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시집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은 2002년 5월 10일, 계간지 「문학과경계」를 내던 '문학과경계사'의 '경계시선' 여덟 번째 시집으로 세상에 처음 나왔다. 당시 경계시선은 "시인들이 온몸으로 맞이하는 우주적 진리와 법칙을 형형한 정신과 직관의 언어로 담아내고, 낯익은 말과 사물의 오래된 잠을 깨우며, 그 안에 들어 있는 삶의 진정성과 현장성을 우리 시대의 말로 담보해내는 시를 지향"했다. 시집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은 그 취지에 맞춤한 시집이었다.
이번 책은 달아실시선 네번째 책으로, 2002년 출간한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의 복간본이다. 이번 복간본은 원본과 마찬가지로 표제시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 외 62편의 시를 그대로 옮기되 최근 맞춤법에 따라 일부 교정을 보았고, 새로운 판형에 맞춰 일부 시의 배치 순서를 바꿨으며, 복간에 따른 시인의 말을 추가하였다.
시집은 자연에 대한 시인의 관찰(시선)과 자연을 대하는 시인의 태도가 주를 이룬다. 이는 이 시집 이전에 냈던 세 권의 시집과 이후에 낸 네 권의 시집을 일관하는 시인만의 독특한 시적 경향이다. 복효근 시인의 시작법은 서경이라는 날실과 서정이라는 씨줄로 직조하는 것인데, 그렇게 번역되고 직조된 자연은 인간세계를 품고 있으며, 그의 언어는 관념의 허무가 아닌 예리하게 날 선 화두이다.
출판사 리뷰
1
시집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은 2002년 5월 10일, 계간지 『문학과경계』(발행인 이진영)를 내던 ‘문학과경계사’의 ‘경계시선’ 여덟 번째 시집으로 세상에 처음 나왔다. 당시 경계시선은 “시인들이 온몸으로 맞이하는 우주적 진리와 법칙을 형형한 정신과 직관의 언어로 담아내고, 낯익은 말과 사물의 오래된 잠을 깨우며, 그 안에 들어 있는 삶의 진정성과 현장성을 우리 시대의 말로 담보해내는 시를 지향”했다. 시집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은 그 취지에 그야말로 맞춤한 시집이었다. 그런 시집이 절판되어 더 이상 독자들이 사 볼 수 없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복효근 시인께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 달아실출판사에서 달아실시선을 내는데,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 복간본을 넣고 싶다고. 선생께서 흔쾌히 수락을 해주어 이 빛나는 시집이 다시 세상을 환하게 비출 수 있게 되었다. 얼마나 많은 독자가 기다리던 시집이던가. 얼마나 많은 독자의 가슴을 다시 적실 것인가. 생각하면 설레고 또 설렌다.
2
이번 복간본은 원본과 마찬가지로 표제시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 외 62편의 시를 그대로 옮기되 최근 맞춤법에 따라 일부 교정을 보았고, 새로운 판형에 맞춰 일부 시의 배치 순서를 바꿨으며, 복간에 따른 시인의 말을 추가하였다. 그러나 모든 시의 향기는 처음 그대로이니 독자께서는 충분히 그 향을 맡고 취할 수 있으리라.
원본 시집에서 복효근 시인은 자신의 시를 일러 “아, 아직은 개뿔일 뿐인 나의 시여”라 했다. 개뿔이라니! 당시 시집을 읽고 얼마나 많은 독자가 환장했던가. 당시 시집에 쓴 시인의 말 전문을 읽어 보자.
꽃핌의 저 고요로운 파열음이
실상은 신神의 중얼거림일진대
그것을 번역하여
명리에 허천난 넋에
번개의 언어 은장도 하나 찔러 넣어주지 못하고
흙탕물에 찌든 육신의 아랫도리에
연꽃다운 화두 하나 걸쳐주지 못한다면
골라 골라 골라아 골라
시장에서 외치는 소리와 다를 게 무에 있다드냐
더군다나
골라 골라 외치는 그 소리까지를
신에게 꽃 피어가는 그 파열음으로
통역하지 못한다면야
시詩는 개뿔이라 해야 옳다
아, 아직은 개뿔일 뿐인 나의 시여.
- 「시인의 말」 전문
그러니까 그의 시는 개뿔이 아니라 실은, “골라 골라 골라아 골라/ 시장에서 외치는” 그 소리까지 “신에게 꽃 피어가는 그 파열음으로” 통역한 것들이라고 해야 옳다. 그는 겸손하게 아직 통역하지 못했으니 “아, 아직은 개뿔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폄하하지만, 그야말로 개뿔! 그의 시가 개뿔이라면 세상천지 개뿔보다 못 한 시들로 넘쳐나겠다. 그의 시편들이 정말 개뿔이라면, 개뿔을 이렇게 다시 정의해야 하겠다. 개뿔은 주옥이다.
3
그의 시집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은 자연에 대한 시인의 관찰(시선)과 자연을 대하는 시인의 태도가 주를 이룬다. 이는 이 시집 이전에 냈던 세 권의 시집(『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버마재비 사랑』, 『새에 대한 반성문』)과 이후에 낸 네 권의 시집(『목련꽃 브라자』, 『마늘촛불』, 『따뜻한 외면』, 『꽃 아닌 것 없다』)를 일관하는 그만의 독특한 시적 경향이다. 그의 시작법(詩作法)은 서경(敍景)이라는 날실과 서정(敍情)이라는 씨줄로 직조(織造)하는 것인데, 그렇게 번역되고 직조된 자연은 인간세계를 품고 있으며, 그의 언어는 관념의 허무가 아닌 예리하게 날 선 화두이다. 다음 두 시를 보자.
건기가 닥쳐오자
풀밭을 찾아 수만 마리 누우 떼가
강을 건너기 위해 강둑에 모여 섰다
강에는 굶주린 악어 떼가
누우들이 물에 뛰어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나는 화면에서 보았다
발굽으로 강둑을 차던 몇 마리 누우가
저쪽 강둑이 아닌 악어를 향하여 강물에 몸을 잠그는 것을
악어가 강물을 피로 물들이며
누우를 찢어 포식하는 동안
누우 떼는 강을 다 건넌다
누군가의 죽음에 빚진 목숨이여, 그래서
누우들은 초식의 수도승처럼 누워서 자지 않고
혀로는 거친 풀을 뜯는가
언젠가 다시 강을 건널 때
그중 몇 마리는 저쪽 강둑이 아닌
악어의 아가리 쪽으로 발을 옮길지도 모른다
-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
가뭄이 계속 되고
뛰놀던 물고기와 물새가 떠나버리자
강은
가장 낮은 자세로 엎드려
처음으로 자신의 바닥을 보았다
한때
넘실대던 홍수의 물 높이가 저의 깊이인 줄 알았으나
그 물고기와 물새를 제가 기르는 줄 알았으나
그들의 춤과 노래가 저의 깊이를 지켜왔었구나
강은 자갈밭을 울며 간다
기슭 어딘가에 물새알 하나 남아 있을지
바위틈 마르지 않은 수초 사이에 치어 몇 마리는 남아 있을지…
야윈 몸을 뒤틀어 가슴 바닥을 파기 시작했다 강은
제 깊이가 파고 들어간 바닥의 아래쪽에 있음을 비로소 알았다
가문 강에
물길 하나 바다로 이어지고 있었다
- 「강은 가뭄으로 깊어진다」
천지불인(天地不仁)이요 자연무심(自然無心)이다. 내가 죽어야 네가 살고,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 그게 생명(의 법칙)이다. 삶은 죽음을 딛고 서는 것. 삶이란 끊임 없이 죽음에 빚져야 하는 것. 생명은 그렇게 역설적인 것이다. 그게 복효근이 보여주는 자연이다. 자연으로 보여주는 인간세계이다.(「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
성난 들소처럼 흐르는 저 강물도 마침내 잦아들 것이다. 장마전선이 물러난 자리에 건기가 들어서면 시퍼런 강물 속 “뛰놀던 물고기와 물새”도 떠날 것이다. 마침내 “강은/ 가장 낮은 자세로 엎드려/ 처음으로 자신의 바닥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슬퍼하거나 절망하지 말란다. 오히려 가문 바닥을 통해 ‘내가 혼자 저절로 깊어진 게 아니란 것을, 내가 당신들을 길러온 것이 아니란 것을, 오히려 당신들이 나의 깊이를 지켜왔다는 것을’ 보란다. “가문 강에/ 물길 하나 바다로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란다.(「강은 가뭄으로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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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집은 그 향이 천리를 가고 천년을 가는 법이다. 그런 시집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절판되어 더 이상 그 향을 맡을 수 없다면, 시인에게도 독자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달아실출판사는 좋은 신작 시집을 내는 데 최선을 다하겠지만, 절판된 좋은 시집을 발굴하여 다시 세상에 빛을 보게 하는 일에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번 복효근 시집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이 그 첫걸음이겠다.
■ 달아실출판사는…
달아실은 달의 계곡(月谷)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입니다. 문화예술 전문잡지 월간 『태백』을 만들고 있는 “달아실출판사”는 인문 예술 문화 분야 전문 출판사입니다. 어둠을 비추는 달빛 같은 책을 만들겠습니다. 달빛이 천 개의 강을 비추듯, 책으로 세상을 비추겠습니다.
저 길도 없는 숲으로
남녀 여남은 들어간 뒤
산은 뜨거워 못 견디겠는 것이다
골짜기 물에 실려
불꽃은 떠내려오고
불티는 날리고
안 봐도 안다
불붙은 것이다
산은,
- 「단풍」 전문
작가 소개
저자 : 복효근
1962년 전남 남원에서 태어나 전주 해성고와 전북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91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버마재비 사랑』, 『새에 대한 반성문』,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 『목련꽃 브라자』, 『마늘촛불』, 『따뜻한 외면』, 『꽃 아닌 것 없다』, 시선집으로 『어느 대나무의 고백』과 청소년 시집으로 『운동장 편지』가 있다. 편운문학상 신인상, 시와시학 젊은 시인상, 신석정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목차
시인의 말 1
시인의 말 2
1부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
구두 뒤축에 대한 단상
아름다운 번뇌
강은 가뭄으로 깊어진다
복사뼈에 대한 단상
겨울, 백로가 가르쳐준 것들
어느 대나무의 고백
물총새의 사냥법
겨울 나무
꽃 앞에서 바지춤을 내리고 묻다
탱자
2부
가릉빈가
만복사저포기
겨울 산행山行
꽃 본 죄
진주 눈길
아기 돌탑
코스모스와 런닝구
운주사에서 배운 일
단풍
길은 길에 이어져
석류
빗물에 불은 라면가락 사이로
석쇠의 비유
황금잉어빵을 굽는 풍경
쑥부쟁이 연가
콩나물에 대한 예의
3부
담 넘어 퇴근하고 싶다
연꽃과 소나기 사이에서
홍도 일숙
엄살 2제
공사중 〈갓 길 없 슴〉
낙엽을 밟았다는 사건
산수유 노란 때깔 마냥으로
비디오 리모콘처럼
복숭아꽃 아래서
소금의 노래
연어가 돌아가셨네
꿀물을 마시며
숲, 혹은 사랑에 관한 변주 1
숲, 혹은 사랑에 관한 변주 2
숲, 혹은 사랑에 관한 변주 3
숲, 혹은 사랑에 관한 변주 4
제중한의원 황토방
물음표(?)는 살아 있다
4부
꿈꾸는 목련나무
마이산에서
등
눈 오는 화엄사에서
문득 우주 밖의 일들이 더 이상 궁금하지 않은 시간이 그렇게 있긴 있는 것이다
뗏목 한 척
쌍계사에서
허물
한때는 벌레였던 허공과 한때는 허공이었던 벌레에 대하여
소나기
화암사를 찾아서
낙엽
부레옥잠
사과 앞에서 망설이는 이유
형광등
산길
연막소독차의 추억
조장鳥葬
해설. 텅 빈 삶의 향기(전정구/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