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저자의 자녀양육 방식을 바탕으로, 즉 실천적인 방법을 중심으로 쓰여졌다. 그동안 자녀를 양육하면서 느끼고 배운 실천적인 방식이, 특히 중하위권 아이들을 성공적으로 성장시킨 경험을 서술하였기 때문에 자녀교육에 걱정을 하는 부모들에게 길잡이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는다.
아이들이 컴퓨터 게임하고 뛰어놀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 준 부모,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부모의 모습과 더불어 놀이에너지의 중요성, 학습 능력 성장을 위한 전략, 효과적인 학습계발을 위한 조건 등 아이들이 보다 효과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출판사 리뷰
자녀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녀를 양육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부모 마음대로 성장하지 않는다. 자녀를 성공적으로 양육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인성이 바르고 하나님의 올바른 자녀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특별한 지혜가 필요하다.
이 책은 필자의 자녀양육 방식을 바탕으로, 즉 실천적인 방법을 중심으로 쓰여졌다. 그동안 자녀를 양육하면서 느끼고 배운 실천적인 방식이, 특히 중하위권 아이들을 성공적으로 성장시킨 경험을 서술하였기 때문에 자녀교육에 걱정을 하는 부모들에게 길잡이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는다.
아이들이 컴퓨터 게임하고 뛰어놀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 준 부모,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부모의 모습과 더불어 놀이에너지의 중요성, 학습 능력 성장을 위한 전략, 효과적인 학습계발을 위한 조건 등 아이들이 보다 효과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시켜야 할 것인지 여러 가지 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아이가 공부는 안 하고 놀기만 한다고 절대 포기하지 말자.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아주 소중한 선물이다. 그러므로 기다려주고, 믿음으로 지켜볼 때 틀림없이 하나님의 손길이 아이들을 만져주실 것이라는 신뢰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실천적 지혜로 써진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 이미 절반의 성공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이 책이 유용하게 쓰여지기를 기도한다. -<책을 펴내며> 중에서
박세용 박사의 자녀교육 성공법
1. 잘 놀아본 경험이 성공으로 이끈다.
2. 몸과 영혼의 에너지 발전소를 가동한다.
3. 가정 분위기와 정서를 풍요롭게 가꾸기 위해 노력한다.
4. 공부에 절대로 부담을 주지 않는다.
5.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노력한다.
6. 마음껏 뛰놀 수 있도록 배려한다.
7. 부모 욕심을 내려놓기 위해 노력한다.
8. 용기를 주고 자녀를 믿어 준다.
9. 충분히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도록 격려한다.
10. 사건을 저질렀을 때 잘못했음을 깨닫도록 이해시키고 용서하며, 체벌을 금한다.
11. 친구들과 함께 잘못했을 때 부모들의 반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 부모는 사랑으로 대해준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12. 자녀의 이야기(생각)를 귀 기울여 듣는다.
13. 자녀의 생각을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14. 성장 에너지를 충분히 발산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운동하는 습관을 기른다.
15. 성적이 떨어진다고 설령 끝순위의 석차일지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16.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우선 마음껏 뛰어놀 자유를 준다.
17. 변화될 것을 기대하고 기도하며, 믿음으로 끝까지 기다린다.
18.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도록 가족 대화의 장을 만든다.
19. 진로 방향과 전공 선택을 부모 생각만으로 강요하지 않는다.
20. 하나님의 만져주심을 믿고 기도하며 기다린다.
21. 엄마 아빠를 존경한다는 말을 들을 때 감사와 행복감을 경험한다.
22. 건실하게 성장한 자녀를 통해 행복을 만끽한다.
Ⅰ. 나의 유년기와 자녀양육
1.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1) 유년시절의 성장 이야기
나는 멀리 해변이 바라다 보이는 농·어촌이 혼재한 반농반어의 시골에서 태어났다. 서울과 가장 멀리 위치하여 교통이 불편한 오지 촌락마을, 일명 땅끝마을 남단 해남이다. 그곳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 슬하에서 칠남매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부모님의 말에 의하면, 칠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아이는 원래 내가 아니였다. 넷째 아이는 딸이었는데 태어난 지 2주(14일) 정도 지나 갑자기 죽었다고 한다. 그리고 곧바로 내가 수태되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된 환경과 배경이 마치 성경의 요셉이 태어났던 상황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렇다면 나에게도 ‘요셉과 같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면서 내 감정이입을 요셉에게 비유하며 한동안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내 장래의 일과 앞으로의 삶에 대해 아름다운 그림을 하나님의 예비하신 섭리가운데 걸작으로 그려주실 것임을 기대하며 기도하기도 했다.
내가 태어난 1950년대 후반, 우리나라 출산율이 매우 높은 시기였기 때문에 당시 인구가 매우 많은 시골이었지만, 규모 있는 행정구역으로 면소재지 농촌부락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산과 들, 바닷가 자연을 벗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시골 촌락이었기 때문에 교통이 매우 불편하고 문화생활이 전혀 없는 상태여서 서울을 동경하며 가보고 싶은 꿈을 꾸기도 했다. 전깃불과 수도시설 등이 전혀 없는 시골에서 산과 들녘을 누비며 산딸기 따 먹고 새끼 (어린)산새를 잡고 바람개비(일명 여치, 땅개비과의 곤충)를 잡아서 불에 구워 먹고 풋보리와 밀보리를 꺾어 불에 그슬려 먹으면서 들판을 누비고 뛰놀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나는 매우 허약하게 태어났다. 모유가 거의 없는 상태여서 어쩔 수 없이 이웃 유모들의 젖을 얻어먹어야 하는 안타까운 유아기 생활로 불운한 환경이었다. 일명 젖동냥둥이였는데 다행스러운 것은 당시 숙모님(작은 어머니, 한 살 위의 사촌 형이 젖 먹고 있었다고 함)의 한쪽 젖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그날그날 허기진 배를 젖동냥으로 채우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유아기 생활이었다. 항상 힘이 없고 의욕과 활력이 없는 연약한 상태의 소심한 아이로 자랐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까지 친구들과 밖에서 뛰어놀다가 지쳐 해 질 무렵 집에 들어왔을 때, 늦은 시간까지 농사일을 끝마치신 어머니가 귀가하는 탓에 저녁밥을 먹지 못하고 잠이 들곤 하였다. 저녁을 굶고 잠을 자게 되는 날이면 다음날 아침에는 기력이 전혀 없어서 겨우 잠에서 깨어났지만,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매우 힘이 들었던 쓰라린 기억이 생생하다.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4학년 무렵까지 나는 매우 허약하고 나약한 아이로 소극적이고 자존감 또한 바닥이었다. 나약하기만 한 나 자신이었기에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항상 자신감과 용기가 없었는 데다 부끄럽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내성적인 자신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나는 늘 외진 곳에서 혼자서 조용히 있고 싶었다.
나의 고향은 당시 불교적 분위기가 매우 강한 마을이었다. 대부분 불교인들이었는데 조상께 제사 지내며 무당굿하고 지내는 것들을 흔히 보았다. 어른들은 다 그렇게 하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방과 후에는 국민학교(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놀다가 학교급식빵차가 오는 것을 발견하면 친구들과 빵차를 뒤따라가서 빵 상자를 옮겨주고, 급식담당 선생님께 어른 주먹만 한 구운 빵을 한 개씩 얻어먹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면 소재지에 5일 시장이 개설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 때까지 학생들이 너무 많아 교실이 부족한 상태였기 때문에 오전·오후반(2부제 수업)으로 나뉘어 저학년인 나는 오후에 학교 다녔다.
그래서 오후에 학교 가는 날, 때마침 장날 다음날과 맞닿은 날에는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파장한 시장터에 떨어져 있는 동전 한닢, 즉 돈(1원, 5원짜리 동전)을 줍기 위해서 시장터에 나갔다. 전날 북적이었던 사람들이 혹시나 떨어뜨린 동전을 몇 개 줍게 되는 날도 있었는데 친구들과 오랫동안 오랜시간 입안에서 잘 녹지 않은 동그란 사탕[오다마 사탕(탁구공 크기의 구슬 같은 하얀 파란 사탕)과 십리사탕(작은 건 포도알 정도 크기의 하얀 사탕)]을 사서 친구들과 나눠 먹기도 하였다. 매우 달고 맛이 있었다.
그 무렵 나에게 쓰라린 아픈 기억이 있다. 국민학교 2학년 봄 어느날 아침에 집에서 책가방(당시 하얀 보자기로 책을 쌓은 꾸러미, 책보자기)을 허리춤에 메고 집에서 나왔지만, 그날은 동네 친구와 같이 장터에서 뻥튀기 튀는 곳, 약장사 각설이타령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운집해 있는 곳 등의 저잣거리를 둘러보려고 놀러갔다. 신기한 새 모양의 풍선을 파는 리어카 행상 앞에 서서 새모양의 풍선을 갖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장사꾼과 구매자들이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 팔고 가는 것을 부러운 눈으로 지켜보며 흥미롭게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데 같은 동네 친한 친구가 갑자기 새 모양의 풍선 한 개를 훔쳐 집어 들고 도망쳤다. 나는 그런 줄도 몰랐고 훔치는 그것도 모르고 그대로 서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 친구는 이미 도망쳐 버렸는데 나를 일행으로 판단한 리어카 행상 주인이 갑자기 나를 붙잡더니 “네 친구가 새풍선을 한 개 훔쳐 갔으니 너를 볼모로 잡아두겠다”고 한 것이다. 나는 매우 당황스럽고 무섭기도 하여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고 벌벌 떨며 울었다. 리어카 행상이 나의 책보를 빼앗더니 “도둑놈 네 친구를 잡아 오지 않으면 책보를 절대로 돌려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울면서 새풍선을 훔쳐 도망쳐 멀리 논두렁 밑에 숨어 있던 친구를 겨우 찾아서 “용서를 구해라. 내 책보를 빼앗겨 버렸다”고 말하자 그 친구가 나에게 “바보처럼 구경하며 서있다 아무 잘못이 없는 네가 왜 붙들려 나를 성가시게 하느냐. 눈치껏 너도 도망쳤어야지. 이 순진한 바보야”라고 오히려 핀잔을 했다. 친구를 겨우 설득해서 데리고 새풍선 주인에게 갔다. 리어카 행상이 새풍선 1개를 되돌려 받고 내 친구에게 무릎 꿇게 하고 손들고 있으라고 체벌을 한 후 내게 책보를 되돌려 주었다.
우리 마을에는 내가 중학교 1학년이 될 무렵까지 주변에 교회가 없었다. 약 7㎞ 정도 떨어져 있는 곳에 절(사찰)이 있었을 뿐이다. 시골 정서가 대부분 불교와 유교를 믿는 인구가 많은 지역이어서 부모님도 불교와 유교를 믿고 계셨다. 가끔 무당들이 부락 한가운데서 징과 북을 치며 굿하는 것을 보았다.
어린 시절 키가 크고 체격이 매우 건장한 막내삼촌이 해병대를 제대하고 당신에게는 큰형님집이었던 우리 집에 술 마시고 와서 아무 이유 없이 행패를 부렸다. 할머니는 며느리(우리 어머니)를 심하게 학대하였다. 막내삼촌이 형수(우리 어머니)를 이유 없이 심한 고통을 가하고 괴롭혔다. 그로 인해 가정 분위기가 매우 혼란스럽고 불안하였다. 막내 삼촌이 술 마시고 집에 쫓아와 폭언하며 행패를 부리는 날이면 온 가족이 집 뒤쪽 대나무 울타리를 통해 전 가족이 몸을 피신하였다. 참으로 안타깝고 고통스러웠던 것으로 기억조차 하기 싫은 가슴 아픈 상처가 생생한 기억 속의 트라우마가 되었다.
이러한 안타까운 아픈 기억, 가정환경의 불안한 상태가 계속되었고 아버지께서 매우 괴로워하셨다. 삐뚤어진 막내동생이 큰형님인 아버지에게 매우 고통스러움을 가했던 것이다. 당시 막내삼촌이 영적으로 악한 것의 지배를 당했던 것으로 이해되어 이제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때의 쓰라린 아픔을 위로받는다. 막내동생 때문에 괴로워하신 아버지께서 술을 너무 많이 마셔 몸을 가누지 못하고 도로가에 쓰러져 있는 것을 수차례 보았다. 그럴 때면 형님과 같이 도로에 쓰러진 아버지를 리어카에 태우고 집에 데려왔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매우 창피했고 마음이 아프고 괴로웠다. 나는 다음에 어른이 되더라고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다짐과 각오를 수차례 마음속으로 다졌다.
1985년 1월 중순경, 대한민국 병무청으로부터 1985년 6월 하순에 군 입대하라는 입영영장을 받아 놓은 상태였다. 어머님은 49세 나이로, 이미 몇 년 전부터 병환으로 병원에 한 달 정도씩 장단기 입·퇴원을 반복하시며 교회 다니시다가 1985년 5월 초순경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천국으로 소천하셨다. 어머님을 잃은 충격과 슬픔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절망스럽고 심히 고통스러웠다. 암울한 가정환경에 놓이게 된 나는 군대에 가기 싫어 죽을 지경이었다. 더욱이 7남매 중 형님은 이미 군 복무 중이었고, 막내 여동생은 초등학교 6학년이라 가정 상황은 더욱 막막했다. 결국 어머님이 소천하신 지 40여 일밖에 지나지 않아 슬픔이 가시지도 않은 채, 죽도록 가기 싫었던 육군에 입대해야만 했다.
어머님이 돌아가시자 가정이 막막해진 가운데 내가 군에 가지 않겠다고 하자, 아버님께서는 어디서 들으신 이야기라며 “귀가 들리지 않으면 군대를 면제받는다”는 말을 하셨다. 그래서 독성이 강한 아재비쑥을 찧어 귀에 넣으면 청각장애가 생겨 신체검사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을 수 있다고 하시기에, 아버지 말씀대로 해 보기로 했다. 아버님이 찧은 아재비쑥을 시키는 대로 귀에 넣고 잠을 자는데, 이틀 동안 귀가 몹시 아프고, 고름이 계속 흘러 나오며 귀가 심하게 부어 올랐다.
그런 상태로 군 입대 신체검사를 여러 번 받았으나, 군의관은 “치료하면 회복될 수 있다”며 청각장애로 인정하지 않았다. 참으로 어리석은 짓을 했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환자 상태의 몸으로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중부전선 최전방 5사단 열쇠부대 훈련소에 들어가자 매우 힘든 훈련이 시작되었다. 밤이 되어 취침 시간이 되면 어머님이 너무 보고 싶었지만, 더 이상 뵐 수 없다는 사실에 견딜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이 밀려왔다. 밤마다 침상이 흠뻑 젖도록 흐느껴 울고, 화장실에 들어가 달을 쳐다보며 한없이 울었다. 어머님을 그리워하며 흐느끼는 깊은 한숨의 슬픔과 극심한 군사훈련이 겹쳐 체력도 한계에 달했고, 온몸이 부어 오르며 견디기 힘든 고통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힘겹게 하루하루 군사훈련을 겨우 버텨 나가야 했다.
2) 가정 분위기와 신앙생활
1985년 1월 하순경, 일찍이 유년 시절(5세 때부터)에 하나님을 만나 기독교 신앙교육을 받으며 바르게 잘 성장한 아내 최춘옥 권사와 결혼하여 광주광역시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였다. 하나님께서 두 아들(큰아들, 작은아들) 형제를 주셨다. 두 아들의 부모인 아내 최 권사와 나는 아들들이 유아기 때부터 신앙안에서 믿음으로 바르게 잘 양육 되기를 위해 기도하며 주님만 의지하였다. 주 안에서, 믿음 안에서 올바른 신앙으로 잘 자라기를 바라며 끊임없이 하나님께 기도했다.
아내 최춘옥 권사는 사회복지법인 어린이집 원장이었다. 1998년 7월 29일경, 관할 군청에서 일을 마치고 어린이집에 귀원하기 위해 자가운전으로 진행하던 중 너무 피곤한 상태에서 졸음운전으로 중앙선을 침범하여 상대방 반대 차선 차량과 정면충돌하는 대형사고를 발생케 하였다. 그 사고로 가해자인 아내와 상대방 차량운전자 및 그의 동승자 다수가 오랫동안 병원 입원치료를 받게 되었다. 특히 아내 최권사는 큰 병원(전남대학교 병원 등)에서 10개월 동안 입원치료를 받았다.
아내는 대형사고로 인해 지방색전증이 발병되어 전남대학교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었는데 주치의가 “현대의학으로는 치료할 방법이 전혀 없다. 살아날 확률은 약 3%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산소호흡기에 의존하고 있다가 사망하면 어쩔 수 없이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매우 희박하지만 하늘이 내려준 천운으로 다행스럽게도 살아난다면 그때 병실로 옮기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중환자실로 침대 옆에 입원한 젊은 여자환자가 아내와 똑같은 지방색전증으로 산소호흡기에 의존한 채 치료받고 있었다. 그런데 그 젊은 여성 환자는 5일 후 사망하여 하얀 천에 덮인 채로 영안실로 실려 갔다. 나는 주체할 수 없고 감당할 수 없는 불안감, 고도의 긴장감이 엄습하였다. 그 당시 감당할 수 없이 낙심되어 불안한 순간과 계속되는 긴장으로 고통의 시간이 계속되었다. 현대의학으로는 치료할 방법이 없어서 완전히 손을 놓고 방치된 채 병상에 누워 있는 아내는 하나님만 의지하며 기도하고 있었고 나 또한 하나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교회와 온 가족 주변 지인들, 교인들이 하나님께 매달려 간절히 기도할 수 밖에 없는 암담한 상황의 연속이었고 수많은 교인들이 계속해서 기도로 도와주었다.
3주가 지난 후, 하나님께서 마침내 아내 최 권사를 만져 주셨고 드디어 살아날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였다. 주치의 선생님께서 “현대의학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상태에서 최춘옥 씨가 살아난 것 보니까 최춘옥 씨는 이 세상에서 할 일이 많은 것 같다”고 말하였다. 기적처럼 하나님의 만져주심으로 말미암아 살아난 것이다. 아내는 비로소 대퇴부 분쇄골절(15조각) 및 다른 신체 부위 대수술을 하게 되었고, 주님께서 건강하게 회복시켜 주셔서 정상인으로 되돌아왔다.
2006년 3월경 발생한 일이다. 내가 일한 직장에서 있었던 일로, 고위직에 경험이 있었던 사람이 공연히 일방적으로 오해를 하고 매일같이 술 마시고 나를 괴롭히려고 쫓아왔다. 수십 차례 폭언하고 괴롭힘을 가했다. 마치 죽일 것 같은 험상궂은 표정을 하며 악의적으로 100여 일간 괴롭혔다. 악한 것의 지배를 당한 그 사람의 행위였다. 하지만 그럴 때 마다 순간순간 찰라 기도를 하며 끝까지 적대시하거나 응대 하지 않았다. 끝까지 인내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오히려 그 가해자에 대해 긍휼한 마음을 내게 은혜로 베풀어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 억울함을 호소 하며 눈물 콧물 쏟으며 100여 일간 “저 악하고 불쌍한 영혼을 긍휼히 여겨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주님께 매달렸다. 이때 하나님께서“(약 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사 41:10~11)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말씀을 주셨다.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운 순간이었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장로이기 때문에 더욱 믿음으로 참고 인내하며 이겨내기 위해 몸부림쳤다.
몇 달이 지났다. 하나님께서 꿈에 그리며 가장 소망했던 놀라운 천국을 보여 주셨다. 은혜로 갚아 주신 것이다.
나는 쉬는 날이면 발길 닫는 곳마다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전도의 열정으로 보낸지 약 3~4년 여의 시간을 보냈다.
2006년 8월 중순, 영암군 시종면과 나주시 반남면의 경계 부근 어느 부락을 지나다가 때마침 3명의 여성(30대 후반, 40대 중후반, 60대 초반의 나이로 보이는 여자들이 쉬고 있었다)이 나무 그늘 밑 평상에서 쉬고 있기에 차를 세우고 전도하기 위해 다가갔다. 이때 젊은 여자가 “이 언니(40대 중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는 오랫동안 교회 다녔다. 그런데 지금은 몇 년간 방학한 상태인데 이제 교회를 완전히 떠났다”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그럴 수밖에 없는 어떠한 이유가 있었는지 물었다. 이때 위 김명자 피택권사가 나를 향해 “장로님,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 확실하냐”고 대뜸 물었다. “만약 예수님 하나님이 계신다면 내가 이렇게 억울한 일을 당할 때까지 그 여자들을 가만 둘 수 있겠느냐”고 말하였다. 자신이 처녀 때부터 열심히 교회 다니며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교회 여전도회 회장을 하고 있을 때 교회 안에서 다른 여자 집사들에게 일방적으로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하였다. 그 후, 하나님은 안 계신 것으로 단정 지은 채 하나님을 원망하며 교회를 안 나간 지 3년 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억울하게 일방적으로 당했던 아픈 사연을 이야기했다. 내용은 권사 피택을 받고 임직식 교회행사 40일 정도 남겨 놓은 상태에서 갑자기 교회 예배당에서 두 명의 여자 집사들로부터 아무런 이유 없이 “네가 봉사를 잘하면 얼마나 잘하느냐, 헌금을 많이 하면 다냐, 여전도회 회장이면 다냐”는 등 3주간 주일마다 교회 안에서 견딜 수 없는 모욕과 폭언 및 폭행을 당했단다.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더 이상 교회를 다닐 수 없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며 괴로워한 나머지 하나님은 절대로 안 계신다고 판단하고 교회 출석을 중단한 지 3년 되었고, “죽어도 교회를 나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담임목사님 장로님들께서 여러 차례 찾아와 위로하며 사정하였단다. 특히 담임목사께서 11차례 찾아와 간절히 사정 사정하며 권사임직식 행사를 할 수 있도록 교회 나올 것을 간곡히 부탁하며 사정 하였으나 “하나님은 절대로 안계신다, 죽어도 교회 나가지 않겠다”고 결연한 결단을 내리고 교회 발걸음을 완전히 끊어버렸다는 것이다.
“김명자 피택권사님, 얼마나 억울하셨고 힘들었습니까. 내가 김명자 피택권사님의 억울한 심정과 견딜 수 없는 고통의 순간들을 너무 잘알고 충분히 그 괴롭고 고통스러운 마음 이해합니다”라고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내가 당했고 경험했던 억울함과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이 생각난다”는 위로의 말을 전한 후, 억울한 경험을 직접 체험했던 내가 경험한 고통스러웠던 그 순간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자 김명자 피택권사는 하염없이 울면서 눌물 콧물을 쏟았다. 순간 나도 놀라웠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나의 작은 입술을 통해 내가 직접 경험했던 그 고통스러웠던 성령체험담이 김명자 피택권사님의 억울하고 응어리로 맺혀있는 아픈 심정과 깊은 상처를 만져 주신 것이다. 함께 울었다. 이어 긍휼의 복을 주신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 간절히 기도해 주었다. 그날이 토요일이었으므로, “장로님 내일부터 다시 교회 나가겠습니다.”고 약속했다. 그러자 이어 옆에 있던 두 여자도 우리는 교회를 가본 적이 없는데 우리도 내일 김명자 피택권사를 따라 교회 나가겠다[(언니 따라 교회 같이 가겠다, 동상(동생)과 같이 내일 나(60대 초반의 여자)도 교회 가겠다)]고 상호 약속하였다. 여러분 고맙고 감사합니다라고 말한 후 다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하고 그들과 헤어져 집을 향해 가면서 하나님께 감사했다.
그 후 이들이 신앙을 회복하였고 하나님을 만나 모두 신앙생활 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분들께 전도하고 돌아오는 길 차안에서 계속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나의 작은 입술을 통해 나를 주님의 도구로 사용하셨군요. 차안에서 큰소리로 찬양하며 주님이 주신 감당할 수 없는 감격과 은혜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2012년경 몸이 매우 심하게 아팠다. 그 무렵 상당기간 동안 잠을 거의 자지 않고 죽을 힘을 다해 공부하다가 체력과 기력이 완전히 소진되어 고갈되고 결국 깊은 병이 들게 된 것이다. 밥을 먹지 않아도 억지로 밥을 먹어도 배가 고픈지 배가 부른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쇠약해 지고 완전히 신진대사가 망가져 버린 상태에서 몸에 있는 모든 기력이 완전히 빠져 버린 최악의 건강 상태이었고 “사람이 이렇게 되어 죽게 되는구나”라는 절망의 생각에 이르렀다. 약 1년여의 기간 동안 기진맥진하고 몸상태가 완전히 다운되어 축 처져 버린 중환자 상태로 누워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 기름이 없어서 거의 꺼져가는 호롱불과 같은 상태의 심정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엎드려 간절히 기도하다가 지치고 힘이 없었고, 며칠이나 지났을까요. 어느날 순간 잠시 잠이 들었다 이때 하나님께서 병원 수술대위에 발가벗은 채 누워있는 나를 향해 오른손을 들고 기도할 때 수없이 많은 무리의 군중들이 하나님을 향하고 수술대 방향을 향해 하나님 앞에 머리 숙여 주님께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였다. 하나님이 나를 만지시고 치료해 주신 것이다. 의로운 능력의 오른팔로 만져 주심으로 말미암아 주님이 나를 살려 주신 것이다. 그 일을 경험한 후 조금씩 약간씩 입맛이 되돌아오고 급기야 몸이 회복되며 살아나게 된 것이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주 안에서 ‘행복자로다’ 라고 감사 고백을 한다.
2. 큰아들과 작은아들의 성장
1) 마음껏 뛰어놀기
나는 두 아들 모두 고등학교 3학년 올라갈 무렵 때까지 공부에 대해 거의 부담을 주지 않았다. 아들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지원해 주며 부담 없이 뛰어놀도록 자유를 주었다. 대신 신앙생활을 철저히 하도록 일러주고 교회생활을 체크하였다. 두 아들이 하나님 만나기를 바라며 기도한다고 말했고, 온전히 주님만 의지하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두 아들은 마음껏 뛰어놀고 축구, 합기도, 야구, 배드민턴, 배구, 당구, 키타, 일렉키타, 피아노, 게임, 친구들과 잘 어울리도록 가정환경 및 정서를 안정되게 조성했고 우리집이 두 아들 친구들의 놀이 공간이자 아지트였다(광주광역시에서 51평으로 그 당시 매우 넓은 아파트에서 살았다). 아이들은 밖에서 실컷 뛰어 놀다가 항상 친구들과 함께 모두 집에 몰려와서 외할머니가 끓여 주신 라면과 따뜻한 밥을 먹고 친교하며 충분히 마음껏 뛰어놀게 했다. 공부는 자유이었으므로 거의 하지 않았으니 응당 성적이 둘 다 하위권으로 끝순위에 가까웠다.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으니 성적 상위순위를 기대할 수 없는 상태였다.
특히 큰아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고 놀기만 하기에 고등학교 1학년때 1년간 사설학원에 일체 보내지 않은 채 자신이 하고 싶은 운동을 하며 에너지를 있는 대로 발산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하지만 항상 주님께서 언젠가는 우리 아이들을 만져 주실 것이다는 기대를 하며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에 매달렸다.
큰아들, 작은아들이 각 고등학교 2학년 2학기를 마치고 3학년 올라갈 무렵 하나님께서 엄마 아빠의 간절한 기도를 비로소 들어 주셨다. 하나님의 때가 이르자 좋으신 하나님께서 엄마·아빠의 기도 응답으로 비로소 이때부터 두 아들을 만져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예정된 시간표대로 하나님의 때가 이르자 하나님께서 두 아들에게 공히 스스로 깨닫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학습주도력이 형성되게 해 주셨으므로 급기야 이때부터(고등학교 3학년 올라갈 무렵) 스스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큰아들은 미국 듀크대학 스텐리 하워즈 교수(기독교 윤리학자로서 세계 최고 권위자)의 책을 몇 권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스텐리 하워즈 교수와 같이 세계적인 훌륭한 기독교 윤리학자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야 되겠다는 꿈과 비전의 목표를 정하고 하나님을 향한 설레는 마음에서 기쁨의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공부하였다. 서울 대성학원(기숙학원)에서 재수할 때 3~4개월 동안 말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공부에만 집중하고, 당시 입에서 마치 썩은 악취가 나는 것을 경험했다고 한다. 세계 최고대학에 유학가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죽을 힘을 다해 토플 등 공부에 전력을 다 쏟으며 유학준비할 때 마지막 시험을 치르고 집에 와서 책을 방구석에 내던지고 그대로 잠을 잤는데 3일 동안 잠만 잤다고 한다. 드디어 하나님의 은혜로 미국 최고 탑스쿨에 응시할 수 있는 고득점의 성적이 나왔다. 기도하며 집중해서 무서울 정도의 대단한 각오로 유학준비해서 미국 듀크유니버시티(탑스쿨로 기독교윤리학 분야 세계최고로 인정하는 1위 대학이다)에 진학하여 결국 위 스텐리하워즈 교수의 논문지도를 받았고 미국 듀크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작은아들은 해군본부에서 정보병과를 창설할 계획을 세우고 미리 해양공학 수중음향 전공자를 모집하였다. 학사장교 수중음향 전공과목 8학점과 학점 B+이상자에 한해 해군정보병과 지원자격 기준을 두어 학사장교 모집공고를 하였다. 전국에서 지원자격에 해당(위 수중음향 전공학점 이수자로 응시작격이 된자)된 46명의 응시자 중 작은아들이 해군정보병과장교(수중음향 전공) 후보생 1명을 선발하는데 응시자 중 일등으로 합격하였다. 하나님이 도우시고 함께 하셨음이 분명하다. 그 후 미국연수, 연합사령부, 해군본부에서 근무하였다. 서울대학교 대학원 조선해양공학과(수중음향 소음진동공학 전공)에 합격하여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위 두 아들은 스포츠 음악 친구관계 교회 학생회 전도왕 등 친구관계가 매우 좋았고 신앙생활과 인격형성이 바르게 잘 되었다. 자신들이 걷고 있는 길 행하고 있는 일을 즐거워 하며 하나님을 향하고 주님을 향한 커다란 꿈과 비전을 세우고 기쁨과 감사로 신앙생활하고 있다. 두 아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이 도우시고 함께해 주실 것을 믿고 미국에서 서울에서 각자 열심히 공부하며 믿음생활하고 있다. 각자의 진로 또한 각 스스로 결정하였고 부모는 순전히 아이들의 장래일과 미래를 위해 주님께 맡기고 기도하였다.
한편 큰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육군 학사장교 시험에 합격한 뒤, 사관학교 장교훈련 입교를 5개월 앞둔 그해 겨울에 수십 년 만에 찾아온 혹한 속에서 조선소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추운 날은 영하 16도까지 내려갔고, 대형 선박 건조 작업을 하는 갑판 위에 올라가면 체감온도가 영하 25~26도 정도였으며, 작업용 가죽장갑을 두 겹 끼고 철판을 옮길 때도 가죽장갑이 순간적으로 철판에 얼어붙어 찢어질 정도로 극심한 혹한의 강추위였다. 그렇게 약 75일간 선박건조 아르바이트 일을 하던 중 손가락 골절 사고를 당해 봉합 수술을 받았고, 몸과 마음이 매우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인내하며 일을 마쳤다. 견딜 수 없을 만큼 혹독한 겨울바람을 맞으며 선박건조 아르바이트를 계속하던 중, 귀한 성도들이 삶의 힘겨운 현장에서 가족을 부양하고 생활을 이어 가면서도 교회에서 믿음으로 헌금한다는 사실이 떠올라, 예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에게 임하기를 기도했다고 한다.
이후 큰아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무전여행을 떠나 45일간 아프리카 6개국을 혼자 다녀왔다. 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 소개받은 현지인을 따라 첩첩산중의 오지에 사는 산족 부락을 찾아 5시간을 걸어 들어갔는데, 그 부락의 추장과 산지인들이 칼과 창을 들고 위협하듯 둘러싸서 위험한 상황에 놓였으나 간신히 체류를 허락받아 3박 4일간 산족들과 함께 지낼 수 있었다고 한다. 산족들이 준비해 준 밥을 먹으려고 개인 식사기도를 마치고 눈을 뜨니, 수없이 엄청나게 많은 파리 떼가 시커멓게 밥에 달라붙어 있어 위생상 도저히 먹기 힘들었지만, 만약 “못 먹겠다”고 거부하면 현지인들의 의심과 위해가 두렵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들도 구원받아야 할 소중한 영혼이므로 동화하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마음으로, 생명과 건강 역시 주님께 맡긴다는 믿음으로 밥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고 한다. 돌이켜 보면 45일간의 아프리카 현지 여행 체험 등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경험한 것이다.
그 후 육군3사관학교에 입교해 장교훈련을 거의 마칠 무렵, 큰아들은 3박 4일간 추석 명절 특박으로 집에 왔다가 다시 사관학교로 돌아갈 때, 3주 후면 장교 임관을 한다며 광주고속버스터미널 영풍문고에서 읽고 싶은 책 5권을 구입해 남은 장교훈련 기간 3주 동안 완독했다고 한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물리 환경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가능해진다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체험했다고도 했다. 추석 명절 특박 때, 병과 신청을 앞두고 특전사 병과를 지원하겠다고 하자 너무 힘들고 위험하니 정훈병과 지원할 것을 권유했지만, 젊은 병사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그들의 심리를 파악하고 리더십을 기르는 것이 보람 있고 의미 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특전사 병과를 지원했다고 한다. 결국 4년간 북한 침투목적 훈련 소수 정예 임무대대 특공대에서 특전사 장교로 복무하며 매우 힘든 군 생활을 했다.
지난 4년간 특전병과 장교훈련과 지휘관 생활을 하면서, 힘든 훈련이 없는 날이면 매일 아홉 명의 병사들을 데리고 영어 공부를 시키고, 자신의 미국 유학을 목표로 하는 학습을 지속했다고 한다.
2) 신앙 안에서의 양육
큰아들이 육군 소위 계급장을 단 뒤 7일간 휴가를 나오자, 온 가족이 밤늦도록 모여 보이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다. 이때 큰아들(형)이 동생에게 “군장교훈련 중 하나님께 기도하며 3주 동안 책 5권을 완독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불가능한 환경에서도 가능하게 되더라. 너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열심히 공부하거라.” 하고 자신의 체험담을 전해 주었다. 나는 보이차를 우려내며 가족과 함께 찻자리에 앉아 큰아들이 동생에게 권유하는 말을 들으며 하나님께 감사했고, 너무나 든든하고 행복하고 흐뭇한 마음을 느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은혜에 충만한 감격의 순간이었다.
큰아들은 세계적인 기독교 윤리학자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세계 복음화를 위해 하나님과 나라를 위해 살겠다는 꿈과 비전,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인생 목표를 세우고 공부했다. 열심히 유학을 준비하여 미국 듀크 유니버시티(미국 탑스쿨로 기독교윤리학 분야 세계 최고 대학이다) 대학원에 진학했다. 듀크 유니버시티 대학원에서 스탠리 하워즈 교수의 세찬 지도 아래 논문을 통과하여 무사히 졸업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에 감사한다.
한편, 작은아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골목대장으로, 주변 많은 친구들을 데리고 다니며 마음껏 운동하고 음악과 축구, 합기도 등으로 충분히 성장에너지를 발산하며 자랐다. 초등학교 4학년 여름 무렵, 어느 토요일 오후에 큰아들이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다가 아파트 후문 공터에 아이들 약 30여 명이 모여 있어서 무슨 일인가 궁금해 확인해 보았더니, 작은아들 동생이 2년 선배인 6학년 키큰 형과 1:1 싸움을 격투를 벌이고 있었다고 한다. 깜짝 놀라 말릴까 했지만, 동생이 이기고 있어서 잠시 멈칫하고 한참을 지켜보았는데, 결국 동생이 상대에게 강펀치를 가해 그 싸움에서 이기고 굴복시키자 주변 아이들이 동생을 응원하고 격려하며 따라가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큰아들로부터 전해 들었다.
작은아들이 해군사관학교에서 장교훈련 중일 때 가족 전체 면회가 있어 아내와 외할머니 등 가족이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해군사관학교로 면회갔다. 엄마가 소고기 안심스테이크 등을 구워 한 접시를 건네자 작은아들이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한 뒤, 옆에서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던 동료 사관후보생에게 그 접시를 그대로 내주고 돌아왔다. 엄마는 깜짝 놀라 다시 구워준 소고기를 건네자 그때서야 “엄마, 잘 먹겠습니다” 하고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고 크게 감동했고 아들의 전우애와 의리를 칭찬하며 하나님께 감사했다.
두 아들은 모두 스포츠·음악·친구관계·교회생활 등에 열심이었고, 중·고등학생 시절 학생회 전도왕으로 교회활동하며 친구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었다. 인격도 바르게 형성되어, 자신들이 목표하고 행하는 길과 일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향한 큰 비전을 기대하며 주 안에서 믿음으로 잘 자랐는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한다. 두 아들은 진로에 대해서도 각자 하나님께 기도하고 스스로 결정했고, 부모로서 우리는 온전히 주님께 맡기고 기도했다.
두 아이가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는 성장기에 아이들의 엄마가 시외 장거리로 출퇴근하느라 편도 약 1시간 20분 정도를 자동차로 이동해야 했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 간편식이라도 반드시 아침 식단을 준비해 출근길에 등교시키면서 차 안에서 항상 아침식사를 하게 했다. 토요일에는 내가 아내가 근무하고 있는 지방에 내려가 교회 옆에서 잠을 자고 다음 날 주일 교회생활을 마친 뒤 저녁 늦게 귀가하면 항상 밤이 깊어 있었다. 아이들은 외할머니와 집에서 함께 지내며 할머니의 돌봄을 받았고, 엄마 아빠의 간섭이나 통제 없이 친구들과 마음껏 뛰어놀 수 있었다.
우리는 하나님께 맡기는 신앙으로 잠잠히 하나님만 의지하며 기도했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두 아이들과 함께하시길 바랐으며, 아이들의 진학이나 미래 그리고 장래 일을 주님께 맡기고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양육 방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이를 내가 양육하고 부모 방법으로 교육하고 키우면 부모수준까지 성장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께 맡겨드리고 창조주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절대신뢰하고 의지하며 기도하여 하나님께서 만져주시면 결국 하나님의 수준까지 성장하고 하나님의 예비하신 섭리대로 인도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고 순전히 신앙과 믿음으로 기도하여 오직 주님만 따르길 바란다.
모든 동기부여의 기저에는 실현을 향한 유기체적 성향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내게는 의미가 있다. 이 성향은 몹시 광범위한 행동으로, 그리고 매우 다양한 욕구들에 대한 반응으로 그 모습을 나타낸다. 어떤 기본적인 욕구가 있으며 그것이 적어도 부분적으로나마 채워진 후에라야 다른 욕구들이 중요해진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유기체가 자신을 실현하려는 성향이 어떤 때는 음식이나 성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것으로 이끌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필요들이 압도적으로 크지 않은 한, 이 같은 만족감들은 자존감을 저하시키기보다는 고양시키는 방식으로 추구될 것이다.
그리고 유기체는 환경과 교유하면서 또 다른 것들의 성취를 추구하게 될 것이다. 환경을 탐색하고 변화를 이루려는 욕구, 놀고 싶은 욕구와 자기 탐색의 욕구, 이 모든 것들과 다른 많은 행동들은 실현 성향의 기본적인 표현이다. 요약하자면, 유기체들은 항상 무언가를 추구하며 항상 어떤 일을 시작하고 항상 ‘어딘가에 도달’한다. 인간 유기체 안에는 에너지의 중심적인 원천이 하나 있다. 이 원천은 체계의 일부 기능이 아니라 전체 체계의 믿을 만한 기능이다. 이는 성취와 실현을 향한 성향아라고 개념화할 수 있는데, 이 성향은 유지에 그치지 않고 유기체의 증식을 수반한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박세용
대한민국 최남단 땅끝 해남에서 태어났다.유소년 시절은 전원의 풍경을 바라보며 농촌에서 보냈다.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법학석사·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회사 다녔다. 프리랜서였다. 대학에서 강의했다.교회 장로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취미는 책읽기와 바이크를 즐긴다. 전원주택 한옥에서 보이차 마시며 담소하기를 좋아한다.
목차
책을 펴내며
박세용 박사의 자녀교육 성공법
PART + 01
나의 유년기와 자녀양육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큰아들과 작은아들의 성장
절제하는 습관과 부모의 실천적인 모습
PART + 02
놀이와 창의성
놀이의 중요성과 학문적 접근
에너지 관리와 몰입의 중요성
에너지와 성공의 연결성
PART + 03
학습 능력 성장을 위한 전략
학업의 실태
자녀 양육의 원칙과 실천
글로벌 시대의 잠재력 계발과 학습 동기 부여
PART + 04
효과적인 학습계발을 위한 조건
학습법은 뇌에서 출발
유형별 지능 계발
정서안정과 자존감
학습동기 부여와 효과적인 학습
미래의 성장 꿈꾸기
전인교육의 조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