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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른 행성에 있다
걷는사람 | 부모님 | 2023.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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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걷는사람 시인선 78권. 2019년 《딩아돌하》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한경숙 시인의 첫 시집. 한경숙 시인은 그간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 오면서 찰나의 순간에 발견할 수 있는 생동감 있는 시공간을 형상화하여 보여 주었다. 그의 시업은 “삶 속에서 밀고 당기는 크고 작은 힘들을 성찰”(《딩아돌하》 심사평)하는 일이다. 즉, 일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미묘한 시공간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새로운 세계를 창출하는 일인 것이다. 이번 그의 첫 시집 <나는 다른 행성에 있다>에서는 “이 공간에 다른 시간이 숨어 있는” 세계의 다층적인 차원을 우주적인 상상력으로 펼쳐낸 심도 있는 시편들을 두루 확인할 수 있다.

  출판사 리뷰

걷는사람 시인선 78
한경숙 『나는 다른 행성에 있다』 출간

“이 공간에 다른 시간이 숨어 있는 것이다
그 지느러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밀려오고 밀려가는 시간을 받아 적는 섬세한 손길
순간에서 영원을 포착하는 경이의 시선


2019년 《딩아돌하》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한경숙 시인의 첫 시집 『나는 다른 행성에 있다』가 걷는사람 시인선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한경숙 시인은 그간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 오면서 찰나의 순간에 발견할 수 있는 생동감 있는 시공간을 형상화하여 보여 주었다. 그의 시업은 “삶 속에서 밀고 당기는 크고 작은 힘들을 성찰”(《딩아돌하》 심사평)하는 일이다. 즉, 일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미묘한 시공간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새로운 세계를 창출하는 일인 것이다. 이번 그의 첫 시집 『나는 다른 행성에 있다』에서는 “이 공간에 다른 시간이 숨어 있는” 세계의 다층적인 차원을 우주적인 상상력으로 펼쳐낸 심도 있는 시편들을 두루 확인할 수 있다.
시인은 순간에서 영원을 본다. “낮달이 동백 혀에 새겨질 때”를 바라보면서 찰나의 순간에 경이를 발견한다. 시집에 등장하는 첫 시 「단념」에서 “弓弓乙乙(궁궁을을)/弓弓乙乙(궁궁을을)” 주문처럼 중얼거리는 소리는 아마도 동학(東學)에서의 영원한 생명, 완전무결을 상징하는 뜻으로 차용한 것일 텐데, 그러한 의미를 짧은 행간 사이의 넓은 보폭으로 시적 외연을 확장시키면서 탁월한 영원의 장면을 그려낸다. 제목으로 쓰인 ‘단념(丹念)’은 시인의 태도를 일컫는 말이겠지만, 그와 동시에 “수백 년 동안 단념하지 않은” 동백꽃의 ‘단념(丹念)’과도 마주하게 한다. 그 찰나의 시간이 바로 “순간 속으로 영원이 ‘밀려오는’ 형국”(해설, 김형중)이며, 시인의 곧은 화두이다. 이처럼 시인이 몸소 “파도치는 곳으로” 나아가 “파르르” “밀려오”(「친구에게」)는 시간을 빼곡하게 기록한 ‘영원’은 그가 직관적으로 발견한 시간 속 틈의 세계이다.
시인은 미세한 시간의 균열을 착란과 현기증으로 느낀다. 언젠가부터 “작고 사소한 물건들이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이 공간에 다른 시간이 숨어 있는 것”을 감지하고, “그 지느러미들이 움직이”는 동안 시인은 “바람의 예감은 바람 너머로”(「정전기」) 넘어가는 현기증을 앓아야 했다. 그리하여 모든 정신적, 신체적 감각의 근원은 “알 수 없는 언어로”만 다가와 시인의 “안부는 다른 행성에”(「나는 다른 행성에 있다」) 존재하게 된다. 결국 시인의 그런 어지럼증의 해결책은 다시 ‘단념’으로 회귀되기에 이른다. 그렇기에 자신의 존재를 “삶 속에 계속해서 던져진 것”이라고 말하는 시인의 자조적인 단언과 “눈에 띄는 것이 싫어서/숨어 있거나 일상에 바짝 붙어”(「그림자」) 있다는 자기 고백적 언술들은 적지 않은 슬픔을 불러일으킨다. 시인은 힘들게나마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고 표현하는데, 해설을 쓴 김형중 평론가는 ‘묻다’라는 단어가 ‘의문을 가지다, 질문하다’와 ‘(땅이나 낮은 곳에) 내려놓고 무언가로 덮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동음이의어 차용에 능한 시인이니 저 ‘묻다’를 후자의 의미로” 사용했을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렇기에 시인의 안부는 단지 땅에 묻어 버리는 것이 되고, 현기증과 착란으로 겪는 이질적인 시공간도 ‘단념’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게 된다.
한경숙 시인의 시집을 읽는 동안에 독자는 불가항력적인 진공 상태에 놓인다. “순간/펼쳐진 책 위”로 “자음과 모음이 서로의 살을 섞”(「나무는 증발한다」)으면서 “정교한 결을 따라”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어둠을 마시고 있는 하늘”(「호랑가시나무 언덕 위에 서 있을 때」)을 유영하게 된다. 삶이란 결국 한 편의 “슬픈 이야기”이므로 “슬픔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여러 가지 빛깔의 꿈을 꾸는”(추천사, 문순태) 일처럼 의미 있는 일이 또 있을까. 시인이 오랜 시간 감각의 통증으로 겪어 온 시공간의 왜곡은 아름다운 한 권의 행성이 되었다. 그리하여 시인의 깊은 ‘단념’은 무한한 진공의 상태를 느낄 만큼이나 색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낮달이 동백 혀에 새겨질 때

붉은 멍이 들었으나
상관없을 것이다

弓弓乙乙
弓弓乙乙

농민군들의 시체가
왕의 무덤처럼 쌓여 있다
-「단념」 전문

손톱은 몸에 붙어 있는 화석 같다
자신의 눈을 떠돌며 태어나는 새들처럼
도시의 네온,
콘크리트 원시림 속으로 새떼가 날아오는 밤

까만 손톱 밑에도 새떼가 가득 들어 있다
나는 그들을 붙잡지 않았다
쑥잎 같은 안개가 자욱한 밤
우거진 슬픔과 사라지는 안개
공기는 손길이 닿지 않는 바다로 간다

골짜기처럼 좁아진 바다 위를 새떼는
등대가 되어 떠다닌다
나는 손톱을 바닷물에 담가 보았다
바다에서 죽음도 다시 태어난다
물 잠긴 손톱 위에 새떼가 떠오른다
달을 찾아 입을 벌리고 날아오른다
-「달의 뒷면 1—손톱 위에 새떼가 떠 있다」 전문

어린 왕자는
하루 종일 비가 내리면 그곳으로 갔다
하얀 바람을 만나
해가 지는 강을 좋아했고
금성이 머물러 있는 저녁에 걸터앉아
잔잔한 강물 속에서
헤엄치는 달빛에 머물렀다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하얀 바람을 만나
흔들리는 풀잎에게
닿을 수 없는 먼 곳에 있으면서도
늘 안부를 묻고 이별을 이야기했다

안개 가득한 산 아래 강을
아직 건너지 않았고
사시사철 불어온 하얀 바람을
나는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곧, 비 냄새가 흩어졌다
꽃잎에 매달린 봄이 그치고
짙은 녹음으로 가려질 아득한 계절에
금성이 머물러 있는
저녁에 걸터앉으면
알 수 없는 언어로
너는 나에게 건너온다
나의 안부는 다른 행성에 있다
-「나는 다른 행성에 있다」 전문

  작가 소개

지은이 : 한경숙
서울에서 태어나 2019년 《딩아돌하》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목차

1부 슬픔이 벌레처럼 따뜻한 나의 집
단념
놋쇠 그릇 꺼내고 닦는 날
모판
부산떡 김오례 여사께
바람의 울음
장미가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정전기
실업급여 수급자 인정일
평택에서 온 음성
침대를 보내던 날
벌레
가계도
달의 뒷면 1

2부 얼음을 그리는 마음
그 사람 얼굴에 달이 스민다
나는 다른 행성에 있다
그림자
얼음산
두려움은 늘 혼자일 때만
이게 이별일까?
소문들
태어난 날 꾸었던 꿈
거짓말
호랑가시나무 언덕 위에 서 있을 때
구름

3부 캄캄해서 너무 맑다
가을 목어
노래하는 사람
부용동 정원에서
춤추는 가얏고
와온에서
세방낙조
산벚꽃
설도
가을 소나기
와운 마을 천년송
두 개의 심장 168번 느티나무
윙컷
백 년을 읽는 동안

4부 흰 눈으로 돌아가고 싶어
괜찮다는 말
아침
문득 쳐다본 밤하늘에 찾아온 메시지
말이 말굽이 될 때까지
까마귀들이 날아오르는 시간
나무는 증발한다
뿌려지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사라져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랑 이야기를 읽고
싶어
독방에서 독방으로
오랜 침묵
친구에게

해설
말의 발굽
—김형중(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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