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10살이 되기 전에 청각장애인이 되면 소리뿐 아니라 언어도 사라진다. 소리가 언어를 책임지기 때문이다. 친구의 말로 자신의 상태를 자각한 이후, 잃어가는 언어를 붙잡기 위해 끊임없이 연습하며 어눌한 발음이지만 대화를 이어온 한 사람의 삶이 담겼다.
소리가 사라지면서 말도 흐려지고, 놀림 속에서 학업을 중단하는 시간을 겪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소리는 돌아오지 않지만 언어는 노력으로 지킬 수 있다는 믿음으로 혼잣말과 독서, 노래를 통해 스스로를 단련해온 기록이다.
청각장애인으로 살아오며 겪은 경험과 함께, 홀로 삶을 개척해 퀼트 작가로 자리 잡기까지의 여정을 전한다. 장애를 다름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변화 속에서 끝내 자신을 선택하고 지켜낸 이야기가 오늘의 의미를 되묻는다.
출판사 리뷰
어린 시절의 나는 소리가 들렸다
세상의 소리는 아름다웠다!
소리 없는 세상에서 청각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돌이켜 보니,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만 지나치게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사실 좋은 사람들은 늘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나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소식을 전하면 따뜻하게 받아주고 밥 한 끼, 차 한 잔을 나누며 일상 속 작은 행복을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제게 이렇게 말합니다. “긴 세월 소리 없이 살아오느라 고생했어. 이제는 들리지 않아도 괜찮아. 조용함이 더 좋을 나이니까.” “그동안 수고 많으셨고 청각장애인으로 살아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박수를 보냅니다.” 상처의 시간은 지나가고, 결국 남는 것은 사람입니다. 들리지는 않지만, 마음은 충분히 전해진다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이 책은 소리 없는 세상에서 살아온 한 사람의 이야기이자, 청각장애인·건청인·농인의 다름과 이해를 묻는 기록입니다!
도움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한 사람으로서오늘의 하루를 살아가는 이야기!
10살이 되기 전에 청각장애인 된 사람은 소리뿐만 아니라 언어도 사라진다. 소리가 언어를 책임지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는 들리는 것과 안 들리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다.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고 2년 후 친구가 놀리는 바람에 내가 들리지 않게 되었고 발음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친구의 말로 내 인생은 달라졌다. 잃어가는 언어를 찾기 위해 노력한 결과, 확실하지 않은 발음이지만 대화는 가능하다.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서 말은 어눌해졌고, 친구들이 벙어리라고 놀렸다. 예민한 사춘기 소녀에게는 지옥 같은 일상이었다. 그로 인해 학업을 중단했지만, 멈추고 싶지 않기도 했다. 집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살면서, 소리는 노력한다고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반면에 언어는 노력하면 어느 정도 유지된다는 걸 알고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 들리지 않아도 말은 하고 혀는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소리가 사라지면 입도 닫혀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혼잣말하며 이제껏 인생을 살아왔다. 책을 읽고, 유행가 가사를 따라 부르고, 동생에게 말을 건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변화하고 달라져왔다. 이 책은 청각장애인으로 살아오며 겪은 경험을 쓴 것이다. 청각장애인은 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 그럼에도 도움 없이 홀로 살아가면서 퀼트 작가가 되었다. 신의 영역과도 같은 비장애인의 세상에서 성공했다. 부정적인 시선을 이겨냈다. 작가로 우뚝 선 그날 이후로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따뜻하고 부드러워졌다. 그들도 장애라기보다는 다름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나를 선택하고 버리지 않았다. 나를 믿었다. 내 선택은 옳았다. 청각장애인으로 이루지 못할 일을 해냈으니까. 어쩌면 청각장애인으로 살아온 경험은 신이 주신 선물인지도 모른다.
여름 감기처럼 찾아온 뇌수막염, 그리고 전신마비가 왔다. 개학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열심히 산수 숙제를 하던 중 감기처럼 아프기 시작했다. 갑자기 40도를 오르내리는 고열로 토하면서 뜨거운 코피도 멈추지 않고 같이 쏟아졌다. 그렇게 심하게 아파 몸을 가누지 못하고 앉지도 못했다. 여름 감기라고 하는 의사의 말을 듣고 입원은 하지 않았다. 어느 늦은 밤, 심한 고열로 정신을 잃은 나를 등에 업고 아버지는 병원으로 뛰어갔다. 감기라고 해서 끝내 입원은 하지 못했다. 그 후로 조금씩 나았다. 그때까지도 부모님은 몰랐다. 내가 왜 그렇게 아팠는지. 앙상하게 뼈만 남은 채 완쾌된 나를 보고 의사가 이렇게 말했다. “이 아이는 살아남는다고 해도 평생 누워 살아갈 거예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엄마는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으셨다고 훗날 담담히 말했다. 다 낫고 나서야 의사는 감기가 아니었고, 뇌수막염이었다고 말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부모님은 의사의 오진을 어디에도 말하지 못하고 따지지도 못했다. 한 아이의 인생을 바꿔버린 큰 실수를 알고나 있었을까? 그때까지도 의사도, 부모님도 몰랐다. 내가 듣지 못한다는 것을.
심한 열병에서 빠져나와 회복은 되었지만 들을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엄마는 다시 걷기를 바라는 마음에 나를 잡아 일으켰다. 다리에 힘이 생기라고 계속 주물렀다. 장롱을 짚고 걸음마를 다시 시작했다. 여름의 끝자락이 되었다. 종일 마루에 누워서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과 키다리 접시꽃과 풍성하게 피어난 봉숭아꽃 그리고 바닥에 옹기종기 피어난 채송화였다. 그것이 9살 소녀의 여름이었다. 나는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위태롭지만 걸었다. 하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들리지 않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도 어린 마음에, 아프기 전에 그렇게도 하고 싶었던 놀이를 했다. 오징어게임이라는 놀이였다. 게임을 하면서 위태롭게 움직이는 나를 친구들이 잡아주었지만, 잠시뿐이었다. 이겨야 하는 게임이었으니, 같은 팀이라도 나를 챙겨줄 여유가 없었다. 이상하게 한쪽 발로는 움직이지 못했다. 한쪽 다리를 들면 쓰러졌다. 친구들 사이에 말소리와 고함이 오갔지만,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다시 게임은 시작되고 나는 피하라는 친구의 말을 듣지 못했다. 무방비 상태로 서 있던 나는 누군가가 밀치는 힘에 넘어져 기절했다. 그 후, 친구들은 다시는 나를 게임에 끼워주지 않았다.
더는 대화가 되지 않는 딸을 바라보면서 어떡해서든 다시 듣게 하기 위해 아버지는 민간요법을 찾았다. 이는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었다. 내 아버지는 법 없이도 살았다. 어려서부터 한문을 배웠고, 학교는 초등학교만 나왔다. 언문(한글)만 떼면 된다던 할아버지 때문이었다. 엄마는 슬픔을 밖으로 쏟아내는 성격이라면 아버지는 평온한 표정을 가장해 안으로 삼키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딸의 장애는 아주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병원에서 놓쳐버린 골든타임을 민간요법으로 되돌리고 싶어 했다. 들리게 하고야 말겠다는 부정을 어린 딸은 알지 못했지만, 약을 만드는 아버지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기에 아파도 순응했다. 달걀노른자를 태워 만든 정체 모를 기름을 종이에 발라 연기가 귓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민간요법이었다. 그렇게 하면 귀에서 눈을 통해 머리끝까지 찌르는 아픔이 밀려왔으나,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한껏 웅크릴 뿐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다시 들린다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이금자
9살에 소리를 잃었습니다. 중학교에서 학업은 멈추었지만, 배움까지 멈추지는 않았습니다. 10대 중반부터 책을 통해 세상을 배우기 시작했고, 독서 모임과 시 모임에서 사람과 생각을 만났습니다. 학교 대신 책이 교실이 되었고, 작가들의 문장이 제 스승이 되었습니다. 청각장애로 인한 언어의 벽을 넘기 위해 오랜 시간 스스로를 단련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수어가 아닌 구어로 세상과 소통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들리지 않는 대신 더 깊이 바라보고, 더 오래 생각하며, 저만의 속도로 삶을 걸어왔습니다. 천을 한 땀 한 땀 이어 작품을 완성하듯, 삶 또한 적금 들듯 차곡차곡 쌓아왔습니다. 현재는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활동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퀼트 작가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소리 없는 세상에서 살아온 한 사람의 기록이자, 청각장애인·건청인·농인이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며 함께 살아가는 길을 묻는 이야기입니다. 상처는 있었지만 결국 정상에 올랐고, 그곳에서 깨달았습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아도 삶은 충분히 괜찮다는 것을.
목차
머리말
1장 나의 어린 시절
1. 세상의 소리는 아름다웠다
세상의 모든 소리
어린 날의 소풍
소리가 사라졌다
이제 나는 청각장애인이다
고립의 시작
새로운 시작은 아픔의 시작이다
2. 외계인 같은 말소리
언어장애가 왔다
말을 찾아서
세상은 불공평하다
3. 말을 배우는 데는 도움이 필요하다
들리지 않아도 그대로 살아간다
도움 그리고 관심이 필요하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와우수술’조차도 내게는
나는 경계성 장애다
4. 학교는 더 이상 즐거운 곳이 아니다
질투는 폭력을 불러온다
영원히 머릿속에 저장된 이름
2장 고통 속에서 꽃을 피우다
1. 투명 인간이 되다
불혹에 시작한 사회생활
수화를 배우며 만난 인연
퀼트로 인생을 시작하다
은빛 모래알이고 싶다
희망은 작은 빛에서 찾아오고
회색빛을 무지개색으로
2. 낯선 도시 서울, 그 길을 방황하다
도시, 낯설다
왕따로 얼룩진 인생
사회, 그 냉정함과 차가움
3. 청각장애인 시선으로 본 함께하는 사람들
한 번만 질문하기
비행을 시작하다
괜찮아, 내가 응원할게
고립은 또 다른 길로 안내한다
4. 나는 상위에서 활동하는 퀼트 작가다
나는 퀼트 작가다
나를 부정하는 사람들
‘나’와 ‘너’만 있다
나는 이렇게 살아간다
나는 거북이다
들리지 않아도 내 삶은 내 몫이었다
없는 것이 더 많지만 지금에 감사한다
혼자 가는 길은 외롭다
작은 것이 모여 큰 것이 되고
3장 청각장애인의 눈물과 고통
1. 청각장애인은 지식 성장이 어렵다
청각장애와 지식의 성장
청각장애인의 생각
내 삶의 충만함
나의 작은 목표
긍정의 자기 인식
청각장애인을 응원한다
장애는 걸림돌이 아니다
2. 청각장애인은 깊이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소리의 부재는 생각을 가다듬을 여유를 앗아간다
청각장애인과 농인과의 대화
3. 청각장애인과 농인의 차이
같지만 다르다
청각장애인으로서의 삶과 인간의 권리가 있다
나를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4. 소망과 희망, 배려
4장 표현해야 내가 보인다
1. 청각장애인 자존감 회복하기
장애는 약점이 아닌 특성이다
나만 이런 것이 아니야
편견 넘어서기
감정 표현
가족과 친구
생각과 이해의 폭이 좁다는 오해
2. 삶의 방향
인간은 사회적 존재다
바보가 아닌 천재가 되자
3. 언어는 결국 극복해야 하는 일
나는 외국인이 되기도 한다
배려는 다름에서 온다
5장 같지만 다른 이유
1. 소통하기 그리고 이해하기
건청인과 어떻게 소통하는가?
장애인이 편한 사회가 모두를 편하게 한다
같은 사람이어도 생각이 다르다
자존심과 자존감
2. 정부나 지자체의 도움이 필요하다
센터
동아리 모임
종교
3.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마음의 상처
스트레스는 사람을 힘들게 한다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
존재 자체로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4. 나를 사랑하자
나를 사랑하기
가족과 소통하기
가족이 바라보는 청각장애의 나
나는 무가치하지 않다
5. 스스로 배우고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정체성 찾아주기
가정에서 배우기
본당 신부님의 조언
소리 대신 눈과 마음으로
6. 청각장애인이 보내는 메시지
건청인
청각장애인
농인
우리들은 소중하다
6장 삶은 선택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
1.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 아직도 뛰고 있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
퀼트는 직업이자 취미
청각장애인의 자율성
목표는 바뀔 수 있다
2. 친구들에게 전하는 마음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