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한흑구 수필 낭독집. 한흑구 선생님께서 생전에 발표한 100여 편의 수필 중에서 「보리」, 「비」(비가 옵니다), 「나무」, 「눈」 등 4편을 엄선 수록했다. 작품발표를 연대순으로 보면 「나무」가 1947년, 「보리」와 「눈」이 1955년, 「비」가 1956년으로 선생님께서 가장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신 불혹의 나이 40대에 쓴 작품들이다.
4편의 작품 모두 경수필인데다가 문장이 간결하고 힘이 있어 그냥 눈으로 읽기보다는 혼자서, 또는 여럿이서 문단을 나누어 소리 내어 낭독해보면 한결 친근하고 아름다운 우리말의 멋스러움에 가까이 다가갈 수도 있을 것이다. 수필을 한 문단씩 떼어내서 읽어보면 한 폭의 그림이 되고 서정시가 되어 우리들의 마음을 따듯하고 포근하게 감싸준다.
출판사 리뷰
한 문단씩 떼어내 읽어보면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 되고 시가 되는 서정미 넘치는 한흑구 수필문학의 에센스!
문학의 한 장르인 수필도 그림같이 아름답고 시처럼 간결하고 서정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생전에 한흑구 선생님의 생각이었습니다. 따라서 선생님의 수필을 한 문단씩 떼어내서 읽어보면 한 폭의 그림이 되고 서정시가 되어 우리들의 마음을 따듯하고 포근하게 감싸줍니다. 그만큼 선생님의 수필에는 번잡한 일상사에서 벗어난 건강한 자연미와 서릿발처럼 차갑고 깔끔한 절제미, 그러면서도 담백하고 청신한 생명력이 느껴져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마치 한 편의 산문시에서 보듯 간결한 문체와 개성미에 신성한 충격을 받게 됩니다.
1909년 평양에서 태어난 한흑구 선생님은 숭인상업학교와 보성전문학교를 거쳐 1929년 미국으로 건너가 순전히 고학으로 시카코의 노스파크대학에서 영문학을, 필라델피아의 템플대학에서 신문학을 공부하고 1934년에 귀국합니다. 귀국 후《조선문단》ㆍ《신인문학》ㆍ《백광》등의 잡지에 시, 소설, 수필, 평론 등을 발표하면서 미국문학 번역 소개에도 열성을 보입니다. 1939년‘흥사단 사건’으로 1년간 투옥되기도 했고, 해방 후에는 서울로 올라와 미군정청에 잠시 근무하기도 했지만, 1948년 포항으로 내려가 포항수산대학의 교수를 지내며 1979년 타계할 때까지 주로 주옥같은 수필을 써서『동해산문』(1971)과 『인생산문』(1974) 등 두 권의 수필집을 펴냅니다. 선생님의 수필은 시적 구성의 아름다움과 인생에 대한 담담한 관조로 한국수필문학이 창작문학의 본령으로 자리를 굳히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자연물을 소재로 서정적 문장과 산문시적 구성으로 중학교 국어교과서에도 실렸던 대표 수필《보리》등 4편 수록
“혼자서, 또는 여럿이서 우리 다함께 낭독해볼까요?”
이 ‘한흑구 수필 낭독집’에는 선생님께서 생전에 발표한 100여 편의 수필 중에서 [보리], [비](비가 옵니다), [나무], [눈] 등 4편을 엄선 수록했습니다. 작품발표를 연대순으로 보면 [나무]가 1947년, [보리]와 [눈]이 1955년, [비]가 1956년으로 선생님께서 가장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신 불혹의 나이 40대에 쓴 작품들입니다. 4편의 작품 모두 경수필인데다가 문장이 간결하고 힘이 있어 그냥 눈으로 읽기보다는 혼자서, 또는 여럿이서 문단을 나누어 소리 내어 낭독해보면 한결 친근하고 아름다운 우리말의 멋스러움에 가까이 다가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먼저 보리를 2인칭(너)으로 의인화하여 ‘강인한 생명력을 예찬’한 수필 [보리]는 지난 60,70년대에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려 청소년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특히 잘 가다듬어진 어휘와 압축된 문장으로 매서운 바람이 부는 겨울의 차가운 땅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가는 보리의 생명력을 보여주면서, 이것을 순박하지만 억세고 참을성 있게 살아가는 농부들의 삶과 노동의 가치에 견주어 묘사함으로써 이러한 수법은 한흑구 선생님이 아니면 다다를 수 없는 수필문학의 높고 독특한 경지를 확보하고 보리를 통한 삶의 교훈을 암시한 것으로 평가를 받았습니다.
작품 [비](비가 옵니다)는 끊임없이 내리는 빗줄기를 상징하듯 “비가 옵니다.”는 구절을 되풀이하면서 그 빗속에서 솟아나는 생명력을 노래했고, 작품 [나무] 역시 “나는 나무를 사랑한다.”는 구절을 글의 첫머리에서부터 무려 여덟 번에 걸쳐 반복하면서 인간의 삶에 빗대어 나무에 새겨진 의미를 되새겼습니다. 마지막 작품 [눈]에서는 모든 생명과 온 누리를 감싸며 내리는 눈을 커다란 이불로 비유하여 자연물이 지닌 덕성과 진실을 찬미하면서 인생의 의미를 관조하였습니다. 이처럼 한흑구 문학은 일상생활에서 겪은 체험, 또는 자연을 담담한 문체로 엮어냄으로써 인간 본연의 실체와 덕행을 암시했다는 것이 그 특색이라 할 것입니다.
작가 소개
저자 : 한흑구
1909년 음력 6월 19일 평양 하수구리에서 아버지 한승곤과 어머니 박승복의 1남 3녀 중 독자로 태어났다. 본명은 세광(世光)이다. 1928년에 숭인상업학교(崇仁商業學校)를 졸업하고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 상과에 입학했으며, 1929년에 도미해 시카고 노스파크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했다. 이때 캐나다 여행을 다녔으며, 1930년 ≪우라키≫에 ‘쉬카고 한셰광’이라는 이름으로 <그러한 봄은 또 왔는가>라는 시를, 이후 홍콩에서 발간되던 ≪대한민보≫에 시와 평론을 다수 발표하며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동광≫에 시 <밤 전차 안에서>, 번역시 <조선의 가을>, 단편 소설 <호텔 콘>, 평론 <미국 니그로 시인 연구> 등 다수를 발표했다. 1932년에는 필라델피아 템플대학 신문학과로 전학했다. 1934년에 모친이 위독해 귀국했는데, 이때 모친이 별세한다. 종합지 ≪대평양(大平壤)≫(1934)과 문예지 ≪백광(白光)≫을 창간 주재했으며, 동인지에 영시를 쓰고 필라델피아의 신문에 동양 시사평론을 기고했다. <어떤 젊은 예술가(藝術家)>(1935)·<사형제(四兄弟)>(1936) 등 소설을 여럿 창작하고 시작과 번역·평론을 병행했다. 1937년에는 이화여전 출신의 방정분과 결혼했으며, 이듬해 장남 동웅이 출생했다.1939년 흥사단 사건에 연루되어 1년 동안 투옥되었다. 이를 계기로 글을 거의 발표하지 않았으며, 시의 경우 1940년 6월 ≪시건설≫에 <동면>을 마지막으로 발표하게 된다. 1940년에는 차남인 동명이 출생했다. 광복 후 1945년 월남해 수필 창작에 주력하면서 1948년에 서울에서 포항으로 거처를 옮겼으며, 이 무렵부터 <최근의 미국 문단>(1947), <이마지스트의 시 운동>·<흑인 문학의 지위>(1948), <윌터 휫트맨론(論)>(1950) 등 미국 문학과 그에 대한 작가론으로서 평론을 발표했다. 흑인의 시를 번역하고 소개했다는 점에서 그의 평론 활동 역시 주목할 만하다. 수필로는 <하늘>·<바다>·<사랑>(1949), <눈>·<보리>(1955), <노년(老年)>(1965), <갈매기>(1969), <겨울 바다>·<석류(石榴)>(1971), <들 밖에 벼 향기 드높을 때>(1973), <흙>(1974) 등 100여 편이 있다.저서로는 선문사에서 출간한 ≪현대 미국 시선(現代美國詩選)≫(1949) 편역본이 있으며, 수필집 ≪동해 산문(東海散文)≫(1971)과 ≪인생 산문(人生散文)≫(1974)을 각각 일지사(一志社)에서 출간했다. 1958년부터 포항 수산초급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다가 1974년 같은 대학에서 정년 퇴임했다. 이후로도 꾸준히 수필을 발표했으며, 70세가 되던 해인 1979년 11월 7일에 타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