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최효극 장편소설. 독일 출신 미국인 엘리자베스는 식민지 조선에서 온갖 악습과 편견에 맞서는 용기를 보여준다. 노예나 다름없는 가마꾼들의 노동에 반대하고, 처녀를 내다파는 악습에 저항하고, 나병환자들의 인권을 위해 목숨을 건 행진에 참여한다.
자신의 삶을 돌보지 않는 그녀의 헌신적 행동은 다른 선교사들과 갈등을 빚게 된다. 대부분 선교사들은 봉사와 자신의 사생활을 엄격히 분리하는 이중적 삶을 살아가지만, 엘리자베스는 그런 태도를 비판하고 조선인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음식을 먹으며 고난에 기꺼이 동참한다.
출판사 리뷰
식민지 조선 땅을 찾아온 파란 눈의 여선교사
짧지만 불꽃같았던 그녀의 삶에 바치는 헌사
목숨을 걸고 물속으로 뛰어들 것인가, 물 바깥에서 허우적대는 손이 떠오르길 기다릴 것인가.
소설 ‘느티나무’는 간호선교사 엘리자베스가 일제 강점기 조선 땅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해 이후 10여 년에 걸친 그녀의 삶을 그린다.
독일 출신 미국인 엘리자베스는 식민지 조선에서 온갖 악습과 편견에 맞서는 용기를 보여준다. 노예나 다름없는 가마꾼들의 노동에 반대하고, 처녀를 내다 파는 악습에 저항하고, 나병환자들의 인권을 위해 목숨을 건 행진에 참여한다.
자신의 삶을 돌보지 않는 그녀의 헌신적 행동은 다른 선교사들과 갈등을 빚게 된다. 대부분 선교사들은 봉사와 자신의 사생활을 엄격히 분리하는 이중적 삶을 살아가지만, 엘리자베스는 그런 태도를 비판하고 조선인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음식을 먹으며 고난에 기꺼이 동참한다.
토끼고기 통조림 사업으로 돈을 벌거나 취미로 멧돼지 사냥을 하던 선교사들에게 엘리자베스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되어, 모함을 받고 일시적으로 광주제중원에서 쫓겨나기도 한다.
광주제중원에서 남자 간호사로 일하며 조선 최초로 나병원을 세워 운영하던 최종오는 엘리자베스의 몸을 사리지 않는 헌신과 희생에 동지적 감정을 느끼게 된다.
엘리자베스는 최종오로부터 조선말을 배우고, 그를 ‘오빠’라고 부르며 따른다. 두 사람은 조랑말을 타고 매주 함께 봉선리 나병원을 다니며 서로에게 끌리는 감정을 느끼지만 각자의 사명감이 그런 감정의 진화를 억누른다.
젊은 시절 최종오와 함께 주먹패로 활동했던 최은갑은 일본 순감이 된다. 그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 경성에서 독립운동 인사들과 접촉하던 최종오를 현장에서 검거한다. 그는 자기와 정반대의 길을 걷는 최종오에게 경멸과 경외심이 섞인 복잡한 감정을 느끼며, 엘리자베와 최종오의 관계를 질투한다.
엘리자베스는 ‘정치적 중립’을 지키라는 원로 선교사들의 충고를 거부하고, 투옥된 최종오를 대신해 3?1 만세운동에도 적극 뛰어든다.
일제총독 우가끼에게 소록도 나환자들의 인권보장과 시설 확충을 요구하면서 엘리자베스와 최종오는 봉선리 나환자 112명을 이끌고 광주에서 경성까지 대행진을 감행한다. 행진 소식이 알려지자 도처에서 나환자들이 가세해 경성에 도착할 때는 400여 명에 이르게 된다. 10여 일에 걸친 고난의 행진은 모든 사람들의 삶을 크게 바꿔 놓는다.
봉선리에 기거하며 나환자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던 손장원 목사는 마침내 나병이 발병한다. 엘리자베스는 ‘희생을 통한 구원’이 유일한 길이라는 걸 몸으로 보여준다. 나환자들은 작은 승리를 통해 용기와 희망을 발견한다. 최종오는 자기가 구상한 ‘구라 대행진’ 끝에 희생된 엘리자베스에 대한 사랑과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다 ‘자발적 거세’라는 극단적인 결단을 내린다.
"플리즈 겟 온. 잇스 코울드."
누비 솜옷을 입은 박흥수는 얼굴이 벌게진 채 서툰 영어로 말했다.
아궁이에서 불을 때고 남은 재를 화장실에 수시로 뿌려주기만 했더라면, 부엌음식에 쥐들이 입을 대지 못하게 제대로 덮어놓기만 했더라면, 밥을 먹기 전에 손만 제대로 씻게 했더라면, 고열이 나면서 설사할 때 제중원에 바로 데려오기만 했더라면 수많은 아이들이 살아남았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엘리자베스는 주말에도 쉴 수 없었다. 빈곤층 부모들은 무지했다. 가난뱅이들은 먹거리만 모자란 게 아니라 지식도 정보도 모자라 어이없는 죽음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지 못했다. 엘리자베스의 생각에 대부분 이런 병은 가난에서 오고 가난은 무지에서 오는데 무지는 고칠 수 있는 병이었다. 그러니 가난뱅이들을 불러 모아 가르치고 또 가르쳐야 했다. 무지의 늪으로부터 이들을 건져내는 게 선교이자 치료인 셈이었다.
그건 자신이 기대하던 승리의 순간이 아니었다. 패자의 굴욕과 수치, 후회가 없는데 승리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은갑은 아카시 오장이 최종오가 두루마기 안에 감춘 태극기를 빼앗은 뒤 주먹으로 최종오의 뺨을 때리는 걸 보고도 전혀 통쾌하지 않았다. 아니, 되레 수치심을 느꼈다. 최종오는 고개를 빳빳하게 들곤 있었지만 젊은 날 불같이 폭발하던 성격은 어디로 갔는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은갑은 왜 최종오가 아닌 자신이 수치심을 느껴야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미 망해버린 조선은 망하기 전에도 자기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데다 그 소작농 아버지마저 술병과 화병으로 일찌감치 세상을 하직하고 나니 어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최종오와 함께 장터에서 주먹질로 밥벌이를 하는 것 외엔 아무런 희망이 없었다. 최종오도 어느 순간까지는 자기와 다를 바 없었다. 배신자가 된 건 자신이 아니라 야소교에 미쳐 미래를 포기한 최종오였다. 자신을 시장터의 주먹으로 만들어주고 순검에 응시하자고 유혹한 것도 최종오였다. 이제 와서 날더러 어떡하란 말인가. 돌이키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다. 그렇다면 끝까지 한번 가보자. 은갑은 이를 꽉 깨물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최효극
한국일보, 세계일보 편집기자문화일보 편집부장2018년 현)뉴시스 통신사 편집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