 그것은 한 소녀였다. 그것은 나의 고향에 살고 있었다. 겨우, 한두 번 말을 나눈 기억이 있었다. 내가 고향을 떠난 이래─10년 가까이 만난 일이 없었다. 이제는 생사조차 몰랐다. 그러나 파헤쳐낸 먼지투성이의 모습은 신기하게도 생생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날이 가면서 나는, 그 모습의 생기와 나 자신의 생기를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쫓기듯이 여행길에 올랐다. 매연으로 볼이 새까매져 있었다.
그녀는 말하자면, 내 안에서, 이처럼 실감이 희박한 존재였다. 나는 소녀인 그녀를 기억 속에서 알고 있었다. 그것은 의심할 바 없이 진실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 내 안에서 성장해 있었다. 그리고 내 안에서 성장한 그녀는 이제는 현실에서 자라난 그녀와는 별개의 사람인지도 몰랐다. 내 안의 그녀는 말하자면 하나의 개념이고, 하나의 상징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 개념을 쫓아 북국(北國)의 항구마을로 태양을 헤엄쳐온 나는 개념도 아니고, 상징도 아니었다. 그것은 현실의 나였다.
누나 역시, 누나 자신의 거짓을 언짢아하고 있었다. 누나는 문병객의 거짓말에 괴로워하고 있었으므로, 그들의 선수를 치듯이 누나 자신이 오히려 거짓말만 시끄럽게 떠들어 댔다. 그것은 흰 모기장이었다. 전등을 끄고, 두 사람은 한밤중까지, 입에서 나오는 대로 서로의 신세한탄을 했다. 한 사람이 진실에 접근하려 하면, 한 사람이 황급하게 화제를 바꾸었다. 서로 동정하는 체했다. 거짓 감정에 눈물을 흘렸다. 지쳐서, 잠이 들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사카구치 안고
일본의 태평양전쟁 전후에 걸쳐 활약한 근현대 일본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중 한 명. 순문학뿐 아니라 역사소설, 추리소설 등 광범위한 소재를 다룬 작품들을 남겼고 전후 일본 사회를 분석한 날카로운 평론과 수필도 다수 남겼다. 십대 시절 보들레르, 이시카와 타쿠보쿠 등의 영향을 받아 ‘위대한 낙오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작가를 지망했다. 도요대학 인도철학과에 입학해 불교를 공부했고 프랑스어를 비롯해 5개 외국어를 공부하면서 동인지를 통해 꾸준히 작품 활동을 펼쳤다. 「바람 박사」 「구로타니 마을」 같은 초기 단편이 시마자키 도손, 우노 코지 등 선배 작가들의 인정을 받으며 문단에서 작가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우울증에 시달리면서도 절대 고독과 고향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했고 일본의 패전 이후 발표한 「타락론」과 「백치」 등의 작품으로 일약 시대의 총아로 불리며 전후 인기 작가로 올라섰다. 우울증과 필로폰 중독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으나 정력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던 중 ‘혀가 꼬인다’며 갑자기 쓰러져 뇌출혈로 사망했다. 사후 고향인 니가타의 신사에 그의 시비가 건립되었다.
목차
고향에 부치는 찬가
바람 박사
구로타니 마을
돛 그림자
바다 안개
오만한 눈
간음에 부쳐
여자
불가해한 실연에 대하여
남풍보
일본 문화 사관
어디로
타락론
백치
외투와 청공
여체
전쟁과 한 여인
사랑을 하러 간다
바람과 빛과 스무 살의 나와
활짝 핀 벚나무 숲 아래
나는 바다를 껴안고 있고 싶다
연애론
어두운 청춘
장난감 상자
푸른 도깨비의 훈도시를 빠는 여인
암호
불량소년과 그리스도
행운유수
간장 선생
요나가 아씨와 미미오
사카구치 안고 연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