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이봉직 동시집 『우리들의 화해법』에는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들이 많이 실려 있다. 그것은 시인이 자연이나 가족, 친구들의 모습을 그리면서 그 안에 담긴 새로운 의미를 독자들에게 충실히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수법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시적 화자가 자연과 대상을 만나면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이야기를 꺼내어 독자들의 관심을 끌면서 독자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저 도자기는/금가고 깨지지 않고/1,300도의 불을 견디고 나서/세상에 나온 것이야.//그러니 보물이 되고/국보가 된 거지.//36도 여름/방학 숙제 몇 개를 견디지 못해/쓰러지려 하고 있는/나는… 나중에….
―「도자기」 전문
딱따구리는/알을 품을 때/제 가슴팍 털을/모두 뽑아버린대.//알들이 더 따뜻해지라고/맨살 핏줄로 품는대.//그래서 엄마는/아예 나를/열 달 동안이나/배 속에 넣고 다니셨나 봐.
―「딱따구리 엄마」 전문
시인은 위 작품들에서 시의 소재가 되는 대상의 특징과 속성을 먼저 알려 준 뒤, 그를 통해서 그 의미를 생각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산문적인 진술로 일관하면서도 큰 울림을 전해 주는 것은 그 내용이 독자들에게 공감을 주면서 자신을 성찰하고 반성케 하기 때문이다. 「도자기」와 「딱따구리 엄마」는 그런 특징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높은 습관」과 「숲 속의 건망증」도 앞서 지적한 진술 방법을 택하고 있는데, 이 시들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자연의 베풂과 나눔에 대한 시적 성찰이다.
상수리나무와 떡갈나무는/ 들녘에 풍년이 든 해에는/열매를 조금만 맺고/흉년이 오면/열매를 많이 맺는 습관이 있대.//도토리랑 상수리 주워 먹고/배고픈 동물들 겨울나라고./도토리묵 만들어/사람들도 굶지 말라고.//나무가 사람보다 높은/습관을 가지고 있다니!//산모퉁이에 서 있는/상수리나무와 떡갈나무/새삼 존경스러워/가만히 올려다본다.
―「높은 습관」 전문
어떤 물건이나 약속을/잊어버리는 건망증 알지요?/그런데 건망증이 꼭/나쁜 것만은 아닌가 봐요./다람쥐와 청설모와 새들은/잣, 상수리, 밤을/숲 속에 꼭꼭 숨겨 놓고는/그중 반쯤 찾아 먹고/나머지는 잊고 만대요./깜빡 잊혀진 열매들이/여기저기 싹을 틔워/다시 잣나무가 되고/상수리나무 되고/밤나무가 되는 거래요./다람쥐와 청설모, 새들에게/건망증이 없었더라면/지금 이 숲이 어떻게/새싹을 틔우고 있겠어요./아름드리 나무들이/어떻게 시작되었겠어요.
―「숲 속의 건망증」 전문
‘도토리는 들을 보고 열린다’는 옛말이 있다. 들에 풍년이 든 해에는 열매가 많이 열리지 않지만, 흉년이 오면 열매가 많이 열린다는 것이다. 「높은 습관」에서 시적 화자는 이 옛말을 상기시키면서 ‘나무가 사람보다 높은 습관을 가지고 있다’며 상수리나무와 떡갈나무를 새삼 존경의 눈길로 올려다본다.
이 시는 겨울을 나는 배고픈 동물들과, 흉년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열매를 내주는 나무들의 베풂과 나눔을 높은 습관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자연이 우리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값없이 베풀고 나누어 주었는지 생각하게 해 준다. 그 고마움을 잊지 말고 서로 베풂과 나눔의 삶을 살라는 메시지가 살아 있는 시이다.
「숲 속의 건망증」에서도 시인은 이야기꾼 기질을 발휘하여 다람쥐와 청설모와 새들의 특별한 건망증에 대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이들 동물들은 잣, 상수리, 밤을 숲 속에 꼭꼭 숨겨 놓고는, 그중 반쯤 찾아먹고 나머지는 잊고 만다고 밝힌다. 심한 건망증 때문이다. 하지만 건망증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어서, 깜빡 잊혀진 열매들이 싹을 틔워 나무들이 된다는 것이다.
이 작품이 전하는 교훈도 베풂과 나눔의 소중함이다. 숲 속의 나무들이 동물들에게 열매를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기에 숲의 생태계가 살아나고 모든 생명체가 공생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동물의 건망증 때문에 잊혀진 열매들이 싹을 틔웠다는 이야기는, ‘강물이 바다로 되돌아가듯, 베풀어진 물건은 준 자에게 되돌아간다.’는 중국 속담을 떠올리게 한다.
자연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매우 날카롭다. 나무들이 우거진 숲에서 베풂과 나눔의 의미를 읽어내는가 하면, 동물들의 생태를 통해 인간들의 탐욕과 이기적인 행위를 반성케 한다.
가을 탱자들이/황금알처럼 열렸다./하나 갖고 싶어져/탱자나무 울타리에/손을 넣어 본다./탱자 가시 달려들어/손등을 찔러댄다./황금알들을 본체만체하는/참새들은/가시덤불 속을/훨훨/날아다닌다.
―「훨훨」 전문
아프리카 누 떼의/우두머리 늙은 누는/풀밭을 찾아 강을 건널 때/강 속에 우글거리는 악어를 향해/제 몸을 던진대./우두머리 늙은 누에게/악어들이 달려드는 사이/한 무리 누 떼가 가을 건너고, 또 다른 우두머리 누가 앞장서서/악어들에게 걸어가면/다시 한 무리 누 떼가 강을 건넌대./그렇게 수만 마리의 누 떼가/다 건널 때까지.//이 모습 젊은 누들이 잊지 않고/언젠가 다시 강을 건널 때/두려움 없이 악어에게 몸을 던지는 거래.
―「우두머리 늙은 누」 전문
「훨훨」에서는 오늘날 황금만능주의 풍토를 빗대어 보여 준다. 물질을 추구하다 보면 이를 손에 넣기는커녕 상처받기 십상이다. 그러나 ‘황금알을 본체만체하는 참새’들처럼 물질에 초연한 삶을 살아간다면 가시덤불 속일지라도 훨훨 날아다니며 떳떳하고 당당한 모습을 보이지 않겠는가.
「우두머리 늙은 누」는 우리 시대의 지도자라면 어떻게 행동하고 처신해야 하는지 똑똑히 보여 주고 있다. 아프리카 누 떼의 우두머리 늙은 누처럼 무리를 살리기 위해 악어를 향해 제 몸을 던지는 희생과 이타적인 삶이다. 지난 4월 세월호 침몰 사고 때 선장과 선원들은 위기에 처한 승객들을 버려두고 배에서 먼저 탈출하여 그들에 대한 비난 여론이 하늘을 찔렀었다. 세월호 선장이 이 작품 속 우두머리 늙은 누 같았다면 그런 대형 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동시집에서 적지 않은 비중으로 다루어진 것은 가족에 대한 사랑을 그린 작품들이다. 엄마ㆍ아빠ㆍ할머니 등을 등장시켜 가족의 의미를 발견하고 그 소중함을 깨닫게 해 준다. 그런데 여기서 중점적으로 그려내는 가족은 다름 아닌 엄마다. 「맞벌이 엄마」, 「엄마」, 「효자손」, 「감자」, 「딱따구리 엄마」 등의 작품에서 엄마는 시적 화자에게 애틋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울다 잠든/밤/내가 몇 번이나 뒤척였는지/알고 있는/세상에/단 한 사람.
―「엄마」 전문
출근하는 엄마를/와락/안아 보았다.//멈칫하는 엄마 몸이/가만히 떨려온다.//왜 이래 다 큰 녀석이,/목소리/젖어 있다.
―「맞벌이 엄마」 전문
시적 화자에게 엄마의 존재는 무엇일까. 길게 설명할 것 없이 「엄마」에서 ‘울다 잠든/밤/내가 몇 번이나 뒤척였는지/알고 있는/세상에/단 한 사람.’이라는 표현이 화자에게 엄마가 어떤 존재이고, 엄마와 내가 어떤 관계인지 극명하게 보여 준다. 엄마의 무한대 사랑을 몇 줄의 짧은 시로 명쾌하게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맞벌이 엄마」는 엄마와 아들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어느 날 아침 ‘나’는 출근하는 엄마를 와락 안는다. 아들은 엄마와 헤어져 온종일 혼자 지내는 것이 싫고, 엄마는 아들을 두고 출근하는 것이 미안하다. 여느 맞벌이 가정이나 아침마다 겪는 일이겠지만, 출근 장면을 포착하여 아들과 엄마의 남다른 감정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