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나 극작과 연출을 전공하고 연극, 영화, TV 등 다양한 장르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이고 있는 작가 박본의 대표 희곡 세 편을 국내 최초로 번역한 책이다. 독일 문화평론가와 옮긴이의 해설을 덧붙여 작품이해를 돕고 있다. 독일문화원 번역 지원 선정 작품이다.
출판사 리뷰
2014년 엘제 라스커 쉴러 신진극작가상 수상작
2016년 독일 극작가 페스티벌 젊은심사위원상 수상작
2017년 베를린 연극제 작품상 수상작
주한 독일문화원 출판지원 도서
2011년 첫 작품 발표 이래 매년 한 작품씩 세상에 내놓을 때마다 상을 타는 놀라운 작가 박본 희곡집이 우리말로 처음으로 출간됐다. <슬픔과 멜랑콜리>, <박본을 애도함>, <으르렁대는 은하수> 이 세 작품을 모아 출간한 이번 희곡집은 박본 작품의 정수가 담긴 걸작이다.
종종 지구를 떠나 우주를 떠돌며 세상을 내려다보는 그의 시선이 얼핏 보면 허무맹랑하기도 하다. 그러나 때로는 충격적이고, 때로는 역겨운 이야기 뒤에는 한없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우리 삶과 닮은 모습이 숨겨져 있다. 21세기에 문득 날아든 것 같은 그의 작품들은 오직 박본만이 쓸 수 있는 독특하고 기발한 매력이 담겨 있다.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엄청난 상상력
시작과 끝의 접점에 서 있는 기발한 시선
독일 연극계를 신선한 충격에 빠뜨린 작가 박본. 그는 부조리한 세상에 날카로운 통찰과 독특한 시선으로 새로운 메타포를 던지는 작가로 손꼽힌다. 박본은 은하수보다 더 오래 산 거북 조지나, 현실과는 너무도 다른 성격의 소유자 도널드 트럼프, 박근혜, 김정은 등을 등장시켜 수준 높은 상상력을 선보인다. 여기에 예리하고 통렬한 풍자의 칼을 들이대 인간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이룬다. 뿐만 아니라, 허무와 우울한 일상에 중독된 인간의 속내를 파헤치며 조롱과 풍자의 끈을 놓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마냥 우울하거나 비판적이지만은 않다. <으르렁대는 은하수>에 등장하는 ‘경고하는 외계인’에서 볼 수 있듯이 지구인은 모두 똥통에 빠져 서로를 불구로 만들며 살고 있지만, 너무나 사랑스럽고 너무나 정겹고 너무나 귀여운 이해할 수 없는 흥미로운 존재들이다. 이처럼 그의 날카로운 시선 안에는 유쾌한 유머와 위트 있는 재치가 공존한다. 스스로를 파멸시킬 정도로 어리석은 사회의 부조리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사랑과 희망은 그의 작품 세계를 이루는 근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독일을 넘어 세계가 주목하는 작가
경계 없이 무한대로 뻗어나가는 실험적 작품
박본은 2014년, 만 27세도 되지 않은 나이에 <슬픔과 멜랑콜리>로 엘제 라스커 쉴러 신진극작가상을 수상했다. 2017년에는 <으르렁대는 은하수>로 베를린 연극제에서 작품상을 거머쥐었다. 1987년 베를린에서 태어나 독일 국적을 가진 박본은 대개 “한국에 뿌리를 둔 젊은 독일 극작가”라 소개된다.
독일 연극계가 박본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2011년 하이델베르크 연극제에 출품한 <젊은 2D 슈퍼마리오의 슬픔>이 혁신작가상을 받으면서이다. <슬픔과 멜랑콜리>는 취리히, 포츠담 등에서 실험적으로 무대에 올랐고, 같은 해 본에서 초연하였다. <플랑쿠후로토. 한스라는 이름의 중국인>은 프랑크푸르트의 무대에 올랐고, <군내 나는 관용>은 켐니츠에서 초연하였다. 2016년에는 독일 에센에서 열린 극작가 페스티벌에서 <박본을 애도함>이 최연소로 젊은심사위원상을 수상했고, <슬픔과 멜랑콜리>는 이탈리아어로 번역되어 로마의 극 무대에 올랐다. 그의 작품은 빠른 속도로 고공행진을 하고 있으며, 실로 박본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고독한 조지
는 거대한 거북이다. 그가 무대에 등장한다. 수억 년을 산 거대한 거북이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무대에 오른다. 잠시 숨을 돌린다. (이 역시 거북 개념의 잠시를 말한다.) 그리고 날카로운 소리로 포효한다. 그리고 포효한다. 그리고 포효한다. 그리고 한숨을 쉰다. 다시 부르짖는다. 다시 한숨을 쉰다. 그러는 동안 몇 분이 흐르고, 몇 시간이 흐르고, 몇 주가 흐르고, 몇 년이 흐른다.
이제 슬픈 음악이 들린다. ? -----. 음악이 아무리 슬퍼도 조지만큼 슬프지는 않다. 음악은 조지에게 가닿지 않는다. 그의 멜랑콜리와 고독은 인간의 상상을 벗어나는 곳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의 멜랑콜리와 고독은 우리의 상상을 벗어나는 세계에 아주 우울하게 존재한다. 우리가 아는 그 어떤 우울함과도 같지 않다. 조지는 그의 종속 중 마지막 남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세월이 변하고 또 변하는 동안 마치 나이테처럼 굵은 주름이 하나둘 깊이 새겨졌다. 한 세기, 한 세기 그의 이마에 새겨졌다. 조지는 모든 것을 경험했다. 모든 것이라면 좀 거창하기는 하다. 그러나 조지 역시 거창한 존재다.
고독한 조지 나는 태어났고 걸음마를 배웠고, 읽는 법을 배웠고, 쓰는 법을 배웠고, 수秀도 받아 보았고, 가可도 받아 보았고, 월반도 해봤고, 낙제도 해봤다. 술에도 취해 보고, 토하기도 했다. 여자 친구가 술에 취해 토할 때 그녀의 머리카락을 붙잡아 주기도 했다. 그 다음 그녀와 섹스했다. 콘돔을 쓰기도 하고 콘돔을 쓰지 않기도 했다. 이따금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기도 했다. 아버지가 되었고, 남편이 되었고, 이혼도 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첫 번째 아내와 나중에 다시 결혼했다가 또다시 이혼했다. 여자들과 결혼하고, 남자들과도 결혼했다. 사랑에 빠져 보았다. 사랑에 빠져 보았다. 사랑에 빠져 보았다. 사회 복지사로 근무했다. 청소년 사회 문화 요원으로도 한 해 동안 활동했다. 외국에도 가 봤다. 군에도 입대했다. 독일제국 군, 소련 군, 러시아 백군, 미군, 대영제국 군, 대영제국 해군, 대영제국 공군, 볼셰비키 군, 멘셰비키 군, 로마 군단, 혁명 군단에서도 복무했다.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이편에서 싸우기도 했고 저편에서 싸우기도 했다. 제1차 세계 대전에도 참전했다. 미국 남북전쟁에도 참전했다. 스페인 혁명전에도 참전했다. 모든 시민전쟁에는 다 참전했다. 삼십년 전쟁에서도 백년 전쟁에서도 싸웠다. 영원한 전쟁에서도 ㅆ웠다. 프랑스 혁명을 위해 싸웠다. 트로이 목마도 만들었다.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언어를 구사한다. 괴테와 편지도 주고받았다. 아리스토텔레스와도 편지를 주고받았다. 티렉스 멤버 한 명과도, 어떤 프랑스인하고도 편지를 주고받았다. 프리드리히 실러하고도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 밖에 많은 이와 편지를 주고받았다. 아도르노, 버틀러, 옐리네크, 스티브 잡스하고는 편지를 주고받지 않았다. 멀리 떨어져 있는 내 여자 친구하고도 편지를 주고받지 않았다. 19세기 말에는 러시아 대 서사극을 썼다. 독일의 <누가 백만장자가 될 것인가>라는 프로그램에서 백만 유로를 땄다. 미국의 <누가 백만장자가 될 것 인가> 프로그램에서도 백만 달러를 땄다. 아프가니스탄의 <누가 백만장자가 될 것인가>에서도 백만 아프가니를 땄다. 축구 세계 챔피언이었고, 핸드볼 세계 챔피언이었고, 골프 대회에서도 세계 1위를 했다. 테니스 대회, 탁구대회,사이클 대회에서도 세계 1위를 해 봤다. WBF, WWF, WBC, WBA, WWC, WWA, WCA, WWW, IBO, EBO, WTF의 유럽 대회, 세계대회에서 라이트급, 중량급, 라이트헤비급, 헤비급 메달을 땄다. 라푼첼의 머리채가 바닥에 닿는 것을 보았다. 영화제에서도 상을 받아 보았고, 평화상, 과학상도 받아 보았다. 나는 배우였다. 나는 내 껍질 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올 수도 있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또, 계속 할까? <'슬픔과 멜랑콜리'에서>
부고
박본 (1987-2012)
박본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의 죽음으로 세상은 지구상에 살았던 또 한 명의 인간을 잃었습니다. 그는 누구나 하는 일을 하며 살았습니다. 남보다 잘한 적도 있고 못한 적도 있었습니다. 남들처럼 먹고 마셨으며 다행히 섹스도 해 봤습니다. 담배도 많이 피웠습니다. “피우든 안 피우든 결국은 누구나 죽어”라는 모토 하에. 결국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의 사후의 삶이 복된 것이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현세의 삶과 교환한 것이 결국 잘한 일이었기를 희망합니다.
<'박본을 애도함'에서>
세상을 이해할 수 없는 김정은 (.....) 남조선 대통령은 사소함에 사로잡힌 듯합니다. 북한 선전 문구가 새겨진 손수건을 건넵니다. 조금 부끄럽습니다. 누나가 눈물을 닦기 전에 그 문구를 읽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녀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합니다. “근혜 누나, 말이지. 정말 쉬운 일이야. 통일 아니면 쾅? 최선이냐 최악이냐지. 어쩌면 좋겠어? 누나, 정말 쉽다니까. 우리 그냥 하자고.” 누나가 이럽니다. “그게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니야. 정말이야.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아요. 내가 영혼을 다해서 말하는 건데 정말 쉽지 않은 일이야.” 그녀의 눈물로 솟아올랐던 희망이 단번에 다시 사라지는 걸 느끼지만, 뭐 생각지 못한 일은 아닙니다. 저는 배낭에서 마지막 무기를 꺼내 회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습니다.
암에 걸린 어린아이 안녕하세요.
세상을 이해할 수 없는 김정은 꼬마야, 몇 살이니?
암에 걸린 어린아이 여덟 살하고 석 달이요.
세상을 이해할 수 없는 김정은 저런! 학교 다니겠네?
암에 걸린 어린아이 아니요, 이젠 안 가요.
세상을 이해할 수 없는 김정은 왜?
암에 걸린 어린아이 암에 걸렸거든요.
세상을 이해할 수 없는 김정은 정말? 그거 큰일이구나. 무슨 암인데?
암에 걸린 어린아이 전부 다요. 암이란 암은 모두요.
세상을 이해할 수 없는 김정은 애구, 그거 정말 안됐구나. 뭔가 내가 해 줄 것 없니? 소원 있어? 초콜릿 줄까?
암에 걸린 어린아이 싫어요.
세상을 이해할 수 없는 김정은 장난감? 플레이스테이션?
암에 걸린 어린아이 싫어요.
세상을 이해할 수 없는 김정은 아무것도?
암에 걸린 어린아이 제 소원은 통일이에요.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에요.
세상을 이해할 수 없는 김정은 정말 그것밖에 없어?
암에 걸린 어린아이 오로지 통일이에요.
세상을 이해할 수 없는 김정은 꼬마야, 미안하구나. 그게 안 될 것 같다. 근혜 아줌마가 그러는데 그건 정말 안 된대.
암에 걸린 어린아이 아, 그래요? 알았어요.
세상을 이해할 수 없는 김정은 짜증 난단 말입니다. 제 소원도 오로지 통일입니다. 그런데 근혜 누나는 “정말 안 돼. 미안해.” 이 말만 자꾸 한단 말입니다. 그건 누나가 대통령 직위에 대한, 생명에 대한, 자연과 사람에 대한 책임감을 모두 상실했다는 분명한 증거란 말입니다. 자기가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겁니다. 이 세상의 복잡한 미로 같은 구조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겁니다. 이제 무너질 때가 된 겁니다. 그렇게 간단한 결정을 왜 못합니까? 이 행성은 대체 왜 이 꼴입니까? 저는 그녀의 팔을 쓰다듬고 어깨를 잡은 뒤 눈을 깊이 들여다봅니다. 그랬더니 제 눈에서도 문득 눈물이 떨어집니다. 단추를 누릅니다. 엄청난 굉음이 들립니다. 근혜와 찌질이 통일부 장관이 창가로 달려갑니다. 밖에서는 폭발음이 지속해서 들립니다. 그런데 어디에서고 파괴되는 기미는 없습니다. “아, 저기.” 마침내 멀리 고층 빌딩 유리창에 하늘의 오색 불빛이 반사되는 걸 발견합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거기 아름다운 폭죽이 터지면서 이런 글을 씁니다. “이 바보 멍청이들아!” <'으르렁대는 은하수'에서>
작가 소개
저자 : 박본
2014년, 만 27세도 되지 않은 나이에 <슬픔과 멜랑콜리>로 엘제 라스커 쉴러 신진극작가상을 수상했다. 2017년, 만 30세가 되던 해에는 <으르렁대는 은하수>로 베를린 연극제에서 작품상을 거머쥐었다. 그뿐 아니라 2011년 발표한 <젊은 2D 슈퍼마리오의 슬픔> 이래 지금까지 발표하는 작품마다 상을 타는 신기한 작가이다. 1987년 베를린에서 태어나 독일 국적을 가진 박본은 대개 “한국에 뿌리를 둔 젊은 독일 극작가”라 소개된다. 그는 매우 인상적인 경력의 소유자로 김나지움을 다니던 시절 베를린 민중극장을 자주 찾았고, 2008년 민중극장에서 p14라는 청소년 프로그램에서 극작과 연출을 배웠다. 이후 베를린훔볼트대학에서 슬라브 문학을, 베를린예술대학에서 극작을 전공하는 동안 베를린 민중극장의 유명 연출가들 밑에서 연출 실무를 익혔다. 다수의 희곡을 썼으며, 시나리오 작가, 제작자, 배우로서 연극 외에도 영화, TV 드라마 장르를 섭렵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빠른 속도로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목차
작가의 말
슬픔과 멜랑콜리 혹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영원토록 외로운 조지
박본을 애도함
으르렁대는 은하수
뒤집힌 세상 -파트리크 빌더만 글
옮긴이의 글
작가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