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한용운의 『십현담 주해』는 그가 1925년 여름 설악산 오세암에서 우연히 15세기의 김시습의 『십현담 요해』를 읽었던 일이 계기가 되어 쓴 책이다. 이는 그가 서문에서 직접 밝혔다.『십현담 주해』는 생애의 기로에서 산속 암자에 들어와 자신의 절박한 실존을 응시하던 40대 중반(47세)의 독립운동가이자 승려인 인간 한용운이 절망 속에서 동안상찰(?~961) 선사의『십현담』 10편 80구 하나하나를 음미하고 참선하는 과정에서 마침내 큰 깨달음을 얻고 삶의 활로와 미래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발견하고 나서 완성한 저술이다. 그의 지속적인 참선과 깨달음의 산물이 바로 『십현담 주해』이다.
이 책은 그것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제대로 쓸 수 없는 ‘작품’으로 오도송(1917) 이후의 두 번째 개오 즉 본각本覺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이 책에서 한용운은 주해자로서 자신이 직접 주장자를 든 선사의 모습으로 여러 번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한용운은 오세암에서 『님의 침묵』을 집필하기 2개월 전 같은 공간에서 이 『십현담 주해』를 탈고한다. 때문에 『님의 침묵』을 이해하려고 할 때 반드시 정독해야 할 텍스트가 바로 이 『십현담 주해』다.
출판사 리뷰
3·1운동에 불교계 민족 대표의 한 사람으로 참가했다가 수감되어 옥고를 치른 후, 1922년 감옥에서 나온 승려 한용운(1879~1944)은 설악산으로 들어가 오세암(백담사 암자)에 칩거하면서 1925년 여름 연달아 두 권의 책을 완성한다. 한문체 『십현담 주해』(1926)와 국문체 시집 『님의 침묵』(1926)이 그것이다. 『십현담 주해』가 『님의 침묵』보다 두 달 정도 먼저 탈고(1925. 6.)되었지만, 이 둘은 모두 설악산 시대에 쓰여진 한용운의 대표작으로서 이듬해 서울에서 나란히 출판되었다.
『십현담 주해』가 입산 이후의 그의 선학 사상의 요체를 담은 것이라면, 『님의 침묵』은 그가 한문체 아닌 국문체로 시를 쓰는 근대 시인으로서의 전신과 시인으로서의 재능을 증명한 것이다. 그는 『님의 침묵』 한 권으로 불후의 시인이 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십현담 주해』의 저 현묘한 선禪의 세계의 침잠과 선적 사유가 놓여 있었다. 이 둘은 서로서로 비추는 거울과 같은 책으로서 설악산 시대의 ‘2부작’이라 할만하다.
『십현담 주해』는 한용운이 남긴 유일한 선학 텍스트 주해서이다. 그를 단순한 승려 아닌 선사라고 지칭할 때 선사로서의 진면목은 바로 이 저서에 들어있다.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한용운 연구에서 『님의 침묵』에 비해 별로 주목되지도 널리 읽어지지도 않았고, 제대로 이해되지도 않았다. 그 이유는 본문이 전부 한문체인데다 중국 10세기 선사 동안상찰(同安常察, ?~961)의 『십현담』을 주해한, 난해한 선학 텍스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만일 한용운의 선사상의 요체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리고 이와 관련지어 『님의 침묵』을 읽고자 한다면, 『십현담 주해』를 먼저 정독하고 이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십현담 주해』는 선사로서의 그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저서이며, 그의 글쓰기에서 중요한 고비를 이루는 작품이다. 단순한 뜻풀이 수준의 책이 아니라, 주해註解 형식을 빌어 자신의 깨달음과, ‘정위正位’와 ‘편위偏位’의 겸대兼帶의 선禪, 정위는 다른 갖가지 길과 다르지 않다는 선사상을 적극적으로 표현한 책이다.
『십현담 주해』는 『조선불교유신론』에서 『유마경』 번역, 그리고 소설창작으로 이어진 그의 사유와 글쓰기의 전 과정에서 보면 중간 단계 저서지만, 그의 생애에서 보면 3·1운동 후 삶의 기로 속에서 삶의 비전을 모색하는 가운데 만난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의 『십현담 요해』를 읽으며, 그 자신의 오랜 과제였던 선학의 중요한 결실을 보여준 저술이다. 한용운의 생애의 글쓰기에서 모든 저작이 중요하겠지만, 『십현담 주해』를 빼놓고 그의 선불교에 대해 말할 수 없다.
한용운의 서
을축년 내가 오세암五歲庵에서 여름을 지낼 때 우연히 『십현담十玄談』을 읽었다. 『십현담』은 동안상찰同安常察 선사가 지은 선화禪話이다. 글이 비록 평이하나 뜻이 심오하여 처음 배우는 사람은 그 유현幽玄한 뜻을 엿보기 어렵다.
원주原註가 있지만 누가 붙였는지 알 수 없다. 열경悅卿의 주석도 있는데, 열경은 매월梅月 김시습金時習의 자字이다. 매월이 세상을 피하여 산에 들어가 중옷을 입고 오세암에 머물 때 지은 것이다. 두 주석이 각각 오묘함이 있어 원문의 뜻을 해석하는 데 충분하지만, 말 밖의 뜻에 이르러서는 나의 견해와 더러 같고 다른 바가 있었다.
대저, 매월에게는 지키고자 한 것이 있었으나 세상이 용납하지 않아 운림雲林에 낙척落拓한 몸이 되어, 때로는 원숭이와 같이 때로는 학과 같이 행세하였다. 끝내 당시 세상
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 천하만세天下萬世에 결백하였으니, 그 뜻은 괴로운 것이었고 그 정情은 슬픈 것이었다. 또 매월이 『십현담』을 주석註釋하였던 곳이 오세암이고, 내가 열경의 주석을 읽었던 것도 오세암이다. 수백 년 뒤에 선인先人을 만나니 감회가 오히려 새롭다. 이에 『십현담』을 주해註解한다.
을축 6월 일 오세암에서
한용운 씀
작가 소개
지은이 : 한용운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한응준과 온양 방씨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자(字)는 정옥(貞玉), 속명은 유천(裕天), 법명(法名)은 용운(龍雲), 법호(法號)는 만해이다. 어려서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한 뒤, 향리에서 훈장으로 학동을 가르치는 한편 부친으로부터 때때로 의인들의 기개와 사상을 전해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기울어 가는 국운 속에서 홍주에서 전개되었던 동학농민전쟁과 의병운동을 목격하면서 집을 나서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설악산 오세암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불교의 기초지식을 섭렵하면서 수도하다가 다른 세계에 대한 관심으로 노령 시베리아 등지를 여행하기도 하였다. 귀국 후 1905년 다시 설악산 백담사로 들어가 속세와 인연을 끊고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1910년 당시 모순과 부패가 만연하던 한국불교의 상황을 개탄하면서 개혁방안을 제시한 실천적 지침서인 《조선불교유신론》을 백담사에서 탈고하였고, 그것을 1913년 발간함으로써 불교계에 일대 혁신운동을 일으켰다. 1914년 4월에는 고려대장경을 독파하고 《불교대전》을 간행하였으며, 1918년에는 본격적인 불교잡지 <유심(惟心)>을 발간하였다. 1919년 천도교, 기독교, 불교계 등 종교계를 중심으로 추진된 3.1운동 계획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고, 불교계측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는 일도 맡았다. 1919년 7월 10일에는 경성지방법원 검사장의 요구로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이란 논설을 집필하여 명쾌한 논리로 조선독립의 정당성을 설파하였다. 3.1운동 때문에 감옥에 갔다가 석방된 뒤에도 전국적으로 확산된 물산장려운동을 지원하고, 민족경제의 육성과 민족교육을 위한 사립대학 건립운동에 앞장섰다. 창씨개명 반대운동, 조선인 학병출정 반대운동 등을 펴기도 했다. 1944년 6월 29일 그토록 그리던 조국광복과 민족독립을 눈앞에 두고 입적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는 뜻으로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목차
역자 서문 007
1
십현담 주해 011
마음(心印) 015
조사의 뜻(祖意) 025
현묘한 기틀(玄機) 036
티끌은 다른가(塵異) 046
가르침(演敎) 056
근본에 이르다(達本) 067
귀향마저 부정하다(破還鄕) 076
위치를 바꾸다(轉位) 085
기틀을 돌리다(廻機) 094
일색(一色) 104
유위법과 무상을 반복해 말하다. 219
최후의 가르침 225
2
십현담(원문) 115
3
한용운의 『십현담 주해』 읽기(해설) 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