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1920년, 광주 분원 사기장이의 아들 이창길은 조선 그릇에 관심과 조예가 깊은 일본인 타케야마의 눈에 들어 서생으로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서생은 구실이었을 뿐, 타케야마는 조선인 이창길을 통해 조선의 그릇을 도굴하려는 야심을 드러낸다.
그런 타케야마 밑에서 무덤을 파 그릇을 도굴하는 호리꾼 노릇을 하던 창길은 어느 새 조선 그릇에 대한 집착이 커져만 가고, 당해야만 하는 설움 속에서 그릇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끼게 된다. 결국 조선인들에게는 대접받지 못하고 일본인들에 의해 도굴당하는 수모를 겪어 온 조선 그릇의 삶 역시, 일본인들에게 핍박받으면서도 굽실거려야 했던 조선 사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아무도 지키지 않으려 하는 분원 가마자리. 평생을 사기장이로 살아온 한 노인의 허망한 삶도, 조선 그릇에 미친 한 일인(日人)과 그에 대한 열등감과 동질감으로 발버둥치는 한 조선 청년의 삶도 함께 희미해져 간다. 작품의 마지막으로 갈수록 인간의 욕망과 집착, 그리고 허무를 생각해보게 한다. 고 서기원의 소설을 청소년 눈높이에 맞게 다시 썼다. 이우범 화백의 그림이 더해졌다.너도 알다시피 우리 조선은 일본한테 나라와 강토를 뺏긴 지 오래다. 조선 사람은 천상 일인들 종노릇밖에 할 수가 없어. 허나, 일인들이 뺏지 못하는 것이 단 한 가지 있다. 조선의 아름다움이다. 도자기를 통해서 볼 수 있는 아름다움 말이다. 그건 도자기를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가릴 것 없이, 우리 조선 사람 전부 속에 흐르고 있는 피와 같은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조선의 그릇은 그걸 빚은 도공부터가 가면을 씌우려고 하지 않았다. 남의 눈을 의식해서 꾸민 것이 아니고, 사기장이의 고달픈 삶이 숙명처럼 맺힌 자신의 순박한 눈과 솜씨만을 믿었다. 만든 사람은 조선인 저부이지, 어느 하나의 도공이 아닌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지금까지 공들여 모아 놓은 수장품을 모조리 뺏기는 한이 있더라도 조선의 그릇을 알 수 있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걸로 족하다. 일인들한테 져서는 안 된다. 나라와 하늘과 땅과 모든 것을 뺏겼을망정 눈(眼)만은 내 것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 본문 중에서
작가 소개
저자 : 서기원
1930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상대를 중퇴했다. 1956년 '암사지도'로 등단했다. 같은 해에 기자 생활을 시작해 「서울신문」 사장, 한국방송공사(KBS) 사장을 지냈다. 지은 책으로 <이 성숙한 밤의 포옹>, <혁명>, <광화문>, <징비록>, <마록열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