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박라연 시인의 네번째 시집인 <공중 속의 내 정원>은 자연적 상상력과 빛깔 있는 이미지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시를 읽는 동안, 그리고 읽고 난 뒤까지도 그 현란한 색깔과 향기, 각가지의 형태가 혼란스럽게 떠올라 이 시집을 한 마디로 개괄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녀가 구사하는 시어들은 행과 연 사이에서 씨실과 날실로 꼭꼭 짜여져 완벽하게 하나의 유기체를 형성한다. 가령 「질량 보존의 법칙 3 - 냉탕 속의 달」을 보면 복숭아와 달은 형태적 유사성을 보이다가 끝에 가서는 하나로 일치되어 버린다.
'틀림없는 복숭아 냄새가 / 달의 나체를 따라다니다 아무도 없어 / 고개만 갸우뚱거리는데'는 시행과 '붉은 열매가 / 달의 표면을 온통 덮어버릴 때까지 / 진짜 달은 /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을 생각인지도.'를 비교하다 보면, 시가 (복숭아가 달이 되고 달은 또 복숭아가 되는) 자연의 순환에 관한 쌍방향의 이미지를 생산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러한 이미지의 생성과 빛깔들의 형형한 묘사(예를 들면 '헤매지 않고서는 피가 돌지 않던 / 몸 속 빛의 태아, / 색색의 비행이 숨질 때마다 / 수십 송이의 붉은 장미가 / 생텍쥐페리의 사막에서 피어났다' - 「금오산 낙조 - 장미, 생텍쥐페리의 사막에 핀」등과 같은)도 이 시집의 중요한 특징이지만, 그것보다 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무래도 시인이 발견해 낸 '생명성' 이다.
박라연 시인은 '지리산의 일몰 주섬주섬 안고 돌아서는데 / 어머니의 품을 한올한올 낳아줄 것 같은 / 태아가 자라는 모습을 환하게 비춰주는 / 심장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달의 문신'(「지리산」), '깊은 계곡이 / 촘촘한 山이 사람 사이에도 있으리라 / 살아 있기에 깊어지는 계곡 / 살아 있기에 촘촘해지는 山'(「감은사 가는 길」), '무수한 이슬 속에 들어가 / 잊혀진 풀벌레 실눈 뜨는 / 잎잎의, 초록의 새끼 몸체 좀 봐!'(「봄」)와 같이 노래하면서 살아있음을 끊임없이 부러워하고 찬탄한다.
시인이 이처럼 '생명있음'에 집착하는 것은 왜 일까. 무엇이 '살아있음'에 대한 갈증을 불러일으켰던 것일까. 이러한 궁금증에 대해 시인은 다만 '자살하고 싶은 자, 영구암에 가보라 / (...) / 그의 거처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아 있음의 / 생상함을 본 후에도 살고 싶지 않으면 / 태어나기 이전의 제 세포의 / 숫자를 헤아려볼 일이다'라고 말할 뿐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이 시집을 읽으려는 당신이 찾을 수밖에......
출판사 리뷰
시집『서울에 사는 평강공주』로 우리에게 익숙한 시인 박라연의 시집.
이번 작품에서 시인이 말하는 정원은 꿈의 공간이다. 현실 세계에서 도저히 이루어낼 수 없는 열망들의 공간이기에 죽음과 대면하는 장소일수도 있으나 시인은 그러한 독자의 이해를 강하게 부인하듯 현실에서의 공중 정원으로 새순이 돋아나는 가지를 공중에다 펼치고 있는 나무를 주목해보이고 있다.
〔해설〕
죽음의 산란(産卵)
오형엽
박라연의 이번 시집은 죽음의 길과 생명의 길이 만나 충돌하며 불꽃을 일으킨다. 이 불꽃은 때로 너무 강렬하여 우리의 눈을 현란하게 하지만, 그것은 우물 속에 잠겨 있는 불꽃과도 같아서 우리의 시선을 존재의 내면 깊은 곳으로 인도한다. 이번 시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석양을 묘사하는 부분인데, 여기서 시인은 석양의 ‘빛’을 ‘알’로 치환하고 있다.
공중의 허리에 걸린 夕陽
사각사각
알을 낳는다
달디단 열매의 속살처럼
잘 익은 빛
살이 통통히 오른 빛
뼈가 드러나도록 푸르게 살아내려는,
스물네 시간 중 단 십 분만 행복해도
달디달아지는
통통해지는
참 가벼운 몸무게의 일상 속에서만
노을로 퍼지는
저 죽음의 황홀한 産卵
육백여 분만 죽음의 알로 살아내면
부화될 수 있다고 믿을 생각이다
시누대처럼 야위어가던 한 生의 그림자
그 알을 먹고 사는 나날을 꿈꾼다
없는 우물에
부화 직전의 太陽이 걸렸다!
심봤다! ―「공중 속의 내 정원 1」 전문
석양은 태양의 이동 경로 중 끝자리에서 장엄한 최후를 맞이하고 있다. 그런데 시인이 이 석양의 ‘빛’을 ‘알’로 인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달디단 열매의 속살처럼`/`잘 익은 빛”과 “살이 통통히 오른 빛”에서 드러나듯, 시인은 석양의 ‘빛’에서 ‘알’이 잠재적으로 지닌 풍성한 생명력을 발견한다. 죽음의 예감 앞에서 죽음과 상통하는 새 생명의 도래를 기대하는 것인데, “뼈가 드러나도록 푸르게 살아내려는”과 “참 가벼운 몸무게의 일상 속에서만`/`노을로 퍼지는”은 이러한 전이가 가능한 조건이 무엇인지 암시해준다. 그것은 인간적 욕망의 근거를 이루는 살과 피를 덜어내는 작업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시누대처럼 야위어가던 한 생(生)의 그림자”에 그 몸무게를 자발적으로 덜어내는 고통을 부과하므로 가혹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죽음의 상황 앞에서 “죽음의 알로 살아내면`/`부화될 수 있다고 믿”는 생각과, “그 알을 먹고 사는 나날을 꿈”꾸는 일은 육신의 소멸을 각오하고 벌이는 육체적·정신적 모험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죽음과 생명이 상충하는 박라연 시의 상상력은, ‘틈새’의 이미지를 통해 그 중층적 의미가 드러난다.
1) 그 바위와 바위 사이의 응달
그러니까, 최소량의 穀氣인 흙과 수분 햇살이
산 자의 육안으로도 좀처럼 짐작되지 않는
저 폐허!
그 틈새서도 수백 년쯤 거뜬히 살아낸
해마다 붉은 기운을 암자 가득히
바다 가득히 물들여내는 동백
그의 거처에서 뿜어져나오는 살아 있음의
생생함을 본 후에도 살고 싶지 않으면
태어나기 이전의 제 세포의
숫자를 헤아려볼 일이다 ―「靈龜庵 육체론 1」 부분
2) 우면산의 나무 한 그루에
돌담을 둥그렇게 쌓는다 제 몸집만
으로는 쉽게 틈이 생길까 두려워
아무나 함부로 넘보지 않게 하려고
산에 오를 때마다
그 나무 옆구리에 돌무덤을 쌓는다
저 집은,
아픈 마음들이
미리 들어가 쉬기도 하는 곳
〔……〕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처럼
사는 일이 참혹할 때
저 집이,
한시적인 죽음으로 시간을 끌어주면
죽음의 나체 같던 겨울 나뭇가지에
피가 돌 듯
시커멓게 그을린 마흔 넘은 그림
작가 소개
저자 : 박라연
199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가 당선되면서 시단에 나왔으며 시집으로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생밤 까주는 사람』, 『너에게 세 들어 사는 동안』, 『공중 속의 내 정원』, 『빛의 사서함』 등이 있다. 윤동주 상 문학 부문 대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박두진 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목차
▨ 시인의 말
공중 속의 내 정원 1
靈龜庵 육체론 1
돌무덤
공중 속의 내 정원 2
금오산 낙조
공중 속의 내 정원 3
공중 속의 내 정원 4
공중 속의 내 정원 5
질량 보존의 법칙 1
질량 보존의 법칙 2
질량 보존의 법칙 3
질량 보존의 법칙 4
질량 보존의 법칙 5
질량 보존의 법칙 6
새의 부리
꽃의 穴宮
죽음에 대한 禮儀
느티나무
다시 꿈꿀 수 있다면
얼룩말을 위하여
沈香
獻花歌
말린 장미 이야기
玉花
통유리창
만월
어머니, 靈山
生
아직은 5월
안 보이는 숲
굴비
이등변 삼각형
몸 속의 장미와 진달래의 묘지에서
靈龜庵 육체론
아름다운 시작
식물 인간, 혹은
노쇠한 꿈의 노래
동류항
꿈
사슴꽃장미나무 이야기
祭儀
신태인 일몰
도라지꽃 피는 계절
이어도
궁항
메주
한 밭의 후회
돌에도 봄이
열정
그림자
殘日
금시조
봄
예감의 액자 속에, 神을
무등산 호박꽃
지리산
4月, 마른 것들을 잠근다
감은사 가는 길
한 流配家의 정원에서
含月山
花石
▨ 해설·죽음의 산란(産卵)·오형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