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우리 시대 최고의 신경과학자 로버트 새폴스키의 ‘자유의지 논쟁’ 결정판!★
★뇌과학, 신경생물학, 심리학, 물리학, 역사학을 넘나드는 풍성한 지적 향연★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이정모 강력 추천★
“당신의 자유의지는 환상이다!”_새폴스키
“분하다! 로버트 새폴스키의 논지에 반박할 수가 없다.”_이정모(전 국립과천과학관장)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가 “인간 본성에 대한 탁월한 안내자”라 칭하고 신경의학자 올리버 색스가 “우리 시대 최고의 과학 저술가”라 평한, 세계 최고의 신경과학자 로버트 M. 새폴스키의 신작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가 출간됐다. 새폴스키는 전작 『행동』에서 인간이 때로 왜 최선의 행동을 하고, 왜 최악의 행동을 하는지, 그에 영향을 미친 것은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을 신경생물학적 관점에서 다뤘다. 이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그는 인간의 행동과 생각을 결정하는 문제에 대한 또다른 논쟁을 다루는데, 바로 ‘자유의지’다. 과연 인간에게는 특정 행동을 지시하는 별도의 자아나 의식이 존재하는가?
오랫동안 과학계와 철학계에서 ‘결정론’과 ‘자유의지’를 둘러싼 논쟁―세계는 자연법칙에 따라 특정하게 결정된 것인지 아닌지, 또한 인간의 행동이 유전과 환경의 지배에 따라 결정되는 것인지, 순전히 자유의지에 따른 것인지―은 지속되었으며, 이는 학계는 물론 종교와 사법 분야에서도 깊이 다뤄진 주제다. 또한 자연과학이 발전하면서 ‘리벳 실험’의 결과를 두고 과연 이를 자유의지 부존재 증명으로 인정할지의 문제는 뇌과학과 심리학의 뜨거운 감자였다. 지속된 논쟁 속에서 현재는 대체로 ‘양립주의’가 주류를 이루는데, 즉 ‘인간의 행동은 결정론을 따르지만 자유의지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새폴스키는 이러한 입장이 환상일 뿐이며, 자유의지란 ‘생물학적 착각’일 뿐임을 방대한 과학적 탐구를 바탕으로 논증한다.
이 책의 전반부는 생물학적 이론 틀을 근거로 자유의지가 없다는 점을 주장하며, 후반부에는 자유의지가 없다는 입장을 개인적·사회적으로 수용할 때의 논란을 다룬다. 과연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 없이도 사회는 잘 돌아갈 수 있을까? 새폴스키는 되레 이 사실을 인정할 때 개인에게 부당한 책임을 씌우지 않을 수 있으며, 그러한 사회가 더 건설적이고 현실적인 해법을 내놓을 수 있다고 전망한다.
뇌과학·신경학·생물학·물리학 등 과학을 중심에 두면서도 사회·역사·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넘나들며 현재까지 인간의 의식과 행동을 둘러싼 학계의 성과를 총망라한 이 책은 이 시대 인간 존재에 관한 가장 민감한 질문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자유의지를 지지하는 과학자들이 근거로 삼는 세 가지 물리학 이론 영역―카오스이론, 창발적 복잡성, 양자역학―을 차례로 격파하는 부분은 흥미진진하다. 무엇보다 〈뉴욕 타임스〉가 “제인 구달에 코미디언을 섞으면, 새폴스키처럼 글을 쓸 것”이라고 할 만큼, 유머로 무장한 새폴스키의 글은 벽돌책 읽기의 허들을 가뿐히 넘는 경험을 선사한다. 페이지터너인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무렵, 독자들은 뇌과학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타인을 보는 방식의 변화와 사회 시스템의 개선에 대한 고민을 마주할 것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통제할 수 없는 생물학과
통제할 수 없는 환경이 상호작용한 결과일 따름이다!
인간의 의사결정에 미치는 생물학적 원인과 후천적 영향에 관한 깊이 있는 분석새폴스키는 ‘자유의지는 없다’라는 파격적 주장을 펼치기 위해 거북이 일화로 첫 장을 연다. 세상이 거대한 거북이 등 위에 있다고 믿는 노부인에게 한 학자가 묻는다. “그 거북이는 어디에 있나요?” “다른 거북이의 등 위에 있어요.” “하지만 부인, 그 거북이는 또 어디에 있죠?” “더이상 말할 필요 없어요, 제임스 교수님. 거북이가 맨 아래까지 겹겹이 포개져 있다는 거잖아요!” 이 일화는 무엇을 뜻할까? 우리는 어떤 행동이나 선택의 원인을 찾을 때 바로 직전의 ‘의도’에서 멈추지만(바로 아래의 거북이), 새폴스키의 관점에서는 특정 의도 아래에는 반드시 그 의도를 만드는 이전의 원인이 있고, 그 원인이 되는 또다른 의도는 세상을 받친 거북이가 무한히 이어지듯 연속적이다. 이 비유를 우리의 행동이 결정되는 과정에 대입해 시간의 역순으로 추적해보자.
우리가 특정 행동을 의식적으로 선택했다고 믿은 시점 이전에, 이미 인간 뇌의 보조운동영역은 활성화되어 움직임을 지시하는 신경신호를 보낸다. 그리고 이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1초 전 우리가 본 것, 몇 시간 전에 느낀 허기, 통증, 피로 등 이전의 감각과 경험 등이다. 가령 배고픔을 느끼는 판사가 가석방을 허가할 가능성은 낮으며, 여러 연구에서 배고픔이 친사회적 행동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을 기억하라. 그렇다면 며칠 전의 호르몬 수치는 우리의 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스트레스에 따른 당질코르티코이드의 분비는 뇌의 판단을 더 충동적으로 만들고, 도덕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때 더 자기중심적이고, 더 이기적인 결정을 내리도록 이끈다. 시간을 좀더 되돌려 청소년기와 유년기의 환경은 전두엽의 성숙도에 영향을 미치며, 더 거슬러 올라가 태아기에 어머니의 영양 상태, 부모에게 받은 유전자 또한 우리를 구성한다. 장구하게는 내가 속한 집단에서 수백 년에서 수천 년 전 형성된 문화와 가치관은 세대를 거쳐 뇌 회로에 각인된다. 이런 과정에서 당신이 통제하고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특정 문화권, 유전자, 부모, 호르몬 농도, 환경의 자극 가운데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저 특정 행동을 하기까지 ‘1초 전, 한 시간 전, 며칠 전, 수년 전, 청소년기, 태아기, 유전자, 진화’로 이어지는 모든 단계에서 선행 원인의 종합된 결과가 우리의 의도를 이룰 따름이다.
이처럼 새폴스키는 각 단계를 뇌과학과 신경생물학의 이론을 바탕으로 촘촘히 설명하는 가운데, 자유의지가 존재한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뉴런의 행동이 이전의 통제 불가능한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하지만, 그런 생물학적 기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이 책에서 여러 차례 반복해 말하듯 “우리의 몸과 마음은 통제할 수 없는 생물학과 통제할 수 없는 환경이 상호작용한 결과”인 것이다.
(한 학생이) “저기, 방금 이 펜을 집어들기로 결정했는데 그게 제 통제권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말씀이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내 예측을 증명할 데이터는 없지만, 두 명의 학생 중 누가 펜을 집어들지는 우연 이상의 수준으로 예측할 수 있다. 점심을 거르고 배고픈 학생이 펜을 들 가능성이 더 높다. 혼성 쌍인 경우 남학생일 가능성이 더 높다. (…) 어젯밤에 잠을 너무 적게 자고 늦은 오후까지 버티고 있는 학생일 가능성이 더 높다. 또는 혈중 안드로겐 수치가 일반적인 경우보다 높은 학생일 가능성이 더 높다(성별에 관계 없이).
과거로 더 거슬러올라가면, 전액 장학금을 받기보다는 부유한 집안 출신일 가능성이 더 높고, 이민자 집안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첫번째 구성원보다는 명문대 출신이 즐비한 가문의 18대 손일 가능성이 더 높다. (…) 이민자 부모가 박해를 피해 고국을 떠난 난민이 아니라 경제적 이득을 위해 미국행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더 높으며, 조상이 집단주의 문화가 아닌 개인주의 문화권 출신일 가능성이 더 높다.
나는 “저기요, 제가 방금 이 펜을 집어들기로 결정했는데, 그게 제 통제권 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말씀이세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이 책의 전반부에서 제시했다. “맞아, 그렇다네.”
_「10.5장 간주곡」, 301~302쪽
한편 ‘자유의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인지과학자 데니얼 데닛의 입장을 지지하는 이들은 ‘그릿’(강인한 의지력)을 들어 반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새폴스키는 자제력을 발휘하거나 노력하는 능력조차 생물학의 결과이며, 그릿 또한 신화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자기조절능력, 충동조절능력을 관장하는 뇌 영역은 전전두피질(PFC)인데 PFC는 생물학적 요소로 구성되며, PFC의 기능 또한 또한 앞서 언급한 대로 몇 초-몇 분-몇 시간-며칠-몇 년-몇천 년 전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일들의 결과물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결국 한 사람의 성취는 그가 가진 생물학적 기계가 우연히 더 좋은 환경에서 원활하게 작동한 덕분일 뿐이며, 그 모든 것이 스스로 노력해서 얻은 특권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누군가의 성공을 상찬하는 것도 누군가의 실패에 가혹한 평가를 내리는 것도 부당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새폴스키의 논의는 미국 사회에 팽배한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과 이어진다. 자신은 다른 사람보다 더 우월하다고 느끼거나 특권의식을 가진 이들이 만연한 세상을 원하지 않는다면, 개인의 그릿을 칭송하기보다 어떻게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나는 당신의 PFC가 진화한 과정을 다루면서 ‘진화한 유전자’와 ‘그 유전자가 뇌에서 코딩하는 단백질’과 ‘어린 시절의 환경과 경험이 이러한 유전자와 단백질의 조절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당신의 PFC를 지금 이 순간까지 이끌어온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향 사이에 자유의지가 끼어들 틈은 한 군데도 없다.
_ 「4장 강인한 의지력: 그릿의 신화」, 158쪽
물리학은 자유의지의 구원투수인가?
카오스이론에서 창발적 복잡성, 양자 불확정성까지…
자유의지의 선봉대에 선, 현대물리학 이론에 대한 반격1~4장이 뇌과학, 신경생물학에 주요하게 기반을 두고 전개된다면, 5~10장에서는 현대물리학 이론이 집중적으로 다뤄진다. 그는 자유의지를 지지하는 입장의 과학자들이 근거로 삼는 현대의 세 가지 물리학 이론 영역―카오스이론, 창발적 복잡성, 양자역학―을 차례로 격파한다.
먼저 ‘카오스이론’. 카오스이론을 근거로 자유의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생물학에서 예상치 못하게 복잡한 행동이 나온다면, 예측이 불가능하며 따라서 결정론은 틀렸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새폴스키는 예측이 불가하더라도 세계는 결정론적일 수 있으며, 예측 불가능성이 곧 ‘자유’는 아님을 지적한다. 즉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혼돈상태가 갑자기 발생했다고 보기는 어렵고, 복잡성 아래에도 물리법칙이 면면히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거북이의 비유를 들자면 “당신을 지탱하는 두 개의 거북이 탑 중 어느 쪽이 맨 아래까지 이어졌는지 알 수 없다고 해서 당신이 공중에 떠 있는 것은 아니”다.
두번째는 ‘창발적 복잡성’으로 이는 생물학적 시스템에서 그 구성 요소가 무한히 반복되며 상호작용할 때 새로운 차원의 복잡성과 최적화를 달성하는 것을 뜻한다. 군집을 이룬 꿀벌이나 개미들이 먹이 장소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는 데서 보이는 효율적 과정을 떠올려보라. 창발적 복잡성은 마치 컴퓨터 과학자, 수학자, 도시계획가가 달성하는 것과 맞먹는 수준의 새로움인데, 그렇다고 하여 이 과정에서 자유의지 지지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생물학적 제약을 뛰어넘는 ‘자유의지와 같은 마법’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창발적으로 아무리 멋지더라도 개미 군집은 ‘개미 개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의 제약을 받는 개미로, 뇌는 여전히 고유의 기능을 수행하는 뇌세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카오스계의 모든 단계는 변덕이 아닌 결정론에 의해 이루어진다. 단순한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는 수많은 단순한 구성 부품들을 상호작용하도록 놓아두면 놀랍도록 적응적인 복잡성이 생겨난다. 하지만 구성 부품은 여전히 단순하며, 생물학적 제약을 뛰어넘어 자유의지와 같은 마법적 요소를 담을 수는 없다. 벽돌은 우아하고 화려한 무언가가 되고 싶어할지 모르지만 언제나 벽돌로 남을 뿐이다. 그리고 정말로 불확정적인 일은 훨씬 더 아래의 아원자 수준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런 차원의 기이한 일이 행동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위로 확산되기란 불가능하며, 게다가 ‘자유롭고 의지적인 행위자’라는 개념이 무작위성에 기반한다면 문제가 생긴다.
_「10.5장 간주곡」, 298~299쪽
마지막은 양자역학이다. 양자역학 논의에서 물질계의 무작위성은 결정론과 배치되는 듯하지만, 새폴스키의 시각에서 무작위적으로 움직인다는 이유로 자유의지가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또한 ‘양자 자유의지론자’들은 비고전물리학의 다양한 특징이 신경계의 많은 구성 요소 사이에서 양자 사건을 조정할 수 있다는 주장하지만, 그는 이러한 양자 효과가 행동을 변화시킬 만큼 용솟음친다는 증거는 없다고 단언한다. 이온과 같은 물질이 신경계의 이온채널이나 수용체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양자 효과가 있으리라는 추측은 무리라는 것이다.
새폴스키는 현대물리학 이론의 필수적이고도 까다로운 논의를 풍성한 시각자료를 곁들여 능숙하고도 이해하기 쉽게 풀어가기에, 독자들은 고전물리학과 현대물리학의 핵심 논의를 따라가기 어렵지 않다. 『사이언스』 <월 스트리트 저널> 등 유수의 언론에서 “탁월하다”는 찬사를 아끼지 않은 이유다.
“우리는 변화를 일구어낸 경험이 있다”
자유의지가 없다면, 인간에게 윤리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개인에게 부당한 책임을 지우지 않는 사회를 향하여 새폴스키의 주장을 따를 때의 우려 중 하나는 인간의 윤리를 어디까지 물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자유의지가 신화이고 우리의 행동이 우리가 책임질 수 없는 생물학적 운의 비도덕적 결과에 불과하다면, 그냥 난동을 부린들 안 될 게 뭔가?” 자유의지 부재에 따른 도덕적 혼란을 고찰하는 과정에서 그는 자유의지에 대한 입장 차를 보이는 이들뿐 아니라 무신론자들의 부도덕함에 대한 연구를 나란히 가져온다. ‘자유의지가 없다면 인간은 무책임한 존재로 전락할 따름인가?’ ‘무신론자들은 종교인들보다 반사회적 행동을 많이 하는가’를 주제로 한 연구 결과는 그렇지 않음을 보여준다. 대체로 종교인들은 더 도덕적인 말을 많이 한다고 여겨지지만 말보다 행동을 관찰하면, 유신론자와 무신론자의 친사회성의 차이는 사라진다. 종교인이 무신론자보다 더욱 친사회적 성향을 보이는 경우는 누군가가 그들의 종교성을 상기시킬 때다. 한 유신론자가 무신론자보다 더 많은 친절을 베푸는지 또한 친절의 수혜자(내집단의 경우)에 따라 달라진다. 관련 연구에서는 종교의 유무나 자유의지에 대한 입장에 관계없이 ‘도덕적 정체성’ 입각해 자신을 정의하는 사람이 가장 정직하고 관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을 철회한다고 해서 반드시 하늘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라는 낙관론의 근거가 여기 있다.
새폴스키의 논의를 사회적으로 확장할 때, 큰 저항에 부딪치는 또다른 지점 중 하나는 사법 체계다. 자유의지가 없다면 범죄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그의 시각에 따르면 누군가 범죄를 저질렀다면, 이는 그 자신의 잘못으로 보기보다 유전자, 태아기의 삶, 호르몬 수치, 그가 속한 환경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다만 안전을 위해 대중을 범죄자로부터 보호해야 하기에 최소한의 제약, 즉 격리는 필요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복수심, 증오에 기반한 ‘처벌’은 문제적이며, 그를 ‘응보적 사법제도’ 아래 다루기보다 재활의 기회를 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런 주장은 실상 역사 속에서 보면 마냥 낯설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과거 뇌전증 환자는 악마가 들렸다는 이유로 형벌당했고 조현병이나 자폐증을 앓는 아이들은 엄마의 양육 태도의 문제로 낙인찍혔지만, 이제 이 질병은 생물학의 기능장애가 원인으로 밝혀졌기에 아무도 개인을 처벌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변화가 당장 실현될 수는 없더라도, 인간과 사회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통해 관습, 법, 문화에 진전을 이뤄왔듯 이후의 세상 또한 변화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새폴스키는 전작 『행동』에서 인간의 최악의 행동에 대한 이해를 통해 최선의 행동, 희소한 이타성으로 나아가는 논의를 마련했듯,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에서도 자유의지 없는 삶이 가져올 더 나은 사회의 가능성을 제안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밀도 높은 과학서일 뿐 아니라 사회, 역사, 문화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인류애 회복을 향한 지식의 대장정이다.

대학 졸업식을 상상해보라. (…) 당신은 졸업식장을 휘휘 둘러보다가 누군가를 발견한다. 가족 단위로 모인 졸업생들이 휠체어를 탄 할머니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포옹을 주고받고 웃음소리가 터져나오는 가운데, 행사장 주변의 쓰레기통에서 쓰레기를 수거하는 환경미화원 한 명이 뒤쪽에 보인다.
졸업생 중 하나를 무작위로 선택하라. 그리고 환경미화원이 이 졸업생의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도록 마법을 걸어보라. 물론 환경미화원은 다른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9개월을 보내고, 그로 인해 평생동안 지속될 후성유전학적 결과를 얻어야 한다. 그의 어린 시절도 바뀌어야 한다. 배고픈 상태에서 잠자리에 들거나 노숙자가 되거나 서류 미비로 추방당할 수 있다는 위협 대신, 피아노 레슨과 가족 오락의 밤으로 가득차야 한다. 내친김에 끝까지 가보자. 마법을 걸어 환경미화원에게 졸업생의 과거를 모두 가지게 하는 것 외에, 졸업생에게도 마법을 걸어 환경미화원의 과거를 모두 가지게 해보는 거다. 두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요인을 모두 바꾸면, 졸업 가운을 입은 사람과 쓰레기통을 비우는 사람이 바뀔 것이다. 이게 바로 내가 말하는 결정론의 의미다.
_「1장 의도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많은 주목을 받은 한 연구에 따르면, 배고픔이 사람을 더 깐깐하게 만든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1천 건이 넘는 사법 판결에서 판사가 식사를 한 지 오래됐을수록 죄수에게 가석방을 허가할 가능성이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연구에서도 배고픔이 친사회적 행동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_「3장 의도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