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문학동네 시인선' 26권. 2006년 데뷔 이후, 동시대 젊은 시인들과 한국 시단의 새로운 지형도를 그리며 주목을 받아온 김이강 시인의 첫 시집. 6년 만에 펴내는 첫 시집이다. 1부 '빌린 책은 다음에 줄게요', 2부 '신발이 필요해', 3부 '오늘은 긴 잠을 잤거든'으로 구성되었다.
김이강의 시편들은 경험적 일상을 기록하고 있다기보다 그녀 일상의 어떤 단면들을 통해 현실 너머에 있는 시적 환상을 침해하고 들춰내는 동시에, 들춰진 약간의 시적 환상만을 허락하면서 너무 많은 시적 환상이 그녀의 일상 전체를 완전히 삼켜버리는 것을 간신히 저지하고 있다.
출판사 리뷰
● 편집자의 책 소개
황홀과 불안 사이에서 묻다,
당신 집에서 잘 수 있나요?
-환상과 일상, 그리고 꿈과 깸
2006년 데뷔 이후, 동시대 젊은 시인들과 한국 시단의 새로운 지형도를 그리며 주목을 받아온 김이강 시인의 첫 시집이 출간되었다. 데뷔 6년 만에 펴내는 첫 시집이라 출간 소식을 기다린 문단 안팎의 시선들이 많았을 터. 이 첫 시집은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 높아진 기대감에 충분히 값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각각 발표된 김이강 시인의 시에서 느껴졌던 신선함과 새로움을 넘어서서, 이 젊은 시인이 첫 시집을 내기까지 짧지만은 않은 시간 동안 차곡차곡 다져온 자신만의 시 세계가 한 권의 시집 안에 완성도 있게 그러모아져 있기 때문이다.
이번 시집의 서시인 「소독차가 사라진 거리」는 시인의 유년 시절에 대한 이야기처럼 읽힌다. 유년 시절에 겪은 몇몇 친구의 죽음과 남겨진 아이들. 잠자리의 투명한 날개를 뜯어내며 투명해지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는 아이들은, 투명하게 사라지는 것과 현실에서 채집되어 남겨지는 것 사이에서 황홀하고 불안한 상상을 한다. 강가에서 익사하여 결코 돌아오지 않는 친구들이야말로 투명해지는 데 성공한 것일지 모른다는 불순한 상상 같은 것. 세계로부터 빠져나가 돌아오지 않는 투명함에 대한 욕망과, 반대로 그런 황홀하고 불안한 상태에서 건져져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것을 바라는 마음 사이에서 김이강 시인의 시적 환상은 시작된다.
방과 후에는 곤충채집을 나섰지만
잡히는 건 언제나 투명하고 힘없는 잠자리였다
우리는 강가에 모여 잠자리 날개를 하나씩 뜯어내며
투명해지는 방법에 대해 생각했다
익사한 아이들의 몸처럼 커다란 투명
정환이네 아버지 몸처럼 노랗게 부풀어오르는
투명 직전의 투명
우리는 몇 번씩 실종되고 몇 번씩 채집되었다가
강가에 모여 저능아가 되기를 꿈꾸는 날도 있었지만
우리의 가족력이란 깊고 오랜 것이라서
자정 넘어 나무들은 로켓처럼 암흑 속으로 사라졌다가
아침이면 정확히 찾지해 있곤 했다
몇 번의 추모식과 몇 번의 장례식
몇 개의 농담들이 오후를 통과해가고
낮잠에서 깨어나면 가구 없는 방처럼 싸늘해졌다
우리에게 알리바이가 필요했다
방과 후면 우리는 소독차를 따라다니며 소문을 퍼뜨리고
우체부를 따라다니며 편지들을 도둑지랗고
강가에 쌓인 죽은 잠자리들을 위해 기도하고
우리는 드디어 형식적 무죄에 도달할 것 같았고
우리는 끝내 자정이 되면 발에 흙을 묻힌 채 잠이 들었다
몇 번의 사랑과 몇 번의 침몰도
암흑 속으로 사라졌다가 세상 끝 어딘가에서 착지하고
-「소독차가 사라진 거리」 전문
시집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권희철은 “어느 쪽으로도 확정될 수 없는, 황홀과 불안의 모호한 출렁거림. 그것이 김이강의 시에 고르게 번져 있는 감정의 물결이다”라고 했거니와, 이번 시집에서 유독 질문들이 눈에 많이 띄는 이유는 아마 그 모호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시인은 어쩌면 하고 싶은 말이 없는지도, 무엇을 말해야 할지 알 수 없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비단 시인뿐 아니라 오늘날의 세대의 특징인 듯도 하다. 시인은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말하고 싶지도 않고 알 수도 없는 말들을 그저 날것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그것은 곧 또다른 황홀과 불안을 낳는다.
환상과 일상을 꿈과 깸의 상태로 그리면서, 시인은 황홀과 불안 사이에서 동요를 일으킨다. 그리고 모호함으로부터 비롯되었을 그 동요는 환상과 일상, 꿈과 깸의 경계에 선 시인에게 누구도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남긴다.
사실 나는 어딜 향해 이야기하는지 아직 정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도무지 모르겠어요 포도는 너무 예뻐요 농약이 묻어 있을까봐 흐르는 물에 오래 씻은 컴컴한 보랏빛 포도 포도는 신사임당을 떵올리게 해요 치마폭에 그려
작가 소개
저자 : 김이강
1982년 여수에서 태어나 바다 보며 자랐다. 2006년 겨울 『시와세계』로 등단했다.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고 아직 그곳에서 공부하고 있다. 시집으로 <당신 집에서 잘 수 있나요?>가 있다.
목차
시인의 말
1부 빌린 책은 다음에 줄게요
소독차가 사라진 거리
침수
당신 집에서 잘 수 있나요, 오늘 밤
파스빈더는 어떻게 쓰는가
노웨어 보이
미용사들
마르고 파란
우리에겐 아직 유머가 있다
투과하는 세기
모니끄네 집
Black Apron
순이와 산책
계절을 건너는 아이들
바다 밑바닥에서의 며칠
시월
바람 부는 날에 우리는
2부 신발이 필요해
루, 마망
정오와 알람과 고양이
푸른 저녁
해변에서의 조우
서울, 또는 잠시
강원도는 안녕하니?
말과 염소
안녕, 돌멩이
개들의 산책
모두가 걸어가네
12월주의자들
폭우
모자를 쓴 모드씨
트랄랄랄라
친밀함에 관한 온화한 논쟁들
못과 들국화
well-tempered clavier
3부 오늘은 긴 잠을 잤거든
겨울은 길었고 우리는 걸었지
노르웨이, 노르웨이
폭설 내리고 겨울 저녁
연착
핀란드
일요일
폭설
독수리 까만 숄
폴린느
글쎄 서울엔 비가
세 개의 밤과 서른 개의 밤을 지나
해후
El Tango
Undo
언니의 알리바이
검은 구름은 모두가 검은 구름이다
사려 깊은 대화의 기술
해설 | 아름다운 그녀는 울지 않아요
| 권희철(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