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은둔의 서예가 소지도인 강창원의 평전으로 1세기에 걸친 한 서인(書人)의 삶과 예술세계를 밀도있게 다루고 있다. 특별히 ‘소지도인 100세 기념 서예전’에 맞춰 출간된 도서로 소지도인의 애제자 김종헌이 오랜 시간에 걸쳐 저술하고 작품까지 엄선해 실었다.
강창원은 평생 세속적 가치와는 담을 쌓고 오로지 붓글씨만을 쓰고 즐기는 것에 평생을 바친 기인이다. 저자는 감히 추사 김정희 이후 대한민국의 가장 위대한 서예가는 단연 소지도인 강창원이라 말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소지도인 강창원의 숨겨진 백세 서예 인생과, 작품으로 살피는 유불도 문사철의 동양 정신을 배울 수 있다.
특히 강창원의 역작이라 할 수 있는 「금강반야바라밀경」 영인본과 그 한글 및 영문 번역본을 함께 담아 별책으로 구성했다. 많은 불자들의 독송용으로, 서예 애호가들의 법첩으로 많은 활용이 가능하다.
출판사 리뷰
100세 은자의 풍류서예를 엿보다
서예가 소지도인 강창원 평전
& 강창원의 역작, <금강반야바라밀경>소지도인 강창원의 100세 삶을 들여다보다 강창원은 의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서예의 본고장인 중국 베이징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이 곳에서 중국의 유명 서예가인 양자오쥔(楊昭儁)에게 가르침을 받고, 서화가 치바이스(齊白石), 문학가 후스(胡適) 등을 가까이 하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 이후 베이핑 사범대학(지금의 베이징 사범대학) 중문과에 진학하여 중국문학을 전공했다. 그러다 보니 중국어가 원어민처럼 능통하였다. 현대 중국어인 백화(白話)뿐만이 아니라 고전 한문과 한학에도 빼어났다. 강창원은 중국어와 한학 실력을 바탕으로 한중(韓中) 고전을 뜻대로 읽고 글을 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한학의 연구 과정에서 만난 빼어난 문장들을 남김없이 붓글씨로 베끼어 쓰고 서예 작품의 소재로 활용하였다. 강창원의 학문의 범위는 문사철(文史哲)을 두루 아울렀다. 더 나아가 유불도(儒佛道)의 경전과 저작에 심취하였다.
1943년 귀국한 강창원은 짧은 관료 생활을 거쳐 중국어 방송 아나운서, 사업가 등으로 활동하다가 1956년에 검여 유희강, 소전 손재형, 일중 김충현, 여초 김응현, 청명 임창순, 연민 이가원 등 동료 서예인들과 ‘동방연서회(東方硏書會)’를 설립한다. 당시 서예계는 국전(國展) 중심으로 운영되었는데, 그야말로 파벌과 이권 싸움의 온상이었다. 이에 염증을 느낀 강창원은 국전을 멀리하고 홀로 고독한 작업을 이어갔다. 유혹도 많았을 것이며 어려움도 적지 않았으리라. 그러는 중에도 종로 인사동에 ‘임지헌’을 열어 글 쓰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성균관대학교 등에서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강창원의 나이 60세인 1977년에 신문회랑에서 열린 첫 번째 전시회는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대성공이었다. 강창원의 작품을 보기 위해 서예가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이 전시장을 찾아왔다. 그중에는 강창원의 실력을 소문으로만 듣던 국전파 서예가들도 있었다. 그들은 강창원의 유려하고 깊이가 있는 행서(흘림체) 작품을 보고 크게 감탄하였다. 그때까지 강창원을 해서를 쓰는 서예가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강창원은 표준이 되는 바른 정자 글씨인 당해(당나라 시대의 해서체)의 여러 각체各體에 두루 능통하였다.
이후 미국 LA로 이민을 간 강창원은 그곳에 임지헌을 다시 열어 많은 교포 미술인들과 교류하며 지냈다. 1983년 8월에 귀국하여 출판문화회관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열었는데, 그동안 LA에서도 쉬지않고 글씨를 썼던 강창원은 귀국전을 통해 완성된 해서체를 선보였다. 안진경체(顔眞卿體)에 바탕을 두고 여러 해서체의 특장점을 취사선택하여 쓴 작품들은 완숙한 경지에 이르렀다.
85세 때에 이르러 서예가로서 절정에 오른 소지도인 강창원. 필력은 건재하고 필선은 더욱 윤택해졌다. 90세가 되던 2007년에 LA에서 운영하던 ‘임지헌’의 문을 닫고 서재에서 글씨를 쓰는 일에 더욱 몰두했다. 이 책의 저자 김종헌은 소지도인이 85세부터 95세까지 10년 동안 쓴 작품들이 가장 운필이 좋은 듯하다고 말한다. 96세 이후 소지도인 강창원의 글씨는 절필(絶筆)로 향하여 갔고, 이 책이 출간되는 2017년 10월, 소지도인 강창원은 서울 인사동의 한 갤러리에서 ‘소지도인 강창원 100세 기념 서예전’을 열었다. 대한민국에서 열린 최고령 작가의 글씨전이라는 기록 또한 세웠다.
강창원의 명작들, 추사와 소지도인의 마지막 경계이 책은 소지도인 강창원의 애제자이자 서예 애호가 김종헌의 시선으로 강창원의 서예 인생과 작품을 밀도 있게 살피고 있다. 특히 그는 강창원의 작품을 글의 소재별로, 대표작별로, 다양한 서체별로 분류하여 서예 입문자나 젊은 층도 이해할 기 쉽게끔 설명한다. 또한 대작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속 소품들을 통해서도 대가의 격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강창원은 중국 고문 중 명문을 선택하고 그 명문의 뜻을 이해하는 수준이 남달랐다. 그래서 자신이 선택한 명문의 뜻을 깊이 이해한 바탕 위에서 쓴 자연스러운 구성과 운필의 흐름이 매우 뛰어났다. 뜻도 모르면서 체본을 보고 한 글자 한 글자를 또박또박 써 내려가는 서예가들은 운필의 속도와 글의 내용에 감정이입을 하는 능력에서 강창원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강창원의 실력은 또박또박 쓰는 정자체의 해서보다는 운필이 빠른 흘림체의 행서와 해행(楷行), 초서(草書)를 쓸 때에 더욱 드러난다. 이러한 강창원만의 진가를 알리기 위해 저자 김종헌은 수 만점에 이르는 강창원의 작품을 고르고 또 골랐다. 그 엄선작들이 상세한 해설과 함께 책 속에 빼곡히 담겨있다.
강창원의 100세작이자 가장 최근에 고국으로 전해진 값진 작품까지 실렸는데, 이는 마치 추사 김정희의 동자체 <판전> 글씨와 같이 강창원은 동심으로 가득 찬 ‘미(美)’ 한 자만을 쓰고 나머지 공간을 모두 비웠다. 한국이 낳은 위대한 두 서예가인 추사 김정희와 소지도인 강창원은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한 끝에 예해무변(藝海無邊)의 경계에서 노닐며 유어예(遊於藝)하고 수세필명(垂世筆名)하였다. 그리고 그 마지막 백척간두진일보한 곳은 모두 천의무봉9天衣無縫)한 동자체의 경계인 것이다.
강창원 필생의 역작, <금강경>소지도인 강창원이 쓴 <금강경> 전문은 그야말로 필생(畢生)의 역작이다. 강창원 스스로도 이 작품을 무척이나 아껴서 장남 강희동에게 가보로 잘 간직하도록 하였다. 총 5,440여 자, 발미(跋尾) 300여 자를 화선지 전지 103장에 쓴 작품으로, 우리나라 서예사에서 가장 큰 대작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작품은 소지도인 강창원의 가장 힘차고 중후한 해서체의 완결을 보여준다.
강창원 평전을 펴내는 것과 동시에 강창원의 <금강경> 영인본(影印本)은 별책으로 발행하였다. 특히 이 책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강창원의 대표작인 한문 <금강경>의 영인본을 싣고,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한글 번역문과 영문 번역문을 덧붙였다.
한글 번역문은 강창원 평전의 저자이자 독실한 불자인 김종헌이 여러 번역본은 참고하고 스스로 연구하여 현대 맞춤법에 따라 일부 수정을 더하고 문장을 다듬어 완성한 것이다. 또한 영문 번역본은 영국인 Alex Johnson이 현대 일상 영어로 새롭고 쉽게 번역한
을 옮겨 실은 거시다. 이 번역은 <금강경>의 여러 영문 번역본 가운데 가장 읽기 쉬우며, 경문이 아름답고 또렷하게 잘 표현되어 있다.
이 책이 많은 불자들의 독송 및 사경 공부에 두루 쓰이기를 바란다. 또한 불자들의 결혼 예물 또는 영가들의 사십구제 등에 모인 추도객들에게 법공양을 위한 선물로도 두루 쓰일 수 있을 것이다.






작가 소개
저자 : 김종헌
1947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다. 학창 시절 내내 한곳에 살면서 인사동을 숱하게 누비던 서울 토박이다. 중학생 때부터 한문, 불교, 서예에 빠졌다. 우초 장인식, 원곡 김기승 선생에게 서예를 배우다가 서울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한 후에는 소지도인 강창원, 졸업한 후에는 송천 정하건 선생에게 서예를 배웠다. 남영산업 무역부에 입사하여 ㈜남영비비안의 대표이사와 부회장을 지냈다. 뒤셀도르프, 뉴욕, 홍콩 등에서 12년간 해외 지점장 생활을 하면서도 서예의 아름다움을 좇았다. 은퇴 후에는 제과제빵과 전통조리 및 사찰음식을 전공한 아내 이형숙과 함께 어린 시절부터 모은 수만 점의 고서, 서예 작품, 음반 등을 들고 홍천으로 내려가 2003년에 서예 전문 화랑이자 북카페 & 레스토랑, 피스 오브 마인드(Peace of Mind)를 열었다. 이후 춘천으로 옮겨 피스 오브 마인드의 북 마스터이자 집필가로 활동했다. 2017년에 카페지기에서 은퇴를 선언하고, 전업 작가로 인생 3막을 시작했다. 항상 한글세대를 위하여 동양고전에 바탕을 둔 읽기 쉽고 재미있는 글을 쓰고자 노력한다. 대표 저서로는 《추사를 넘어: 붓에 살고 붓에 죽은 서예가들의 이야기》, 《서예가 보인다》, 《Peace of Mind : 빵 굽는 아내와 CEO 남편의 전원카페》, 《남자 나이 마흔에는 결심을 해야 한다》, 《금강경의 힘》 등이 있다.
목차
서문 :
소지도인, 은자의 천진난만한 삶이 부러운 까닭
1장
가문과 출생의 내력
1-1 이름난 의사 집안에서 태어난 소지도인 강창원
1-2 베이징 중심가 왕푸징에서의 청소년 시절
2장
소지도인의 100세 서예 인생
2-1 충무공 10대손으로부터 서예를 배우기 시작하다
2-2 서예의 본고장에서 중국의 석학 양자오쥔의 가르침을 받다
2-3 결혼과 귀국, 한국전쟁 발발과 직업인으로서의 삶
2-4 동방연서회에서의 작품 활동과 후학 양성
2-5 독립 서실 ‘임지헌’ 시대를 열다
2-6 60세 첫 개인전의 성공적 개최
2-7 첫 개인전의 대표작들
2-8 미국 이민과 LA에서의 새로운 임지헌
2-9 완숙의 경지, 귀국전을 열다
2-10 필생의 역작 <금강경 金剛經>을 완성하다
2-11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와 이규보(李奎報)의 <영정중월(詠井中月)>
2-12 귀국전 이후, 자족(自足)의 서예 인생
2-13 70세 이후, 무병장수(無病長壽)를 위한 서예
2-14 85세 이후, 절정기를 맞다
2-15 90세 이후, 원숙기에 접어들다
2-16 96세 이후, 절필(絶筆)로 향하여 가는 글씨
2-17 일간지 톱 기사를 장식한 소지도인
3장
작품에 쓰인 글의 소재로 본 100세 서예 인생의 발자취
3-1 문사철(文史哲)의 바탕 위에서 꽃피운 작품들
3-2 유불도(儒佛道) 삼학三學을 작품에 담다
3-3 유교에 바탕을 둔 작품들
3-4 불교에 바탕을 둔 작품들
3-5 불교의 무주상(無住相)의 사상과 서예
3-6 도교에 바탕을 둔 작품들
3-7 도교의 양생(養生)과 천진(天眞) 사상과 서예
3-8 도교적인 대박불탁과 유교적인 절차탁마
3-9 중국 시가에 바탕을 둔 작품들
3-10 우리나라 한시(漢詩)를 쓴 작품들
3-11 반복해서 쓰면서 자신의 서체를 개발하다
3-12 율곡(栗谷) 이이(李珥)선생의 <구퇴유감(求退有感)>을 반복하여 쓰다
3-13 아름다운 조국산천을 그리워하며 쓴 작품들
4장
대표작으로 본 100세 서예 인생의 발자취
4-1 동방연서회 활동 시기의 대표작들
4-2 제1회 개인전의 대표작들
4-3 제2회 개인전 귀국 기념전의 대표작들
4-4 미국 LA <임지헌> 시대의 대표작들
4-5 서예 인생의 원숙기, 85~95세 시기의 대표작들
4-6 97세 마침내 실질적인 절필에 이르다
4-7 천의무봉의 탈속한 말년의 유희적인 소품 작품들
4-8 가장 즐겨 쓴 대련(對聯) 양식의 작품들
4-9 소지 선생의 임서첩과 발문 짓기
5장
다양한 서체로 본 100년 서예 인생의 발자취
5-1 한자의 형성 과정과 서체의 변화 과정
5-2 고문자(古文字) 연구와 갑골문, 금문, 전서의 대표작들
5-3 예서의 대표작들
5-4 행서와 해행서의 대표작들
5-5 초서와 행초서의 대표작들
6장
서예의 흐름과 소지도인 서예의 특징
6-1 첩파(帖派)의 계승과 발전
6-2 서론(書論)을 연구하고 실기에 응용하다
6-3 문학이론 <문심조룡(文心雕龍)>까지 서예에 원용
6-4 능소능대의 극치, 벽과서와 극세필에 모두 능하다
6-5 문득 쓰고 싶을 때 작품을 쓰다
6-6 종이를 가리고 탓하지 않다
6-7 소지도인 서예의 그 밖의 특징들
7장
일상생활 속 소지도인의 작품들
7-1 다양한 서체로 쓴 연하장들
7-2 간찰에 쓰는 문체, 서간문
7-3 인품을 보고 아호를 지어 주다
7-4 문집 <강소지서품발기단전록(姜昭志書品跋短錄)>
8장
한시(韓詩)와 한시(漢詩)를 쓴 대표작들
8-1 소지도인이 즐겨 쓴 우리나라 한시
8-2 소지도인이 즐겨 쓴 중국의 한시
8-3 시첩(詩帖)을 쓰고 직접 책으로 묶어 꾸미는 즐거움
9장
스승의 계보와 서예가 친구들 간의 발전적 경쟁
9-1 역사상의 명필들
9-2 소지도인 스승의 계보
- 천하 제일의 행서로 서예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서성 왕희지
- 충의로 가득한 천하제이서(天下第二書)로 필명수세(筆名垂世)한 안진경
- 시서화 삼절의 전형을 보인 팔방미인 천재 작가, 소동파
- 전통의 틀을 깨고 근대 서예의 시작을 알린 정섭
- 중국 서예계를 뒤흔든 독창적인 추사체, 김정희
- 김정희의 추사체가 아름다운 까닭
9-3 소지도인의 학서 과정과 계보
9-4 당대 서예 대가들 간의 발전적 경쟁
- 불운을 떨치고 왼손 글씨의 경지를 개척한 검여 유희강
- 한글 서예의 부흥을 이룩한 일중 김충현
- 육조 해서에 능한 여초 김응현
-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한학자, 연민 이가원
- 그 밖의 서예가 친구들
- 소지도인의 제자들
10장
추사를 따라 또 다른 길을 가다
10-1 온고지신(溫故知新)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길
10-2 창신(創新), 새로운 스타일의 글씨를 만드는 방법
10-3 근대 중국 대가들의 법고창신한 작품들
10-4 근대 한국 대가들의 법고창신한 작품들
10-5 소지도인, 마침내 새로운 길을 찾아가다
10-6 서체의 변화를 어떻게 만들어 갔나
10-7 행서의 흐름을 실은 새로운 미적 감각에 눈뜨다
10-8 법고창신의 해행서 작품들
10-9 추사와 소지도인의 마지막 경계
부록 1
소지도인 라이프스타일과 서예 지도의 특징
- 백세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던 독특한 섭생
- 음주와 흡연, 그리고 중국차
- 체조와 건포마찰
- 즐겁게 노래 부르기
- 독특한 서예 지도 방법
- 제자의 안목을 키워주는 방법
부록 2
소지도인과 나의 인연기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