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아들을 가만히 응시하는 아빠의 눈 속에서
유유는 웃고, 달리고, 빛난다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 등 국민의 사랑을 받던 어른들이 세상을 떠난 후 우리는 자연스레 슬픔이나 공허한 감정에 시달린다. 누군가를 먼 곳으로 떠나보낸 후, 혹은 죽음이 멀지 않은 사람의 곁을 지키며 우리는 어떤 용기를 낼 수 있을까? 곧 이별해야 할 그 사람이 사랑하는 가족이라면 어떨까? 『가만히, 조용히 사랑한다』의 저자는 이런 질문으로부터 이 책을 썼다. 라몬 룰 상 수상작가인 마리우스 세라의 자전적 에세이는 2008년 말 카탈루냐어로 출간되어 15주 넘게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고, 곧바로 스페인과 이탈리아 대형 출판사와 계약을 맺으며 출판계를 놀라게 했다.
이 책의 원제 ‘Quieto’는 음악 용어로는 ‘조용히, 가만히’를 뜻하는 스페인어.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인해 성장을 멈춘 채 가만히 살아갈 수밖에 없는 유유의 모습을 상징하는 단어이자, 그런 아들 곁을 담담히 지키며 애정을 보내는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제목이다. 아들이 평균 7년 정도밖에 살지 못한다는 병을 선고받자, 아빠와 엄마, 누나 카를라는 유유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가능한 한 많은 나라를 여행하기로 한다. 그리고 아이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유유와의 일곱 해를 온전히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시시각각 찾아오는 절망 가운데 작은 행복의 순간들은 더욱 빛을 발하고, 슬픔 앞에서 한없이 나약하지만 삶의 축복을 온몸으로 껴안는 유유의 가족이 마음 깊은 곳을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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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나는 늘 유이스를 대담한 항해사로 상상한다
이 글은 아들의 항해일지가 될 것이다
한 아이의 아버지이자 한 존재로서 인간적인 선택을 묻는다
2009년 6월 14일 바르셀로나 오디토리움에서 특별한 콘서트가 열렸다. 『불의 전차』를 배경음악으로 한 아이가 달리는 폴리스코프 애니메이션이 상영되었고, 카탈루냐 및 스페인의 유명한 문인과 가수들이 참석한 가운데 가수 브루노 오로가 ‘유유’라는 타이틀의 노래를 불렀다. 선천적 뇌 질환으로 인해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아들 유유를 격려하기 위해 아버지 마리우스 세라와 그의 친구들이 기획한 콘서트였다. 그리고 콘서트의 열기가 채 식지 않은 지난 7월 24일, 유유가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이 신문지면에 보도되었다.
한 자세로 가만히 이 세상에 머물다간 아이, 그리고 그런 아들이 달리는 장면을 늘 꿈꿔온 아버지. 그들이 함께한 여행의 기억을 담은 에세이 『가만히, 조용히 사랑한다』(원제: Quieto)가 푸른숲에서 출간되었다. 라몬 룰 상 수상작가인 마리우스 세라의 자전적 에세이는 2008년 말 카탈루냐어로 출간되어 15주 넘게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고, 곧바로 스페인과 이탈리아 대형 출판사와 계약을 맺으며 출판계를 놀라게 했다. 스페인 언론 『아부이Avui』는 “개인의 경험을 문학의 차원으로 승화시켰다. 감동적이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보기 드문 작품이다”라고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선고받은 인간은 어떻게 용기를 낼 수 있을까?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 등 국민의 사랑을 받던 어른들이 세상을 떠난 후 우리는 자연스레 슬픔이나 공허한 감정에 시달린다. 누군가를 먼 곳으로 떠나보낸 후, 혹은 죽음이 멀지 않은 사람의 곁을 지키며 우리는 어떤 용기를 낼 수 있을까? 곧 이별해야 할 그 사람이 사랑하는 가족이라면 어떨까? 『가만히, 조용히 사랑한다』의 저자는 이런 질문으로부터 이 책을 썼다.
이 책의 원제 ‘Quieto’는 음악 용어로는 ‘조용히, 가만히’를 뜻하는 스페인어.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인해 성장을 멈춘 채 가만히 살아갈 수밖에 없는 유유의 모습을 상징하는 단어이자, 그런 아들 곁을 담담히 지키며 애정을 보내는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제목이다.
아들이 평균 7년 정도밖에 살지 못한다는 병을 선고받자, 아빠와 엄마, 누나 카를라는 유유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가능한 한 많은 나라를 여행하기로 한다. 그리고 아이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유유와의 일곱 해를 온전히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시시각각 찾아오는 절망 가운데 작은 행복의 순간들은 더욱 빛을 발하고, 슬픔 앞에서 한없이 나약하지만 삶의 축복을 온몸으로 껴안는 유유의 가족이 마음 깊은 곳을 파고든다.
이 세상에 가만히 머물다간 아이, 아들이 달리는 장면을 꿈꿔온 아버지
그들이 함께한 여행의 기억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린 일곱 살 아들과 아버지, 병원, 가까이 있는 죽음, 가족 여행……
『가만히, 조용히 사랑한다』에서 발견한 이런 키워드들은 죽음이나 질병의 고통 앞에 선 이들에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자기 앞에 주어진 길을 걸어갈 용기를 줄 거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그런데 이 책은 거기서 한걸음 나아간다. 우선, 마음대로 몸을 가눌 수도 없고 더 이상 성장하지도 않는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의 고통과 슬픔이 전면에 드러날 거라는 우리의 예상을 비껴간다. 대신 아이가 주는 기쁨의 순간들, 찬란한 축복의 순간들이 잔잔히 펼쳐진다. 평범하지 않은 아들과 함께 세계를 여행하면서, 그 아이를 통해 성장의 의미를, 사물의 이면을, 관점의 전환을 발견하는 아버지의 일기는 흡사 하이쿠처럼 담담한 감동을 안겨준다.
행정 용어로는 85퍼센트의 장해를 지닌 장애인이다. 하지만 집에서는 이런 모든 꼬리표들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누가 뭐라 해도 유이스는 나의 둘째 아이다. 그 애한테는 조금 특별한 도움이 필요하다. 그것은 단지 우리가 몸이 약한 아들을 돌보는 데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매달린다는 뜻이다. 우리 부부와 딸아이는 유이스가 15퍼센트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절대 포기하지 않고 돕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항상 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대개는 어떤 방법으로든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_서문에서
아버지로서 아들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아들을 위해 세상에 숨어 있는 행복을 찾아내다
아들은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유가 아들이라는 사실이 변하는 것도 아니고, 함께하는 순간들이 늘 불행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갖는 것도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유유의 가족은 아이가 이 세상에 머무는 시간을 찬란한 기쁨의 순간들로 만들어간다. 고통을 겪으며 우리는 그 슬쓇에 압도되어 절망을 택할 수도 있고, 유유의 가족처럼 아이와 함께하는 짧은 시간들을 더 소중히 여기며 ‘순간을 살 수도’ 있다. 이 책은 고통이라는 피할 수 없는 인간 조건을 가진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패배주의이며, 반대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은 유머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어느 과학박물관에서 가장 이완된 뇌 활동을 보인 사람이 이기는 게임을 하면서 유유의 가족이 보여주는 자연스러운 가족애는 우리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여기서 유유는 ‘일체의 사고 활동을 할 수 없는 비정상아’가 아니라, 머리를 가장 잘 비우는 ‘멍 때리기’ 부문의 챔피언이다. 유로디즈니에서 유유가 ‘VIP’임을 깨달아가는 장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누나 카를라의 시선으로 표현되는 유유의 승리는 이들 가족이 장애를 가진 아이와 함께 어떻게 삶의 순간순간을 기쁨으로 채워가는지를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카를라가 흥분하여 편을 바꾼다. 동생의 두 번째 승리에 열렬히 박수를 보내고, 엄마를 상대로 한 세 번째 승리에는 더욱더 열광한다.
유유는 ‘멍 때리기’ 부문의 최우수 선수다. 그 부문에서라면 세계 챔피언과 맞서도 이길 기세다. 뇌를 쓰지 않는 능력이 무궁무진한 듯하다.
유유 엄마가 머리에 띠를 두른 유유를 온갖 각도에서 사진으로 남기는 동안, 카를라와 나는 유유를 “멍 때리기 세계 챔피언”, “세계 최고의 게으름뱅이”, 그 외에도 밴쿠버 과학박물관의 기발한 게임실에서 우리가 지어낸 온갖 타이틀을 갖다 붙이며 소리소리 친다. _129-130쪽
“VIP 카드가 뭐예요, 아빠?”
[...]
“VIP는 영어로 아주 중요한 사람이라는 뜻이야.”
딸의 눈이 커진다. ‘I’가 뜻하는 ‘중요한(Important)’이라는 단어가 무척이나 인상 깊었나 보다.
“아빠가 그렇게 중요해요?”
딸이 묻는다.
나는 아이의 순진무구함에 그만 두 손을 들고 미소를 짓는다.
“내가 아니야. 중요한 사람은 네 동생이지.”
“유유가요?”
[...]
“너는 동생을 잘 몰라.”
내가 못을 박는다.
[...]
우리는 유이스의 VIP 카드 덕분에 줄도 서지 않고 유로디즈니의 놀이기구란 기구는 다 타며 사흘을 꽉 채워 보낸다. 카를라는 보는 것마다 빼놓지 않고 동생의 귀에 전달하는 남미 방송국의 사회자로 변신한다. 딸아이의 생글거리는 눈에서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감탄이 마구 뿜어 나온다. 유유가 정말로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우리의 특별한 VIP라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다. _164~166쪽
아들을 위해 세상 앞에서 정당한 분노를 표현하다
장애인 대표 언론인 「에이블뉴스」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등록 장애인은 3, 4% 수준이지만, 추정 장애인 인구는 10%에 이른다고 한다. 주변의 열 명 중 한 명은 장애를 갖고 살아간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장애에 대한 인식은 한없이 척박하기만 하다. 장애아를 둔 부모는 사회적 약자로서 그저 모든 것에 순응하고 집 안에 갇힌 채 살아갈 아이의 운명에 대해 한탄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책의 저자는 아들이 통상 7년밖에 못 사는 병에 걸렸다는 선고를 듣고 아들과 이별하기 전에 되도록 여러 곳을 여행하기로 결심한다. 휠체어로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그러나 세상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유유네 가족은 이탈리아의 유명 레스토랑에서 아들이 장애아라는 이유만으로 모욕을 당하기도 하고, 휠체어가 다니는 보도를 자동차들에게 침범당하고 불같이 화를 내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는 끝까지 당당함을 잃지 않는다. 장애아도 평범한 아이들처럼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을 수 있는 권리가 있고, 휠체어로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그는 잊지 않는다. 그리고 정당한 분노를 표출한다.
우리는 여기서 건강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한다. 장애아를 둔 우리 사회의 부모들도 음지에 숨는 대신, 이처럼 당당하게 자기 아이의 권리를 세상에 소리칠 수 있는 세상을 꿈꾸게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휠체어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안 했잖아요.”
“뭐라고요?”
여주인은 모든 화를 휠체어에 집중 포화한다. 너무 크다는 것이다. 그것도 대단히. 지금은 있지도 않은 옆자리 손님들에게 폐가 될 거란다. 아직 8시 30분도 안 된 시각이다. 2층의 스무 개쯤 되는 탁자들 중에 단 두 곳에만 손님이 앉아 있다. 우리는 세 번째 탁자를 차지하기 위해 투쟁한다.
나는 탁자에 있는 의자 네 개 중 하나를 잡아 뒤로 빼고 그 자리에 유유의 휠체어를 밀어놓는다. [...]
“내 아들이 옆 사람들에게 폐가 된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_112~113쪽
나는 이곳은 사람 다니는 보도이지 당신 차를 대는 곳이 아니라고 대꾸한다. 그는 그럼 자기는 어쩌느냐고, 아이를 어디에 내려주면 좋겠느냐고 반문한다. ?는 대답한다. 당신 아들은 두 다리가 있으니 교문까지 7미터를 아무 문제없이 걸어갈 수 있다고. 그런 다음, 그렇게도 같이 가고 싶으면 대중교통으로 갈 수도 있다고 말해준다. 아마 그건 그의 기준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일 것이다. 뒤에 늘어선 차들이 조바심을 내기 시작한다. 경적 소리가 빵빵 하고 울리기 시작한다. 유유와 나는 보도 위의 한 지점에서, 당당하게 꿈쩍도 하지 않는다. _88~89쪽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면, 명상은 본인의 의지로 하지만 아들은 어쩔 수 없이 그런다는 것이다. 이처럼 쉽게 상처받는 아들이 있어, 예전 같으면 고통스럽게 느꼈을 수많은 역경 앞에서 나는 상처받지 않는 존재가 된다. 아들이 그처럼 약한 존재이기에 어쩔 수 없이 내가 힘을 비축한다. 이런 내 모습은 숨 쉬는 것만큼 당연하다. 아들과 함께 있기에 나는 불사신이 된다. _144~145쪽
슬픔 속에서 발견하는 삶의 역설에 관하여
“내가 할 수 있고 우리가 할 수 있다면, 그건 단지 아들이 할 수 없기 때문이리라”
물론 슬픔보다 기쁨을 찾아 나서려 노력하지만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슬픔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저자는 조카가 댄스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을 보고, 목조차 가누지 못하고 자신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아들의 모습을 생각하며 슬픔의 나락에 빠지기도 한다. 자신과 소통하고 있다는 그 어떤 신호도 주지 않는 무심한 아들에게 한없이 말을 걸며 하늘의 표식(계시)을 기다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행위는 자기연민으로 끝나지 않는다. 끝내는 거기서 ‘살아갈 희망’을 찾아내고, 아들에게로 돌아온다. 그리하여 이 책은 자식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조건 희생하고 내어주는 것이라는 우리네 사고방식과 조금은 다른 메시지를 준다. 죽음, 이별, 질병으로 인한 슬픔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 감정을 드러내어 표출하는 것이 시련을 이기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다.
오리올이 앞장서서 이끄는 축구 특공대가 플로어를 지배하는 동안, 강박적인 생각 하나가 몸속 저 깊은 곳에서 생겨나 응어리가 되어 목을 타고 올라오더니 듣도 보도 못한 강력한 암세포처럼 내 뇌리에 와 박힌다. 내-아-이-는-절-대-로-못-할-거-야. [...] 유이스가 여느 사람들처럼 할 수 없는 일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잘 알고 있다. 아니, 오래전부터 잘 안다고 믿었다. 하지만 『불쌍한 내 마음을 더는 아프게 하지 마』라는 곡의 춤 스텝을 결코 배우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저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더할 수 없는 슬픔에 잠기게 된다. 얼마나 슬픈지 활짝 뜬 채 깜박이지도 않는 아들의 눈과 마주치자 그 무정함에 상처를 받아 슬그머니 눈물이 올라온다. 이렇게 눈물을 흘리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_57~58쪽
더 나아가 저자는 이 책이 단순한 장애극복기로 자리 매김 되는 것을 거부한다. 유유가 달리는 사진을 표지로 한 의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삶의 역설을 보여주려 한다.
바로 유유가 가만히 있으면 있을수록, 그를 둘러싼 주위(병원, 특수학교, 이동하는 휠체어)의 움직임은 커지고 반대로 정지되어 있는 유유의 존재감은 커진다는 것. 유유가 약할수록 아버지는 불사신이 된다는 것. 유유가 표현을 하지 못하기에,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선명히 드러나는 메시지가 있다는 것. 그리하여 ‘정상’이라는 범주 안에서 우리가 지나쳐버린 수많은 계시들, 신호들, 축복들, 그리고 무한한 현실을 에워싸고 있는 또 다른 공간과 시간과 어둠의 이면들로 유유는 가만히 우리의 손을 이끌어 인도한다. 가만히, 그곳을 지켜보기를, 그래서 우리가 무언가를 발견하기 바라는 듯.
오늘은 유유의 첫돌이다. 우리는 성대한 파티를 준비했고, 집안사람들이 모두 와주었다. 유유는 우리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비춰주는 거울이다. 유유를 사랑하면서도 다가오길 두려워하는 이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가만히 있는 유유를 꼭 잡고서 마치 조난에서 구해주고 싶다는 듯 으스러져라 끌어안는다. 무심하고 싶은 사람은 짐짓 무관심한 척하기도 한다. 늘 그렇듯이 오늘의 파티도 많은 동사들로 가득하다. 사람들이 오고, 마시고, 웃고, 담배 피우고, 먹고, 떠들고, 키스하고, 노래하고, 작별한다. 그리고 분명 이외에도 더 많은 동사들이 있었으리라. _131쪽
죽음 뒤에 남겨진 사람, 그러나 슬픔에 매몰되지 않으려는 시지프스
저자는 이 책에서 내내 언어유희에 집중한다. 수상구조대에서 아들이 치료를 받는 동안, 빨간 표지판에 적힌 응급실(PRONTO SOCCORSO)이라는 단어를 보며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아들의 간질발작을 ‘기지개켜다’라는 단어로 표현하며 희망을 찾아보려 한다. 그저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것으로 오인될 수도 있는 이 끈질긴 시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마치 강도 높은 연습과 훈련룀로 재활훈련에 성공한 운동선수들의 태도를 연상시킨다. 언어유희, 삶의 아이러니를 포착하는 블랙 유머, 이것들은 자칫 슬픔에 매몰될 수 있는 저자로 하여금 자신을 바로세우고 고통을 몰아붙일 수 있는 무기와도 같다. 캐나다 고속도로 식당에서 큰 소리로 기도하기 위해 아들의 휠체어 옆에 무릎을 꿇은 노인을 볼 때도, 유유의 기저귀에서 올라오는 냄새를 맡고 바티칸의 표식을 받아들일 때에도 그런 그의 의지는 살아 있다. 저자는 인터뷰에서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 슬픔에 잠기긴 했지만 “유유가 남겨준 많은 추억과 그 아이가 자신도 모르게 우리에게 전해 준 힘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또 책 속에서 딸아이가 ‘장애인 동생을 둔 누나’로만 자신을 규정하지 않기를 바란다고도 말했다. 슬픔을 피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려는 노력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먼저 떠난 이들이 남겨진 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카를라가 상을 탄 글을 읽으면서 나는 오에가 자신을 정의했던 말을 떠올린다. 나는 카를라가 무엇보다 장애인의 누나로 자신을 정의하지 않기를 바란다. 장애인 아버지라는 타이틀을 내 이력서의 앞머리에 놓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실제로 장애인의 아버지이며 그 역할을 하고 있고, 바로 지금 스스로 좀 더 당당해지리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_151쪽
영원을 향해 달리는 아이, 유유
“내 아들이 걷는 모습을 보고 싶어, 호르디.
아니, 그보다 더 대단한 거야. 아들이 달리는 모습을 보고 싶어!”
책의 마지막에서 아버지 마리우스 세라의 오랜 소원은 드디어 현실이 된다. 사진작가 호르디 리보와의 뮤토스코프(이미지를 연속해서 넘겨 보여줌으로써 움직이는 효과를 내는 활동사진) 작업을 통해 아들이 달리는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슬픔을 가능한 한 내리누르며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담히 읽어 내려온 독자들은 책의 뒷부분, 아이가 달리는 것처럼 보이는 활동사진 부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감정의 클라이맥스를 겪는다.
앞부분이 아버지의 관점에서 적어 내려간 일기라면, 뒷부분은 아이의 시선으로 그 모든 추억의 순간들을 역설적으로 재생하는 부분이다. 아이의 목소리로 흐르는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잊지 않습니다”라는 대목에 이르면 감히 말하건대, 독자들은 눈물을 흘려도 좋을 것이다. 고개조차 가누지 못하는 아이 유유가 마침내 달리기를 한다. 어찌나 잘 달리는지 독자가 책을 덮을 때면 그 아이가, 아버지가 영원한 망각에서 구해낸 그 아이가 전속력으로 독자의 마음속으로 달려오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나는 엄마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나는 아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나는 누나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기에 나는 아무것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엄마를 잊을 수 없습니다. 엄마의 이름도, 벨벳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도, 내가 추워 보이면 따뜻하게 감싸주던 포근한 팔도, 만년 소녀 같은 미소도, 발작을 할 때마다 내게 선사하던 평온함도 잊을 수 없습니다.
나는 아빠의 이름도, 아빠가 들려주던 이야기도, 옷을 입히기 위해 나를 안고 달래주던 모습도, 가끔씩 나던 담배 연기도, “유유, 기분이 어떠니?” 하고 외치던 소리도 잊을 수 없습니다.
무릎을 꿇고 나를 위해 기도해준 농부도, 농부가 하느님께 했던 말도, 엄마 아빠가 짓던 바보 같은 표정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잊지도 못합니다.
사람들은 나를 사랑하고, 나는 그 사실을 잊지 못합니다.
나는 사랑하지만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그래서 아무것도 잊지 않습니다.
_본문에서
추천평
일곱 살을 넘기기 어렵다는 아들과 세계 곳곳을 여행한 아버지의 특별한 ‘항해일지’. 성장을 멈춘 아들, 하지만 슬픔 앞에 주저앉지 않고 작은 기적을 만들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삶의 축복을 누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 이해인 (수녀ㆍ시인)
작가 소개
저자 : 마리우스 세라
1963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났다. 카탈루냐어로 작품을 쓰며 2006년 소설 『광대극』으로 카탈루냐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라몬 룰 상을 수상했다. 1996년 『나의 삼촌』이라는 소설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고, 현재는 텔레비전에서 책 소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언론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 작품 외에도 10여 권의 책을 썼다.
역자 : 고인경
한국외국어대학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스페인 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주한 멕시코 대사관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스페인어권 통번역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전쟁의 풍경』, 『그리고 갑자기 천사가』, 『이둔의 기억』, 『천상의 선율을 담은 모차르트』, 『세계 최고의 극작가 셰익스피어』, 『그림자를 훔친 남자』, 『생물의 진화를 관찰한 찰스 다윈』, 『도둑맞은 인류의 비밀을 찾아라』 등이 있다.
목차
서문
시작 : 기지개를 켜다
과학 : 낫지 않을지도 모른다
믿음 : 농부의 기도
표식 : 신호를 보내줘
메시지 : 유유씨, 계세요?
성 : 유유에게 여자친구를
구분 : 훈장을 단 아버지들
달리기 : 단 하루만 달릴 수 있다면
소망 : 손 영화
연금술 : 약 나와라 뚝딱
낱말 : 내게도 비밀을 말해줘
자기장 : 자석 치료 받는 날
자료 : 평균 수명 일곱 살
유양돌기염 : 병명을 아는데 뭐가 문제죠
분노 : 휠체어를 무시하지 말라고요
과격함 : 일곱개의 명함을 가진 의사
매혹 : 한밤중의 수상구조대
부끄러움 : 일곱 계단을 부탁해
다름 : 눈에 띄는 유유
같음 : 눈에 띄지 않는 유유
승리 : 멍 때리기 챔피언
송가 : 유유의 첫돌이에요
죽음 : 클라라를 보내며
표현 : 누나의 글짓기
연약함 : 너무도 연약한 아이
꽃 : 슬픔의 꽃, 기쁨의 꽃
감탄 : 유로 디즈니의 VIP
마법 : 산타클로스에게 소원을
영원 : 영원을 향해 달리다
달리다
옮긴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