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조선선비, 일상의 사물들에게 말을 걸다>는 조선 중종 때의 학자이자 관료였던 기준이 일상으로 늘 대하는 예순 가지 사물들에서 깨달은 단상(斷想)을 글로 옮긴 것이다. 기준이 기묘사화로 함경도 온성에 유배를 가서 위리안치(圍籬安置)되어 있던 시절, 실의에 빠진 마음의 평정을 되찾고 삶의 경계와 지침으로 삼기 위해 지은 글이다. 원제는 <육십명(六十銘)>이며, ‘예순 가지 사물에 새긴 글’이란 뜻이다.
기준의 <육십명>은 저자와 일상 사물들 간에 깊은 영혼의 교감을 거쳐서 탄생한 글이다. 유배지의 기준에게 <육십명>의 사물들은 그의 일상을 둘러싸고 있는 거의 모든 것이었으며, 가장 가까운 곳에서 늘 그의 삶과 함께하는 ‘분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게다가 가족도 벗도 그 누구도 만날 수 없는 현실에서 다정한 말동무가 되기도 하였으며,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그를 일깨우는 좋은 스승이 되기도 하였다. 그 사물은 모두 예순 가지이며, 각각의 사물들에는 이름도 함께 붙였으니, 그럼으로써 일상의 사물들은 ‘다른 것과는 차별되는 그만의 특별한 그 무엇’으로 재탄생하였다.
출판사 리뷰
“예순 가지 사물에 대한 단상(斷想)”
『조선선비, 일상의 사물들에게 말을 걸다』는, 조선 중종 때의 학자이자 관료였던 기준(奇遵, 1492?1521)이 일상으로 늘 대하는 예순 가지 사물들에서 깨달은 단상(斷想)을 글로 옮긴 것이다.
기준은 조광조(趙光祖, 1482?1519)의 학문적 정치적 동지로서, 기묘사화가 일어났을 때 조광조와 함께 희생된 인물이다. 기묘사화는 기득권 세력이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고 벌인 조작의 산물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한 시대의 홍문관 동료들 가운데 기준은 가장 젊었으나, 학문이 풍부하여 그 명성이 조광조에 버금갔다” 할 정도로 장래가 매우 기대되는 인재였지만,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서른 살의 나이로 짧은 삶을 마감해야 했다.
이 책은 기준이 기묘사화로 함경도 온성에 유배를 가서 위리안치(圍籬安置)되어 있던 시절, 실의에 빠진 마음의 평정을 되찾고 삶의 경계와 지침으로 삼기 위해 지은 글이다. 원제는 「육십명(六十銘)」이며, ‘예순 가지 사물에 새긴 글’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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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銘)’이란, ‘새긴다’는 뜻이다. 그래서 ‘명’이란 문체가 만들어진 초기에는 실제로 종(鐘)이나 그릇 같은 기물에 직접 글을 새겼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苟日新(구일신) 日日新(일일신) 又日新(우일신)’, 즉 ‘진실로 어느 날 새로워졌거든, 나날이 새롭게 하고, 또 날로 새롭게 하라’는 말도, 중국의 은나라를 세운 탕 임금이 자기의 목욕통에 새겼다는 ‘명’이다. 목욕으로 몸을 새롭게 하는 데서 얻은 깨달음을 목욕통에 새겨서 수신(修身)의 자료로 삼기 위함이었다. 그러다가 후대로 가면서 ‘명’은, 사물에 직접 새겨 넣지는 않더라도 자기의 ‘마음에 새김’으로써 스스로를 성찰하는 글로 자리를 잡았다. 지금도 ‘좌우명(座右銘 : 자리 곁에 새긴다는 뜻)이란 이름으로 그 흔적이 남이 있기도 하다.
‘명’은 대체로 문장의 길이가 그리 길지 않은 편이다. 운문도 아니요, 산문이라 하기엔 허전할 정도로 짧은 글에, 사물들에서 얻은 깊은 깨달음의 요체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그런 까닭에 글은 비록 짧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심장하고, 읽는 이에게 긴 여운을 남기곤 한다. 그리고 그것은 지은이와 사물의 깊은 교감을 거쳐야만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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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침에 눈을 떠서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일상 속에서 수많은 사물들에 둘러싸인 채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사물들은, 각기 그것만의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모양도 다르고, 크기도 다르고, 기능도 다르고, 용도도 다르다. 비록 모양과 크기와 기능과 용도가 같을지라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사용하는 장소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지니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의 삶과 늘 함께하는 사물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그저 무덤덤하게 대하곤 한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너무나도 ‘익숙하게 관계’를 맺고 살기 때문이다.
‘명’은 이러한 ‘익숙한 관계’를 ‘낯선 관계’로 만드는 작업이다. ‘가깝지만 소홀한 관계’를 ‘가까우면서도 애정 가득한 관계’로 만드는 작업이다. 더 나아가 죽어 있는 사물들에 생기 넘치는 영혼을 불어넣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그 사물들과 영혼의 교감을 나눌 수도 있게 된다.
그리고 나와 사물의 영혼이 깊이 교감하다 보면, 소리 없던 사물은 저절로 영혼의 소리를 내게 마련이요, 그 과정에서 이제까지는 미처 깨닫지 못한 깊은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바로 그 깨달음을 글로 옮기면 ‘명’이 된다. 그래서 ‘명’은 개별 사물에 내재된 비의(秘意)를 캐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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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의 「육십명」도, 저자와 일상 사물들 간에 깊은 영혼의 교감을 거쳐서 탄생한 글이다. 물론 문집이 남아 있는 대개의 옛사람들은 이러한 글을 한두 편쯤은 남기고 있다. 그러나 기준의 「육십명」만큼이나 다양한 사물의 ‘명’을 지은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유배지의 기준에게 「육십명」의 사물들은 그의 일상을 둘러싸고 있는 거의 모든 것이었으며,
작가 소개
저자 : 기준
기묘명현의 한 사람이다. 본관은 행주, 자는 자경(子敬) 경중(敬仲), 호는 복재(服齋) 덕양(德陽)이다.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의 숙부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써, 13세에는 문리(文理)에 크게 통달하였다 한다. 17세부터는 열 살이 많은 조광조를 종유하였다. 22세 때 사마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별시에 병과로 합격하였다.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쳐 홍문관 응교(應敎 : 정4품)에 이르렀다.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가 일어나 충청도 아산으로 유배되었으며, 다시 함경도 온성으로 옮겨져 위리안치되었다가, 그곳에서 사사되었다. 이때의 나이가 서른이었다. 사후에 관작이 회복되고,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문민(文愍)’이란 시호가 내려졌다.
목차
역자 서문
육십명서(六十銘序)
육십명(六十銘)
01. 가시나무 울타리 _ 절망 속에 심는 희망 / 총리(叢籬)
02. 울타리 나무 _ 홀로 선다는 것 / 입주(立株)
03. 울타리 구멍 _ 욕망의 근원 / 질욕혈(窒慾穴)
04. 집 _ 대장부의 집 / 광거와(廣居窩)
05. 부엌 _ 변혁의 공간 / 천선조(遷善?)
06. 방 _ 혼자 있는 공간 / 암실(暗室)
07. 온돌 _ 존재의 본질 / 정사돌(靜俟?)
08. 선반 _ 겸손하라, 마지막까지 / 유종판(有終板)
09. 마루 _ 하늘의 이치를 즐기는 공간 / 낙천당(樂天堂)
10. 섬돌 _ 한 계단 한 계단 차근차근 / 승계(升階)
11. 지게문 _ 난세를 살아가는 지혜 / 명이호(明夷戶)
12. 바라지창 _ 비움과 채움 / 허유(虛?)
13. 벽 _ 중심을 잡은 군자 / 군자벽(君子壁)
14. 창문 _ 소통과 균형 / 시창(時窓)
15. 서가 _ 책임과 역량 / 재도가(載道架)
16. 문 _ 어리석음의 원인 / 우문(愚門)
17. 길 _ 사람의 길 / 유호로(由戶路)
18. 평상 _ 어려움 앞에서 / 건상(蹇牀)
19. 삿자리 _ 사귐의 도 / 비점(比?)
20. 처마 _ 예의 표상 / 자비첨(自卑?)
21. 굴뚝 _ 집중의 의미 / 주일통(主一桶)
22. 뜰 _ 넉넉한 대지 / 종용정(從容庭)
23. 텃밭 _ 내 탓 / 불원전(不怨田)
24. 다리 _ 인생의 강을 건너는 비결 / 게의교(揭衣橋)
25. 측간 _ 혼자 있을 때 / 거악측(去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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