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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자 : 박봉우
1934년 전남 광주에서 5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광주서중 시절부터 이미 그는 ≪진달래≫ 동인을 결성했으며, 광주고등학교 재학 중에는 강태열, 윤삼하, 주명영과 4인 공동시집 ≪상록집≫을 간행한 바 있다. 이 무렵의 광주고등학교는 후에 한국 시단의 중심부를 차지하는 시인들을 다수 배출했는데, 1960∼1970년대 민중 서정시의 계보를 형성한 이성부, 조태일이 박봉우의 고교 후배다. 1952년 고교 2학년 때 ≪수험생(受驗生)≫에 작품을 발표해 미당 서정주와 다형 김현승의 주목을 받았던 박봉우는 당시 후배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들은 졸업 후에도 자주 교류하며 문학적 연대 의식을 이어 갔다. 고교 졸업 후 전남대 정치학과에 진학한 박봉우는 동인지 ≪영도≫에 참가해 강태열, 박성룡, 정현웅 등과 함께 본격적인 시 운동을 전개한다. 그러다가 195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휴전선>을 투고해 당선된다. 분단의 아픔과 그 극복 의지를 탁월하게 노래한 이 작품의 심사위원은 무애 양주동과 이산 김광섭이었다.데뷔 1년 후인 1957년 첫 시집 ≪휴전선≫을 정음사에서 간행했다. 이어서 1959년 둘째 시집 ≪겨울에도 피는 꽃나무≫를 백자사에서 발표하고, 1962년에는 셋째 시집 ≪사월의 화요일≫을 성문각에서 출판한다. 넷째 시집 ≪황지의 풀잎≫이 창작과비평사에서 나오기까지는 무려 14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또한 그의 다섯째이자 마지막 시집이 된 ≪딸의 손을 잡고≫는 그로부터 11년 후인 1987년 사사연에서 발간된다. 이처럼 시집 발표 시기의 편차가 심한 것은 박봉우 시인의 개인사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시인은 대학을 마치고 이십 대 중반의 나이에 전남일보에 입사한다. 이때 그는 ≪전남일보≫ 서울 특파원으로 재직 중이었는데, 취재차 전남 목포에 갔다가 그 지역의 폭력배들에게 끔찍한 구타 사고를 당하게 된다. 그 사건 이후 그는 정신과 치료를 지속적으로 받아야 할 형편에 놓인다. 덕분에 일상생활도 순조로울 수가 없었다. 김현승 시인의 주례
제1부
대법원 앞에서
서울 하야식
아리랑고개의 할미꽃
잠 못 이루는가
아버지 경제(經濟)
또 파고다대공원
창이 없는 집
경제학교수 휴강
백두산의 양심
푸른 계절
한 잔의 포도주
대지의 대특호활자
언제나 우리 땅
핑크빛 일기
남몰래 흐르는 눈물
밤 하늘
조각(彫刻)
귀로
사회부장
고구려인
황지(荒地)에 꽃핀
그 누가 살고 있는지
적십자
백두산
25시의 사랑
제2부
쓰레기 역사(歷史)
광화문에서
신세계 소금
반쪼각의 달
황지(荒地)의 풀잎
십자가를 해나 달에게
별 밭을 찾아
에즈라 파운드
한많은 조선
1969년의 코스모스
잡초나 뽑고
팔려가는 봄
설렁탕들
한 장의 신문을 들면서
어린이 UN총회
잔디밭 국부론(國富論)
진달래꽃
1960년대의 휴지통과 시론(詩論)
인왕산 건빵
지평에 던져진 꽃
보시오 독도
달밤의 혁명
황무사회(荒蕪社會)
쌩똥문학
해방 20년 (Ⅰ)
해방 20년 (Ⅱ)
사원우표
동해의 갈매기
밀주(密酒)
악법은 외면한다
이 세상에
가시오
또 한번 올 날은
외인부대
제3부
소묘·1
소묘·4
소묘·5
소묘·10
소묘·13
소묘·23
소묘·33
사수파(死守派)
도시의 무덤
겨울에도 피는 꽃나무
나비와 철조망
휴전선
화초들의 이야기
접동새
신세대
회원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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