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시조 전문지 <가히>가 창간되었다. 계간 <가히>는 시조단의 오랜 숙원이었던 새로운 잡지의 출현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민족 문학으로서의 대를 이어온 시조의 품격을 높임과 동시에 시조시인들의 자존과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출판사 리뷰
■ 창간 특집
―《내일을 여는 시조 101》
계간《가히》가 창간 특집으로 마련한《내일을 여는 시조 101》은 시조의 오늘과 내일을 되짚는 기획이다. 《가히》 창간의 깃발을 올리며 마련한 이 특집은 시조의 어제를 돌아보고 오늘을 진단하며 내일을 전망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원로시인 이근배, 윤금초부터 신진시인 이희정, 최보윤에 이르기까지 시조를 택한 처음의 마음이며 문학관 그리고 창작의 방향 같은 것도 다시 살피고 가늠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오늘의 삶과 함께하는 정형시로서의 문학적 위상을 새롭게 만들어나갈 《가히》에 푸른 등을 켜는 신호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시조의 현주소에 대해 깊어진 궁리를 들고, 지금은 물론 이후의 시조를 더 뜨겁게 찾아가리라 기대한다.
■ 《가히》 창간에 부쳐
시조의 오늘과 내일은 정형시로서의 미학성에 달렸다. 물론 기왕의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고 새롭지도 않은 시조를 현대의 정형시로 내세우는 식은 아니다. K‐팝의 세계적 매료도 기존의 것과 다르게 만드는 새로운 음악성에서 나온다고 한다. 아이돌의 상징 같은 칼군무며 인형 같은 외모를 넘어 높은 완성도와 세련미 담긴 노래가 새로운 장르를 써나가는 힘이라는 것. 가요도 그러한데 하물며 시에서이랴. 일찍이 가람이 강조한 혁신이 창작에선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일상적 언어의 획일적 세계와 결별”(옥타비오 파스)하는 작품으로 늘 새로 서기 위해서라도. 언어든 기법이든 너무 익숙해진 세계에 안주하면 오늘도 진화 중인 현대예술과의 동행이 어렵다. 거기에 노래성이라는 시조의 본래적 특성을 되살리는 것도 다시 찾아볼 길이다. 자유시에서 멀어진 시의 음악성을 시조는 더 잘 살려야 하니 현대적으로 되살리는 방법을 구할 필요가 있다.
꽃피면 나는 접동이
뒤 숲에서 피를 쏟고
눈 오면 풋사슴 되어
눈밭에 몸 사르다
꽃 지고 눈도 그치니
허물 벗어 빈 가지에 떠네
달 뜨면 밤을 도와
달 빚느라 허기지고
별 지면 오나 오나
뜨는 얼굴 좇아가다
웬 세월 모두 벗어버리고
길 밖에 나 서 있네
― 이근배, 「꽃 지고 눈 그치니」 전문
빗방울에 매달려 흐르고 싶을 때 있지
흐린 눈 비비며 두 팔 감고 오르는
나팔꽃 입술을 열어 혹시를 불러보는데
알아요를 보면서 몰라요를 듣는 것
왼쪽을 가리키며 오른쪽을 걷는 것
누구든 그럴 수 있지, 우연에 기대어
오고 있나요, 가고 있나요, 그 중간 어디쯤
찰나 혹은 잠정적으로
표류하거나 정박하거나
읽다가 놓쳐버린 곳
도대체 어디쯤일까
― 이희정, 「빗물을 읽는 방식」 전문
그물코가 삼천이면 귀신도 잡는 날 있다지.
먹물 풀어 휘저은 저 어둠 깊은 미망(迷妄) 한끝
까치놀 목울음 삼키고 뉘엿뉘엿 널뛰기한다.
하필 그때 바람꼽자기 부연 모래바람 일고,
목말 태운 물보라가 주책없이 노닥거린다.
거품을 머금은 밀물이 에멜무지로 어깨 겯고.
미친 파랑 머리에는 흰 메밀꽃 앉아 놀고
울툭불툭 융기하다 땅재주 넘는 물굽이엔
야행성 들짐승인가, 푸른 인광(燐光) 번득인다.
하마, 하마, 모르지만 그새 곡두 만졌을까?
흐느끼고, 탄식하고, 두런대는 소릿결 넘어
난바다 독과점(獨寡占) 내고 누엣결 춤을 춘다.
― 윤금초, 「곡두」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