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시인동네 시인선 시리즈 46권. 송미선 시인의 시적 관심은 소외되고 방치된 것들을 향하고 있다. 시인은 이들의 다양한 존재 양태들을 순간순간 접하고 교감하면서 어떤 연결 고리를 찾기 위해 힘을 쏟는다. 그가 표현하는 시의 내용은 대개 젊음의 상실에 대한 회한과 미끄러지고 어긋나는 불합치의 시간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나타난다.
특히 독거자의 삶이 자주 묘사되는데, 이는 시인 자신의 황량한 내면 풍경을 그들의 삶과 동일시하려는 무의식이 반영된 듯하다. 진술적인 문장보다는 묘사적인 문장을 선호하는 시인은 전지적 관찰자 시점을 견지하면서 안팎의 전말을 드러내고자 한다. 시에 표현된 인칭들도 대부분 ‘그녀’이거나 ‘그’인 것을 보면 시 속에 ‘나’를 개입시키지 않겠다는 의도와 전략을 읽을 수 있다.
한편으로 “발목과의 불화를 숨기며 가시가 구두를 신는다”(「문신」), “집을 뛰쳐나온 칼이 확성기 입속으로 뛰어든다”(「칼」), “키우던 날개에서 뿌리가 돋았다”(「죄수의 딜레마」) 등에서 보이는 발랄한 활유들은 송미선 시의 특징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 리뷰
송미선 시인의 시적 관심은 소외되고 방치된 것들을 향하고 있다. 시인은 이들의 다양한 존재 양태들을 순간순간 접하고 교감하면서 어떤 연결 고리를 찾기 위해 힘을 쏟는다. 그가 표현하는 시의 내용은 대개 젊음의 상실에 대한 회한과 미끄러지고 어긋나는 불합치의 시간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나타난다. 특히 독거자의 삶이 자주 묘사되는데, 이는 시인 자신의 황량한 내면 풍경을 그들의 삶과 동일시하려는 무의식이 반영된 듯하다. 진술적인 문장보다는 묘사적인 문장을 선호하는 시인은 전지적 관찰자 시점을 견지하면서 안팎의 전말을 드러내고자 한다. 시에 표현된 인칭들도 대부분 ‘그녀’이거나 ‘그’인 것을 보면 시 속에 ‘나’를 개입시키지 않겠다는 의도와 전략을 읽을 수 있다. 한편으로 “발목과의 불화를 숨기며 가시가 구두를 신는다”(「문신」), “집을 뛰쳐나온 칼이 확성기 입속으로 뛰어든다”(「칼」), “키우던 날개에서 뿌리가 돋았다”(「죄수의 딜레마」) 등에서 보이는 발랄한 활유들은 송미선 시의 특징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의 시선이 외부로 향할 때, 시인의 내면은 끊임없이 암시 받거나 은유 받는다. ‘저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와 같은 질문의 강박을 불러온다. 몇몇 시편들을 뽑아서 감상해보자.
철 지난 옷 속에 넣어두었던 나프탈렌을 싼 신문지 조각을 펼쳐보았다 탈색되지 않은 가십거리가 고스란히 살아 있다 해마다 바꿔주던 알맹이, 조금씩 휘발되던 것에 묻혀 달아나던 두통이 가십거리에 걸려 움트고 있다 어제 넘어졌던 자리에서 또 넘어진다 까진 무릎에서 피가 흐르지만 그녀는 박하 향기를 떠올렸다 바닥난 향기는 다시 흔들기만 하면 되살아났고, 나프탈렌이 소문을 거둬가고 난 뒤로 비가 내리지 않았다 목이 마를 때마다 우물을 묻어버렸다 잠이 사라졌고 꿈속에 좀벌레가 꼬이기 시작했다 눈을 뜨고 잠을 자는 그녀,
그녀는 나프탈렌을 먹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햇빛이 쑥 들어온다 햇빛이 구름에 뿌리를 내린다면 하늘은 분주해질까 그녀는 나프탈렌을 판다는 암표상을 만나기 위해 중앙분리선이 휘발되기 전에 길을 나서고
입속에 고여 있던 곰팡이가 자꾸 기어나온다
-「나프탈렌」 전문
이 시는 나프탈렌의 물질적 특성을 한 사람의 고독한 삶과 교묘하게 연결시키면서 마치 드라이플라워(박제)의 느낌처럼 몽환적이고 병적인 중독성을 잘 드러낸 수작이다. 나프탈렌은 특유의 냄새로 휘발하면서 다른 것들의 부패를 막아준다. 이 시에 나오는 “그녀”는 독거자다. 핍진한 일상을 살아내느라 짓무르고 곪은 그녀에게 나프탈렌은 고마운 위안이다. “나프탈렌을 싼 신문지 조각을 펼쳐보았다 탈색되지 않은 가십거리가 고스란히 살아 있다”는 문장을 통해 그녀는 기억이 소실되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기억은 아픔과 슬픔이라는 습기를 동반하기에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기억하기 싫지만 기억을 잃는 것은 두려운 모순 상황에 빠진 그녀는 나프탈렌에서 구원을 얻는다. 나프탈렌은 세파의 습기를 제거해주면서 영혼이 탈각된 가수(假睡) 상태와도 같은 어떤 세계로 진입시켜준다. 그녀는 나프탈렌의 이러한 점에 매료된다. 나프탈렌을 곁에 두면 육신이 더 이상 늙지 않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녀는 나프탈렌을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흔들기만 하면 다시 되”살아나는 나프탈렌의 향기에 중독된 그녀는 어느새 나프탈렌 신봉자가 된다. 기억력이 쇠락해져 갈수록 그녀는 점점 더 많은 나프탈렌을 모아야 한다는 결핍강박에 시달린다. 그리고 마침내 “잠이 사라졌고 꿈속에 좀벌레가 꼬이기 시작했”으며 “눈을 뜨고 잠을 자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그녀는 나프탈렌을 판다는 암표상을 만나기 위해 중앙분리선이 휘발되기 전에 길을 나서고”라는 구절로 보아 그녀의 소망은 결국 비극(죽음고독사)을 맞을 것임을 암시한다. ‘휘발되는 냄새로 휘발되는 기억을 막는다’는 모순 발상이 이 시의 미학적인 성취를 높이고 있다.
비행기가 지나가는 하늘
작가 소개
저자 : 송미선
경남 김해에서 태어나 동아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11년 『시와사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시와사상』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15년 경남문화재단 창작지원금을 수혜했다.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팬터마임 / 박쥐 / 양말 / 죄수의 딜레마 / 예의 없는 나비 / 죽비 / 당신의 반편 / 초대장 / 낙엽의 조건 / 악수 / 동화 수선 / 절규 / 필요한 것은 테이블입니다 / 풍선 / 초
제2부
꼬리연 / 시드는 물 / 문신 / 두 번 접다 / 블루스를 추자 / 나프탈렌 / 모닝콜 / 구걸 / 낮잠 / 사다리, 벨을 누르다 / 카페 아즐리아 / 껍질이 기록되는 수거함 / 칼 / 무대
제3부
빨간 티코의 위장술 / 달에게 방을 얻다 / 도둑들 / 구름의 변주 / 반입금지 / 누수 / 바겐세일 / 날림공사 / 스위치를 올리다 / 드라이플라워 / 멀미 / 빈말입니다 / 네온사인 / 강 / 도굴
제4부
찾아주세요 / 주홍글씨에게 안부를 묻다 / 꽃게 / 구멍가게 / 보호막의 그늘 / 물메기의 등 / 손목 / 엄마의 인주 / 춘보 / 수하리 21번지 / 하루의 무게 / 쉬어가는 곳 / 팽이 / 알게 되다 / 감또개
해설 천 개의 생각과 한 편의 시 / 정병근(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