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한국어 통역사로 일하는 수지 박이 부모님 살해에 관련된 미스터리를 추적해 나가는 과정을 큰 줄기로 삼아,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나이 든 세대와 젊은 세대 사이의 소통 부재와 몰이해 등을 세밀하고 시적인 문체로 그려낸 책. 낯선 나라에서 살게 되어 이중의 정체성 위기를 겪는 젊은 한국 여성의 문제를 인간 소외와 그 극복이라는 인류 보편의 문제로 승화하여 보여준다.
이 책은 3인칭으로 잔잔하게 수지의 일상과 의식을 따라가는 문체와, 매개체를 통한 상징과 은유가 특징이다. 특히 수지의 마음과 작품의 주제를 잘 나타내 주는 상징들은 수지의 생활중 일부, 수지를 둘러싼 인물, 수지나 가까운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다양하게 드러내고 있다.
출판사 리뷰
눈부신 아메리칸 드림의 끔찍한 뒷면
『통역사』는 모범적이고 행복한 아시아인 이민 가정의 허상을 깨고 실제로 한국인(동양인)이 미국이란 낯선 고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보여 주는 충격적인 작품이다.
이민 1세대는 수지와 그레이스의 부모님처럼 고단하게 일을 해서 겨우 자신의 집과 가게를 가졌는가 했더니 무참하게 살해당하는가 하면, 작중에 등장하는 김용수처럼 배우자를 잃고 인생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환갑이 넘은 나이에 트럭 운전사로 하루하루 벌어 먹고 살기도 한다. 가장 충격적인 예는 후반에 등장하는 최정순이다. 최정순은 이화여대 음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줄리어드 음대에 입학 허가를 받아 왔다가, 집안이 도산하는 바람에 그곳에 그대로 일용직 노동자로 머물게 되었다. 이후 피곤한 일상과 좌절감, 딸과 남편과의 갈등으로 점철된 삶을 살다가, 가게에서 물건을 훔친 십대 여자애를 칼로 찌르고 강제출국당한다. 칼로 찌르기 전에 인종 차별적인 욕설을 하고 수차례 구타했다는 정황 증거가 있지만 그녀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3년 간 감옥 살이를 하면서 남편, 딸, 가게를 잃고 삶의 의미를 잃었기에 미국에 남아 있든 강제출국당하든 아무 상관이 없다.
그레이스와 수지로 대변되는 1.5세대는 이러한 1세대의 고생을 보아 왔지만 1세대가 강조하는 한국으로 대변되는 과거와 전통, 그리고 지금 살아가야 하는 미국과 현대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그레이스는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고, 수지 또한 온전한 인간으로 사회에 편입되진 못한다.
과거, 전통, 한국과 화해하는 여정
올해 스물아홉 살인 수지 박은 다섯 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일주일에 칠 일씩 짐꾼과 한국식품점 점원을 하면서 일했다. 그러면서도 수지네 가족은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한밤중에 짐을 챙겨 이사를 하곤 했다. 수지와 수지의 언니 그레이스는 언제나 둘이서 집안일을 돌봐야 했다.
집안은 화목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언제나 한국과 한국의 전통을 강조하며 자매가 미국인이 되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으면서도, 영어를 써야 할 때는 자식의 도움을 받으며 분통을 터뜨렸다. 어머니는 모든 상황에 체념하고 기계적으로 반응하게 되어 버렸다.
언니 그레이스는 미친 듯이 공부를 하고 밤에는 부모님 몰래 불량배들과 어울려 다녔다. 어느 날 아버지에게 붙잡혀 와서 긴 머리를 싹둑 잘린 이후 그레이스는 음식을 거부하면서 가족과 세상을 거부하게 됐다. 부모님이 당신들의 가게를 내고, 그레이스와 수지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수지의 생은 조용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수지는 졸업을 한 학기 앞둔 시점에 백인 유부남인 데미안과 사랑에 빠지고, 이 일로 가족과도, 세상과도 결별해 버린다. 그후 사 년이 되었을 무렵, 수지는 부모님이 가게에 들어온 강도에게 무참히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접한다. 장례식에 참석한 그녀는 데미안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완벽한혼자가 된다. 그러나 수지는 여전히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다시금 유부남과 불륜 관계를 가지면서 과거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하고 있다. 한국인이자 동양인이지만 현재 미국에 살고 있고, 두 세계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자신의 존재에 혼란스러워하면서.
『통역사』는 수지 박이 부모님에 대해 알고 있는 한인 김용수를 이민국 법정에서 만나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로 인해 강도 살인인 줄만 알았던 부모님의 살인 사건에 대해 의심을 품고, 범인을 찾아나선다. 그러나 미스터리와 추리의 형식을 빌렸을 뿐, 수지가 부모님을 죽인 범인을 찾아나서는 길은 과거와의 만남, 가족과의 화해, 정체성의 탐색을 위한 여행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지 오 년이 지나서야 부모님의 존재를 간절히 바라고, 세상으로부터 도망쳐 부모님께 숨어 버리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슴속에 간직한 채 수지는 계속 진실을 찾아나선다. 부모님과 연관이 있었던 한인을 찾아다니고, 부모님의 재산을 맡았던 회계사를 찾아가고, 부모님의 살인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를 만난다. 이것은 부모님이 감추려 했고, 수지도 알려고 하지 않았던 부모님의 실체와 만나는 과정이며, 부모님과 화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또한 수지는 이 과정에서, 어린 시절에는 알 수 없는 존재였고 데미안과 도망친 이후 수지를 경멸하고 증오하는 듯했던 언니 그레이스에 대한 진실도 알게 된다. 부모님과 그레이스를 온전히 가슴속에 껴안고 온전한 인간으로서 새롭게 살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진실을 알아야 했던 것이다.
섬세한 상징과 은유의 직조
『통역사』는 무엇보다도 3인칭으로 잔잔하게 수지의 일상과 의식을 따라가는 문체와, 매개체를 통한 상징과 은유가 시적인 작품이다. 특히 수지의 마음과 작품의 주제를 잘 나타내 주는 상징들은 수지의 생활 중 일부, 수지를 둘러싼 인물, 수지나 가까운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다양하게 드러난다.
수지가 대학 졸업 논문 주제로 택했던 작품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이었으며, 이 작품은 잘 알려져 있듯이 부모와 자식의 문제가 표면에 드러난 작품이다. 수지는 동양학 교수이자 데미안의 아내인 다미코 교수에게 논문을 지도받으며, 셰익스피어를 동양인의 눈으로 이해하고 비평하려고 시도한다. 대학 시절에 수지에게 남은 단 하나의 친구 젠은 문학 잡지 편집자이다. 그녀가 수지와 만나서 『롤리타』의 작가 나보코프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보코프는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다시 스위스로 이민 가서 말년을 보냈다. 진과 수지는 나라와 나라 사이를 오간 나보코프의 의도와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수지의 예전 룸메이트 케일럽은 게이이다. 그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타고난 성적 취향을 숨길 수 없어 커밍아웃하고 밖에 나와서 산다. 그의 부모님은 아들의 성적 취향을 인정하지 못하고 아들은 그런 부모님과 관계 개선을 위해 정기적으로 상담을 한다. 수지는 사랑하기 때문에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그들의 가정 이야기를 언제나 듣는다. 수지의 언니 그레이스가 유일하게 친구로 생각하고 돌봐주었던 친구 마리아 서트펜은 혼혈아이다. 그녀는 아이를 데리고 교회에 나가고 그 아이 하나만 바라보고 사는 정말 평범한 여성이다. 그러나 혼혈이라는 이유만으로 양쪽 인종에게서 모두 배척받고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아픈 과거를 가진 여인이기도 하다.
케일럽은 수지의 생일 날 반 고흐 앞에서 수지와 만날 약속을 잡고, 고흐의 이야기를 해 준다. 대상과 너무나 밀착했기 때문에 그것이 오히려 고통이었던 고흐, 가족을 너무나 사랑하지만 그것이 끔찍해서 동생을 괴롭게 만들었던 고흐. 고흐가 자살한 후에 동생 또한 얼마 안 있어 죽었다는 이야기. 가족의 진실을 눈앞에 둔 수지에게 고흐의 이야기는 자신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이 밖에도 수지가 피우는 담배, 수지가 위안을 얻는 현재의 유부남 애인, 수지가 잠시 아르바이트를 했던 잡지사 사실 대조 작업, 수지가 현재 직업으로 삼고 있는 통역사라는 일과 그 옛날 그레이스 언니가 해야 했던 통역 일의 맞물림까지, 『통역사』는 치밀하고 섬세한 의미의 거미줄 가운데로 독자를 안내한다. 느슨하고 헐렁하게 보였던 과거와 현재의 단상을 밟아 나가다 보면, 어느새 모든 의미들이 뗄 수 없는 관계 속에 놓여 있음을 보게 된다.
작가 소개
저자 : 수키 김
작가 수키 김은 13살에 이민 간 이후 컬럼비아 대학 버나드 칼리지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런던 대학 대학원에서 동양학을 전공하였다. 현재 작가는《뉴욕타임스》,《뉴스위크》, 《보스턴글로브》 등에 글을 쓰면서 두 번째 작품을 집필하고 있다..
수키 김은『통역사』가 출간되자마자 미국 최대의 서점 반즈 앤 노블에서 「올해 주목할 작가 10명」에 선정되고 프랑스, 일본, 네덜란드에도 판권이 팔리는 등 세계 문학계에 떠오르는 신예로 주목을 받고 있다. 여성 잡지 《마리 클레르》에서도 『통역사』를 「올해 읽을 책 3권」 중 한 권으로 뽑았다. 『통역사』는 또한 2004년에 어네스트 헤밍웨이 재단에서 그 해 가장 주목할 만한 데뷔작에 수여하는 「헤밍웨이 문학상(Pen Hemingway Prize)」의 후보작에 오르고, 미국 내에서 출판되는 다양한 인종과 색채의 문학 작품에 수여되는 「경계문학상(Pen Beyond Margins Award)」과 억압에 대한 창조적인 저항과 인간의 숭고함을 구현한 작품에 수여하는 「구스타프 마이어 우수도서상(Gustavus Myers Outstanding Book Award)」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