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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슬픈 파랑
시인동네 | 부모님 | 202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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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단국대학교 자유교양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임수경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이상하게 슬픈 파랑』이 시인동네 시인선 225로 출간되었다. 임수경의 시는 ‘죽음에 관한 세계’라고 해도 지난 친 말이 아니다. 죽음에 관한 사유는 현재를 검토하여 미제의 영역을 살펴 ‘삶’을 희구한다는 점에서 그리 비관적이지 않다. 임수경은 회피 불가능한 죽음에 기투하여 현재 자기 위치를 확인하고 그 위치에서 미제의 영역을 어떻게 채워야 할 것인지 결단을 내린다. 그럼으로써 죽음으로부터 놓여나는 것이다.

  출판사 리뷰

■ 해설 엿보기

임수경에게 ‘죽음’이란 그 점에서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이라는 양자택일의 판단을 넘어선다. 기억을 매개로 과거와 현재, 미제의 시간 영역을 횡단하면서 ‘당신’의 기억과 목소리의 흔적을 간직하고자 펼치는 사유와 상상력이 놀랍도록 균형적이기 때문이다. 시인에게 죽음의 사유는 “사실 지상의 모든 생물은/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죽음을 미루고 있는 중일지도/무심한 듯/아주 치열하게”(「슬픈 진화 2」) 여겨진다. 이 같은 태도는 삶의 무게가 어느 한쪽에 치우쳐 있지 않으며 과거 전체와 현재, 미래의 것들로 총체성을 이루고 있음을 믿는 ‘해방된 시선’을 반영한다. 시인에게 죽음이란 시작과 끝을 동시에 형성하면서 전체적 윤곽을 드러내는 존재의 한 양식이다. 정작 시인에게 문제는 죽음 그 자체라기보다 ‘당신’의 부재와 그로 인한 고독이다. 당신의 부재는 ‘나’의 존재 증명의 불가능성이며 존재성이 부인당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은 부재의 흔적을 애써 봉합하려 하거나 죽음을 적대시하지 않는다. “완전한 소멸”(「시인의 말」)을 꿈꾸면서 오히려 죽음과의 결합을 수용함으로써 ‘나’를 구성해 갈 ‘미제’의 삶을 어떻게 결정지어야 하는지를 사유할 뿐이다.
추상적 죽음이란 원래 없는 것이다. 죽음은 언제나 “당신이 스쳐 간 모든 자리가 술렁”(「이상하게 슬픈 파랑」)대는 구체적 사건이다. 임수경의 시는 죽음 이전 ‘당신’이라는 존재와의 관계를 사유하고 그 기억을 구체적 이미지로 조형한 결과물이다. 화자는 광휘를 뽑아내는 과거 속 ‘당신’이 존재와 부재 사이를 왕래하며 실존에 관한 철학적 사유를 배태시킨다. 인디언들이 거대한 우주에서 거미 한 마리가 죽자 거미줄 전체가 요동하는 것을 포착하고 존재자의 삶이 기실 ‘당신’과의 관계 속에 화석화된 역동적 궤적임을 파악한 것처럼, 임수경에게 ‘당신’의 죽음과 부재는 “우주 일부분이, 때론 전체가”(「잔존기억」) 뒤척이는 일이다.

당신이 좀 더 머물길 바라며
내 뜨거운 숨을 두 번 더 참았다면
어제보다 오늘이 더 길어졌을까
날개를 내주고 다리를 얻었듯
어떤 직립은 꿈을 버리는 거다
그러니 인사는 생략한다
― 「슬픈 진화 1―연옥에서의 하루」 부분

‘당신’의 무거운 궤적과 부재 사이에서 화자는 ‘슬픈 진화’를 맞이한다. “어떤 직립은 꿈을 버리는” 일이며 “날개를 내주고 다리를” 얻는 일, 당신에게 “인사는 생략”하고 비로소 ‘당신’과의 관계에서 화자는 실존의 의미를 되찾는다. 그동안의 임수경 시집이 ‘당신’과의 사랑과 체험이 언표를 통해 지속되고 확장되어 시인의 의식을 가득 채워왔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당신’을 멀리 떠나보낸 뒤 현재의 삶이 비록 “그쪽과 저쪽 사이” 어디쯤 놓이더라도 “완전한 소멸을 꿈꾸”며 남은 생의 목적을 향해 “날개를 내주고” 얻은 다리로 “직립”해 보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화자에게 ‘당신’은 파장처럼 “다가올 때보다 멀어질 때 더/낮고 깊게 폐부를 찌르는 소리 현상”으로 존재한다. “멀어지는 너, 는 더 집요하게 공명”하여 화자의 현재의 삶을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사방으로 젖어 들어가는 종이,/번졌음에도 제 뜻을 쥐고 있는 문장”(「낙화주의―도플러 효과」)과도 같은데, 자연스럽게 화자는 현재의 삶을 뒤흔드는 ‘당신’에게서 직립을 선언한다. “당신이 스쳐 간 모든 자리가 술렁”대지만, 그리고 “여전히 모를 일이지만”, “당신 말대로/오래 기억된다는 건 피곤한 일일지도” 몰라서 이제 “당신, 이쯤에서 저물어도 된다”(「이상하게 슬픈 파랑」)라고 말하는 것이다.
― 염선옥(문학평론가)

가령
기도합시다, 동안 유목하는 시간
보폭만큼 넓어진 당신의 침묵과
오수에 든 지구의 자전 같은
무중력의 쓸쓸함으로 가득 찬 그곳
빛을 사랑해 소멸해 버린 그림자 속으로
결이 다른 당신을 만났던 그 한 계절은 사라지고
다시 약속 없이 느려진 오후 5시와 7시 사이
결국 이륙 즉시 흔적을 지우는 발자국처럼
당신은 기억되지 않는 기억이 되고
그 위로, 아무렇게나 흩어지는 봄꽃들
낡은 고독과 변변치 않은 무료함까지
손에 꽉 쥐고 있다가 어느 쯤엔가 놓쳐
찾을 생각조차 잃어버리고 만
그 짠한 설렘들
토닥, 토닥이다 시큰거리다
아, 아멘
― 「임씨표류기」 전문

7층 병실 창에
4억 6천만 년을 지나온 바람이 머문 오후
왜 4억 6천만 년이냐고 묻는 당신에게
발음이 좋아서, 라고 짧게 답하려다
인도 비슈뉴의 어젯밤 꿈에 대해선지
우주 빅뱅이론에 대해선지 떠들며
애써 길게 대화를 이어나가는 우리
창문으로 느릿하게 불어오는 햇살 아래
종일 베갯잇에 흩어진 머리카락을 집고
한걸음이라도 빨리 출발하고픈 당신과
그 한걸음이라도 늦추고 싶은 나 사이
앉을 곳을 찾지 못해 서성이는 밥상
바람 속 잉태돼 이곳에 뿌리내린 것들 중
오롯이 내 것은 없었다며 엷은 미소의 당신에게
그래서 서둘러 바람이 되는 걸 꿈꾸냐고
묻는 대신 식은 국만 휘휘 젓는 나
4억 6천만 년 전부터 얹어진 염원을 끌어모아
버석거리는 당신의 얼굴에 정성껏 펴 바르고
굳이 잠근 문틈으로 비집고 나가는
당신, 이편에서 저편으로
이사 가는 날
― 「굿바이, 나의 울트라맨」 전문

1.
아버지의 사진 앞에서 아버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줄 맞춰 인사를 했다 누구를 위한 안녕인가

2.
여지없이 죽음에 대해 말해 달란다 어제를 기억하는 일은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남겨진 의식이다 안정된 재생을 위해 잠시 침묵, 목소리의 높낮이와 한숨과 쉼표, 말줄임표를 적절하게 배합해 낸다
막 부쳐낸 동그랑땡을 입에 넣으며 저런, 에고,

입으로 들어가다 턱밑으로 흘러내리는 빨간 육개장 국물을 핥아먹고 싶었다

내내 배가 고팠다

3.
이름도 낯선 몇 번의 의식이 진행되었다 처음이라 모릅니다 이쪽으로 서세요 나오세요 인사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하세요

안녕(安寧), 은 안녕을 위한 인사다
안녕은 염원이고 기원이자 재회의 약속이다
실현될 수 없는 외침은 무의미한 의식일 뿐이다
그러므로 난 안녕, 하고 싶지 않았다

내일 일은 내일로 미룬다
― 「안녕을 곱씹는 하루―2022년 6월 30일 일기」 전문

  작가 소개

지은이 : 임수경
서울에서 태어나 2002년 《시현실》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문신, 사랑』 『낙타연애』 등이 있다. 현재 단국대학교 자유교양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목차

제1부
슬픈 진화 1•13/잔혹한 천사의 테제•14/낙화주의•17/이상하게 슬픈 파랑•18/귀환궤도•20/우리 종의 사인(死因)은 모두 고독이다•22/움켜쥘 심장이 하나뿐이라 쓸쓸한 거다•24/슬픈 진화 2•26/굿바이, 나의 울트라맨•28/안녕을 곱씹는 하루•30/진단명: 무화과 향에 반응하는 공황장애•32/봄날•34

제2부
임씨표류기•37/기도할 줄 모르는 자의 오후•38/가지 않은 길•40/어젠 블러드문이 떴다•42/잔존기억•44/결벽증•46/진화일기•47/불치•48/오늘의 5분•50/사분의자리•51/동유럽 패키지 여행기•52/몽유(夢遊 )•54/편지 PS•56

제3부
자기, 격리•59/라섹의 세계•60/해리성기억장애증•62/주머니에 손 넣고 뛰지 마•64/맞습니다, 종로3가역•66/우연한 사실•67/지리산 한달살기•68/허밍•70/낡은 춘곤(春困)•72/퇴고•74/고양이 낮잠•75/호접문(胡蝶紋)•76/사계•78

제4부
파흔(波痕) 2•81/고양이말번역기•82/낙타의 눈물•84/야, 행성 2•86/고백이 잠든 사이•87/7월 수국•88/낙타 귀환•90/다시 떠오른 달•92/튜토리얼•93/석양은 아직•96/파흔(波痕) 1•98/엘리스의 어린 왕자•100/코기토(Cogito)•102

해설 염선옥(문학평론가)•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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