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부모님 > 부모님 > 소설,일반 > 고전
임진년 난리를 당하매  이미지

임진년 난리를 당하매
임진왜란에 조국을 지킨 아홉 의병장 작품집
보리 | 부모님 | 2005.08.08
  • 정가
  • 30,000원
  • 판매가
  • 27,000원 (10% 할인)
  • S포인트
  • 1,350P (5% 적립)
  • 상세정보
  • 0.000Kg | 711p
  • ISBN
  • 9788984282131
  • 배송비
  • 2만원 이상 구매시 무료배송 (제주 5만원 이상) ?
    배송비 안내
    전집 구매시
    주문하신 상품의 전집이 있는 경우 무료배송입니다.(전집 구매 또는 전집 + 단품 구매 시)
    단품(단행본, DVD, 음반, 완구) 구매시
    2만원 이상 구매시 무료배송이며, 2만원 미만일 경우 2,000원의 배송비가 부과됩니다.(제주도는 5만원이상 무료배송)
    무료배송으로 표기된 상품
    무료배송으로 표기된 상품일 경우 구매금액과 무관하게 무료 배송입니다.(도서, 산간지역 및 제주도는 제외)
  • 출고일
  • 1~2일 안에 출고됩니다. (영업일 기준) ?
    출고일 안내
    출고일 이란
    출고일은 주문하신 상품이 밀크북 물류센터 또는 해당업체에서 포장을 완료하고 고객님의 배송지로 발송하는 날짜이며, 재고의 여유가 충분할 경우 단축될 수 있습니다.
    당일 출고 기준
    재고가 있는 상품에 한하여 평일 오후3시 이전에 결제를 완료하시면 당일에 출고됩니다.
    재고 미보유 상품
    영업일 기준 업체배송상품은 통상 2일, 당사 물류센터에서 발송되는 경우 통상 3일 이내 출고되며, 재고확보가 일찍되면 출고일자가 단축될 수 있습니다.
    배송일시
    택배사 영업일 기준으로 출고일로부터 1~2일 이내 받으실 수 있으며, 도서, 산간, 제주도의 경우 지역에 따라 좀 더 길어질 수 있습니다.
    묶음 배송 상품(부피가 작은 단품류)의 출고일
    상품페이지에 묶음배송으로 표기된 상품은 당사 물류센터에서 출고가 되며, 이 때 출고일이 가장 늦은 상품을 기준으로 함께 출고됩니다.
  • 주문수량
  • ★★★★★
  • 0/5
리뷰 0
리뷰쓰기

구매문의 및 도서상담은 031-944-3966(매장)으로 문의해주세요.
매장전집은 전화 혹은 매장방문만 구입 가능합니다.

  • 도서 소개
  • 작가 소개
  • 목차
  • 회원 리뷰

  도서 소개

1592년 4월 왜적이 쳐들어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경상도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킨 곽재우, '칠백의총'의 조헌, 금산 싸움의 고경명과 진주성 싸움의 고종후, 연안대첩의 이정암, 함경도의 정문부, 평양성 싸움의 서산대사, 금강산의 사명당, 그리고 함흥의 문덕교까지, 목숨을 걸고 나라와 백성을 지킨 아홉 의병장의 글을 가려 뽑아 엮었다.

아홉 의병장들은 왜적과 맞서 싸워야 할 관리들이 성을 버리고 도망간 뒤, 각도의 지방관들에게, 승려들에게, 노비들에게, 유생들에게 격문을 띄워 나아가 싸우자고 외친다. 미처 싸울 준비를 하지 못했던 임금과 벼슬아치들은 의주로 피난을 가고, 삶터를 떠날 수 없었던 백성들은 곡괭이와 낫을 들고 왜적에 맞서 싸웠다. 싸우는 백성들 앞에는 이들 아홉 의병장이 있었다.

책은 420여 편의 시와, 함께 일어나 싸울 것을 외치는 20여 편의 격문을 통해 아홉 의병장들의 절절한 나라 사랑을 보여준다. 또한 온 겨레가 함께 일어나 왜란을 이겨 내고, 폐허가 된 땅 위에 새로운 온기를 불어 넣으려 애쓰던 우리 선조들의 기상을 만날 수 있다.

  작가 소개

저자 : 휴정
청허당淸虛堂 휴정休靜 서산대사西山大師는 조선조 중종 15년(1520) 평안도 안주安州에서 태어났다. 속성은 완산 최씨, 속명은 여신汝信이었다. 아홉 살에 어머니를 열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12세 때 안주 목사 이사증李思曾이 서울로 데려가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3년 뒤 지리산을 유람하던 중 쌍계사의 숭인장로崇仁長老를 만나 출가하게 된다. 당시 최고 선지식 부용영관芙蓉靈觀 대사에게 선을 배우고, 18세에 정식으로 스님이 되어 법명을 휴정休靜이라 하였으며, 30세에 승과僧科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교종판사도대사敎宗判事都大師와 선종판사도대사禪宗判事都大師를 겸하게 된다. 이후 금강산과 지리산을 거쳐 묘향산에서 오래 주석하였는데, 묘향산의 옛이름이 서산이기에 서산대사라 불리게 되었다. 선조 37년(1604) 정월 23일에 원적암圓寂菴에서 임종게를 남기고 좌탈입망하였다. 세수 85세 법랍 67세였다.저서에 <선교석禪敎釋>, <선교결禪敎訣>, <유가귀감儒家龜鑑>, <도가귀감道家龜鑑>, <심법요초 心法要抄>, <운수단雲水壇>, <청허당집淸虛堂集>이 남아 전한다.

저자 : 고종후
1554~1593. 조선 중기 의병장으로 자는 도충이며, 호는 준봉, 시호는 효열이다. 1577년(선조10)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벼슬이 현령에 이르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적군과 싸우다가 아버지와 동생 인후를 잃었다. 이듬해 각지에서 의병을 모아 싸우다 하동에 이르러 진주성이 위급해짐을 듣고 성안에 들어가 싸웠다. 김천일.최경회 등과 싸우다가 남강에 몸을 던져 죽었다.

저자 : 곽재우
1552~1617. 임진왜란이 일어난 4월에 경상도 의령에서 처음으로 의병을 일으켰다.

저자 : 조헌
본관은 백천白川, 자는 여식汝式, 호는 중봉重峯·도원陶原·후율後栗,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났다. 1565년 성균관에 입학, 1567년에 문과에 급제해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동문들에게조차 강경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그런 성격으로 인해 정치적 부침을 거듭했다. 성균관 재학 시절 왕실의 불교 관행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삭직되었고, 정여립에 대한 비판, 시무時務의 폐단을 지적, 일본과의 통교通交를 반대하는 상소에서 주도적으로 앞장서다가 선조의 미움을 받기도 했다.1574년 북경으로 가는 사절단에 참여해 얻은 특별한 경험을 조선의 제도 개혁을 위한 근거로 삼아 《동환봉사東還封事》로 구체화시켰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고자 옥천에서 문인들과 의병을 모아 청주성 등을 수복했다. 이어 왜군을 막기 위해 금산에서 700명의 의병과 분전했지만 모두 전사했다.이이·성혼·이지함의 문인이며 특히 이이의 학문을 계승했다. 1754년(영조 30) 영의정에 추증, 1883년(고종 20) 문묘에 배향되었다. 표충사表忠祠, 우저서원牛渚書院, 문회서원文會書院, 성곡서원聖谷書院, 상현서원象賢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문집에 《중봉집》이 있다.

저자 : 고경명
1533~1592. 전라도 담양에서 두 아들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고, 금산 싸움에서 둘째 아들과 함께 전사했다.

저자 : 이정암
1541~1600. 황해도 연안에서 왜적을 막아 냈는데, 이 싸움은 역사에 '연안 대첩'으로 기록되었다.

저자 : 정문부
1565~1624. 함경도 경성에서 의병을 일으켜 왜적에게 점령당했던 서울과 함경도를 되찾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저자 : 사명 유정
1544~1610. 금강산의 승려들을 모아왜적에 맞섰다.

저자 : 문덕교
1551~1611. 함경도 함흥에서 동생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가 동생이 왜적에 잡혀 죽은 뒤에는 후학을 가르는 데 남은 생을 바쳤다.

  목차

겨레고전문학선집을 펴내며

곽재우
조헌
고경명
고종후
이정암
정문부
서산대사
사명당
문덕교


임진왜란 의병장 활동 지역과 관군의 주요 격전지
임진왜란 전쟁 일지
임진 의병장 작품에 대하여 - 오희복
원래 제목으로 찾아보기

  회원리뷰

리뷰쓰기

    이 분야의 신상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