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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는 밑바닥에서
문학과지성사 | 부모님 | 2000.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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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메이비>, <시간은 이미 더 높은 곳에서>, <나비 같은, 아니아니, 빛 같은>에 이은 장영수의 네번째 시집.

이번 시집에서 장영수는 자신의 삶 여기저기를 살피고, 또 그 옭고 그름을 진단하는 자기 성찰의 거울로서 시를 써 나갔다. 삶을 돌이키는 시인의 부단한 노력과 이를 반증하는 그의 시들은 우리가 사는동안 진정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한다.

  출판사 리뷰

〔해설〕

시와 삶의 변론

홍용희

장영수의 네번째 시집 『한없는 밑바닥에서』는 자신의 소시민적인 일상사에 대한 변명의 기록물이다. 이 시집의 시편들은 시인의 생활의 얼룩이 묻어 있는 시공간에 대한 미적 관조와 변론을 주조음으로 한다. 시인에게 시는 자신의 삶의 입각점의 여기저기를 살펴보고 또한 그 옳고 그름을 진단하고 새김질하는 자기 성찰의 거울에 해당한다. 따라서 그의 시를 읽는 것은 그의 일상성의 속내를 감상하는 일에 해당된다. 그의 이와 같은 “삶이 있으므로 삶의 이름으로”(「삶이 있으므로 삶의 이름으로」, 『나비 같은, 아니아니, 빛 같은』) 시를 쓴다는 명제는 첫 시집 『메이비』(1977)에서부터 적용된다. 그는 특히 첫 시집에서 자신과 사회의 그늘진 삶의 굴곡을 치열하고 치밀한 언술로 호기롭게 묘파하는 역량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과 함께 그의 생활도 일정한 범주 속에 안착되면서 점차 사회·역사적 상상력의 원심력이 소실되어가는 양상을 드러낸다. 이번 네번째 시집은 자신의 주변 일상사에 대한 진솔한 표백과 반추의 언어가 중심을 이룬다. 그래서 이 시집은 활달한 시적 역동성과 긴장은 약화되었으나 시와 일상적 삶의 친연성은 더욱 면밀해진 모습을 보인다. 그렇다면, 과연 그의 일상성의 현장은 어디이며 어떤 양상을 띠고 있는가? 장영수의 이번 시집의 특이점을 이해하는 길목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해는 지고
잔치도 볼장도
다 보고 사람들
이미 꽤 오래 전에
끼리끼리 다들
흩어져간 뒤

젖고 마른 각종
쓰레기들만 함부로
시린 발에 걸리는
어둑한 이 빈터에
윙윙거리는 바람은
더욱 차가운 때에

어찌하여 나는
소중한 그 무엇들을 다
잃은 사람처럼 끝끝내
한사코 서성이는가
무엇을 위하여
누구를 위하여

마치 세상 먼
바깥쪽 영원한 캄캄한
허공을 홀로 떠돌면서도
기어이 세상 속으로 굳이
다시 돌아오려는 쓸쓸한
유성처럼 운석처럼…… ―「세상 먼 바깥쪽에서」 전문

시적 화자가 서 있는 자리는 “세상 먼/바깥쪽”이다. 그곳의 시간은 이미 “해는 지고/잔치”도 끝난 늦은 저녁이고, 공간은 머물다 간 사람들이 남긴 “젖고 마른 각종/쓰레기들만 함부로/시린 발에 걸리는” 빈터이다. 화자는 홀로 생의 활력과 기운이 모두 스러지고 마감된 허적의 뒷자리를 배회하고 있다. 아니 세상은 늘 화자를 이와 같은 썰렁한 소외의 뒤안길로 몰아낸다. 그래서 화자는 “어찌하여 나는/소중한 그 무엇들을 다/잃은 사람처럼 끝끝내/한사코 서성이는가”라며 스스로를 향한 비탄에 젖는다. 물론 이러한 탄식은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 의식에서 비롯된다. 그 역시 “끼리끼리 다들” 어울리는 세상의 무리 속에 섞이고 싶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마치 세상 먼/바깥쪽 영원한 캄캄한/허공을 홀로 떠돌면서도/기어이 세상 속으로 굳이/다시 돌아오려는 쓸쓸한/유성”과 “운석”에 비유한다. “세상 먼/바깥”이란 “세상”의 안에 대한 이항 대립적인 상대성 속에서 성립된다. 특히 “세상 먼/바깥”에서의 세상과의 “먼” 거리감은 화자의 세상으로부터 피투된 소외감의 심도이면서 동시에 세상 속을 향한 열망의 강도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이번 시집의 도처에 등장하는 “한없는 밑바닥에서” “생의 밑바닥에서” “허름한 뒷골목에서” 등등의 언표들은 공통적으로 시인 자신의 준거 집단의 중심 지대에 안착하지 못한 절망·좌절·소외·열패 의식 등의 산물이다. 그러면, 그가 이러한 무력감과 변두리 콤플렉스에 시달리게 된 배경은 어디에 있었을까? 다음 시편은 이에 대한 구체적인 변론에 해당한다.

잠은 한 방에서 나란히
잔다 하겠으나 피아노 놓고
책상 놓으니 비집고 다닐
통로도 제대로 안 남았다

그러니 시가 되었겠는가
공부가 되었겠는가

  작가 소개

저자 : 장영수
1947년 강원대 원주에서 태어났다. 1973년 계간 「문학과지성」 봄호에 시를 발표해 시단에 데뷔했다. 서울대 사대 불어과와 동대학원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으며, 고려대 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목차

▨ 시인의 말

희망
허름한 뒷골목에서 1
허름한 뒷골목에서 2
허름한 뒷골목에서 3
청춘을 위하여
정신주의 1
정신주의 2

시를 쓰는 이유 1
욕망과 더불어
벽을 마주하면
다도해
거리에서
시를 쓰는 이유 2
義肢倉을 통하여
휴가에 대해 생각하다가

2000년의 편지
빈 통 같은 것으로, 나는, 1
극복을 위하여
빈 통 같은 것으로, 나는, 2
우리들의 시간
생의 밑바닥에서 1
생의 밑바닥에서 2


깊은 밤, 잠들지 못하며,
세상 먼 바깥쪽에서
팔려가는 당나귀에 대한 고찰
정교리에서
삶에 대한 변명
선산
고향 1
고향 2

기적 소리 들으며
묵상
희망은 빛났다
인간사란 무엇인가
생각해볼 일이 많은 삶 속에서
몸에 대하여
무엇이 두려워 1
무엇이 두려워 2

오렌지족에 대하여 1
오렌지족에 대하여 2
배꼽의 홈에 낀 때를……
그 넋들의 숨소리를
모밀촌에서
청색 기아 트럭에 대한 기억
모니터를 보며
중랑천변의 편지
미궁 속에서

백조의 호수에 대하여
어떤 고향의 여름
권력의 모습
바람 앞의 등불들을 보는 것처럼

현실을 위하여
위대함에 대하여
님들에게

마음의 평화에 대하여
한 5·16에 대한 기억 1
한 5·16에 대한 기억 2
알프스에서 1
알프스에서 2
靑山
기쁘나 슬플 때나
가을이 무겁게 다가왔다
아주 훌륭한 신세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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