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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나의 고원: 소수자 윤리학을 위하여
돌베개 | 부모님 | 2008.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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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소수자 윤리학을 위하여~
들뢰즈의 <천의 고원> 제대로 읽기!

『천하나의 고원 : 소수자 윤리학을 위하여』. <천의 고원>은 들뢰즈/가타리의 <안티오이디푸스>로 시작된 자본주의와 분열 중 시리즈의 속편이자 들뢰즈의 대표저작이다. ‘21세기는 들뢰즈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푸코의 예언은 이 책을 통해 실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책에 대한 논쟁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 책은 1990년대부터 들뢰즈의 텍스트를 비롯한 탈근대적 사유에 대해 연구해 온 저자가 <천의 고원>에 대해 해설하고 새로운 독해를 제안하는 책이다. 또한 저자는 한국 안에서 이 책에 대한 오해와 오독이 절정에 이른 것은 노마디즘 논쟁을 통해서라 말한다. 그리고 개념적 구분들을 형식논리적 대립으로 이해하거나 처음부터 가치론적으로 실체화하는 태도 또한 강하게 문제를 삼는다.

  출판사 리뷰

기본적인 개념 이해를 통한 『천개의 고원』 제대로 읽기

『천의 고원』(번역본 제목은 ‘천개의 고원’)은 들뢰즈/가타리의 『안티오이디푸스』로 시작된 자본주의와 분열증 시리즈의 속편이자 들뢰즈의 대표저작이다. “21세기는 들뢰즈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푸코의 예언은 『천의 고원』을 통해 실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들뢰즈에 대한 관심은 199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이어져오고 있으며, 수많은 포스트모던 담론이 유행처럼 소개되었다 잊혀져간 지금도 『천의 고원』과 관련된 논쟁만큼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 책은 1990년대부터 들뢰즈의 텍스트를 비롯한 탈근대적 사유에 대해 깊고 넓게 연구해온 저자 이정우가 『천의 고원』에 대해 해설하고 새로운 독해를 제안하는 책이다. 저자는 철학아카데미를 설립한 초창기부터 『천의 고원』에 대한 독해를 계속해왔으며 이 저작의 집필을 위해 오랜 시간 준비해왔다. “한국에서 이 텍스트만큼 희화화되고 속화된 텍스트도 찾기 힘들 것”이라 단언하는 저자는 꼼꼼하게 『천의 고원』 기본 개념들(배치, 다양체, 탈기관체, 리좀, 탈주선, 되기 등)에 대한 기존 해석의 오류들을 지적하고 들뢰즈 사유의 전체를 아우르는 대안적 해석을 제시한다. 이런 지적들이 그간 간헐적으로 발표된 글들에 실리기도 했지만, 최종적으로 정리해내는 것은 이 책이 최초이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기존 번역의 오류들도 꼼꼼하게 지적하고 있으며, 나름의 번역어들을 제안하기도 한다. 가령 흔히 ‘기관 없는 신체’로 번역되는 ‘Corps sans Organes, CoS’를 저자는 ‘탈기관체’로 번역하는데, 이는 ‘기관 없는 신체’라는 번역어가 ‘바깥의’/‘탈’의 의미를 간과함으로써 들뢰즈의 사유에서 ‘재구축’과 ‘재구성’이라는 측면을 보지 못하고 단순한 ‘해체’로 읽어내는 중요하고 근본적인 오독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는 『안티오이디푸스』와 『천의 고원』에서 이 용어가 사용된 방식의 차이를 보지 못하고, ‘얼굴 없는 카오스’로 가는 과정이 아닌 새로운/창조적 삶의 방식들을 구성해내고자 한 들뢰즈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을 읽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속류’ 노마디즘을 넘어서 -‘노마디즘 논쟁’에 대한 최종적 답변

한국 지식계에서 『천의 고원』에 대한 오해와 오독이 절정에 이른 것은 이른바 ‘노마디즘 논쟁’을 통해서라고 할 수 있다. 『천의 고원』 번역 이후에도 여러 논쟁이 있었지만, 특히 이 논쟁은 천규석의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의 출간 이후 『녹색평론』과 『교수신문』, 『한겨레신문』 등의 지면을 통해 이진경, 홍윤기 등의 철학자들이 참여하며 이루어졌는데, 개념적 합의에도 이르지 못한 채 학술 논쟁이라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거친 이야기들만을 쏟아내며 허망하게 중단된 바 있다. 이 책은 이 논쟁을 비롯한 한국 사회에서 들뢰즈에 관한 다양한 오독과 오해에 대한 최종적인 답변으로 읽히기도 한다.
특히 저자는 『천의 고원』의 개념적 구분들을 형식논리적 대립으로 이해하거나 처음부터 가치론적으로 실체화하는 태도를 강하게 문제 삼는다. 가령 “정주적인 것은 나쁜 것이고 유목적인 것은 좋은 것”, “층화는 나쁜 것이고 탈기관체는 좋은 것”, “지표공간(홈 패인 공간)은 나쁜 것이고 특질공간(매끄러운 공간)은 좋은 것”이라는 식의 형식논리적 대립과 가치론적 실체화가, 비생산적인 논쟁들이 발 디딜 수 있는 ‘속류’ 노마디즘의 유행을 조장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런 개념적 구분을 현실에 적용하고자 할 때 우선은 그것을 이미지/인상이 아닌 ‘개념’으로 정확히 이해하는 것과 지역적?시대적?집단적인 무수한 맥락들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들뢰즈/가타리의 사유를 ‘노마디즘’으로서 단순화하고 낭만화하는 것, 기업가들을 매혹시키는 이른바 ‘디지털 유목주의’, 또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유목론(예컨대 몽골 초원에 대한 향수), 자크 아탈리식의 미래학적 노마디즘 등등과 분명하게 구분해야 할 것이다. ‘communism\'/\'socialism\'이라는 말이 무수한 맥락을 가지듯이(극좌적 공산주의로부터 극우적 공동체주의 또는 국가사회주의=나치즘까지) ’nomadisme\'(이것을 굳이 하나의 용어로서 받아들인다면) 또한 무수한 맥락들을 가진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초보적인 구분조차 하지 않을 때, 천규석의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 같은 ‘책’이 더 이상 조악할 수 없는 방식으로 보여주었듯이, 들뢰즈/가타리 사유에 대한 성실한 이애 없이 엉뚱하게 다른 형태의 ‘노마디즘/유목주의’들을 이들의 사유에 덮어씌우는 우를 범하게 된다.”(43쪽)

이러한 비판적 지적은 들뢰즈의 사유를 더 적극적으로 읽기 위한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특히 2장에서는 들뢰즈의 철학이 극복하고자 했던 곳으로 텍스트를 되돌이키며, 이들의 사유를 시대착오적으로 퇴행시키는 다양한 종류의 오독들이 하나하나 비판된다. 들뢰즈의 사유는 근대적 주체론(『천의 고원』에서 말하는 주체는 수동성과 능동성이 겹쳐진 이중적 존재로서의 주체, 근대 이후의 배치들에서 성립하는 주체이다, 149쪽 참조), ‘속류’ 유물론(『천의 고원』에서 말하는 신체는, 속류 유물론이나 생물학적 환원주의를 극복한 것이다. 이들의 신체[기계]는 언표적 배치와 관계 맺으며 새로운 사건/의미를 창출해가는 존재이다, 119쪽, 105쪽 참조), 단순한 구조주의를 넘어서고자 했으며, 이러한 차원으로 논의를 환원시키는 독해들은 무엇보다 텍스트 자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결여한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제도를 거부하는 것과는 관계없다. 요점은 새로운 제도를 창조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본질도 없는 무규정의 상태와는 관계없다. 그것은 유목적인, 비정확한 본질을 창조해내는 문제이다. 창조를 거부로 오인할 때, 가로지르기의 사유, ‘노마디즘’의 사유는 할리우드 청춘영화 같은 것으로 오해된다. 문제가 되는 것은 기성의 수목형 체제를 거부하는 데 있지 않다. 문제는 매개를 통해 수목형을 이루는 특수성들의 체계에서 탈주해 어떻게 특이존재=‘이-것’을 창조하는가이다. [……] 상징계를 초월하는 실재계의 기과함과의 마주침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미학, 그것도 좀 징그러운 미학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마주침(그런 것이 있다면)을 새로운 윤리와 정치를 구성하는 동력으로 바꾸어나가는 일이다.”(51쪽)

“들뢰즈의 주체론은 그의 최초의 저작인 『경험주의와 주체성』에서 시작해 ‘시간의 세 가지 종합’에 근거한 주체론(『차이와 반복』 2장), 사건론 및 관점론과 연계되어 전개된 주체론(『의미의 논리』), (가타리와 더불어) ‘욕망’ 개념과 ‘기계’ 개념을 매개해 새롭게 정식화한 주체론(『안티오이디푸스』), ‘배치’와 연계되어 좀더 구체화된 주체론(『천의 고원』)으로 극히 긴 세월에 걸쳐서 복잡하게 ‘진화’해간 주체론이다. 들뢰즈의 사유에는 주체가 없다(이것은 구조주의를 극복하고 나온 그의 사유를 오히려 구조주의로 회귀시켜 이해하는 것이다)라든가 주체를 절대화한다(이것은 들뢰즈의 주체를 상징계를 떠난 어떤 추상적인 존재로 오인하는 것이다. 그러한 주체론은 낭만적인, 비현실적인 주체론에 불과하다. 모든 주체는 상징계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진정한 ‘주체’는 상징계와 투쟁을 시작할 때 비로소 탄생하며, 그것을 변형시켜나가면서 스스로도 변형시켜가는 존재이다)는 식의 생각은 피상적인 관찰일 뿐이다.”(52쪽)

소수자 윤리학의 제안?『천의 고원』이 보여주는 새로운 윤리학의 단초

그렇다면 왜 오늘날 우리가 하필 『천의 고원』을 읽어야 하는가? 왜 제대로 읽어야 하는가? 그것은 이 텍스트가 오늘날 지배의 방식을 이해하고 그에 따른 실천의 방식을 정초할 윤리학(에티카)의 출발점인 ‘생성존재론’이기 때문이다.

“개체도, 유기적 조직체도, 추상적 존재도, 언어적 구성물도, 항구적 실체도 아닌, 즉 기존의 존재론으로는 포착하기 힘든 이런 존재, 그럼에도 강의, 야구 경기, 시위, 결혼식, 선거 등등 너무나도 일상적인 존재, 우리의 매일의 삶을 구성하는, 너무나도 일상적이고 당연한 것들을 그러나 전혀 새로운 눈길로, 참신한 존재론으로 포착하기. 사유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34쪽)

“가장 가까운 것을 가장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기. 우리의 삶을 가득 채우고 있는 배치들, 사건들에 더 적절하고 참신한 존재론을 부여하기. 그리고 그런 존재론으로 파악된 삶으로부터 윤리학적-정치학적 귀결들을 이끌어내기. 요컨대 배치의 존재론을 수립하고 그에 근거해 새로운 실천철학=‘에티카’를 끌어내기, 이것이 『천의 고원』의 목적이다.”(33쪽)

저자는 이 ‘생성존재론’을 이해하기 위해 배치와 리좀의 개념에서 시작해 기호체제와 탈주의 개념을 거쳐 드디어 ‘되기’의 고원으로 들어선다. 이 고원은 윤리학과 정치학이 만나는 지점이며, 이러한 독해를 통해 들뢰즈의 사유는 ‘소수자 윤리학/정치학’이라는 문제의식으로 재정립된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해설서나 소개서가 아니라 저자 이정우의 문제의식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참고문헌이 된다. 이 책의 3장에서는 ‘소수자’, ‘다양체’, ‘몰적 주체와 대비되는 분자적 주체’에 대한 개념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에도 적용될 수 있는 수많은 비판적 사유의 단초들이 제시된다.
저자에 따르면 ‘소수자-되기’, ‘여성-되기’, ‘분자-되기’는 니체, 베르그송, 화이트헤드, 하이데거의 생성존재론, 즉 동일성에서 차이로 이행하는 사유를 넘어서기 위한 어떤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개인’의 차원에서 논의되는 ‘정체성의 정치’, ‘차이의 정치’를 넘어선 어떤 것이기도 하다.(그것을 말하자면, 노동 운동에서 소수자 운동으로 넘어가는 차원의 문제의식이 아니라 소수자 운동에서 노동 운동으로 넘어가는 차원의 문제의식인 것이다. 이것이 단순한 회귀나 퇴행이 아님은 말할 필요도 없다. 228~231쪽 참조) ‘소수자’란 생물학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천의 고원』을 경유한 이정우의 사유에서, 탈정치화한 포스트[脫]모더니즘을 새롭게(‘다시’가 아니라) 탈피하여 정치화하기 위한 방향, 탈근대의 비판적 사유를 새롭게 탈피하여 창조적 사유로 거듭나게 하기 위한 방향을 그 단초나마 일별할 수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언어와 한국어를 대립시킬 때, 그들의 언어는 소수의 소수자 언어로 존재한다. 반면 외국인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한국어-되기를 통해 다수저로서의 한국어를 흔들 때, 이들의 한국어-되기는 능동적으로 새로운 한국어를 창조해나간다. 소수자-되기가 결코 소수자-이기여서는 안 되는 이유, 문자 그대로 소수인 소수자-이기들이 아무리 많이 생겨나도 생성의 능동성을 취할 수 없는 이유, 소수자 문학이 소수어로부터가 아니라 다수어로부터 출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수자-되기의 윤리학이 보편적인 소수자 운동의 선험적 조건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227쪽)

  작가 소개

저자 : 이정우
1959년 충북 영동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서울대학교에서 공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아리스토텔레스 연구로 석사학위를, 미셸 푸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5~1998년에 서강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담론의 공간』(1994), 『가로지르기』(1997), 『인간의 얼굴』(1999)에서 \'전통과 근대 그리고 탈근대\'의 문제를 다루었으며, 『접힘과 펼쳐짐』(2000), 『주름, 갈래, 울림』(2001), 『사건의 철학』(2003)에서는 전통과 현대, 과학과 철학을 회통하는 존재론을 시도했다. 2000년 대안철학학교인 철학아카데미를 창설해 시민교육에 힘썼다. 『기술과 운명』(2001), 『개념-뿌리들』(2004), 『탐독』(2006), 『세계의 모든 얼굴』(2007) 같은 교양서들을 펴냈다. 2007년 철학아카데미를 동교동으로 옮긴 후 집필과 후학 양성에 몰두하고 있으며, 마실네(마포실천인문네트워크)의 공동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다. 『신족과 거인족의 투쟁』(2008), 『천하나의 고원』(2008)을 썼으며, 『세계철학사 1: 지중해세계의 철학』, 『소수자 정치학』, 『소은 박홍규와 서구 존재론사』를 쓰고 있다.

  목차

1장. 리좀이란 무엇인가
1. 배치란 무엇인가
2. 탈기관체, 혼효면, 추상기계
3. 리좀을 가지고서 무엇을 할 것인가
2장. 기호체제와 탈주선
1. 내용과 표현
2. 기호체제들
3. 탈주선 긋기
3장. ‘되기’의 윤리학
1. ‘신의 심판’을 넘어: 동물-되기
보론: 존재의 일의성
2. 소수자 윤리학 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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