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천자문은 후량의 주흥사가 머리카락이 백발이 되도록 고심하여 하룻밤에 저작했다고 하여 백수문이라고도 한다. 삼국시대에 우리나라로 들어와 백제의 왕인 박사가 일본으로도 전해 주었다고 하는 천자문은 한자 문화권인 동아시아 최고의 교과서다. 처음 배움의 길에 나서는 동몽의 인재들에게 천자문은 유교 사상과 성리학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작문과 글씨 쓰기의 기초를 가르치는 최고의 교범이라고도 할 수 있다.
출판사 리뷰
동아시아 최고(最古)의 교과서 한자문화권 최고(最高)의 교범
천자문(千字文)은 후량(後梁)의 주흥사(周興嗣)가 머리카락이 백발이 되도록 고심하여 하룻밤에 저작(著作)했다고 하여 백수문(白首文)이라고도 한다. 삼국시대에 우리나라로 들어와 백제의 왕인 박사가 일본(日本)으로도 전해 주었다고 하는 천자문은 한자 문화권인 동아시아 최고(最古)의 교과서다. 처음 배움의 길에 나서는 동몽(童蒙)의 인재들에게 천자문은 유교 사상과 성리학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작문(作文)과 글씨 쓰기[書藝]의 기초를 가르치는 최고(最高)의 교범(敎範)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직접 베껴서 손자와 아들에게 가르치던 책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조맹부의 송설체를 거쳐 한석봉의 글씨로 천자문을 인쇄하여 보급하기도 했으나,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손자나 아들의 교육을 위하여 직접 글씨를 써서 책을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천자문이 처음 배우는 단계의 기본 교재였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자녀 교육을 위해 직접 글씨를 써서 천자문을 만드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서로 다른 천 개의 글자로 250개의 구절을 만들고 두 구절을 이어 125수의 시(詩)로 구성하였던 천자문은 유교 질서와 성리학의 세계관을 가르치는 기본 교재로서 압운과 대구 등의 방식에 의해 글쓰기와 작문의 기초가 되고 글씨 베껴 쓰기 등 서예(書藝)의 전범이 되었다.
작가 소개
저자 : 주흥사
자는 사찬(思纂). 중국 남북조시대 양(梁)나라 무제(武帝) 때의 문인이다. 벼슬은 급사중(給事中)에 이르렀고 국사 편찬을 도왔다. 기전에 능했고 글을 잘 지었다. 무제는 주흥사의 문장을 좋아하여 그에게 표문(表文)·비명(碑銘)·격문(檄文) 등 여러 가지 글들을 짓게 했다. 주흥사는 무제의 명령으로 왕희지의 서체 탁본 1,000자를 가지고 『천자문』을 지었다. 저서로는 『황제실록』(皇帝實錄)과 『황덕기』(皇德記)가 있는데,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목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