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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 아들에게 편지를 쓰다
개정판
연암서가 | 부모님 | 2011.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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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2008년 출간된 책의 개정판. 초판 이후 추가로 발굴된 관련 도서들을 참고하여 내용을 대폭 보강하고 문맥을 쉬운 표현으로 바꾸었다. 퇴계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글을 모은 것으로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는 생활인로서의 퇴계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퇴계 선생에게는 준(寯)이라는 맏아들과 채(寀)라는 둘째 아들이 있었다. 여기 실은 편지는 대부분 맏아들 준에게 보낸 편지들이다.

퇴계 선생이 40세 때부터 17살로 처가에 가서 살고 있는 맏아들에게 보낸 편지들, 서울에 올라가서 조정에서 벼슬살이하면서 외내로 보낸 편지들, 풍기군수로 근무할 때 보낸 것들, 고향에 돌아와 있을 때에 이 맏아들이 반대로 벼슬하여 경주의 집경전(集慶殿) 참봉(參奉)이나, 서울의 제용감(濟用監) 같은 곳에 근무할 때 보낸 편지들이 차례로 나온다.

퇴계는 참으로 자상하고 세밀하고 또 철저한 분이었다. 아들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여 과거시험에도 합격하고, 또 남들같이 벼슬도 하여 입신 출세할 것을 권하기도 하고, 또 선비로서 교양과 인품을 갖출 것을 권하기도 하지만, 대인 관계에 있어서 구체적인 행위 준칙에 이르기까지 세밀하게 일러주는 아버지였다. 모두 화기에 찬 자상한 내용이지만, 때로 아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준열하게 타이르는 엄한 아버지의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출판사 리뷰

때로는 자상하게, 때로는 엄하게
겨레의 스승 퇴계 이황의 가르침


“모든 일은 부디 진실로 삼가고 조심하여 부끄러움과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하여라.
몸은 낮은 지위에 있으나, 만약 마음이 안정되고 청렴하여 욕심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면, 반드시 마땅히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모름지기 거듭 경계하고 경계하도록 하여라.”


∠내용 소개

편지를 통해 보는 퇴계 이황의 진면목

2008년에 첫 번역 출간되어 독서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퇴계 이황 아들에게 편지를 쓰다』 개정판. 초판 이후 추가로 발굴된 관련 도서들을 참고하여 내용을 대폭 보강하고 문맥을 쉬운 표현으로 바꾸어 독자들의 이해를 높였다.

퇴계 이황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철학적 이론은 많이 소개되었으나 이러한 이론에 앞서 생생한 역사적 인물로서의 퇴계의 인간적 면모에 대해서는 비교적 알려진 것이 적었다. 이 책은 퇴계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글을 모은 것으로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는 생활인으로서의 퇴계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퇴계 선생에게는 준(寯)이라는 맏아들과 채(寀)라는 둘째 아들이 있었다. 준은 도산과 가까운 예안의 외내(烏川) 마을에 사는 금재(琴?)라는 이의 딸에게 장가를 가서 10여 년 이상 처가살이를 하였다. 이 책을 보면 퇴계 선생이 40세 때부터 17살로 처가에 가서 살고 있는 이 맏아들에게 보낸 편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 다음은 퇴계가 서울에 올라가서 조정에서 벼슬살이하면서 외내로 보낸 편지들, 풍기군수로 근무할 때 보낸 것들, 또 퇴계가 고향에 돌아와 있을 때에 이 맏아들이 반대로 벼슬하여 경주의 집경전(集慶殿) 참봉(參奉)이나, 서울의 제용감(濟用監) 같은 곳에 근무할 때 보낸 편지들이 차례로 나온다. 둘째 아들 채는 나자마자 곧 생모(生母)를 사별하고, 커서는 의령에 있는 작은 외할아버지-외종조부- 댁에 보내 놓고 있었다. 그 집에서 장가도 들었으나 곧 자식도 없이 죽어 거기서 묻히게 되었다.

이 책에 실은 편지는 대부분 맏아들 준에게 보낸 편지들이다.

때로는 자상하게, 때로는 엄하게
이 편지들을 보면 퇴계 선생과 관련된 사실 중에서, 우리가 아직까지 잘 몰랐던 점이나, 또 일반인들이 잘못 알고 있는 점들도 찾아볼 수 있다.
그 중 한 가지는 퇴계 선생의 ‘벼슬살이’에 대한 생각이다. 다 아는 바와 같이, 퇴계 선생은 평생 동안 70번이나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나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 편지 가운데서 볼 수 있듯이 아들에게 간절히 벼슬에 나아가기를 권한 점이라든가 퇴계 자신의 처신을 살펴보면 벼슬살이를 애당초 외면하고 싫어했던 것은 아닌 듯하다. 당시에 있어서 사람다운 대접을 받으려면 과거에 급제하여 기본적인 벼슬살이를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다만 노년에 이르러 그렇듯 벼슬을 사양한 것은 당신의 건강 문제, 학문에 대한 열의, 제도권 정치에 대한 실망 등등에 기인하는 듯하다.

이 편지들을 보면, 이퇴계는 참으로 자상하고 세밀하고 또 철저한 분이었다. 아들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여 과거시험에도 합격하고, 또 남들같이 벼슬도 하여 입신출세할 것을 권하기도 하고, 또 선비로서 교양과 인품을 갖출 것을 권하기도 하지만, 대인 관계에 있어서 구체적인 행위 준칙에 이르기까지 세밀하게 일러주는 아버지였다. 모두 화기에 찬 자상한 내용이지만, 때로 아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준열하게 타이르는 엄한 아버지의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노비에 대한 이야기들
이 편지에는 친가·처가의 허다한 친척 이름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또 그보다 적지 않게 집안에서 부리던 남녀 종들의 이름이 나온다. 당시에 이 노비들은 ‘전민(田民)’이라고 하여, 토지와 함께 사유 재산의 일종으로 분류되었으며, 호적도 따로 없고 주인집의 호적에 노비로 등기되며, 노비의 자식은 자동적으로 그 부모의 상전(上典) 집의 노비가 된다. 그래서 가령 어떤 양반 집안에서 형제자매들이 재산을 분배할 때는 토지뿐만 아니라 노비들도 재산의 일부이기 때문에 같이 분배하게 된다. 퇴계 마을에서 외내로, 외내에서 서울로 또는 퇴계에서 서울이나 경주, 의령, 풍기, 영주, 풍산 등지로 퇴계 가문의 편지를 전달하여 주었던 것도 모두 이 노비들이며, 퇴계 가문의 어떤 양반이 행차할 때마다 말을 몰거나 짐을 운반한 것도 이 노비들이며, 농사를 지은 것도 이 노비들이다. 이러한 노비들을 관리하는 일에 대해서도, 퇴계 선생은 매우 세심하게 편지에서 자주 지시하고 있다. 너그럽게 다루어야 할 때는 휴식을 주고 건강을 보살피며 너그럽게 다루고 엄하게 다루어야 할 때는 종아리를 때려 가면서라도 엄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하였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는 메시지
이 편지들에서 우리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퇴계 선생과는 다른, 매우 “낯선 퇴계 선생”을 만나보게 된다. 그런데 이분도 요즘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문제를 우리나 다를 바 없이 고민하고 있다. 자식, 손자들의 공부와 출세, 자식, 조카, 하인들의 병역 면제, 처가와의 재산 분쟁, 말을 잘 안 듣는 하인들에 대한 노여움, 소실과의 관계에 대한 명분상 떳떳하지 못함, 개가한 며느리에 대한 구설을 듣고 느끼는 당혹감과 수치심, 여러 가지 떳떳하지 못한 청탁에 대한 난감함, 숙명적으로 타고난 자신의 여러 가지 병환 때문에 생겨나는 끊임없는 신체적 고통 등등…… 이러한 점을 읽게 되면서 독자는 오히려 이 낯선 퇴계 선생에 대하여 더욱 가까워지고, 따뜻함을 느끼게 된다. 세상에 이렇게 체질적으로 병약하고, 가정생활에서도 불행한 일이 많았던 분이 어떻게 그렇게 집안의 살림도 잘 이루어 가면서 많은 제자를 키우고, 또 그렇게 많은 저술을 남길 수도 있었던 것일까? 이 책은 조선 시대 사대부의 생활상과 사고에 관한 귀중한 자료로서뿐만 아니라 이퇴계를 다시 읽고 조명하는 데도 많은 시사를 줄 것이다.

너는 최근에는 무슨 책을 읽고 있느냐? 학업을 그만두고 게으름을 피우며 세월을 보내고 있지는 않느냐?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다. 나는 너희들 두 아이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으니, 끝내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느냐? 너는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느냐?

특히 네가 돌아갈 곳이 없어서 처가살이를 하며 어렵고 고생스럽다 하니, 매번 너의 편지를 보고 나면 며칠은 즐겁지가 않구나.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너 스스로 살아가는 도리로서는 더욱 굳게 스스로를 지키며 분수를 편히 여기고 천명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러니 괴로워하거나 탄식하고 싫어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뜻밖에 생겨, 잘못된 일을 하여 나무람을 듣게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나도 일찍이 처가살이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지만 궁핍한 형세가 그렇게 하였을 뿐이었다. 아비가 가난하여 자식도 가난한 것이니 무엇이 이상할 것이 있겠느냐? 내가 내려갈 것이니 모든 일은 만나서 이야기하도록 하자.

무릇 형제들 사이에는 모든 일을 공평하게 한 후에야 집안의 법도가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다. 공평하게 하지 않고도 그 마음이 편안할 수 있는 것은 사람으로서는 어려운 것이다. 네가 이것에 대하여 마땅히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기를, “내 동생이 받은 노비를 보니 오히려 나보다 부족하구나. 내가 만일 더 받는다면 내 동생은 또 더 부족할 것이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형제는 한 몸이니 한 몸이란 것은 역시 마땅히 마음도 하나이다. 내 동생의 부족함을 나의 부족함으로 여긴다면, 우애의 마음이 구름과 같이 일어나 다른 생각이 저절로 소멸되어 없어질 것이다.

  작가 소개

저자 : 이황
퇴계(退溪) 이황(李滉)은 1501년 11월 25일 안동 예안현 온계리에서 진사 이식(李埴)과 박씨 부인의 7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6세에 이웃 노인에게서 ≪천자문(千字文)≫과 ≪동몽선습(童蒙先習)≫, ≪명심보감(明心寶鑑)≫, ≪소학(小學)≫ 등을 배웠고 12세에는 숙부 송재공(松齋公) 이우(李?)에게 ≪논어(論語)≫를 배웠다. 15세에 게[蟹]를 보고 <부석천사자유가(負石穿沙自由家)> 등의 시를 지었고 20세에는 ≪주역(周易)≫을 탐독했다. 21세에 서울로 올라와 성균관에 유학한다. 27세에 경상도 향시에 2위로 합격하고 28세에 진사회시에 2등으로 합격, 32세에 문과 초시 2등으로 합격하고 다음 해인 33세(1533)에 반궁(泮宮)에 유학하며 경상도 향시에 합격한다. 34세에 문과에 급제해 승문원권지부정자와 예문관검열이 되었고 36세에 선무랑과 성균관전적을 거쳐 9월 호조좌랑에 임명되었다. 37세에 선교랑, 승훈랑, 승의랑에 임명되었으나 어머니 박씨의 상을 당해 관직에서 물러난다.39세에 3년 상을 마치고 홍문관부수찬을 거쳐 수찬지제교로 승진해 40세에는 사간원정언, 승문원교검, 경연시독관, 춘추관기주관교리에 임명되었고 42세에는 홍문관부교리, 충청도·강원도어사로 순찰했으나, 43세에 병을 이유로 관직을 사임했다. 이후 종친부전첨, 세자시강원필선, 사간원사간, 성균관사성 등에 여러 차례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44세 10월에 상경한 후 중종이 승하하자 부고와 시장을 집필했다. 47세 7월에 안동부사에 제수되었으나 사임했다. 홍문관응교에 제수되어 상경해 사퇴하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48세에 외직을 자청해 단양군수로 취임했다. 10월에 풍기군수로 전임했다. 49세에 소수 서원을 개칭해 사액 서원의 효시가 되었다. 9월에 신병으로 사임해 귀향했다. 그러나 신병을 이유로 세 번이나 사직원을 제출한 후 회답을 기다리지 않고 퇴계로 돌아와 임소를 이탈했다는 죄목으로 직첩을 박탈당했다. 50세에 예안 하명동에 한서암(寒棲庵)을 짓고 학문에 전념한다. 53세 4월에 성균관대사성에 제수되었으나 사퇴한다. 54세에 형조·병조참의, 첨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고 경복궁에 새로 지은 여러 전각의 편액을 썼으나 이듬해 병으로 모든 관직을 사임하고 귀향한다. 56세에 도산에서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를 편찬 완성하고 다음 해인 57세에 도산 서당을 지을 터를 마련하고 ≪계몽전의(啓蒙傳疑)≫를 저술했다. 58세에 대사성에 임명되자 사직을 청했으나 허락받지 못하고 공조참판에 임명되었다. 59세에 휴가를 얻어 귀향한 후 관직을 사임하고 ≪송계원명리학통록(宋季元明理學通錄)≫을 저술했다.60세에 고봉 기대승(奇大升)과 편지로 사단칠정론(四端七情)을 변론했다. 도산서당(陶山書院)이 완공된다. 61세에 <도산기(陶山記)>를 저술했다. 64세 2월에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의 발문을 썼으며 65세에 ≪경현록(景賢錄)≫, ≪역학계몽(易學啓蒙)≫, ≪명당실어(名堂室語)≫ 등을 저술했다. 66세에 공조판서와 홍문관·예문관대제학에 제수되었고, 다음 해인 67세에 다시 예조판서, 경연춘추관사로 임명되었으나 사의를 표명하고 8월에 귀향, 역동 서원(易東書院)을 새로 건축했다.68세에 선조 원년 의정부우찬성과 판중추부사에 제수되자 6월에 소명을 어기지 못해 상경해 양관의 대제학을 겸임했다. 재임 중 <무진육조소(戊辰六條疏)>,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저술했다. 69세(1569)에 이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사의를 표명하고 귀향했다. 70세 7월 역동 서원에 가서 ≪심경(心經)≫을 강의하고, 8월 역동 서원의 낙성식에 참여했다. 11월 격물치지설(格物致知說)을 개정하다 병이 심상치 않자 12월 봉화현감으로 재직 중이던 큰아들을 사직, 귀가하게 해 장례 준비를 갖추도록 했다.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는 명문(銘文)과 자명(自銘)을 몸소 짓고, 임종 직적 매화분에 물을 주라는 말과 함께 한서암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영의정에 추서되었다.

  목차

해설|퇴계 선생이 아들에게 들려주는 세상살이 이야기
일러두기

40세 | 1540년 | 중종 35년
1 사돈이 용궁현의 훈도가 되었음을 알린다
2 산사에 들어가 독서할 것을 권유한다
3 별시에 응시하지 않는 것을 나무란다
4 상경을 만류한다
5 독서에 뜻을 세워라
6 산사에서 굳은 결심으로 열심히 공부하라

41세 | 1541년 | 중종 36년
7 상경할 때 복宓과 동행하여라

42세 | 1542년 | 중종 37년
8 영천 쌀 가지고 상경하라
9 부인씨에게 조상하는 편지를 못해서 미안하다
10 채의 혼사
11 안부

43세 | 1543년 | 중종 38년
12 자식이 부모 모시는 도리
13 귀향할 테니 말을 보내라
14 조윤구와 이숙량의 급제에 기뻐한다
15 무슨 책을 읽느냐?

44세 | 1544년 | 중종 39년
16 분황을 위하여 내려간다

45세 | 1545 | 인종 원년
17 3월에 내려갈 예정이다
18 평해의 소금과 미역을 사오너라
19 조카 복의 관이 고향으로 가다
20 청주의 배 부탁 편지 안했다
21 조카 복이 통주에서 병으로 죽다
22 형님 행차와 복의 관 의주 출발하다
23 온계 형님 댁에 소장된 『성리대전』의 빠진 책 조사
24 처가에 얹혀사는 것은 좋지 않다

46세 | 1946 | 명종 원년
25 3월 사이에 내려간다
26 향시鄕試 응시하는 것에 대하여
27 내려가는 것을 알린다
28 장모의 부고訃告를 받고도 달려가지 못하다
29 책을 점검하여 보라
30 서울의 계모상에 대한 심려
31 추수 전에 내려오라
32 배를 예정대로 탈 수 있을지
33 계모상을 친모상같이

47세 | 1547년 | 명종 2년
34 도중에 열어 보아라
35 임시로 육식을 허락한다
36 분발하여 힘써 부지런히 독서하여라
37 평소에 뜻한 바를 저버리지 말라

48세 | 1548년 | 명종 3년
38 며느리의 단양 행차에 관하여
39 내외가 단양으로 오는 일에 대하여
40 온계에 세금낼 쌀을 기준대로 바쳐라
41 씨 뿌리는 일과 기와 굽는 일이 걱정이다
42 한필을 받은 소의 뿔을 잘라라
43 손자에게『효경』이나『소학』을 가르칠 계획이다
44 조카들이 시험 보는 데 법도에 어긋남이 없게 하라
45 뗏목 옮기는 일에 관하여
46 추석 묘제 준비
47 아우의 유산에 관여치 말라

49세 | 1549년 | 명종 4년
48 몽 어미의 행차는 초4일이 좋겠다
49 목화 따는 일을 소흘히 하지 말라
50 푸실의 타작에 관하여
51 감사監司 형님께서 오셔서 기제를 지낸다 한다
52 온계에 가서 제사를 지내다
53 15일 뒤에 감사형과 온계에 가다
54 6월 기제는 여기서 지낼 것이다
55 채의 장사와 이장을 치르느라 고생이 많았다
56 작산의 제사에 관하여
57 꿀 석이버섯 감 생강 등을 보낸다
58 내가 돌아갈 계획이 확정되었다
59 서원 모임에 관리 자제가 참석하는 것은 좋지 않다

50세 | 1550년 | 명종 5년
60 병이 어떤지?
61 형님의 조사받는 일과 형수씨의 행차
62 마음대로 하는 종은 엄하게 다스리라
63 김충의 댁 장사에 문상하지 못하였구나
64 고성의 전답을 외숙부가 사고 싶다고 한다
65 장사에 인사하지 못하였다
66 온계 형님의 장지를 제비실로 결정한 이유
67 언문 편지는 단계에서 왔다는구나
68 훈도님의 증세가 어떠하신지
69 증세를 자세히 적어 보내어라
70 진개는 우리 종의 남편이라는 것을 알려라
71 장인의 상고 조문
72 머물렀다가 제사를 지내고 오너라
73 영천의 상사를 애도한다

51세 | 1551년 | 명종 6년
74 희청 형님이 돌아가셨다
75 농사 거두는 일
76 조카 주와 밭을 바꾸는일
77 거접에 참가하라
78 네 장인의 빈소에 들르겠다
79 영천 거접에 꼭 참가하라
80 풍산의 제물이 보잘것없었다
81 길동무가 없더라도 영천 거접에 참가하라
82 거접에 가서 유의할 일
83 안동의 공도회에 참가하려는지
84 시는 등수에 들 수 있지만
85 공도회에 참가하게 되어 반갑다
86 문서를 불태워 버려라
87 이렇게 속히 거접을 파하였느냐
88 서울로 가서 과거시험을 치른다면
89 시험을 여기서 친다니 좋게 되었다
90 너의 장인의 묘지문은 언우 군도 쓸 만하다
91 네 장인의 산소 일꾼들에게 술 한 동이를 보낸다
92 종기가 나서 묘지문을 정서할 수 없다

52세 | 1552년 | 명종 7년
93 의령에서 온 물건을 보낸다
94 조목과 함께 길 떠나는 것이 좋겠다
95 과거 보러 길 떠남에 여러 가지를 당부한다
96 귀향길의 노고를 위로한다
97 성균관 근처에 집을 못 구해 옛집에 그냥 있다
98 추수에 관하여
99 경상도 향시에 응하라
100 종기의 뿌리가 빠졌으니 근심말라
101 추수 걱정과 이사언의 죽음에 대하여
102 과거 시험을 앞두고 이질을 앓는다니 걱정이다
103 청도로 과거 시험을 보러 간다고 들었다
104 의령으로 먼 길 여행한 노고를 위로한다
105 담제 지냈으면 퇴계로 오너라

53세 | 1553 | 명종 8년
106 손자의 교육
107 농사에 관한 일
108 하인의 종군에 관한 일
109 하향할 생각
110 사직서를 올렸다
111 해직이 되면 하향할 예정이다
112 형수의 장사를 무사히 마쳐서 다행스럽다
113 말과 하인을 올려 보내라
114 가뭄 걱정
115 흉년에 대비하라
116 의령 장모의 종기 치료
117 성균관 근처로 이사하려고 한다
118 영천의 관봉곡 환납에 관한 일
119 이사에 관한 일과 의령에 안부를 전한다
120 종자를 준비하라
121 순무 종자를 구해서 보낸다
122 흉년을 걱정한다
123 며느리의 병이 걱정이다
124 과거 제도가 바뀐 일
125 며느리의 병에 약을 보낸다
126 첫 손자의 이름을 민도라 하다
127 하도의 굶주린 백성에 대한 염려
128 집을 증축하는 일
129 외임으로 나가고 싶구나
130 입지와 독서를 권한다

54세 | 1554 | 명종 9년
131 손자 몽아의 독서 지도
132 과거 응시에 대한 여러 의견
133 휴가를 받지 못해 귀향하지 못하다
134 노비를 위해 집을 짓다
135 손자의 글씨 공부를 위해 붓을 보낸다
136 스스로 하늘에서 떨어지게 만들어 버렸으니
137 오천과 의령에 안부를 묻다
138 준과 조카들의 번상 복무에 대하여
139 벼의 작황을 묻는다
140 귀향 계획
141 하향할 계획
142 돌림병과 흉년 걱정
143 단성 류씨 집안의 일이 밝혀져
144 손자의 이름을 짓고 풀이하다
145 양자는 제사를 모실 수 없다는 뜻을

55세 | 1555년 | 명종 10년
146 네 벼슬살이를 염려한다
147 안도의 관례
148 경복궁 중신기에 관한 일
149 조카 치의 죽음
150 제용감에서 옮기는 일
151 이조판서와 송참판이 모두 나를 낭패시켰다
152 왜구의 침입이 걱정된다
153 농암 선생의 서거를 슬퍼한다
154 아순을 너의 처제가 안고 가고자 하니
155 며느리의 초정 행차
156 의령의 이장에 대하여
157 남해를 침략한 왜구가 섬멸되었다
158 『삼국사』와 『가례』 인쇄본을 얻어 기쁘다
159 안도를 데리고 청량산에 들어간다
160 의령의 채의 이장과 그 절차
161 이장일 성사 못해 안타깝다
162 남명의 상소 같은 시사는 기별하여라

|부록| 퇴계 선생의 가계와 교우관계 해설

개정판을 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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