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조은주 교수의 《세계에 속한다는 것》은 어른들의 공허한 ‘꿈 담론’을 비판하고, 입시에 가려진 청소년들의 진짜 고민과 돌봄의 부재를 공론장으로 끌어낸다. 저자는 20년간의 현장연구와 심층 인터뷰를 통해 아이들의 다양한 삶의 양상을 사회학적 기록으로 복원했다.
미래를 불안해하며 성인이 된 후의 삶을 회피하거나 두려워하는 모습, 시간을 미래에 투자하지 않고 현재의 만족감을 위해서 사용하는 태도, “공부란 실력에 따라 학생들을 분류하기 위한 도구”라는 질서를 간파하는 모습 등이 인상적이다. 우리 사회는 아이들의 고민을 입시 문제로 국한해 왜곡해 왔다. 저자는 입시경쟁의 과열이 특정 지역, 특정 집단에 국한된 문제임을 지적한다. 나아가 기본적인 학습과 돌봄이 학교의 본질적인 역할임을 역설한다.
이 책은 피에르 부르디외(1930~2002)의 일루지오, 장, 자본, 아비튀스 등의 개념을 빌려 자본 격차가 학교에서 개인의 무능력으로 둔갑하는 상징폭력을 폭로한다. 구조적 장벽을 간파하고 학업적 열망을 잃은 아이들이 미래에 대한 노력을 거부하고 현재에 머무는 것은 무기력이 아닌 합리적인 생존 전략이다. 개인화가 가속화하고 가족이 해체되어 기준으로 삼을 생애 시나리오가 부재한 현대의 속성을 마주한 아이들은 꿈을 꾸며 스스로 삶의 주인공이 되라고 강요받는다. 이는 특정 계층만의 문제가 아니며, 평범한 삶이나 정상가족의 유지가 어려워진 수많은 아이들의 보편적 성인기 이행의 위기다.
교사들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마주한 이 학교실패의 구조 앞에서, 이 책은 능력주의가 만연한 한국 사회를 향해 아이들의 서사에 온전히 귀 기울이는 ‘진정한 어른의 자리’를 촉구한다. 결국 아이들의 위기를 해결하는 길은 사회로부터 소외된 아이들의 삶을 이야기의 층위로 끌어올려 우리 모두가 깊이 공감하는 것뿐이다.
출판사 리뷰
어른이 되기를 불안해하는 아이들의 목소리
꿈을 꾸라는 부조리한 어른들의 말아이들에게 꿈을 가지라는 말은 왜 공허한가. 그것은 아이들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기도 벅차기 때문이다. 미래를 위해 현재의 욕망을 포기하고 장기적인 목표 달성을 도모하기에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집이 가난하거나 부모가 돌봄을 수행하지 못해서만이 아니다. 가정과 학교에서 학습에 대한 자극을 받지 못해서라거나 또래로부터 소외되었다는 것도 이 현상을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개인화가 급속히 전개되면서 사람들은 자율성을 얻는 것처럼 보였지만 모든 상황을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아이들은 그 최전선에 있다. 한국의 교육제도는 부모에게 “케어된 아이들”을 대상으로 삼아 경제자본과 문화자본을 갖춘 청소년에게 초점을 맞춘다. 이는 입시제도의 틀로만 아이들을 판단하려는 시각과 무관하지 않다. 불완전고용이 확산하고 학업과 취업, 결혼과 출산, 생계 부양과 자녀 양육 등 “표준화된 생애서사”가 해체되면서 청소년들은 부모 세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 직면했다. 여러 계층의 아이들이 한결같이, 평범하게 살고 싶지만 그것이 어렵다고 말한다.
생애 과정의 준거가 사라져 가는 상황에서 우리 사회는 아이들에게 스스로 꿈을 찾고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라고 말한다. 교육제도와 학교실패 등의 구조적 모순에서 눈을 돌린 채, 꿈 담론을 강조하며 개인(아이들)에게 각자도생을 요구하는 것이다. 입시제도의 공정성에만 초점을 맞추는 어른들의 렌즈는 입시와는 관련 없는 삶을 살고 노동의 현장에 내몰리며 학교에서 겨우 돌봄의 빛을 쬐는 대다수의 아이들을 지워버린다. 중산층의 정상가족을 상정한 교육제도 또한 아이들의 동력을 앗아간다. 다수의 아이들이 그저 학교에 와서 “수업 시간을 견디며” 끊임없이 잠(지루함)과 싸울 뿐이다.
이 책은 입시라는 장막을 걷어내고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더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기본적인 학습과 돌봄이라고 말한다. 20여 년간 한국의 교육현장은 진영을 넘어 청소년에게 꿈을 가지라고 제도적으로 압박해 왔지만, 정작 아이들의 일상에 필요한 생존과 돌봄의 조건을 채워주는 데는 만성적인 공백을 드러냈다. 저자는 이러한 환경으로 인해 학교 안팎에서 소외되었던 평범한 아이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그들의 일상을 사회학적 기록으로 복원함으로써, 그 삶을 단순한 통계 자료가 아닌 ‘공감의 층위’로 끌어올린다. 18세기 서간체 소설은 편지 형식을 빌려 여러 계층의 내면을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도록 했다. 이는 인류가 보편적 인권 의식을 확장해 나가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 책은 여기에 착안하여 청소년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도모하는 길은, 한국 사회에서 이야기로서 지분이 가장 적은 청소년들의 서사에 온전히 귀를 기울이는 것이라 말한다.
작가 은유가 추천사에서 밝혔듯,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속담이 진리로 행세하는 이유는 낙이 온 사람이 자기 경험을 서사화할 줄 알았고,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은유는 저자가 하루하루를 견디는 아이들에 주목하여 꿈이라는 일대기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소수의 특권인지 날카롭게 분석함을 짚는다. 입시 문제로 축소된 교육 문제를 꿈의 불평등 차원으로 끌어올리며, 자기 서사라는 인간 고유의 권리가 아이들에게서 박탈되어 있음을 통찰해 낸다는 것이다.
꿈을 꾸지 않는 합리적 선택을 하는 아이들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근대의 약속은 왜 공허한가저자는 지난 20년간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아이들을 직접 만나 현장연구를 수행했다. 수많은 청소년과의 심층 인터뷰는 한국 사회의 공고한 구조적 모순을 드러낸다. 피에르 부르디외의 사회학적 개념을 빌려 오면, 오늘날 한국의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계층에 따라 상이한 문화자본과 경제자본의 격차를 고스란히 체화하며 자라난다. 그러나 지배 계급의 취향과 습관이 배어 있는 학교라는 공간은 자본의 결핍을 자연스럽게 학업적 무능력이나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둔갑시킨다. 저자는 이처럼 물리적 강제력 없이도 지배 질서를 자발적으로 수용하게 만드는 구조를 부르디외의 ‘상징폭력’이라는 개념으로 포착하고, 아이들이 마주한 꿈과 좌절 그리고 이를 야기하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다. 상징폭력의 주요 기제 중 하나인 능력주의는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기조이며 이는 결국 사회이동의 제약으로 귀결된다. 학교라는 장(Field)에 자동 편입되었으나 학력자본에 대한 열망, 즉 일루지오(Illusio)를 품지 못한 대다수 아이들은 형식적으로만 성원일 뿐 실질적으로는 ‘내부의 외부인’이자 ‘비존재인 존재’로 전락하여 좌절하게 된다.
실제로 자본을 갖추고 일루지오를 형성한 아이들에게 불안이란 “잘할 수 있을까”라며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학업에 대한 압박을 견디는 ‘선수의 긴장감’에 가깝다. 반면 자본의 격차 속에서 구조적 장벽을 실감한 아이들이 느끼는 불안은 아무 관련도 없는 존재가 경기장 한복판에 내던져졌을 때의 당혹감이자 막막함이다. 전국적인 서열의 장벽을 간파한 한 아이는 기가 죽고, 어떤 아이는 차라리 “1년 꿇고 싶다”며 한숨을 쉰다. 이처럼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대물림된 구조를 넘을 수 없음을 직시한 청소년들은 자연스럽게 미래를 위해 현재의 시간을 저축하거나 투자하기를 거부한다. 《사람, 장소, 환대》를 쓴 김현경은 추천사에서 ‘꿈이 있다’고 인터뷰한 아이들이 실제로는 목표도 의욕도 없음을 지적한다. 이러한 무기력에는 현실에 대한 예리한 간파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진출하더라도 그곳에 아이들을 위한 자리는 없다. 이 일 저 일을 전전하면서 시간을 빵과 바꿀 뿐, 세계에 속한다는 느낌, ‘장’에 들어왔다는 소속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아이들은 결국 거창한 미래의 꿈 대신 찰나적이고 소소한 기쁨에 머무는 쪽을 선택하며 시간을 유예한다. 저자가 20년간 쌓아온 인터뷰 기록은 아이들의 무기력이 개인의 심리적 일탈이 아니라, 불평등한 자본 구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청소년들이 선택한 지극히 합리적이고도 슬픈 생존 전략임을 드러낸다.
“이 세계는 아이들에게
어떤 종류의 명예도 허락한 적이 없다”조은주 교수는 청소년들의 고통과 불안이 결코 특정 소외 계층이나 가난한 아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을 통찰해 낸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마주한 진짜 위기가 생애 과정의 탈표준화에 따른 보편적 성인기 이행의 전면적 붕괴라고 진단하는 것이다. 교육 기간의 연장과 불안정한 노동시장 속에서 제프리 아넷(1958~)이 말한 ‘성인진입기’의 불확실성은 가난하든 가난하지 않든, 평범하든 평범하지 않든 상관없이 모든 아이의 삶을 덮쳤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해서 돈을 벌고, 자신만의 가정을 꾸리는 일련의 ‘평범한 삶’ 자체가 이제는 도달하기 어려운 과업이 되었기 때문이다. 찰스 테일러(1931~)의 지적처럼 인간은 ‘좋은 삶’에 대한 방향 감각 없이는 스스로를 정의할 수 없으나, 오늘날 우리 사회는 무엇이 괜찮은 삶인지를 제시하는 사회적 규범의 기준마저 흔들리고 있다.
특히 저자는 근대 사회가 성취한 ‘존엄’의 관념이 어떻게 실제 삶에서 무력하고 추상적인 선언(테니스 코트의 평등)으로 전락했는지 명예(Honor)라는 개념을 통해 폭로한다. 과거의 명예는 사회적 역할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공동체 내의 존중과 유대를 만들어냈지만, 현대 사회는 본질적 인간의 존엄만을 강조할 뿐 평범한 이들이 수행하는 실제 노동과 사회적 역할로는 명예를 확장하지 못했다. 아이들은 모든 인간이 존엄하다고 배우지만, 자신들이 미래에 마주할 불안정한 사회적·제도적 역할 속에서는 아무런 자기가치감도 느낄 수 없다는 엄혹한 진실을 이미 알고 있다. 학교를 떠나 도달하게 될 일자리에서 긍지를 품지 못하는 현실, 즉 이 사회가 아이들에게 그 어떤 종류의 명예도 허락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이들의 불안과 두려움의 근본적 원인이다.
이는 명백히 학교실패의 결정적인 증거다. 학교 현장에서 헌신하는 교사들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현장의 교사들은 무너지는 아이들을 붙잡고 기본적인 학습과 돌봄을 제공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지만, 거대한 자본주의의 불평등과 불안정한 노동시장이 구축한 벽 앞에서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구성원들에게 ‘이 세계에 안정적으로 속해 있다’는 소속감과 가치를 심어주는 데 체계적으로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을 학교의 현실로 뼈아프게 보여준다. 모든 아이가 길을 잃어버린 시대, 이 책은 꿈을 가지라고 말하는 어른들에게 어떤 아이들은 왜 꿈조차 갖기 어려운지 생각해 보라고 말한다.

인간은 어딘가에 속해서 살아가는 존재다. 그러나 어딘가에 속해서 살아간다는 것은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직업과 관계와 미래를 길게 내다보기 힘들어진 ‘새로운 자본주의’의 시대에, 자신의 자리를 안정적으로 갖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있다. 이 책은 평범한 아이들이 어른이 되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우리 사회가 구성원들에게 ‘속해 있다’고 느끼게 하는 데 얼마나 체계적으로 실패하고 있는가의 문제를 다룬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대개의 아이들은 자신이 어딘가에 온전히 속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고 느끼고 익히며 자라난다. 이것은 불평등에 관한 무수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은 문제다.
_ 들어가며
구세계에 도착한 신참자들은 이 세계에 속하기 위해, 이 세계의 질서와 원리를 저마다 보고 듣고 학습한다. 그리고 이 세계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가지기 위해 나름의 방식으로 애를 쓰며 살아간다.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떤 세계에 속한다는 것, 그리고 그 세계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_ 학교
작가 소개
지은이 : 조은주
전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경제와사회》 편집위원장, 한국사회사학회 부회장, 비판사회학회 이사, 한국여성학회 대외협력위원장을 맡고 있다. 생산과 재생산의 정치에 주목하며, 통치성의 맥락에서 가족, 인구, 교육을 연구한다. 인구 개념의 역사적 부상과 국가형성 및 자본주의 산업화의 주체화 과정을 탐구한 저서 《가족과 통치: 인구는 어떻게 정치의 문제가 되었나》(2018)로 한국사회학회 저서상을, 한국의 중등교육에서 나타나는 불평등의 차원을 중층적으로 조망한 〈학교실패와 상징폭력〉(2024)으로 한국사회학회 논문상을 수상했다. 그 외 저서로 《비판사회이론》(공저, 2022), 《경제학들의 귀환》(공저, 2022)이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 〈서사화되지 않는 꿈: 개인화와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의 삶〉(2022), 〈비판의 두 차원과 메타비판의 실패〉(2022), 〈저출산과 젠더: 출산력 개념을 재도입하기〉 (2025), “Nationalism, Mourning, and Melancholia in Postcolonial Korea and Japan”(공저, 2021) 등이 있다.
목차
들어가며
1장 꿈
2장 학교
3장 그 가족
4장 분류의 질서
5장 좋은 삶
6장 세계에 속한다는 것
보론—이야기
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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