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한 청년이 프랑스 칼레에 있는 개미굴 같이 뒤엉켜 있는 난민촌 천막들 사이를 걷고 있다. 머리 위로 내리는 가랑비에는 그가 떠나온 고국의 소금기 머금은 냄새와는 다른 흙과 신선한 풀 내음으로 가득하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국경이라는 인간이 그어놓은 배타의 선을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롭게 넘나드는 새들만 바쁘다.
무엇을 할까? 아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여기서 청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끝없는 기다림 뿐이다.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까지. 그에게 허락된 것이라곤 두고 온 산하, 가족, 잃어버린 그 어떤 것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삭이는 것뿐이다.
미래에 대한 꿈을 이야기하는 것은 여기서는 사치다. 여기에는 그를 기다리는 사람도, 반겨줄 사람도 없다. 그런데 그는 왜 여기까지 목숨을 걸고 와야만 했을까? 청년은 왜 난민이 되어야 했을까?
출판사 리뷰
이 세상 어딘가에서 난민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2022년 6월 기준 UNHCR에 등록된 전 세계의 난민 수는 3,530만 6,050명이다. 흔히 말하는 난민에 대한 정의는 ‘인종, 종교, 국적, 정치적 의견이 다르거나 특정 사회 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을 위험이 있어, 자기 나라를 떠나 국경을 넘은 사람으로서 분쟁 또는 일반화된 폭력 사태 때문에 자기 나라로 되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다.
한때 우리도 난민이었던 때가 있었다. 일제 강점기, 그리고 해방 공간과 한국 전쟁을 겪는 동안 조국을 떠나야만 했던 이들이 있었고, 한국 전쟁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는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야 했던 도시 난민이 있었다.
이런 아픈 상처를 서둘러 봉합한 우리 앞에 아프리카 청소년 난민이 주인공인 그림책이 세상에 나왔다. 난민이 발생하는 대부분 지역은 정치나 이념, 체제 등이 불안전하거나, 과거 제국주의 시대 때 식민지로 열강에 의해 강제로 분리되거나 합쳐졌던 곳들이다. 구미 열강에 의해 짓밟히고 학대받았던 이들이 이제는 난민이 되어 오히려 그들에게서 인류애와 나눔, 관용, 너그러움, 권리 따위의 용어로 포장된 정의라는 동정심의 그늘에서 보살핌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이 책은 난민이 될 수밖에 없었던 에리트레아 출신의 한 청년이 읊조리는 희망참을 가장한 우울한 독백이다. 누군들 조국과 고향, 가족을 등진 채 목숨을 담보로 한 여행을 떠나길 바라겠는가? 절박한 죽음 앞에서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 바로 난민이 되는 길이었다.
그러나 죽음의 땅을 무사히 탈출하더라도 말과 문화와 풍습이 다른 남의 땅에서 새로 뿌리내리기란 말처럼 그리 쉬울까? 난민이 곁을 파고들면 기꺼이 자리 한편을 내어줄 수 있는 마음 넉넉한 이는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 그렇다고 탈출에 성공해 난민촌에 정착한다고 해서 삶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는다. 이전의 삶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난민촌을 떠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들에게는 희망 또는 꿈 따위는 어쩌면 이미 오래전에 사치로 변한 말들인지도 모른다. 이 세상 어딘가에서 그들은 살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
우리의 삶이 평안하다고 해서, 슬픔을 몰라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의 삶이 기쁨으로 충만하다고 해서, 아픔이나 고통 따위는 그저 남의 처지라 치부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이라 해서 희망을 품지 말란 법도 없지 않은가. 꽃길은 아니더라도 그리 환하지는 않더라도 빛을 볼 수 있도록 궁리를 하는 것도 옳지 않을까.

작가 소개
지은이 : 플로렌스 제너 메스
어떤 이는 장미꽃 속에서 태어나고, 어떤 이는 양배추 속에서 태어난다고도 합니다. 또 어떤 이는 책 속에 파묻혀서 태어나거나, 아니면 책의 이야기 속에서 튀어나오기도 한다지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는 늘 책과 이야기로 둘러싸여 있었다고 합니다. 스트라스부르의 ESPE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고 있으며, 2001년부터 동화 쓰는 일도 열심히 하면서 그림책과 구연동화 그리고 짧은 소설을 쓰는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