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네덜란드의 위대한 정치가 아브라함 카이퍼를 통해 기독 정치의 한계와 가능성을 모색한 책. 아브라함 카이퍼는 “제2의 칼뱅”, 헤르만 바빙크, 벤자민 워필드와 더불어 “세계 3대 칼뱅주의자”라고 평가받는 신학자이자 교육가이며, 정치가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그는 신문의 발행인이었고, 신학, 교육, 정치 등 사회 각 분야에 관한 방대한 분량의 글을 남겼다. 다양한 분야에서의 왕성한 그의 활동과 업적 때문에 그는 “10개의 머리와 100개의 손을 가진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카이퍼는 1879년 반혁명당을 창당했다. 그는 1878년에, 자신이 창간한 일간지에 반혁명파의 초안 강령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이 초안 강령의 기고는 약 6개월간 지속되었고 이 원고는 1879년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그는 적극적 행동을 위한 지침으로서 반혁명파에 도움을 주고 그들이 공식적인 반혁명당을 설립하도록 격려하기 위해, 그리고 더 궁극적으로 “우리의 정치적 신조가 건전하고 일관적이며 유익하다는 것을 마음을 같이하는 시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이 책을 출판했다. 또한 이 책은 반혁명당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열망과 의도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출판사 리뷰
네덜란드 최초의 대중 정당, 반혁명당(Anti-Revolutionary Party)의 정강 정책 설명서,
네덜란드의 위대한 정치가 아브라함 카이퍼를 통해 기독 정치의 한계와 가능성을 모색하다!
아브라함 카이퍼(1838-1920)는 19세기 후반 및 20세기 초반 네덜란드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첫 목사 재임 기간에 예수 그리스도께 깊이 헌신했으며, 개혁주의 신학에 몰두했다. 그는 “제2의 칼뱅”, 헤르만 바빙크, 벤자민 워필드와 더불어 “세계 3대 칼뱅주의자”라고 평가받는 신학자이자 1880년 암스테르담 자유 대학교(Vrije Universiteit Amsterdam)를 설립한 교육가이며, 하원의원 및 1901-1905년에 네덜란드의 수상을 역임한 정치가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그는 신문의 발행인이었고, 신학, 교육, 정치 등 사회 각 분야에 관한 방대한 분량의 글을 남겼다. 다양한 분야에서의 왕성한 그의 활동과 업적 때문에 그는 “10개의 머리와 100개의 손을 가진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카이퍼는 1879년 반혁명당을 창당했다. 그는 1878년에, 자신이 창간한 일간지에 반혁명파의 초안 강령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이 초안 강령의 기고는 약 6개월간 지속되었고 이 원고는 1879년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그는 적극적 행동을 위한 지침으로서 반혁명파에 도움을 주고 그들이 공식적인 반혁명당을 설립하도록 격려하기 위해, 그리고 더 궁극적으로 “우리의 정치적 신조가 건전하고 일관적이며 유익하다는 것을 마음을 같이하는 시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이 책을 출판했다. 또한 이 책은 반혁명당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열망과 의도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는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반혁명적”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설명한다. “반혁명적”이라는 뜻은 프랑스 혁명에 내재된 이데올로기와 우리가 세속적 인본주의로 알고 있는 공공 철학, 즉 근대성(modernity)에 반대하는 것이다. 반혁명적 운동은 자신의 독자들에게 사회와 정치의 거의 모든 중요한 질문들에서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따르는 자유주의자와, 모든 것을 프랑스 혁명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보수주의자들과 함께하지 않는다. 카이퍼는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 모두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열정적이든 미온적이든, 프랑스 혁명에 의해 발생한 근본적인 세계관에 근거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프랑스 혁명은 자유의 확산과 더불어 계몽주의를 더욱 확산시켰으며 서유럽 전역에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삶과 사회를 형성하도록 안내했다. 1789년의 프랑스 혁명에 의해 촉발된 세속적 세계관은 한 세기가 지난 19세기 후반에도 근본적인 도전을 받지 않으면서 공적인 삶에 대한 영구적인 특징이 되는 것처럼 보였다. 이에 대항하여 반혁명파는 세속적인 이성주의자들의 세계관에 대한 포괄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카이퍼는 신칼뱅주의적인 세계관을 견지하면서 프랑스 혁명에 의해 파생된 신념, 세계관, 관습 등을 철저하게 반대했다.
또한 카이퍼는 국민들에게 자신들이 네덜란드 칼뱅주의자들과 16세기 스페인의 폭정에 대항한 자유 투사들의 후손들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자신의 국가가 “기독교적”이라는 사실을 확고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그는 국가와 교회를 명확히 구분했지만, 사람들의 주관적 믿음 및 교회의 신자임을 표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독교적 정치 및 가치가 교회와 연결된다는 것과 별도로 국가 생활에 스며들 수 있다는 의미, 그리고 정치적 개념으로서 “기독교적”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했다. 그는 실질적으로 교회와 국가가 정기적으로 서로 교류한다는 조건 아래, “자유로운 국가 속에서 자유로운 교회”라는 슬로건을 지지했다. 그는 세속 국가와 신정 국가 모두를 거부했다.
카이퍼는 절대적 의미의 주권이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있고 교회 및 국가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이 주권적인 통치를 행사하신다는 이른바 영역 주권론(sphere sovereignty)을 주창했다. 독자들은 카이퍼가 실제 정치 영역 및 사회 각 영역에서 영역 주권론을 어떻게 적용하려고 했는지를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오직 하나님만이 절대적 주권자이시고, 모든 주권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며 하나님 한 분만이 모든 피조물, 사물의 모든 질서를 다스리시며, 주권적인 정치권력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부터 한 개인에게 또는 영웅적인 사람들의 왕조로 흘러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특히 네덜란드 역사를 살피면서 대중 주권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인도 아래 오란녀 가에 주권 및 헌법적 권위가 부여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카이퍼는 개인이나 사회의 총합이 아니라 유기체로서 국가를 바라본다. 그는 기독교 국가든지 하나님을 부인하는 국가이든지 정부는 하나님의 종이며 정당의 이익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면서 하나님의 은총으로 통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역사적 맥락에서 입헌군주제를 네덜란드에 가장 적합한 정부 형태로 인정하면서 1848년 개정 헌법을 기초로 정치 제도를 개혁하고자 한다.
카이퍼는 교회에 출석하지만 인구 조사와 납세액에 기반을 둔 제한 선거권 때문에 점차 정치과정으로부터 소외된 개혁주의 그리스도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이에 따라 그는 소수자로 분류된 사람들의 권리가 무시되지 않으면서 선거 제도의 개혁을 주장한다. 그는 정치 및 선거 제도 외에 분권 및 지방자치, 교육, 사법 제도, 공중 보건, 재무 행정, 외교, 식민지 관리, 사회적 계층 문제, 국가와 교회의 관계, 정당 정책 등과 관련해서도 그가 견지한 신칼뱅주의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19세기 후반의 네덜란드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국민들이 성경, 건전한 이성, 상식에 근거하여 마땅히 믿고 이해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설명한다.
결론에서 그는, 반혁명당은 “칼뱅주의 유토피아”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 아니며 다양한 교파와 정치적 세력이 공존하는 다원적인 국가를 위해 반혁명당이 생각하는 국가 개요를 언급한 것이라고 말한다. 반혁명당의 목표는 모든 당사자들을 위한 타협안을 제시하는 것이며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주권을 행사하면서 국가가 유기적 전체로서 기능할 때 정치적으로 번영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카이퍼는 자신의 견해가 결코 완전하지 않다고 피력한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은 완전함을 실현할 수 없고, 그 이유는 우리 가운데 너무나 많은 세부적인 것에 대한 동의가 부족하기 때문이며, 미래에는 더 많은 연구가 요청된다고 말했다. 또한 그가 설파한 이 강령이 반혁명당의 유일한 “정통적인 해석”이자 최종적인 선언으로 간주되어서도 안 된다고 경고했다. 본인만이 이 책에 책임이 있으므로 자유롭게 동의하든 반대하든 독자가 결정하라고 주장한다. 그는 어떤 신념이든지 모든 정부가 만약 정부와 그의 국민들의 유익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며 그것을 인식하고 있다면 현실 그 자체에서 드러나는 진리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주장한다.
카이퍼의 정책을 세밀하게 검토해 보자면, 150년 정도가 지난 지금의 시각에서는 공감할 수 없는 내용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19세기 후반 정치에 본격적으로 입문하기 시작한 카이퍼가 주장한 정책들을 지금 이 시대에 전면적으로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우리는 카이퍼가 실제 정치의 전 영역에서 실현하고자 했던 배경을 통해 그의 사색, 꿈, 이성적 대안의 가치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즉 그의 신학을 바탕으로 한 상식, 공정성, 명백한 불의에 대한 분노, 진정한 자유를 향한 열망, 그리고 아이디어의 참신성 등은 오늘날 기독 정치의 새로운 방향을 꿈꾸는 이들에게 영감을 줄 것이다.
우리는 국가를 유기체로 간주한다. 무엇보다도 사람들과 그들의 정체성, 그들의 연관성과 궁극적인 관계, 사람들이 살아가는 정부와의 관계를 포함하여 그 속에서 야기되는 모든 사회적 능력, 그리고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는 모든 물질적 환경 등은 우연히 모인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서로를 의지하고 자신들의 성질로 인해 함께 있게 된 것들이다. 뿐만 아니라 국가가 복종하는 법은 임의적으로 결정될 수 없고, 필수적인 수정을 제외하고는 국가의 성격에 따라 결정된다.
_제4장 “정부” 중에서
우리가 지적하려고 하는 모든 것은 다음 두 가지다. (1) 어떤 형태의 정부를 선택하는지는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2) 입헌군주제는 우리나라가 선호하는 형태다.
첫 번째 사항에 관하여 반혁명당은 정부 형태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공화주의, 혹은 군주제가 가능한지에 관한 것과, 정부 형태가 국민들의 진정한 행복에 도움이 되는지를 입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늘 주장했다. 이런 확신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한 확고한 믿음에서 나오며 역사의 교훈이 이를 증명한다. 하나님의 절대적 권능은 그분이 선택하는 수단에 대해서도 존중되어야만 한다. 결국 모든 것은 그분이 선택하는 수단이 아니라 그분이 의도하는 목적에 달려 있다.
_제7장 “정부 형태” 중에서
그러므로 선거의 아주 단순한 원리는 다음의 혜택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것은 (1) 소수자의 권리를 완전히 보장하는 것, (2)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지역 경계를 다시 조정하거나 혹은 다른 부도덕한 연합을 통한 모든 정치적 음모를 종식시키는 것, (3) 국가의 지배적 원칙을 가장 순수하게 표현한 사람들을 선출하는 것, (4) 모든 보궐 선거가 사라지는 것, (5) 후보자가 선출될 수 없다는 불안감이 더 이상 투표자들의 에너지를 소진시키지 않을 것, (6) 활동을 위한 사람들의 열광과 영감이 최고조일 때 선거를 실시하는 것이다.
_제12장 “국가와 내각” 중에서
작가 소개
저자 : 아브라함 카이퍼
네덜란드의 목회자, 신학자, 교육가, 정치가였다. 젊은 시절 그는 목사로서 예수 그리스도께 깊이 헌신했고, 이후 그에게 큰 영향을 준 칼뱅주의 신학에 몰두했으며 헤르만 바빙크, 벤자민 B. 워필드와 함께 세계 3대 칼뱅주의 신학자로 불린다. 그는 신문을 발행하는 것 이외에도 1879년 반혁명당을 창당하고 네덜란드 개혁교회를 이끌었으며, 1880년 암스테르담 자유 대학교를 설립하고, 1901-1905년에는 네덜란드 수상을 역임했다. 그는 자신의 신앙과 삶을 통합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으며, 교육, 신학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방대한 분량의 글을 남겼다. 『일반 은혜 1』(부흥과개혁사 역간), 『칼빈주의 강연』, 『하나님께 가까이』(이하 CH북스 역간) 등의 책이 국내에 소개되어 있다.
목차
편집자 서문 10
영역자 서문 16
제1장 우리의 운동 29
제2장 권위 53
제3장 하나님의 법 73
제4장 정부 95
제5장 세속 국가는 없다 119
제6장 “하나님의 은총으로” 147
제7장 정부 형태 167
제8장 헌법 175
제9장 대중적 영향력 191
제10장 예산안 거부 213
제11장 분권 239
제12장 국가와 내각 279
제13장 교육 317
제14장 사법 제도 353
제15장 공공질서 379
제16장 공중 보건 397
제17장 재정 413
제18장 국가 방위 445
제19장 해외 재산 477
제20장 사회적 질문 533
제21장 교회와 국가 563
제22장 정당 정책 581
결론 602
세부 목차 610
아브라함 카이퍼에 대하여(1837-1920년) 620
영역자 및 편집자에 대하여 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