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시공을 초월한 진리의 원음을 들으며
아침에는 흰 구름 밤에는 밝은 달빛
게송과 시의 묘미는 압축과 리듬에 있다. 압축된 언어로 다양한 의미를 전한다. 풀어 놓으려면 한이 없고 압축하려면 단 몇 마디 말로도 가능한 것이 진리의 세계다. 게송과 시는 압축된 언어에 독특한 리듬을 부여하여 진리를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
우선 게송은 여러 경전들에서 공통적으로 적용하는 의미 전달의 방식이다. 부처님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가르침을 자세히 설명하고 나면, 그것을 요약하여 짧은 게송으로 다시 정리하는 방식 이다. 아마 문자가 정착되지 않은 시대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적용된 전달 방식일 것이다.
부처님이 어떤 상황에 대해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통해 가르침을 펼쳤을 때, 그 장황한 설명이 고스란히 구전되기는 어렵다. 그래서 리듬을 얹은 게송으로 압축하여 전하는 것이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시는 문학의 중요한 장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많은 시론이 유통되고 있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시는 불교와 접목되어서도 다양한 형태의 작품으로 전해져 왔고 지금도 창작되고 있다. 불교와 만난 시의 대표적인 형식이 경전 속의 게송을 필두로 선시와 열반송, 출가시, 오도송 등으로 자리잡아 왔고 요즘은 ‘현대선시’라는 이름으로 창작되기도 한다.
시와 게송은 어떤 관계인가? 같고도 다르며 다르면서도 같은 관계라 할 수 있다. 전문적인 문학이론에서 이 둘의 관계를 정의하는 것은 상당히 복잡하고 이론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문학이론의 차원이 아니라 불교를 공부하고 시와 게송을 통해 마음을 힐링하려는 입장이라면 굳이 그 둘의 관계를 복잡하게 분별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시와 게송은 압축적이고 리듬을 가지며 불교적 가르침 혹은 깨달음의 세계를 전하기 위해 지어진 것이라는 공통점이 훨씬 중요하다.
‘시삼백詩三百 사무사思無邪’라는 공자의 말은 워낙 유명하다.
공자는 〈논어〉 ‘위정’편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경〉에 삼백 편을 정리한 것은 한마디로 말해, 시 삼백 편은 모두 마음에 삿됨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이를 후대에서는 삼백 편의 시를 알면 마음에 삿됨이 없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공자가 정치를 논하는 자리에서 느닷없이 시 얘기를 던진 이유는 시가 인간 심성에 끼치는 바를 잘 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는 교훈의 기능 말고도 정서를 순화해주는 기능이 있다. 공자는 시에 대해 〈논어〉 ‘양화편’에서 이런 말도 남겼다.
“시는 정서를 일으키며 詩可以興 얻고 잃는 것을 볼 수 있으며 可以觀 무리와 사귀게 하고 可以群 원망하되 노하지 않으며 可以怨 가까이는 아비를 섬기고 멀리는 임금을 섬기고 邇之事父遠之事君 금수초목의 이름을 많이 알게 한다 多識於鳥獸草木之名 .”
불교와 시의 만남도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경전의 편찬자들은 언어의 경제성과 음악성을 집적集積하는 시를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다 효과적으로 유통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한 영향이 중국 불교에서 더욱 확대 되었고, 특히 선불교에서 자신의 마음자리를 드러내는 방법으로 가장 적효適效했던 것이 시였던 것이다. 그래서 선시라는 독특한 장르가 개척되었고, 수많은 선수행자들이 수많은 선시를 지어 자신의 마음자리 즉 깨달음의 상태를 드러냈다.
이렇게 볼 때 게송과 시는 불교를 배우고 느끼고 공감하는 가장 빠른 길이라 할 수 있다. 시와 게송이야말로 가르침과 깨달음의 경지를 가장 함축적이고 리드미컬하게 담은 그릇이다.
이 책에서는 바로 그 점에 주목하여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쉽게 만날 수 있는 시와 게송들을 선별하여 거기에 함축된 의미를 풀어보고자 한다. 물론 시와 게송이라는 장르를 따로 분류하지는 않는다. 시가 게송이고 게송이 시라는 불가분의 관계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측면도 있다.
게송과 시를 통해 불교를 공부하는 일은 즐거움이다. 압축된 언어의 세계를 풀어내어 거기 농익은 진리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그래서 경전에 전하거나 옛 선지식들의 문집이나 어록 등에 전하는 시와 게송들을 통해 불교의 진실한 가르침을 배우고자 아함부의 중요한 게송과 선사와 거사 혹은 선비들이 남긴 이름난 시들을 한 데 모으고 조촐한 설명을 덧붙였다. 전문적인 문학과 학술적 입장에서 시와 게송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보다는 그 의미를 통해 불교의 교리 혹은 삶의 가치를 배우고 마음을 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자 했다. 이것이 승려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범위다.
이 한 권의 책에 수록된 게송과 시편들을 독자 여러분들이 읽고 느끼고 가슴에 새겨 넣는다면, 시공을 초월한 진리의 원음들이 해탈지견의 공덕으로 익어갈 것이다.
이미 무거운 짐 버렸거든 다시는 그것을 취하지 말라.
무거운 짐은 큰 괴로움이요.짐을 버림은 큰 즐거움이네.
(잡아함 73 ‘중담경重擔經’)
지금 당신의 등에는 어떤 짐이 지워져 있나요? 생각해보면 누구나 많은 짐을 지고 있습니다. 몸은 하나지만 그 몸에 얹어진 삶의 짐은 많고 무겁죠. 당신의 주민등록증에는 하나의 이름이 적혀 있겠지만, 세상에서 당신을 지칭하는 이름은 수 십 개나 됩니다. 당신은 집에서 어떻게 불리고 있습니까? 누군가의 아들이고 남편이고 오빠이고 형님 혹은 동생이고 아버지이고 삼촌이고 외삼촌 고모부 이모부 처남 매형 등등이고 심지어 이웃집 아저씨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불리는 이름만큼이나 많은 짐을 지고 있습니다.
못가에 홀로 앉아 물 밑 한 사내와 서로 만났네.
둘이 보며 말없이 미소 짓는 건 그 마음과 이 마음 서로 비치는 때문. *
(진각혜심眞覺慧諶, 1178~1234)
불교의 선종에서는 회광반조回光返照 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이 말의 사전적 의미는 ‘빛을 돌이켜 거꾸로 비춘다’는 뜻인데, ‘해가 지기 직전 일시적으로 햇살이 강하게 비추어 하늘이 잠시 동안 밝아지는 자연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또 ‘죽음 직전에 이른 사람이 잠시 동안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비유하거나, 사물이 쇠멸하기 직전에 잠시 왕성한 기운을 되찾는 경우를 비유하는 말’이라고도 설명됩니다. 특히 선종에서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돌이켜 반성하여 진실한 자신, 즉 불성佛性을 발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을바람 한 무더기 뜰 안을 쓸어가고 만 리에 구름 없이 푸른 하늘 드러났네.
상쾌한 기운 무르녹아 사람들 기뻐하고 눈빛은 맑아져 기러기 연달아 날아가네.
밝은 저 보배 달 가늠하기 어렵고 굽이치는 산맥은 끝없이 뻗어가네.
모든 것은 본래부터 제자리에 있는데 처마 가득 가을빛, 반은 붉고 반은 푸르네. *
(나옹혜근 懶翁惠勤, 1320~1376)
나옹 스님이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로 시작되는 가사는 워낙 유명하여 사찰 곳곳에 액자로 걸려 있기도 합니다.
이 가사에도 잘 드러나 있듯이, 나옹 선사의 삶과 수행은 철저히 선적이었는데, 그것은 바로 걸림 없이 살아가는 깨달은 이의 풍모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출가 수행자의 삶은 처음도 끝도 무소유여야 합니다. 근래 법정 스님이 〈무소유〉라는 책을 통해 많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삶의 지침이 되기도 했지만, 무소유야말로 수행자나 재가자가 가슴에 새기고 살아야할 중요한 덕목입니다.
작가 소개
저자 : 허정
1965년 동화사로 출가, 의현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1976년 석암 스님을 계사로 비구 계를 수지했으며 2년 뒤 법주사 승가대학을 졸업했다. 조계종 총무원 사회국장, 제 10대 중앙종회의원, 대구 용연사 주지, 조계사 주지, 서울 북아현동 금륜사 주지(창 건), 조계종 포교원 연수부장, 경찰청 경승 등을 지냈다. 1995년부터 파주 심학산에 약천사를 창건, 도량 불사를 하며 포교에 진력하고 있다.
목차
1부 부처님의 게송
짐을 버린 홀가분함· 15
법을 어기지 않는 효도 · 17
차오르는 달과 같이 · 20
지팡이 보다 못한 아들· 23
부처님의 농사 · 27
닦을 것과 끊을 것· 31
인생이 무상하게 느껴질 때· 34
무엇을 좋아하고 · 37
무엇을 싫어하랴· 37
나를 버리면‘명중’이다· 41
한 생각을 쉬는 힘· 44
한결같이 좋은 인연· 47
번뇌도 기쁨도 본래 없다· 50
계산 없는 마음으로· 52
목숨 걸고 공부하라· 55
자기를 낮추는 만큼· 58
엿장수 마음대로 · 61
헌신하는 마음· 64
마음의 출가· 67
‘번뇌 군사’에게 항복 받기· 70
저 언덕으로 건너가자· 73
기름이 다해 불이 꺼지듯· 76
진품으로 살자 · 80
좋은 친구 나쁜 친구· 83
끊어지지 않는 깨달음 · 86
백세 시대를 잘 사는 법· 89
공양 받을 자격· 92
분수를 지켜라· 95
뿌리 깊은 효행의 전통· 98
자기를 이기는 법· 101
나눔과 무소유의 덕· 104
2부 중국 선사들의 선시
본래 한 물건도 없으니· 109
바위에 앉으니 · 112
안개와 구름 걷히네 · 112
나에게 포대 하나 있으니· 115
빈 배 가득 밝은 달빛만 싣고· 120
봄바람 베는 것과 같으리· 125
지옥이 두렵지 않다네· 130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 135
가지 끝의 허공을 보라· 140
너 자신을 알고 싶거든· 145
누가 지옥에 들어가는가?· 150
3부 한국 선사들의 선시
본래 한 물건도 없으니· 109
바위에 앉으니 · 112
안개와 구름 걷히네 · 112
나에게 포대 하나 있으니· 115
빈 배 가득 밝은 달빛만 싣고· 120
봄바람 베는 것과 같으리· 125
지옥이 두렵지 않다네· 130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 135
가지 끝의 허공을 보라· 140
너 자신을 알고 싶거든· 145
누가 지옥에 들어가는가?· 150
내 모습을 보고 미소 짓다· 157
산승이 힘을 얻는 때· 162
본래부터 제자리에 있는데· 167
없는 가운데 길 있으니· 172
등불 밝혀줄 스승이 없네· 177
여섯 개의 창문에 · 182
비치는 것은?· 182
맑고 푸른 곳으로 올라가네· 187
꿈속에 사는 인생 · 192
삶 속에 꾸는 꿈· 192
4부 거사·선비들의 시
마음이 공하면 급제하리라· 201
생로병사의 고통 제거하려면· 205
시냇물 소리 · 208
부처님 설법일세· 208
시비와 분별을 놓아버리고· 213
바다에서 나온 진리· 217
한 곡조 거문고소리 · 220
누가 알랴· 220
금강의 진신을 공경하여· 223
흰 돌 맑은 물 꿈속에 보이리· 227
인생은 온통 꿈만 같아· 230
차 달이는 연기 피어나네· 234
외진 마을 벗이 없어· 237
진작부터 산이 그리워 · 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