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조선 후기, 자칫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던 우리 차 문화를 되살린 초의선사. 하지만 초의가 되살려놓은 다법(茶法)은 조선의 국운 쇠락과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이라는 국가 재난의 연속으로 크게 꽃피우지 못했다. 다행히도 그 맥은 끊기지 않고 초의의 제자들에게 전해져 실낱처럼 명맥을 유지해왔다. 근대에 이르러 초의의 다풍(茶風)은 응송 스님에게 이어졌고, 응송 스님은 1985년, 이 책의 저자인 박동춘 박사에게 『다도전수게(茶道傳受偈)』를 내려 초의의 다도 계승자임을 인정했다.
저자는 이 인연으로 초의 연구에 매진했다.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한학을 깊게 공부한 덕에 초의와 그와 교류했던 경화사족(京華士族)이 남긴 한문 문헌을 읽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초의선사의 다도 연구를 주제로 동국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자타가 공인하는 초의학(草衣學) 최고의 권위자가 되었다. 초의의 다도법 연구에 천착한 지 40여 년이 지난 지금, 저자는 초의와 초의차의 대한 방대한 연구 성과를 이 책에 담아 세상에 내놓았다. 기존 연구 성과는 물론 최근 발견된 초의선사의 새로운 자료를 모두 모은 이 연구서는 ‘초의 사상’의 의문을 풀어낸 연구 성과물이다.
출판사 리뷰
기존 연구 성과와 최근 발견된
초의선사의 최신 자료를 모두 담은
한국 최고의 ‘초의 사상’ 연구서
우리나라에 차가 소개된 시기는 대략 6세기 말에서 7세기 무렵으로 추정한다. 특히 당(唐)을 왕래한 승려들이 적극적으로 차를 유입했다. 10세기 말경에 이르면 외래문화인 차 문화가 고려인의 기호와 풍토를 함의한 우리 차 문화로 발전하였다.
고려 시대는 우리 역사에서 차 문화가 가장 융성했던 시기인데, 왕실 귀족과 승려들이 차를 향유하며 다사(茶事)를 주도하였다. 문예적 안목이 높았던 고려의 음다층은 세련되고 예술적인 고려만의 차 문화를 완성했다. 그러나 조선 시대에 이르러 차 문화는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 불교를 배척했던 조선의 지배층은 차가 불교문화를 상징한다는 인식으로 멀리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차는 극소수의 수행승들 사이에서나 그 명맥을 잇게 되었다.
이것이 조선 후기 초의선사의 등장으로 일변하기 시작했다. 초의는 차의 이론을 정립하고 선대의 제다법을 복원하여 초의차를 완성하였다. 당시 중국차만을 알고 있던 지식인들에게 우리 차의 우수성을 인식시켰다. 초의는 자신이 만든 초의차를 통해 조선 후기 유학자들과 교유하며 차에 대한 관심과 애호를 끌어내어 조선 후기 차 문화 중흥을 도모했다.
이 책은 이러한 초의의 생애, 수행, 저술을 심도 깊이 연구하고, 조선 후기 차 문화를 중흥할 수 있었던 배경을 상세히 파헤쳤다. 또한 초의가 정립한 제다법, 탕법, 장다법을 통해 그만의 다도 사상을 살폈다.
초의가 당시 한양과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경화사족(京華士族)들과 교유하며 음다 기층을 확보해 간 과정을 보여주고, 끽다거(喫茶去)의 선다전통을 이은 초의차가 누구에게로 계승되었는지 규명하여 초의차 계보를 알게 한다.
『동다송』, 『다신전』, 『일지암시고』 등과 초의에게 보낸 유학자들의 간찰, 초의와 교유했던 인사들의 문집을 기본자료로 활용하고 저자가 발굴해낸 초의선사의 유품 목록인 『일지암서책목록』을 통해, 초의의 구체적인 다도 사상을 밝혔다. 이와 함께 근래에 발견한 초의와 추사 김정희의 새로운 자료를 비롯하여, 초의와 교유했던 경화사족의 새로운 자료도 이 책에 담았다. 초의 관련 최신 연구 자료를 담아 집대성한 최초의 연구서이다.
전다박사(煎茶博士)이자 ‘한국의 다성(茶聖)’ 초의,
차를 통해 선(禪)·교(敎) 융합의 선사상을 정립하다
초의는 조선 후기 사라질 위기에 있던 사원차를 복원하여 초의차를 완성하였다. 또한 실학에 눈뜬 경화사족들의 차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여 애호층을 확산했다. 초의와 경화사족의 교류는 초의가 차 문화를 중흥할 수 있었던 동력이었다. 당시 초의와 교유했던 경화사족들은 그를 전다박사(煎茶博士)라 칭하였는데, 이는 초의를 차 전문가라고 인정한 것이다.
초의가 차 문화 중흥에 미친 영향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는 초의의 저술인 『동다송』과 『일지암시고』, 초의가 남긴 서책의 목록을 기록한 『일지암서책목록』, 박영보의 「남다병서」, 신위의 「남다시병서」가 있다. 그리고 유학자들이 초의에게 보낸 간찰, 범해의 문집인 『범해선사유고』, 초의와 교유했던 인사들의 문집 등이 있다.
초의는 선·교 융합의 수행체계를 토대로 그의 선사상을 정립하였다. 이는 휴정 이후 대둔사에 전해진 수행 체계를 계승한 연담, 완호 등에게 영향받은 것이다. 아울러 그의 사상에 스며든 유학사상은 정약용, 김정희 등 성리학에 밝았던 인물과의 교유를 통해 영향을 받았다.
특히 초의는 정약용에게 시학과 학문 방법, 유가 사상 및 역사관 등 많은 영향을 받았다. 수행승이었던 초의가 유학, 시학, 문예 예술에 깊이 천착했다는 점은 그의 장서 목록인 『일지암서책목록』에 상당량의 유가서(儒家書), 당송 대의 시문 등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초의 다도는 선림(禪林)의 끽다거(喫茶去) 전통을 이었다고 볼 수 있다. 중국 당나라에서도 차와 선종이 융합하여 제다법과 탕법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왔으며, 이를 토대로 발전된 차 문화를 구축할 수 있었다. 초의 역시 조주선사의 ‘끽다거’ 전통을 이은 선종 수행승들이 지향했던 선림의 차 문화 전통을 이었다. 이를 기반으로 차 이론을 정립하고 제다법을 완성하여, 조선 후기 쇠퇴하던 차 문화와 대둔사의 끽다 전통을 되살리는 토대를 마련했다.
초의의 『동다송』은 차의 역사는 물론 좋은 차의 기준, 잎차의 제다의 원리와 그 가치를 확연히 드러낸 저술이다. 그의 다도는 제다를 통해 차의 오묘한 실체를 탐구, 관찰하여 실증적 이론을 완성하여 초의차를 만들었는데, 이는 차의 원리를 체화한 결과물이라 하겠다.
조선 후기 차 문화 중흥은 초의가 사대부들과 활발히 교유했던 1830에서 1866년까지 지속되었으나, 초의가 입적한 후로부터 후대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이는 근대로 이어지는 사회적인 혼란 속에서 더 이상 차의 애호층을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의 다도는 대둔사 다풍으로 정착되어, 그의 제자들에게 이어졌다. 범해는 초의 다도를 이은 다승(茶僧)으로 여러 편의 다시를 남겼고, 이어 송광사에서 수행했던 그의 제자 금명에게 이어졌다. 그러나 금명의 뒤를 이은 제자는 근현대 불교계의 격동기를 거치면서 제대로 맥을 이어가지 못했다. 반면에 범해의 제자인 대둔사 원응으로 이어진 초의 다풍은 응송으로 이어져 박동춘에게 전승되었다.
우리나라에 차가 소개된 시기는 대략 6세기 말에서 7세기 무렵으로 추정한다. 대개 당(唐)을 왕래한 도당(渡唐) 구법승이나 관비사비 유학생, 사신, 상인 등을 통해서였고, 특히 구법승은 적극적으로 차를 유입한 계층이라 할 수 있다. 구법승들은 선종 수행과 융합된 음다풍(風)을 신라에 소개하였는데, 10세기 말경에 이르면 외래문화인 차 문화가 고려인의 기호와 풍토를 함의한 우리 차 문화로 발전하였다. 고려 시대는 우리 역사에서 차 문화가 가장 융성했던 시기인데, 왕실 귀족과 승려들이 차를 향유하며 다사(茶事)를 주도하였다. 문예적 안목이 높았던 고려의 음다층은 세련되고 예술적인 차 문화로 발전시켰고, 이와 더불어 고려의 색채를 띤 차와 다구(茶具)가 생산되면서 송(宋)에 비견할 만한 고려의 차 문화가 완성되었다.
차는 선의 최종 목적지가 아니다. 차는 선 수행의 장애 요소인 잠이나 적체된 몸의 피로감을 해소시키는 정신음료이다. 그러므로 차와 선이 긍극적으로 도달할 목표점은 근원적으로 다른 개념이라 하겠다. 물론 차를 만들거나 차를 다릴 때 삼매의 집중성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조다삼매(造茶三昧)와 전다삼매(煎茶三昧)는 삼매의 경지에서 차를 만들어 차를 다려야 한다는 점에서는 원리에 맞는 것이지만, 엄격하게 구분한다면 다선일미란 일치될 수 없는 철학 개념인 셈이다
초의는 조사선을 근간으로 하고 청허가 주창한 선교일치의 수행 입장을 견지하는 선리를 내세우며 『선문사변만어』를 저술하였다. 초의의 선리를 드러낸 『선문사변만어』는 치밀한 고증을 통해 이종선(二種禪)의 이론적 바탕을 구축하였는데, 이러한 고증 태도는 정약용과 김정희에게 영향을 받은 고증학의 학문적 방법론에 입각한 것으로 보인다. 초의는 백파가 『선문수경』에서 주장한 삼종선(三種禪)을 반박하고, 이종선을 주장하는 『선문사변만어』를 저술하여 이종선과 삼종선 논쟁을 촉발시켰다. 이는 조선 후기에 벌어진 전통적인 사상과 새로운 사상의 대립이라는 점에서 근현대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박동춘
초의선사의 다맥(茶脈)을 이은 응송 박영희 스님에게 <다도전게(茶道傳偈)〉를 받은 유일한 인물이다. 이는 저자가 조선 후기 초의선사에 의해 정립된 ‘초의차’의 이론과 제다법을 이어받았다는 증거이다. 저자는 우리 전통 차의 적통인 ‘초의차’를 잇는 한편 한국 차 문화와 관련된 자료를 발굴하고 연구하는 일에도 힘썼다. 이처럼 초의선사의 다도 연구를 주제로 연구에 매진한 결과 동국대 대학원 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응송 박영희 스님으로부터 무공(無空)이라는 법호를 받았으며, 전 성균관대 겸임교수를 지냈고, 현재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겸임교수이자 사단법인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이사장 겸 소장을 맡고 있다. 또한 ‘초의차’를 계승하는 ‘동춘차’를 만들어 한국 다도의 맥을 보존·전수하고 있다.한국 차 문화 부흥을 위해 노력한 저자의 공로는 제2회 화봉학술문화상(2011), 제22회 행원학술 특별상(2013), 제20회 다촌차문화 학술상(2021) 등의 수상으로 빛을 발했다.저서로는 『초의선사의 차문화 연구』, 『맑은 차 적멸을 깨우네』, 『우리시대 동다송』, 『추사와 초의』, 『박동춘의 한국차 문화사』, 『조선의 선비, 불교를 만나다』, 『초의스님 전상서』, 『초의 의순의 동다송·다신전 연구』, 『고려시대 차문화 연구』 등이 있다.
목차
| 저자의 글 |
초의차, 그 오묘함의 근원을 찾아서
Ⅰ. 들어가며
Ⅱ. 초의선사의 생애
1. 삶의 자취
1) 출가
2) 사승 관계
3) 서상수계
2. 저술
1) 선리(禪理)
2) 시문(詩文)
3) 다서(茶書)
4) 기타
3. 초의선사의 유품 목록
1) 「서책목록(書冊目錄)」
2) 「첩책목록(帖冊目錄)」
3) 「주련목록(柱聯目錄)」
4) 「명한시초(明翰詩抄)」
5) 「산업물종기(産業物種記)」
6) 「선사답기(先師畓記)」
4. 경화사족과 교유 확대
Ⅲ. 조선 시대 차 문화의 흐름
1. 조선 전기
2. 양난 이후
3. 조선 후기
Ⅳ. 초의선사의 차 문화 중흥 요인
1. 초의차 제다법의 완성
2. 탕법의 확립
3. 장다법 연구
Ⅴ. 초의차를 애호한 경화사족 및 중인들
1. 경화사족
1) 추사 김정희
2) 산천도인 김명희
3) 유산 정학연
4) 금령 박영보의 「남다병서」
5) 자하 신위의 「남다시병서」
2. 초의차를 애호한 중인
1) 소치 허련
2) 치원 황상
3) 호산 조희룡
Ⅵ. 초의선사의 다도 사상
1. 다삼매(茶三昧)
2. 전다삼매(煎茶三昧)
Ⅶ. 초의선사의 다도 계승
1. 범해의 초의 다도 계승
1) 범해의 다도 체계
2) 범해의 「초의차」
3) 범해의 「다약설」
4) 범해의 「다구명」
5) 「다가」와 대둔사 다도
6) 범해의 「적다」와 「제다」
2. 금명의 법계와 다도
1) 금명의 법계
2) 금명의 다도
3. 응송 박영희의 초의 다풍 계승
1) 응송의 발자취
2) 사승 관계
3) 응송의 다도 및 전승
Ⅷ. 나오며
참고문헌
<부록 1> 초의 연보
<부록 2> 박영보 「남다병서」 원문 및 번역문
<부록 3> 신위 「남다시병서」 원문 및 번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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