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김동인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소설가로, 1919년 최초의 문학동인지 《창조》를 발간하고 그에 첫 작품 〈약한 자의 슬픔〉을 발표했다. 이후 창작집 《목숨》 《배따라기》, 첫 장편 《젊은 그들》과 《결혼식》 《발가락이 닮았다》 등 주요 작품을 발표했다.
김동인은 조선에서 참예술을 건설하는 것이 독립운동에 버금가는 사업이라 믿었다. 그는 조선어로 참소설을 짓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하여 조선어에 있어서 간결체와 현대적인 문장을 형성하고 과거시제를 도입해 시간관념을 명백히 했다. 그는 “소설을 쓰는 데 가장 먼저 봉착하여 따라서 가장 먼저 고심하는 것이 용어였다”고 말한다. 창작을 통해 조선말을 새로운 차원에서 구성하려는 선언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소설의 언어를 고민한 ‘선구적 실천자’였다.
이러한 과제를 처음 실험한 작품이 〈약한 자의 슬픔〉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어 《김동인 작품집》에 두 번째 작품으로 실려 있는 〈마음이 옅은 자여〉를 통해 근대소설이 다루어야 하는 내용인 ‘내면’을 다루며 그 가치를 드러내는 고백체 방식으로 시도된다.
출판사 리뷰
참예술과 참소설 추구하며 간결체와 과거시게를 도입한
한국 근대소설의 기원으로서 김동인의 문학
《김동인 작품집》
김동인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소설가로, 1919년 최초의 문학동인지 《창조》를 발간하고 그에 첫 작품 〈약한 자의 슬픔〉을 발표했다. 이후 창작집 《목숨》 《배따라기》, 첫 장편 《젊은 그들》과 《결혼식》 《발가락이 닮았다》 등 주요 작품을 발표했다. 김동인은 조선에서 참예술을 건설하는 것이 독립운동에 버금가는 사업이라 믿었다. 그는 조선어로 참소설을 짓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하여 조선어에 있어서 간결체와 현대적인 문장을 형성하고 과거시제를 도입해 시간관념을 명백히 했다. 그는 “소설을 쓰는 데 가장 먼저 봉착하여 따라서 가장 먼저 고심하는 것이 용어였다”고 말한다. 창작을 통해 조선말을 새로운 차원에서 구성하려는 선언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소설의 언어를 고민한 ‘선구적 실천자’였다.
이러한 과제를 처음 실험한 작품이 〈약한 자의 슬픔〉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어 《김동인 작품집》에 두 번째 작품으로 실려 있는 〈마음이 옅은 자여〉를 통해 근대소설이 다루어야 하는 내용인 ‘내면’을 다루며 그 가치를 드러내는 고백체 방식으로 시도된다.
이러한 김동인과 대조되는 소설가는 염상섭으로, 조선의 참소설을 내세우고 이를 실천해온 김동인의 문학을 그와 비교할 때 그 문학사적 의의가 한층 선명해질 수 있을 것이다. 염상섭은 김동인이 그토록 고심한 용어와 문체의 문제를 고민 없이 당대 일본 소설의 것을 그대로 사용했다. 일종의 일본식 완제품으로 직수입되었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모델로서 서양소설의 톨스토이 방법론에 따른 김동인의 닫힘성과 도스토옙스키 방법론에 따른 〈표본실 청개구리〉 등의 열림성이 엇갈린다.
관념으로서 서양소설을 한쪽 발로 하고, 그것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때 다른 한쪽 발인 ‘활사실(活事實)’로 내려와야 한다는 것. 전자를 모더니즘이라고 한다면 후자를 리얼리즘이라 해야 할, 서양의 모더니즘과 조선의 현재성에 놓인 내면을 다루는 리얼리즘의 변증법적 전개가 조선 소설사에 있어 그 걸음을 제대로 걸을 수 있도록 하였다 할 것이다.
이후 카프문학, 이상 〈날개〉(1936), 박태원 〈천변풍경〉(1936)과 같은 작품들과 단층파(1937~38)의 모더니즘 등이 ‘활사실’에 주저앉는 소설판을 이끌어 올릴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엄밀한 변증법이 작동해 있었다. 이러한 변증법적 사유를 일깨우는 데 김동인의 문학이 작동하고 있으며, 그 문학사적 의의가 놓여 있음을 《김동인 작품집》을 통해 발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것이 독립운동에 버금가는 참예술 운동으로써의 문학의 몫이자 소설의 몫이었을 테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김동인
호는 금동琴童, 춘사春士. 평양 진석동에서 출생했다. 기독교 학교인 평양숭덕소학교와 숭실중학교를 거쳐 일본의 도쿄 학원, 메이지 학원, 가와바타 미술학교 등에서 공부하였다. 1917년 일본 유학 중 이광수(李光洙), 안재홍(安在鴻) 등과 교제하였다. 1919년 전영택, 주요한 등과 우리나라 최초의 문예지 [창조]를 발간하였다. 처녀작 「약한 자의 슬픔」을 시작으로 「목숨」, 「배따라기」, 「감자」, 「광염 소나타」, 「발가락이 닮았다」, 「광화사」 등의 단편소설을 통하여 간결하고 현대적인 문체로 문장 혁신에 공헌하였다.1923년 첫 창작집 『목숨』을 출판하였고, 1924년 폐간된 [창조]의 후신 격인 동인지 [영대]를 창간했다. 1930년 장편소설 『젊은 그들』을 [동아일보]에 연재, [삼천리]에 「광염 소나타」를 발표했다. 1932년 [동광]에 「발가락이 닮았다」, [삼천리]에 「붉은 산」을 발표하였다 .1933년에는 [조선일보]에 『운현궁의 봄』을 연재하는 한편 조선일보에 학예부장으로 입사하였으나 얼마 후 사임하고 1935년 월간지 [야담]을 발간하였다.극심한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소설 쓰기에 전념하다 마약 중독에 걸려 병마에 시달리던 중 1939년 ‘성전 종군 작가’로 황국 위문을 떠났으나 1942년 불경죄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 간사로 활동하였으며, 1944년 친일소설「성암의 길」을 발표하였다. 1948년 장편 역사소설『을지문덕』과 단편「망국인기」를 집필하던 중 생활고와 뇌막염, 동맥경화로 병석에 누우며 중단하고 1951년 6·25 전쟁 중에 숙환으로 서울 하왕십리동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목차
발간사 · 3
일러두기 · 7
소설 ― 11
약한 자의 슬픔 · 13
마음이 옅은 자여 · 78
배따라기 · 188
태형 · 206
유서 · 226
명문 · 287
감자 · 301
정희 · 311
X씨 · 335
유성기 · 338
광염소나타 · 341
광화사 · 365
벗기운 대금업자 · 387
무능자의 아내 · 398
발가락이 닮았다 · 421
붉은 산 · 434
가신 어머님 · 442
반역자 · 458
해설 | 우리 근대소설 기원으로서의 김동인 문학 ― 469
작가 연보 · 490
작품 연보 · 492
연구 논문 · 4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