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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음 이덕형의 학문과 사상
해드림출판사 | 부모님 | 2017.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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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참다운 경세가 이덕형의 삶. 우리에게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이덕형은, 정치적으로 혼미했던 광해군 조에는 오리 이원익·백사 이항복과 함께 혼미한 정국에 그나마 희망의 빛이 됨으로써 ‘혼조3이(昏朝三李)’로 추앙받았으며, 임진왜란이라는 미증유의 국난을 당해서는 서애 유성룡·백사 이항복과 더불어 문필의 힘으로 나라를 구한 ‘삼대문장치신(三大文章致身)’의 반열에 자리매김하였다.

조선조를 통하여 최연소로 대제학에 오른 이덕형은 문학(文學)에도 심오하여 300여 편의 시문(詩文) 외에 수많은 계사(啓辭), 간찰(簡札)을 남겼으며, 후세에 대제학 용주 조경(趙絅)은 “한음은 나라가 있는줄만 알았지, 자신의 몸이 있는지는 몰랐다(漢陰知有國而不知有身)”는 말을 남겼다. 참다운 경세가 이덕형. 정치인은 많지만 참다운 경세가를 찾아보기 힘든 요즘, 한음 이덕형의 학문과 사상에 대한 폭넓고 깊이 있는 본 연구물이 혼미한 세상을 비추어줄 하나의 작은 불빛이 되길 바란다.

  출판사 리뷰

한음은 나라가 있는 줄만 알았지 자신의 몸이 있는지는 몰랐다
17세기는 동북아의 질서를 재편하는 그야말로 혼돈의 시대였으며, 이와 병행하여 각국의 문화 교류 또한 활발하게 진행되던 때였다. 중국은 명청(明淸)이 교체하면서 천여 년간 지속되던 중원의 주인이 바뀌었고, 일본은 막부(幕府) 정치가 시작되면서 형식적이긴 하지만 천왕 중심의 지배 체재가 자리 잡아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조선은 임진왜란이라는 미증유의 전란을 겪었고 주자학 중심의 성리학적 세계관을 강화하려는 움직임과 주자학의 한계를 인식하고 변화를 꾀하려는 시도가 태동하고 있었다. 17세기 조선 학자들은 정치와 사회 질서에 있어 안정을 추구하느냐, 변화를 통해 쇄신의 길을 택하느냐 하는 중대한 선택을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심도 있게 다룬 한음 이덕형의 생애와 업적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 1561~1613)도 이 시기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당대 지식인으로서 그 중심에서 있었던 인물이다. 한음은 젊은 나이에 대과에 입격하여 승문원을 시작으로 부승지대사간대사성4도 도체찰사 등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으며, 세 번이나 영의정에 제수되어 혼란한 정국을 수습하고 피폐해진 민심을 회복하는데 앞장섰다. 또 임란이 발발하자 왜장 고니시[小西行長]와 담판을 짓기도 했으며, 명나라 원병을 맞는 접반관이 되어 왜적 축출에 앞장섰다. 무엇보다도 한음은 어릴 때 이미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에게 문학으로 인정받았으며, 31세에 류성룡(柳成龍)의 후임으로 문형(文衡)을 맡아 선조(宣祖) 대에 화려하게 꽃피었던 이른바 ‘목릉성세(穆陵盛世)’의 문단을 주도하였다.

‘오성과 한음’이 아닌 ‘한음 이덕형’을 찾아서

이처럼 한음은 17세기 조선의 정치와 학문 분야에 걸출한 업적을 남겼지만, 이에 대한 연구는 소홀하기 그지없다. 사정이 이렇게 된 데는 ‘오성과 한음’ 같은 설화적 이미지가 대중에게 너무도 친숙하여 누구나 잘 알 것이라는 잘못된 선입견도 그 원인 중의 하나일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한음의 여러 가지 관력이나 업적은 차치하고, 그가 사후에 경상도 문경의 근암서원(近巖書院)에 위패가 봉안되고, 영주 소수서원(紹修書院)에 영정(影幀)이 봉안된 사실을 아는 이도 드문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후세에 대제학 용주 조경(趙絅)은 “한음은 나라가 있는 줄만 알았지, 자신의 몸이 있는지는 몰랐다(漢陰知有國而不知有身)”는 말을 남겼다. 참다운 경세가 이덕형. 정치인은 많지만 참다운 경세가를 찾아보기 힘든 요즘, 한음 이덕형의 학문과 사상에 대한 폭넓고 깊이 있는 본 연구물이 혼미한 세상을 비추어줄 하나의 작은 불빛이 되길 바란다.

5. 이덕형의 산문

이덕형은 이순신을 제사 지내는 글에서도 국가사업에 협찬하는 뜻을 함께하였던 내면의 교류를 중시하였다. 곧, 1601년(선조 34) 5월, 4도 도체찰사 이덕형은 이때 순찰 중에 전라우수영(全羅右水營)에 들러 종사관 오윤겸을 보내 이순신(李舜臣)의 제사를 지내게 했다. 이덕형은 그의 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某與公, 初未識面. 倭橋之役, 簡書密議, 吐盡心肝, 公感我情, 我服公略. 每謂
平賊之後, 規?舟師有其人矣. 捷書幷惡耗而至, 道上駐馬, 隕淚之狀, 至今思
之氣塞.
나와 공은 처음에는 얼굴도 미처 몰랐더니, 왜교(倭橋) 싸움에서 편지로 은밀히 상의하며 서로의 진심을 털어놓고는 공은 내 뜻을 깨달았고 나는 공의 계략에 감복했네. 적을 평정하고 나서 수군을 주도할 분은 적절한 사람이 있다고 여겼더니, 승전보와 아울러 나쁜 소식이 이르다니. 길에 말 세우고 통곡하던 그 날 일을 지금도 생각하니 기가 막히네.

이덕형은 산문의 각 형식에 모두 능하여 국정에 간여하는 대소문자(大小文字)를 통창하게 저술하였다.
1594년(선조 27) 1월 낙상지(駱尙志)와 함께 새 궁전터를 잡았다. 선조가 환궁한 뒤 궁궐이 모두 불타서 정동(貞洞) 별궁에 거처하고 있었는데 새 궁궐을 지으려는데 마침 총병 낙상지가 영남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이덕형은 그와 함께 새 궁궐터를 물색하였다. 낙상지가 종부시 터에 이르러 장원서 동산에 올라 사방 산세를 보더니 말채로 눈 위에 궁성 도형을 그리고 “여기가 좋겠다”라고 했다. 이덕형은 그곳 형국(形局)을 그려 선조에게 올렸다.
1596년(선조 29) 3월 3일(경오)에 병조판서 이덕형은 중흥동(中興洞) 산성의 주변 형세를 조사하였다. 우이동은 서울의 북쪽의 방어 시설인 중흥동 산성의 서북쪽 성이 있었던 곳이다. 이덕형의 계사(啓辭)가 『선조실록』의 해당 날짜에 실려 있다. 그 계사는 곧, 서울 서북쪽에 위치한 산세를 가장 명료하게 설명한 글이기도 하다.

신(이덕형)이 1일에 나아가 중흥동(中興洞)에 못 미쳐 촌막에서 자고 이튿날 아침에 동구(洞口)에 이르러 서북쪽의 외성(外城)을 살펴보았습니다. 삼각봉(三角峰)이 높이 솟아 있고 그 곁에 두 봉우리가 차례로 나열해 섰으며, 성자(城子)는 끝 봉우리의 허리에서부터 시작되어 시내의 어구 언덕에 이르러서 끝났습니다. 남쪽 외성은 시내의 암벽에서부터 시작되어 위로 서남쪽 최고봉에 이르러서 끝났습니다. 성에 석문(石門)의 옛터가 있는데 이는 이른바 서문(西門)으로서 중간에 한 가닥의 길이 있어 곧바로 중흥사(中興寺)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길은 산비탈로 나 있는데 계곡은 굴곡이 졌으며, 길가에 운암사(雲巖寺)의 옛터가 있었습니다. 오솔길로 나누어져 벽하동(碧霞洞)으로 들어가는데, 벽하동은 중흥사가 있는 산 뒤에 있고 길은 백운봉(白雲峯)에 이르러 끊어졌습니다. 내성內城)으로 들어가니 성에는 석문이 있는데 절과의 거리는 수백 보가량 되었습니다. 사문寺門)을 지나 동남으로 가다가 길이 셋으로 나뉘었는데, 하나는 동문(東門)을 통하여 왕래하는 길로 성밖에 수도암(修道菴)·도성암(道成菴) 등의 암자가 있고 그 밑은 곧 우이동牛耳洞)이며, 하나는 동남문(東南門) 석가현(釋伽峴)으로 통하여 사을한리(沙乙閑里)로 내려가는 길이며, 하나는 문수봉(文殊峯)을 넘어 창의문(彰義門)으로 통하는 탕춘대(蕩春臺)의 앞들이 내려다보이는 길입니다. 석가현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뻗다가 서쪽으로 향해 산세가 높이 일어나 문수봉이 되고, 문수봉으로부터 세 봉우리가 서쪽으로 뻗어 내려 동구의 외성에 일어난 곳, 즉 앞에 이른바 서남쪽의 최고봉과 서로 접하게 되는데 형세가 극히 험악합니다. 문수(文殊)·승가(僧伽)·향림(香林) 등의 절이 산허리에 나열해 있는데, 우이동·사을한리와 경성의 사현(沙峴)·홍제원(弘濟院)의 좌우 도로가 역력히 한눈에 들어옵니다. 성자(城子)가 또 미로봉(彌老峯)의 허리로부터 시작되어 도성암의 상령(上嶺) 및 석가현을 거쳐서 위로 문수봉에 이르러 그쳤으니, 이것이 그 대세인 것입니다. 모든 봉우리는 아래로 뻗어 내려 산록(山麓)이 되고 골짜기의 양편은 견아犬牙처럼 얽히었으며, 각처의 시내는 폭포를 이루어 흘러서 모두 동구로 나가는데 지세가 몹시 급하고 비좁아 넓지 못하므로 사람이 살기에는 불편합니다. 그러나 오직 중흥사 상단의 좌우 골짜기만은 토지에 육기(肉氣)가 있어 그런대로 의지해 살 만합니다. 삼각봉의 후면은 절벽이 깎아 세운 듯하고 그 밖은 곧 서산으로 통행하는 길인데 미륵원(彌勒院)으로부터 우이동(牛耳洞)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도성암의 상령(上嶺)과 석가현·문수봉에 지름길이 있기는 하나 사면의 산세가 높고 험절합니다.

  작가 소개

저자 : 이덕형
선조·광해군조에 오리(梧里) 이원익·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과 함께 3이(三李)로 추앙되는 명상(名相)이다. 이덕형은 광주(廣州)이씨 1대조 둔촌공의 증손인 좌의정을 지낸 이극균의 5세손으로, 1580년(선조 13) 20세에 문과에 급제한 후 34년간 관직 생활을 하면서 문형(文衡)에 3번, 영의정에 3번, 체찰사 2번이나 임명된 훌륭한 지도자였다. 그는 31세에 문형을, 38세에 정승(우의정)에 기용될 정도로 고속 승진을 했다. 이는 종친을 빼고 가장 빠른 승진 사례다.특히 백사 이항복은 이덕형보다 5살 위인데 문과에는 이덕형이 먼저 급제했으나 비슷한 시기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홍문관직을 역임하고, 재상이 되어서는 교대로 의정직을 맡아 국정을 선도했다. 어려서 같은 마을에 산 것은 아니나 과거 급제 후 형제처럼 국가를 보위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지도력을 발휘했다.

  목차

머리말
한음은 나라가 있는 줄만 알았지 자신의 몸이 있는 줄은 몰랐다… 04

한음 이덕형의 가계와 생애 ……………………………………11
-이성무(한국역사문화연구원장)
1. 머리말 …………………………………………………………13
2. 가계 ……………………………………………………………14
3. 유년(幼年)시절과 입사(入仕) …………………………………44
4. 임진왜란 ………………………………………………………55
5. 대북정권 아래서 살다 …………………………………………130
6. 이덕형에 대한 평가 ……………………………………………161

임진왜란 무렵 이덕형의 외교 활동 ……………………………175
-한명기(명지대학교)
머리말 ……………………………………………………………176
1.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의 대일외교(對日外交) 활동 …………178
2. 선조(宣祖) 파천(播遷) 시기의 대명(對明) 청원(請援) 외교…182
3. 이여송(李如松)의 접반사(接伴使) 활동 ………………………186
4. 명군 접반(接伴) 과정에서 얻은 문물과 기예의 활용 시도… …191
5. 임진왜란 중의 대여진(對女眞) 대책과 종전 이후의 대일외교 …196
맺음말 ……………………………………………………………201

한음 이덕형의 사우 및 교유 관계… ……………………………207
-김학수(한국학중앙연구원)
1. 머리말 …………………………………………………………209
2. 가문적 배경 : 한음 선대의 인적 관계망… ……………………210
3. 한음 이덕형의 사우 및 교유 관계 ………………………………218
(1) 사우 관계 ……………………………………………………228
① 윤우신(尹又新)과의 사승 ………………………………………232
② 혼맥에 바탕한 화담학의 영향… ………………………………234
(2) 교유 관계 ……………………………………………………232
① 서울권 서인계 : 연평 부원군 이귀와의 초당적 교제를 중심으로 ……234
② 영남권 동인계 : 류성룡김홍민정경세 등 서애학파를 중심으로 …250
4. 맺음말 …………………………………………………………267

선조 조의 정국과 한음 이덕형의 정치 활동 ……………………273
-이영춘(국사편찬위원회)
1. 序說 ……………………………………………………………275
2. 宣祖代의 정치 局面과 漢陰의 관료 생활… ……………………278
(1) 宣祖代 黨爭의 성격 …………………………………………278
(2) 漢陰의 無黨派的 요인과 그 성향… …………………………281
(3) 漢陰의 관직 활동 ……………………………………………288
3. 壬辰倭亂 중 漢陰의 國難克服 활동… ……………………………292
(1) 壬辰倭亂의 배경과 성격 ……………………………………293
(2) 漢陰의 國難克服 활동 ………………………………………293
4. 結語 ……………………………………………………………297


광해군 대의 정국과 이덕형의 정치외교 활동 ………………301
-신병주(건국대학교)
머리말 ……………………………………………………………303
1. 가계와 관력 ……………………………………………………304
2. 광해군 이전의 정치외교 활동 …………………………………308
3. 광해군 대의 외교 활동 …………………………………………311
4. 광해군 대의 정치 활동 …………………………………………317
(1) 광해군에 대한 정치적 견제 …………………………………317
(2) 공빈(恭嬪) 추승 반대 ………………………………………320
(3) 오현(五賢)의 문묘 종사에 대한 입장 ………………………321
5. 역모 정국에 대한 입장 …………………………………………326
(1) 김직재 역모 사건과 이덕형 …………………………………326
(2) 교하 천도 반대 ……………………………………………330
(3) 영창대군의 위해(危害)와 급공론(急功論) …………………333
맺음말 ……………………………………………………………341

이덕형의 경세 사상 ………………………………………………345
-정재훈(경북대학교)
1. 머리말 …………………………………………………………347
2. 학문과 철학 사상 ………………………………………………348
3. 정치외교 사상 …………………………………………………354
(1) 정치사상 ……………………………………………………354
(2) 외교 사상 ……………………………………………………357
4. 사회경제국방 사상 ……………………………………………359
(1) 사회사상 ……………………………………………………359
(2) 경제사상 ……………………………………………………361
(3) 국방 사상 ……………………………………………………362
5. 맺음말 …………………………………………………………365

한음 이덕형의 문학세계 ………………………………………369
-심경호(고려대학교)
1. 서언 ……………………………………………………………371
2. 한음 이덕형의 사적 ……………………………………………372
3. 『한음문고』의 구성 ……………………………………………400
4. 이덕형의 시 ……………………………………………………405
5. 이덕형의 산문 …………………………………………………409
6. 이덕형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한 단서 …………………………421
7. 이덕형의 교유 인물 ……………………………………………436
8. 맺음말 …………………………………………………………454

조선 후기 남인계 가문의 정치사회적 동향 …………………463
-이근호(한국학중앙연구원)
1. 머리말 …………………………………………………………464
2. 한음 사후 위선 사업과 변무록(辨誣錄) 시비 …………………465
3. 무신란(戊申亂)과 한음의 국불천위(國不遷位) 인정 …………475
4. 성호학파(星湖學派) 참여와 한음 연보(年譜) 간행 ……………484
5. 맺음말 …………………………………………………………491

오성과 한음 기사에 대한 재검토 ………………………………501
-박인호(금오공과대학교)
1. 머리말 …………………………………………………………502
2. 오성과 한음의 교유 양상 ………………………………………503
(1) 출사 이후 ……………………………………………………503
(2) 임진왜란기 …………………………………………………505
(3) 광해군 대 ……………………………………………………512
(4) 이덕형 사망 후 ………………………………………………516
3. 오성과 한음의 교유 기사의 문제점 ……………………………518
(1) 기록에 나타난 오성과 한음의 유년 교유… …………………518
(2) 오성과 한음의 교유에 대한 인식… …………………………529
4. 맺음말 …………………………………………………………537

한음 이덕형의 후대 평가와 추숭 사업 ………………………541
-오용원(한국국학진흥원)
1. 서언 ……………………………………………………………543
2. 한음에 대한 후인들의 평가와 영남 사람들과의 교유… ………545
3. 한음의 근암서원(近巖書院) 배향(配享)과 현창(顯彰) …………553
(1) 근암서원의 건립과 한음 배향 ………………………………553
(2) 활재(活齋)와 목재(木齋)의 한음 추숭(追崇) 사업… ………555
(3) 소수서원(紹修書院)에 봉안된 한음의 영정(影幀) …………566
4. 결론 ……………………………………………………………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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