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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외주
생각하지 않는 인간의 출현
어크로스 | 부모님 | 2026.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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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매끄러운 문장 사이로, 어느 날부터 학생의 얼굴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연세대 화공생명공학과 홍진기 교수가 강의실에서 마주한 이 서늘한 감각은 이 책의 출발점이자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직면한 질문이다.

학생들의 보고서는 예전보다 훨씬 단단해졌고, 문장은 놀라울 만큼 매끄러워졌다. 그러나 글을 읽어 내려갈수록 묘한 이질감이 남았다. 글 속에 있어야 할 고민과 망설임, 길을 잃었다가 다시 생각을 붙잡은 흔적, 즉 한 사람이 세상을 통과하는 고유한 방식이 점점 흐릿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수가 글의 한 대목을 가리키며 “이 부분은 왜 이렇게 생각했나요?”라고 질문을 던지면 학생은 당황한 채 멈춰 선다. 자신이 쓴 문장인데도 그 결론까지 단 한 번도 걸어가 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말이다.

AI 시대, 쏟아지는 책들은 묻는다. 어떤 직업이 사라질까? 무엇을 더 배워야 할까? AI를 어떻게 더 잘 활용할 수 있을까? 그러나 홍진기 교수의 질문은 완전히 다른 궤적을 그린다. “왜 우리는 더 똑똑해졌는데 더 불안해졌는가. 정보는 넘치는데 왜 판단은 흔들리는가. 왜 같은 AI를 써도 어떤 사람은 더 깊어지고, 어떤 사람은 점점 얕아지는가.”

저자는 MIT 연구실과 CES 산업 현장, 그리고 연세대 강의실을 오가며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지금 우리 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가장 조용하고도 위험한 변화를 포착한다. 바로 ‘사고외주(思考外注)’다.

  출판사 리뷰

‘똑똑한 무능함’의 탄생
오늘날 우리는 단순히 글쓰기나 자료 정리를 맡기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자라나는 과정 자체를 조금씩 AI에게 넘기고 있다. 자료를 의심하고, 계산을 다시 해보고, 답을 몰라 오래 붙잡고 씨름하는 시간들. 겉으로는 비효율처럼 보이지만 문장을 수차례 고치던 고독하고 비효율적이며 불편한 과정 속에서 인간의 판단력과 현장 감각은 자란다. 그러나 그 과정을 건너뛴 채 결론만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는 겉으로는 유능해 보여도 정작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저자는 이를 ‘똑똑한 무능함’이라고 부른다.
저자는 과거 박사 과정 시절 발표 자료 한 편을 위해 2주간 밤을 새우며 헤맸던 경험을 고백하며 이처럼 고독하고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시간이 사실은 뇌의 신경망을 단단하게 다지고 자기만의 사유의 길을 내는 과정이었다고 강조한다. 반면 AI가 주는 빠른 정답은 고통스럽고도 귀중한 ‘성장의 골든타임’을 앗아간다고 꼬집는다.

AI는 세상을 평등하게 만들지 않는다
누구나 비슷한 AI 도구를 사용하는 시대, 사람들의 출발선은 평평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전기가 처음 등장했을 때 기술적 혁신에서 점차 일상의 당연한 배경이 되었듯, AI 역시 이미 전제된 ‘조건’이자 ‘기본값’이 되었다. 저자는 기본 능력이 1.9인 사람과 2.0인 사람이 AI라는 증폭기를 만났을 때 벌어지는 격차를 직관적인 수치 비유로 경고한다. 처음에는 0.1에 불과했던 미미한 차이가 AI의 10배, 100배 증폭 효과와 결합하고 시간이 누적될수록 그 간극은 613.1 대 1024처럼 되돌릴 수 없을 만큼 거대해진다.
여기서 차이를 만드는 것은 AI를 쓰는 방식에 있다. AI가 내놓은 결과 앞에서 전제를 의심하고 빠진 변수를 물으며 한 번 높은 수준의 사고 과정을 직접 통과한 사람은 그 경험 자체가 다음 문제의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 결론을 주도하고 해석하는 위치로 이동한다. 반면 AI가 건네준 결론의 모양에 안주해 빠르게 받아 적기만 한 사람은 “이제 AI 없이는 한 줄도 못 쓰겠다”라며 사유의 주도권을 완전히 박탈당한 채 결과를 전달받는 위치에 영원히 머물게 된다.

그 질문 앞에서 AI는 왜 대답을 망설였을까
그렇다면 AI는 무얼 잘하고 못할까. 인간의 자리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실제로 AI는 명확한 목표와 충분한 데이터가 주어진 최적화 문제에서는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하다. 그러나 중요한 결정일수록 AI는 오히려 머뭇거린다. 무엇을 최적화해야 하는지부터 불분명할 때, 선택의 결과가 몇 년 뒤에야 드러나는 인생의 문제 앞에서, 혹은 효율보다 정의와 책임이 더 중요한 가치 충돌의 순간에는 통계적 계산만으로 결론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자율주행차가 누구를 우선 보호해야 하는지, 의료 AI가 통계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치료와 한 사람의 삶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와 같은 문제에는 정답보다 책임이 먼저 요구된다. 즉, AI는 계산은 할 수 있지만 그 결과를 자신의 이름으로 책임질 수는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인간의 주도권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능력이 바로 ‘네거티브 케이퍼빌리티(Negative Capability; 부정적 수용 능력)’다. 이는 즉각적인 정답을 찾으려 서두르지 않고, 불확실성과 의심의 상태를 잠시 유지하며 의도적으로 여지를 남겨두는 힘이다. 이 멈춤의 시간 동안 인간은 계산을 넘어 ‘정체성(나는 누구인가), 욕망(무엇을 원하는가), 윤리(무엇을 책임질 것인가)’라는 인간다움의 삼각축을 가동해 판단하고, 선택하며, 그 결과를 자신의 이름으로 끝까지 감당하게 된다.

외주할 수 없는 나를 만드는 무기: 경험과 논리
AI 기술이 일상의 배경이 된 시대, 결국 인간에게 남는 경쟁력은 더 많은 정보를 아는 능력이 아니라 직접 통과한 경험과 그것을 연결하는 논리다. 저자는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바버라 매클린톡이 30년 넘게 옥수수밭에서 관찰을 반복하며 기존 학설을 뒤집은 사례를 소개한다. AI가 대신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런 ‘몸으로 축적한 경험’이다. 수없이 실패하고 의심하며 얻은 경험은 새로운 질문을 만들고, 그 질문은 누구도 대신 만들어줄 수 없는 통찰로 이어진다.
결국 AI 시대를 가르는 것은 정보를 얼마나 많이 모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질문할 줄 아느냐다. AI는 이미 주어진 문제를 빠르게 풀지만, 어떤 문제를 먼저 물어야 하는지는 결정하지 못한다. 저자는 훌륭한 프롬프트 역시 결국 훌륭한 질문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질문을 하나의 방향으로 엮는 힘이 바로 ‘논리’다. 파편처럼 흩어진 정보를 연결해 하나의 구조로 만드는 능력, 전제를 점검하고 원인과 결과를 구분하는 사고의 틀이야말로 AI라는 강력한 엔진을 움직이는 인간만의 핸들이다. 저자는 앞으로의 경쟁력은 AI를 얼마나 잘 사용하는지가 아니라 AI를 어떤 질문과 어떤 논리로 이끌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당신은 결과에 자기 이름을 붙일 수 있는가”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책임’과 ‘행복’이라는 묵직한 주제로 향한다. ‘AI의 대부’ 제프리 힌턴이 구글을 떠나 자기 이름으로 AI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일화를 통해, 인간은 결국 자신이 내린 선택의 누적으로 증명됨을 보여준다. 그리고 질문한다. 당신은 당신이 내놓은 결과에 자신의 이름을 떳떳하게 붙일 수 있는가? 저자는 기술이 인간의 자리를 위협할지라도, 나만의 질서를 세우고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삶을 지켜내는 용기야말로 인간을 지탱하는 진정한 힘이라고 말한다. 《사고외주》는 기술 비평을 넘어, 생각의 위기를 겪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건네는 깊은 성찰의 기록이다. 편리함에 취해 결정을 시스템에 넘기려는 순간, 이 책은 잠시 멈춰 서서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지적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문체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한 사람이 세상을 통과하고 해석하는 고유한 방식이자 그 사람만의 지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그 지문들이 흐릿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른 학생들의 글에서도 비슷한 온도가 느껴졌습니다. 틀린 곳은 없지만 누군가의 목소리라고 느끼기 어려운 문장, 세련되게 잘 썼지만 ‘사람’이 그 자리에 존재한다는 감각이 사라진 글들. 보고서는 분명 더 좋아졌는데, 그 보고서를 쓴 ‘사람’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습니다. (1장 어느 날부터 학생들의 보고서에서 사람이 사라졌다)

우리는 AI에게 번거로운 ‘일’을 맡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내 생각이 자라나야 할 가장 고통스럽고도 귀중한 구간을 조금씩 밖으로 넘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자료를 찾는 수고, 상충하는 정보를 비교하는 지루함, 숫자를 직접 계산하며 느껴보는 불편함, 문장을 수차례 고치며 논리를 다듬는 고독한 시간. 겉으로 보면 비효율적이고 버려지는 시간 같지만 인간을 자라게 하는 거의 모든 것은 대개 이런 비효율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1장 어느 날부터 학생들의 보고서에서 사람이 사라졌다)

누구나 비슷한 AI를 쓰고, 같은 검색 도구를 사용하며, 거의 같은 속도로 답을 얻습니다. 사람이 해야 할 일을 AI 도구가 대신 해주니, 앞으로는 사람의 능력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누가 일을 하든 AI 도구를 이용하면 유사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지기도 합니다. 실제로 어려운 일을 수행하거나 고민할 때 출발선이 이전보다 훨씬 평평해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 결과는 평평하지 않습니다. 같은 AI 도구를 쓰는데도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 사이의 차이는 갈수록 더 또렷해집니다. 그리고 인간의 본래 능력이 더욱 중요하게 드러납니다. (2장 AI 시대,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들)


  작가 소개

지은이 : 홍진기
서울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연구했다. 경희대 생명과학대학 교수, 중앙대 공과대학 교수를 거쳐 현재 연세대 화공생명공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항노화 라이프케어 기업 바른바이오의 CEO를 맡고 있다. 기술이 인간의 능력을 어떻게 확장하고, 동시에 무엇을 약화시키는지에 오랫동안 관심을 두고 관찰해왔다.

  목차

1장 어느 날부터 학생들의 보고서에서 사람이 사라졌다
‘똑똑한 무능함’의 탄생
사고외주가 앗아가는 것들
성장의 골든타임
AI를 성장의 도구로 삼고 싶다면

2장 AI 시대,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들
AI는 정말 세상을 평등하게 만들까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감각
격차는 어디서 만들어지는가

3장 AI 앞에서 생각의 주도권을 지키는 법
AI는 왜 그 질문 앞에서 대답을 망설였을까
인간다움의 증거: 정체성, 욕망, 윤리
판단의 장치: 무엇을 끝까지 책임질 것인가

4장 외주할 수 없는 나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경험은 어떻게 뇌를 바꾸는가
질문은 이해의 경계에서 태어난다
당신의 프롬프트는 어떤 질문을 담고 있는가
시야의 차이가 판단의 차이로 이어진다

5장 AI라는 강력한 엔진을 조종하는 핸들, 논리
동기화된 세계에 필수적인 생존의 기술
코딩의 언어 vs 수학과 물리학의 언어
이건 내가 선택한 걸까, AI에게 떠밀린 걸까

6장 당신은 결과에 자기 이름을 붙일 수 있는가
사람이기 때문에 멈추고 헤매는 시간
결정과 책임을 감당할 용기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에필로그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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