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한국유교와 타종교’라는 주제는 바로 조선시대에 도학이념의 유교가 불교·도가·제자백가·서학 등 다른 종교와 만남에서 얼마나 폐쇄성과 개방성을 보여주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동시에 불교와 천주교가 유교사회에서 어떻게 적응하거나 충돌하였는지를 해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유교와 타종교의 만남을 통한 상호 교류와 갈등의 성격과 한계를 이해한다면, 바로 오늘의 현실에서 종교간의 이질감과 대립의식을 해소하고 갈등을 넘어 조화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는 지혜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될 것이다.
출판사 리뷰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어느 시대에도 홀로 있었던 일이 없었다. 유교는 성립단계에서부터 언제나 다른 종교와 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하고 대립하여 갈등을 일으키면서 그 위치와 성격을 정립하여 왔다. 공자는 노자를 찾아가 도(道)를 물었다 하고, 유가(儒家)와 묵가(墨家)는 일찍부터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니 논어 위정(爲政)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씀 한 구절 “攻乎異端, 斯害也已”는 유교전통에 한가지 의미깊은 숙제를 던져주었다. 이 구절을 주자는 “이단을 ‘전공’(攻)하면 해로울 따름이다”라고 풀이하여, ‘이단’에 대한 거부의 입장으로 해석하였지만, 이와 달리 “이단을 ‘공격’(攻)하면 해로울 따름이다”라고 포용적 입장으로 해석하는 정반대의 견해도 있다. 곧 여박사(呂博士: 藍田 呂大臨)는 “이제 사설(邪說)이 정도(正)를 해치는 것을 미워하여 공격한다면 단지 스스로 가리워지는 것일 뿐이다”(今惡邪說之害正而攻之.則適所以自?而已)라고 하여, ‘전공’(攻)이 아니라 ‘공격’의 뜻으로 해석하였고, 주자 자신도 『답왕상서서』(答汪尙書書)에서 자신의 견해와 상반된 여박사의 견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공자의 ‘이단’에 대한 입장은 ‘전공’하지 말라는 배타적 입장인지 ‘공격’하지 말라는 포용적 입장인지 단정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중용」(30장)에서는 공자의 덕을 서술하면서, “‘도’는 함께 행하여도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道?行而不相悖)라고 하여 포용과 조화의 입장을 보이고 있으니, 공자는 여전히 포용적 입장을 지녔던 경우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에 비해 맹자는 ‘이단’비판의 배타적 입장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맹자는 양주(楊朱)를 임금도 없다(無君)하고 묵적(墨翟)을 부모도 없다(無父)하여 ‘이단’으로 배척하면서, “양주·묵적의 ‘도’가 그치지 않으면, 공자의 ‘도’가 드러나지 않는다”(楊墨之道不息, 孔子之道不著.<「맹자」, ?文公下>)라고 극단적 ‘이단’배척의 태도를 밝히고 있다. 이처럼 ‘이단’에 대한 유교전통의 태도에는 비판적 거부의 입장과 개방적 포용의 입장이라는 두 얼굴을 드러내어 왔던 것이다. 포용과 배척은 어떤 의미에서 유교전통이 지닌 두 얼굴이라 할 수 있다. 어느 한 쪽도 부정되면 전체의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되는 문제점이 드러날 것이니, 양면을 함께 보는 눈으로 유교와 타종교 내지 타사상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 들어오자 유교는 국가의 통치이념이요 체제교학(體制敎學)으로서 조선사회를 이끌어왔다. 말하자면 유교는 조선시대의 국교(國敎)로서 권위와 역할을 담당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조선사회는 유교만 있었던 단일종교체제가 아니라, 언제나 다른 종교와 만나고 부딪치면서 지속되어 왔던 것도 사실이다. 조선시대 전반기에는 고려시대에서 물려받은 막강한 불교적 유산과 대결하여야 했고, 조선시대 후반기에는 새로 전래해온 서양종교로서 천주교와 충돌하여야 했다. 그 밖에도 유교는 조선시대를 관통하며 사회저변에 자리잡고 있었던 무속을 비롯한 민간신앙과 대결하거나 통제해야 했고, 조선시대 말기에는 붕괴해가는 유교적 영향력의 빈틈을 파고드는 동학을 비롯한 신종교(新宗敎)들과 부딪치기도 하였다. 또한 유교이념의 그늘 속에는 중국사상으로서 유교와 더불어 가장 오랜 전통을 지닌 도가(道家: 老莊)사상도 언제나 일정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조선시대에서 유교이념의 기준이요 중심축을 이루었던 것은 도학-주자학(道學-朱子學)이었다. 도학이념은 ‘정통’(正統)을 표방하면서, 한편으로 다른 종교를 ‘이단’(異端)으로 비판하고 배척하였을 뿐만 아니라, 유교내에서도 주자학에 배치되는 양명학을 ‘이단’으로 비판할 만큼 엄격한 배타적 정통론을 견지해왔다. 그 가운데서도 조선시대 유교가 맞서야 했던 가장 큰 종교적 세력은 조선전기의 불교와 조선후기의 천주교였다. 곧 조선전기에는 불교비판에 이단배척론을 엄격하게 적용하여 상당한 견제력을 발휘하는데 성공하였지만, 조선후기에는 천주교비판에 이단배척론을 강경하게 지켜갔음에도 불구하고 서양과 일본의 외세(外勢)를 막아
작가 소개
저자 : 금장태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동양철학과 철학박사동덕여자대학교 교양학부 교수성균관대학교 한국철학과 교수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 제1회 유교학술상(2004) 제1회 서울대학교 학술연구상(2008) 수상(현)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명예교수저서:≪비판과 포용-한국 실학의 정신≫ ≪귀신과 제사-유교의 종교적 세계≫ ≪퇴계평전-인간의 길을 밝혀준 스승≫ ≪율곡평전-나라를 걱정한 철인≫ ≪다산평전-백성을 사랑한 지성≫ ≪퇴계학파와 理철학의 전개≫ ≪한국유학의 心說≫ ≪한국유학의 老子 이해≫ ≪불교의 유교경전해석≫ 외 논문, 저서 다수.
목차
머리말
1 조선전기 불교의 유교인식
-기화(己和) 설잠(雪岑) 보우(普雨) 휴정(休靜)의 삼교조화론(三敎調和論)
1. 조선전기 불교의 삼교조화론이 지닌 성격
2. [현정론]의 삼교조화론과 호불(護佛)변론
3. [유석질의론](儒釋質疑論)의 삼교대비와 불교우위론
4. 설잠(雪岑)의 삼교인식과 유 불병행론
5. 보우(普雨)의 유불동조론
6. 휴정(休靜)의 삼교회통론과 유교인식
7. 조선전기 불교의 삼교조화론이 지닌 의미
2 조선후기 유교의 [장자](莊子)이해
-한원진(韓元震)의 [장자]해석과 비판논리
1. 조선후기 유학자의 [장자]해석의 성격
2. [장자] '내편'의 구조와 문체의 이해
3. 장자의 '도'개념에 대한 인식
4. 장자의 심(心)과 지(知)에 대한 인식
5. 장자의 '양생' '처세' '치도'에 대한 인식
6. 한원진의 성리학적 [장자]해석의 의미
3 조선후기 유교의 제자백가 인식
-신후담(愼後聃)의 [팔가총평](八家總評)을 중심으로
1. 신후담에서 제자백가에 대한 관심의 문제
2. 조선시대 유학자의 제자백가에 대한 관심
3. 신후담의 제자백가 인식의 입장
4. 유가류와 도가류의 인식
5. 제자백가의 인식
6. 신후담의 제자백가 인식이 지닌 의미
4 18세기 유교지...식인의 천주교신앙 수용
-윤지충 권상연의 천주사상과 영혼관
1. 18세기 유교지식인의 천주교신앙 수용과 윤지충 권상연의 위치
2. 성호학파 유교지식인의 천주교신앙 수용배경
3. 윤지충 권상연의 '천주'사상-'상제'신앙과 '천주'신앙의 거리
4. 윤지충 권상연의 영혼관과 천당지옥설
5. 윤지충 권상연의 폐제분주(廢祭焚主)사건과 신앙적 성격
6. 윤지충 권상연의 천주교신앙 수용이 지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