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부산에서 나고 자라 지금은 양산의 시골 마을에 정착해 있는 동화작가 강무지 씨의 작품집. '서울'에 치여 점점 생기를 잃어 가지만 변함없는 생명력이 아직 숨 쉬고 있는 '지방' 곳곳의 이야기를 부산 경남 지역 특유의 억세고도 정겨운 말투에 잘 담아 전달하고 있다.
자칫 지나치기 쉬운 작은 행복의 순간들을 포착해 따뜻함을 유지하는 동화책이다.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얻는 것 없이 생활의 터전을 잃어만 가는 시골 사람들의 삶,'발전'의 그늘에서 희생을 강요당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삶이라는 가볍지 않은 이야기들이지만, 건강한 생명력과 희망이 살아 숨 쉰다.
출판사 리뷰
우리나라의 ‘서울중심주의’는 날이 갈수록 그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개발’의 이익이 지방에도 나누어질 것이라 기대하며 국회의원 선거를 치르고 지자체 의원도 뽑곤 하지만 “지방은 식민지다”(강준만 교수의 최근 저서)라는 말이 결코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는 상황이다.
낮은산 출판사의 신간『다슬기 한 봉지』는 부산에서 나고 자라 지금은 양산의 시골 마을에 정착해 있는 동화작가 강무지 씨의 작품집으로, ‘서울’에 치여 점점 생기를 잃어 가지만 변함없는 생명력이 아직 숨 쉬고 있는 ‘지방’ 곳곳의 이야기를 부산 경남 지역 특유의 억세고도 정겨운 말투에 잘 담아 전달하고 있다.
작고 초라해 보일지라도, 여전히 숨 쉬고 있는 농촌
여덟 편의 동화가 실린『다슬기 한 봉지』는 농촌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과 대도시 부산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작은 시골 마을이 배경인「닭」「소」「수정이」「다슬기 한 봉지」를 살펴보자.
「닭」은 고속철도 건설에 따른 보상금 문제를 둘러싸고 빚어진 마을 어른들 사이의 갈등과 그것을 날카롭게 꿰뚫어보는 속 깊은 아이의 시선을 다루었다. 마을의 자연환경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개발의 현장, 눈앞의 이익 때문에 앞일을 생각하지 못하는 어른들 때문에 마을은 어수선하기만 하다.「다슬기 한 봉지」에 등장하는 마을도 사정은 비슷하다. 보상금 몇 푼이 지급된 뒤 도로공사가 시작되는데, 폭발을 일으키는 다이너마이트 소리가 시도 때도 없이 조용한 마을을 뒤흔든다. 마을 곳곳이 공사로 파헤쳐지건만,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보상금 말고는 달리 주어지는 것이 없다. 고속철도건 새로 내는 길이건 그것은 도시 사람의 편리에 관계된 것일 뿐…. 제대로 된 일을 하지 못하고 늘 술에 취해 있는「수정이」의 아버지나「다슬기 한 봉지」의 술 취한 할아버지 같은 인물들은 이렇게 무기력한 상태에 놓인 시골의 상황을 반영하는 듯하다.
한편, 도시에서 놀러와 있던 아이는 귤껍질 속에 박혀 있던 이쑤시개를 빼지 않고 소에게 주었다가 생각지도 못한 결과에 놀라게 된다. 도시에서 우리가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 자연을 파괴하고 있으며, 그 결과는 도시 사람들의 비극이기도 하다는 것을「소」가 잘 보여준다.
하지만 강무지 작가는 작고 낮게 들려오는 희망의 소리를 독자들에게 들려줄 줄 안다. 혼자서 닭을 비롯해 온갖 동물과 식물을 길러내 돈을 벌기도 하는「닭」의 은정이는 “나는 커서도 우리 마을을 지킬 거다. 아나?” “내 꿈을 내가 꾸는데 우리 엄마 아빠가 무슨 상관이고?” 하고 말하는 야무진 아이다.「소」의 할아버지는 철없는 도시 아이의 실수를 너그러운 아량으로 감싸 준다.「수정이」는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아버지에게 끝내 소리를 질러대면서도 마을 사람들의 온정에 힘입어 꿋꿋이 성장해 간다. 시끄러운 공사판 속에서도 마을에서는 염소가 새끼를 낳고, 사람들은 이웃에게 다슬기 한 봉지를 양보하며 살아간다. 물질적 풍요를 얻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삶이 아닌, 공동체 속에서 얻어지는 건강한 삶의 모습을『다슬기 한 봉지』의 전반부에서 돌아볼 수 있다.
도시 속의 작은 섬, 이주민들의 삶
재혼 가정 이야기인「콘서트」, 이주민과 다문화 가정 이야기를 다룬「돈 만 원」「도망자」「바쁘다 바빠, 테스 씨!」등은 대도시 부산이 배경이다.
「콘서트」에서, 음악을 하는 새아빠를 영 받아들이지 못하는 외할머니는 외손녀 선아가 “제대로 된 가정”이 아닌 데서 사는 게 걱정이다. 여성이지만 가부장적 가치관 속에서 살아온 할머니는 뒤늦게 예술을 하겠다고 나선 자신의 딸도, 딸의 재혼 상대도, 그로 인해 외손녀가 성이 바뀔지 모르는 상황도 영 탐탁하지 않다.「돈 만 원」의 길수와 덕수는 아빠가 인도 출신이지만, 아이들은 물론 아빠도 엄연히 한국 국적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길수는 사소한 다툼 끝에 “인도 거지 새끼.” “너그 아빠 나라로 꺼지시지.” 하는 어이없는 욕설을 들어야만 한다. ‘외할머니’로 대변되는 가부장적 가치관과 ‘단일민족’ 신화의 순혈주의 가치관이 다문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충돌을 일으키는 지점을 잘 잡아낸 작품이다.
한편,「도망자」「바쁘다 바빠, 테스 씨!」는 이주노동자 문제를 다루었다.「도망자」의 쪼쪼는 한국에서 일을 하다가 다쳤지만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에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쫓겨났다. 또뚜야는 십 년째 한국에서 일하고 있지만 죄라도 지은 것처럼 늘 불안에 시달려야 한다.「바쁘다 바빠…」의 테스는 이런 이주민들의 고충을 상담해 주는 역할을 자청한다.
강무지의 작품은 이들을 한국인들이 온정을 베풀고 이해해 주어야 하는 피동적인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도망자」의 또뚜야는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돈을 벌어 꿈을 이루고 싶다고 당당히 말하고,「바쁘다 바빠…」의 테스는 자신이 필리핀인임을 잊지 않고 살아가려 애쓰는 사람이다. 두 사람 다 고국에서는 좋은 대학을 나온 지식인으로 살았다. 한국 땅에 산다는 공통점이 있을 뿐, 이주민들 또한 각자 다른 생각과 꿈을 가진 개인들임을 일깨우며, 국적이나 피부색에 따라 열등과 우등을 나누는 것은 참으로 무의미한 일임을 깨닫게 하는 작품이다. 한국 사회는 이제 이러한 ‘우리 모두’가 함께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곳이 된 것이다.
강무지 동화집『다슬기 한 봉지』는 부산 지역과 그 주변의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지방’의 현실을 솔직히 그려내면서도, 자칫 지나치기 쉬운 작은 행복의 순간들을 포착해 따뜻함을 유지하고 있다.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얻는 것 없이 생활의 터전을 잃어만 가는 시골 사람들의 삶, ‘발전’의 그늘에서 희생을 강요당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삶이라는 가볍지 않은 이야기들이지만, 강무지의 작품에는 건강한 생명력과 희망이 살아 숨 쉰다. 얌전한 표준어가 아닌 투박한 부산 사투리와 입말에 실려 전해지는 생생한 우리 이웃 이야기『다슬기 한 봉지』는 서울 중심의 사고에 익숙해진 모든 독자들에게 농촌의 맑은 바람 같은 청량감을 선사해줄 것이다.
“마을 어른들이 뭐 어떻게 할 수 있나? 나라에서 하는 일인데…….”
“답답하다 진짜, 오빠야. 나라에서 시킨다고 잘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따라야 되나? 우리 마을에는 왜가리도 살고, 나도 살고 있다!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나 짐승이나 논이나 밭이나 이런 게 더 중요한 거 아니가? 사람이나 짐승이나 풀이나 전부 다 죽어 가면서 무조건 길만 내면 다가?”
“……”
“어른들 하는 거 진짜 마음에 안 든다! 퉤, 퉤!” _「닭」에서
“꺼져, 이 인도 거지 새끼야!”
길수는 이 말을 듣자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다짜고짜 친구의 멱살을 잡고 교실 바닥을 뒹굴었습니다. 둘이 엎치락뒤치락 하는 통에 교실은 금방 왁자지껄해졌습니다.
“니가 인도 가 봤나, 새꺄!”
“안 가 봤다, 어쩔래? 그래 좋으면 너그 아빠 나라로 꺼지시지!”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길수는 친구의 윗옷을 와락 거머쥐었습니다. 두 사람은 교실 바닥에서 몇 바퀴를 굴렀습니다. 길수는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습니다.
_ 「돈 만 원」에서
작가 소개
저자 : 강무지
부산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국문학을 공부했다. 1999년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동화 「노오란 이불 이야기」가 당선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재판장에 선 비둘기와 풀빵 할머니』, 『다슬기 한 봉지』, 『쌀밥 보리밥』, 『뭘 그렇게 찍으세요』, 『태란이의 피아노』등이 있다.
목차
닭 / 소 / 수정이 / 다슬기 한 봉지 /
콘서트 / 돈 만 원 / 도망자 / 바쁘다 바빠, 테스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