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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설정원
시인의 일요일 | 부모님 | 2023.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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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2005년 《시와사상》으로 등단한 김예강 시인의 세 번째 시집. 그의 시는 첫 시집부터 이번 시집까지 공간에 대한 관찰과 집착을 놓치지 않는다. 두 번째 시집에서 좁고 구불거리는 골목을 따라 걸으며 지상에서 보이지 않는 ‘나머지 풍경’을 낯선 언어로 그려 보였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장소의 부재’를 상징하는 ‘가설공원’에서 실감하는, 위태로운 삶의 난해와 난감을 온몸으로 그려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출판사 리뷰

남쪽 모더니스트가 보내는 SOS
‘가설정원’에서 헤매는 ‘수습사원’의 정체


2005년 《시와사상》으로 등단한 김예강 시인의 세 번째 시집 『가설정원』이 출간되었다. 그의 시는 첫 시집부터 이번 시집까지 공간에 대한 관찰과 집착을 놓치지 않는다. 두 번째 시집에서 좁고 구불거리는 골목을 따라 걸으며 지상에서 보이지 않는 ‘나머지 풍경’을 낯선 언어로 그려 보였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장소의 부재’를 상징하는 ‘가설공원’에서 실감하는, 위태로운 삶의 난해와 난감을 온몸으로 그려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집의 제목인 ‘가설정원’을 지극히 단순하게 풀어내자면, ‘임시로 설치한 꽃밭’이다. 이때 ‘가설’이 갖는 임시적 속성을 바탕으로 시인은 어떤 문제를 예측하는 진술이자 변수로서 우리 삶의 진실을 추정하려고 의도한다. 이를테면 「채광창」 「새들이 짓는 집」 「미지의 땅」 「100층 옥탑방」의 작품들이 그렇다. 일반적으로 집으로 은유되는 안식처는 존재의 자기 증명을 가능케 하는 장소지만, 김예강 시인에게는 부재의 사실을 상기시키며 좌절의 고통만이 가중될 뿐이다. 오히려 존재의 결여에 대한 은유이다.

시인에게 ‘장소’는 인간이 물리적 기반 위에 체험으로써 역사를 뿌리내리는 곳이자 오감(五感)으로 체득되는 공간이다. 우리의 총체적 삶의 현장이다. 그런데 이러한 장소가 정서적 공간으로 확정되지 못한다면, 인간으로서의 존재마저 위태로워진다.
모든 존재는 안락한 삶의 장소를 원하듯이, 시인은 현실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다른 무엇이 될 가능성을 지닌 ‘집’을 원한다. 하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김예강 시인은 벼랑과 국경의 경계를 통해 불안정한 주체를 새롭게 인식하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위무의 기능으로 시를 써내고 있다.

존재로서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총체적으로 삶의 진실에 닿기 위한 노력이 김예강 시인의 시쓰기 목적일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임시의 미완적 공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터전을 소망하는 동시에 ‘지금’의 불행한 현실로부터 해방을 가져다준다. 안주할 곳을 잃고 떠도는 자의 비애, 상실을 내면화한 존재의 위태로움을 김예강 식으로 극복하려고 한다.

슬픔의 책을 사들고 집으로 간 사람들

대다수 우리가 생활을 영위하는 공간은 ‘가설정원’으로서의 ‘도시’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정주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혹자가 유목정원이라고 했”듯이 마치 ‘수습사원’처럼 소속감 없이 우연성에 휩쓸리며 스스로 취약한 처지로 내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이유로 “가설한 행복”이 아닌 “씨앗”의 가치가 발아할 수 있는 곳으로 떠나야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삶의 진실이 무언가를 완성해 내는 데 있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가을정원이라는 간판을 떼어 넣고/ 가축을 몰고 초원을 찾아 떠”나는 행위 자체, 그 수행성이야말로 존재를 주체로 자리매김하는 사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저 외부에서 구해야 할 무엇은 아닐 것이다. 인위적인 공간 안에 서 ‘집’을 구축하여 사회적 역할과 사회적 관계를 통해 일상적인 삶을 느낌으로써 안정과 위안의 정주지, 즉 장소를 마련할 수도 있다. 주체의 시원은 저 불분명한 공간에서 자신의 장소를 만들어 타자와 주체를 마주하게 하고 이를 통해 실제를 경험하는 일로부터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집’은 일종의 메타적 공간으로 시인이 쓰는 시의 장소로 읽을 수 있다. 시인에게 ‘집’은 불완전한 주체의 타자성 을 감각하는 곳이면서 이를 돌파할 방안으로 구축될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을 상상케 하기 때문이다. 현실적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다른 무엇이 될 가능성을 지닌 ‘집’을 상상하며 주체로서의 자신을 찾으려는 반복적 수행이야말로 일종의 제 의적 자학과 견딤의 언어적 실천이자 시인의 원체험을 가능케 하는 시적인 삶의 승화라고도 할 수 있다.

「수습사원 재단사 K」의 원룸 창가에 놓인 식물은 수생식물이었다. 물속에서 성장하는 식물의 총칭으로서의 수생식물은 K 자신이 식물이 되는 환상성과 결합하여 협소한 존재의 기원을 톺아보는 기제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는 여타의 시편에 나오는 ‘바다’가 의미하는 바와 같이 존재가 돌아가야 할, 혹 은 시적 주체가 가 닿기를 바라는 시원적 장소를 갈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물’의 이미지는 존재의 원체험이 각인된 장소를 상징하면서 시적 주체에게 결여된 것을 깨닫게 하여 불안의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시 안에서 현시되는 이유는 ‘눈물’의 카타르시스처럼 존재로 하여금 불안으로 인해 타자화되지 않고 스스로를 주체로 밀어 올릴 계기를 마련하기 때문일 것이다.

구두를 벗어 말린다
생은 여기까지라던 12월

기둥 없이 떠 있는 방
너는 매일 건축을 생각했다
열어둔 서랍인 듯
햇빛 드는 집이 건축된다고
너는 말했다
야트막한 언덕 집은
강의 서랍처럼
입구에 새가 와서 앉는다
- 「채광창」 부분

언니는 망치를 안고 잠을 잘 것이다 여름정원에서
밭을 살리려고 꽃을 엎는 정원사처럼
사나운 그늘도 부수고 뜯어낼 것이다

혹, 자전거가 늪에 빠져 악어이빨이 자라난다면
혹, 들판에서 염소 뿔에 들이받힌다면
염소똥 같은 덩굴손은 동그랗게 매어주며
어떻게 할까 밤을 지샐 것이다

나는 언니와 같은 비를 맞고 같은 우산을 들고
언니와 같은 장화를 신고
나팔꽃 섶을 짓는다
흔들리는 집을 흔들리지 않을 집을 지을 것이다
- 「언니」 부분


잘 모르는 사이인 당신이 노래를 한다
잘 아는 사이인 당신이 노래를 한다
내 몸에서 무슨 음악이라도 들리는지
바짝 귀를 붙이고 흠칫 뒷걸음을 친다
저 달이
두려움 없이 기쁨 없이
- 「잘 모르는 사이인 당신 노래를 듣는 밤」 부분

  작가 소개

지은이 : 김예강
2005년 《시와사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고양이의 잠』 『오늘의 마음』이 있다.

  목차

1부
수습사원 재단사 K/ 새들이 짓는 집/ 채광창/ 언니/ 발가락 깁스에 목발로 바다로 갔어요
/ 우리가 고르는 정장 슈트/ 가족/ 지저귀는 새/ 못의 대화/ 트랙 멀리/ 흰죽/ 오늘
/ 피노키오의 기도/ 명동

2부
드로잉 / 눈물/ 도마/ 수국정원/ 잘 모르는 사이인 당신 노래를 듣는 밤/ 안개
/ 그녀가 울고 있다/ 생일/ 물 발자국/ 뛰노는 아이들/ 구름의 표정
/ 바게트 먹기—겨울산행/ 얼음 위 식사/ 물방울/ 지구만 한 시계/ 에코백/ 종이처럼

3부
작은 별이 해변에서/ 기도/ 서책의 첫 페이지/ 햇살이라 불리는 장미를 사다/ 자가격리
/ 달팽이/ 우리 집 이사 트럭/ 그녀의 날개 / 미지의 땅/ 껍질/ 쪽파/ 초콜릿/ 실론
/ 선잠/ 손

4부
셀프 주유— 감정들 / 100층 옥탑방/ 12살 마태오의 해변—감정들 / 라임나무를 심다—꿈
/ 단 한 가지 망고/ 잠 속의 비/ 7시 25분 시티 지나기/ 자정/ 스윙 인 흰여울—이전 개업
/ 스윙 인 흰여울—나는 당신이 됩니다/ 스윙 인 흰여울—창을 열다/ 가설정원

해설 가설정원에서의 삶, 그 너머 | 이병국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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