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이야기는 타인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직접 알려줄 수는 없지만, 그들이 처한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느낄지를 상상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야기가 가지는 공감의 힘일 것입니다. 추상적인 논증은 어느 정도 배경지식을 일러줄 수 있지만, 이야기야말로 오히려 직접적이고 절실하게 핵심을 보여줍니다.
소설잡지 『긋닛』은 그런 이야기의 힘을 믿습니다. 이야기는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세계와, 거기에 분명히 있지만 잘 보이지 않고 보지 않으려 하는 세계를 연결해 보입니다. 『긋닛』은 우리 시대에 간과할 수 없는 특정한 주제와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 편의 주제 에세이와 세 편의 단편소설을 엮어 독자들에게 선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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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긋닛』 3호는 ‘노동과 우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인간이 생존하고 생활하기 위해서는 의식주를 위한 물자가 필요하고, 이러한 물자를 획득하기 위해 원시시대 때부터 이미 인류는 열매를 채취하고 사냥을 하고 물고기를 잡는 활동이 필요했습니다. 인간은 존재 자체로부터 생존 수단의 획득이 필연적이므로, 어떠한 사회도 인간의 노동 없이는 유지되지 못합니다.
농경사회에서는 농업을 중심으로, 근대산업사회에서는 또 그에 맞는 각종 생산활동이 이루어졌으나, 2023년 현재 노동의 형태와 그 양상들, 그리고 가치는 크게 변하고 있으며 급변하는 사회는 노동을 둘러싼 환경 역시 급격하게 바꾸어놓고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사회 초년생들은 몇 년씩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고, 반대로 일손이 필요한 생산직은 노동력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최근에는 의대 지원 쏠림 현상까지 심각한 사회문제로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의 가치가 하락한 지는 오래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 후 바로 현장에 투입된 어린 청년들은 불안전한 환경 때문에 큰 사고를 당하기가 일쑤고, 남녀간 학력간 학벌간 임금격차를 비롯한 각종 불평등은 그 크기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갑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도 업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불상사로 이어지는 일들도 다반사입니다.
현대사회는 점점 더 경제적인 것, 결국은 ‘돈’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고, 그럴수록 생산활동을 둘러싼 문제들은 더욱더 다양해지고 깊어지고 있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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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개인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에 더욱 조심스럽고 걱정스러운 현재의 ‘노동’에 대해 함께 고민해준 작가는 이상헌(주제 에세이), 민병훈 천현우 한유주(단편소설)입니다.
이상헌 ILO 고용정책국장의 주제 에세이 「푸른 못, 마르지 않는 눈물」은 거의 백 년 전에 발표된 강경애의 소설 『인간문제』를 통해 2023년 현재의 노동의 문제를 되짚어줍니다. 분명히 사회는 발전했고, 이 나라는 선진국의 반열에 들었으며, 노동법이 만들어졌고, 각종 지원정책도 도입되었으나 우리 사회의 노동, 노동자를 둘러싼 환경은 그때와 얼마나 달라졌는지, 앞으로는 더 무엇을 고민해야 할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민병훈의 소설 「그들이 하지 않은 일들」은 공항의 조류퇴치반에서 일하는 젊은 청년의 이야기를 통해, 노동-일의 가치에 대해 고민하게 만듭니다. 소설을 읽다보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서 의미를 찾던 시기는 어쩌면 지나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노동-일은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기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치를 이야기하는 것이 ‘팔자 좋은 소리’가 되는 사회에서, 생존을 위한 수단일 수밖에 없는 ‘일’의 가치를 찾고 노동자의 가치를 찾으려면 무엇을 고민하고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요.
천현우의 「임자」는 『쇳밥일지』를 펴낸 작가가 처음으로 선보이는 소설입니다. 『쇳밥일지』에서 생생한 노동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작가는 현장경험이 풍부한 그만이 써 보일 수 있는 작품을 선보입니다. 한때 산업역군으로 이 나라의 경제를 키웠다고 자부하지만 자신처럼 살게 하지 않으려 자식들 교육에 아등바등인 하청업체의 사장과, 더 이상 생산직을 직장으로 삼고 싶어하지 않는 청년세대, 어쩔 수 없이 이곳에서 잠깐이라도 ‘돈벌이’를 해야 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드라마를 보듯 생생하게 펼쳐집니다.
한유주의 「커뮤니티」는 늘 그렇듯 작가의 개성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여름 한낮, 어느 동네의 풍경이 마치 스냅사진을 이어놓은 듯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세상의 종말을 예고하는 불편하고 불온한 우편물을 신고하러 경찰서로 가는 여자와, 여자가 지구대에 들러 드러그스토어에 다녀오는 동안 펼쳐지는 풍경 속 인물들의 이야기에 작가는 전혀 개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무심한 듯, 보이는 그대로의 모습을 묘사한 그 풍경을 가만히 따라가다보면 그 안에는 결국 누구도 주인공이 아니며 또한 모두가 주인공인 우리들 각자의 이야기가 놓여 있습니다.

21세기 일터는 분열의 세계다. 노동법의 유려한 문구는 대기업 조직 노동자들에게는 그나마 ‘쓸 만한 친구’이지만, 그외 대부분의 다른 노동자들에게는 ‘아득한 꿈’이다. 후자를 부르는 이름마저 가혹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다. 비정규직의 일터는 마치 단테의 지옥도처럼 촘촘하게 엮어올린 사슬이다. 불안정 계약의 씨줄과 하청의 날줄로 짜여진 그곳은 한번 들어서면 빠져나가기가 힘들다. (……)
여기에 젠더와 나이 문제가 겹쳐지면 노동세계는 또다시 분열된다. 청년이 일터의 미래라는 언설은 넘치지만, 그 미래를 위한 투자와 협력은 항상 ‘품절’ 상태다. 청년에게 기회는 주지 않으면서, “더욱 노력하라”는 수천 년 묵은 꼰대질은 계속된다. 점점 더 많은 여성이 일터로 나가고 있지만, 차별은 좀체 줄지 않는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이제까지의 성과가 씁쓸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이룬 것은 오로지 노동자의 힘 덕분이다. 전태일은 제 몸을 불태우며 노동법을 살려냈고, 1970~1980년대에는 선비의 후배 여공들이 우리를 ‘차별 없는 세상’으로 한 발짝 내딛게 했다. 노동조합을 둘러싼 싸움도 격렬하고, 때론 처절했다. “구하라 그러면 받을 것이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소리내어 온몸으로 외쳐야 겨우 얻을 것이다. 20세기 노동이 준 교훈이다. 21세기라고 다르지 않다. 노동자는 여전히 싸운다. 덜컥대는 재봉틀이나, 불똥 튀기는 용접기뿐만 아니라, 컨베이어 벨트 같은 매장 계산대에서, 휴대폰에 떠오른 주문을 쫓아 달려가는 오토바이에서, 노동의 싸움은 계속된다. 어설픈 지식인의 말들은 늘 그랬듯 저 배달 오토바이를 뚫고 가는 바람 같은 것이다. 시끌벅적하게 몰려왔다가 이내 뒤로 밀려난다.
_이상헌, 「푸른 못, 마르지 않는 눈물
작가 소개
지은이 : 한유주
2003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중편소설 『우리가 세계에 기입될 때』, 소설집 『숨』 『연대기』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얼음의 책』 『달로』, 장편소설 『불가능한 통화』가 있다. 한국일보문학상 김현문학패 등을 수상했다.
지은이 : 이상헌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국제노동기구(ILO)의 고용정책국장이다. 삼천포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뒤 서울대 학부와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일찍 결혼하여 가족을 이루고 영국 케임브리지로 가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마쳤다. 그 후 줄곧 ILO에서 여러 직책을 거치면서 일하고 있다. 노동시간, 임금, 고용에 중점을 두면서 포괄적인 연구와 정책을 개발하고 있고, 이를 기반으로 여러 나라에 정책 조언을 한다. 노동경제학이 전공 분야이지만, 노동에 대한 단편적인 경제학적 접근에 대해 비판적이다. 수년 전에 《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 한다》를 출간했고, 최근에는 초등학교 동창인 아내 옥혜숙과 의기투합하여 《우린 열한 살에 만났다》를 썼다. 지금은 스위스 국경으로부터 멀지 않은 프랑스의 한적한 산마을에서 아내와 보스니아에서 입양한 강아지 한 마리를 돌보며 살고 있다.
지은이 : 민병훈
2015년 『문예중앙』에 단편소설 「버티고vertigo」가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재구성』 『겨울에 대한 감각』, 장편소설 『달력 뒤에 쓴 유서』가 있다.
지은이 : 천현우
1990년 마산에서 태어났다. 삶의 대부분을 고향에서 보냈다. 전문대 졸업 후 공장에서 쉴 틈 없이 일했다. 2021년부터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했다. 현재는 미디어 스타트업 alookso에서 일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쇳밥일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