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민음사 세계시인선 34권. 19세기 러시아 대문호 투르게네프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투르게네프 산문시집이 출간되었다. 국내 처음으로 투르게네프의 산문시 83편 전편을 원어에서 완역한 이번 시집은 투르게네프의 탄생일인 11월 9일에 맞추어 독자들에게 선보이게 되었다.
『첫사랑』, 『아버지와 아들』 등 19세기 러시아의 사회를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는 투르게네프의 소설들은 우리나라 청소년 필독 도서로 오랜 세월 널리 사랑받아왔다. 이 산문시집은 그의 말년에 창작된 것으로, 거장이 남긴 마지막 작품들이다.
출판사 리뷰
● 시로 시작하여 시로 마무리한 시인 투르게네프 산문시 83편 국내 최초 완역
19세기 러시아 대문호 투르게네프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민음사 세계시인선 34번으로 투르게네프 산문시집이 출간되었다. 국내 처음으로 투르게네프의 산문시 83편 전편을 원어에서 완역한 이번 시집은 투르게네프의 탄생일인 11월 9일에 맞추어 독자들에게 선보이게 되었다. 『첫사랑』, 『아버지와 아들』 등 19세기 러시아의 사회를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는 투르게네프의 소설들은 우리나라 청소년 필독 도서로 오랜 세월 널리 사랑받아왔다. 그러나 한편 투르게네프는 자신의 문학적 경력을 시로 시작한 시인이기도 하다. 이 산문시집은 그의 말년에 창작된 것으로, 거장이 남긴 마지막 작품들이다. 투르게네프 특유의 인간에 대한 연민과 동시에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예리한 시선, 그리고 환상적 이미지, 이 모든 것들이 길게 말하지 않고도 본질을 꿰뚫는 대가의 솜씨로 이 한 권의 시집에 완성되어 있다.
어미 새가 새끼를 구하기 위해 돌진했고, 자기 몸을 희생하면서 새끼를 구하려 한 것이다…… 그런데 그 작은 몸뚱이는 공포로 벌벌 떨었고, 어미 새의 가냘픈 목소리는 거칠게 쉬어 버렸다. 어미 새는 끝내 기절하고 말았다. 자기 몸을 희생한 것이다!
(……)
생각해 보니, 사랑은 죽음보다, 죽음의 공포보다 더 강하다. 삶은 사랑에 의해서만 유지되고 움직인다.
― 투르게네프, 「참새」에서
●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했던 청년 윤동주가 사랑했던 시
20세기 초 식민지 조선에서 러시아 문학은 다른 어떤 외국문학보다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중 투르게네프는 이광수, 톨스토이와 함께 당시 조선에서 가장 많이 읽혔던 3대 작가 중 하나였다. 투르게네프 산문시의 쉽게 읽히는 시어와 거기에 담긴 삶의 지혜와 통찰은 일제강점기 지식인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투르게네프는 프랑스의 보들레르, 말라르메, 랭보, 프랑시스 잠 등의 산문시에서 영향을 받았고, 그의 산문시는 다시 한국 근대문학 형성기에 전통의 정형시를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근대적인 시를 모색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지금 네가 믿는 것에 환멸이 올 수 있음을 잘 알잖아? 그 믿음이 기만이고, 젊음을 헛되이 파멸시킨다는 것을 언젠가 알게 되잖아?”
“그것도 알아요. 그래도 저는 들어가고 싶습니다.”
“들어와라!”
여자가 문지방을 넘어서자 ? 그녀 등 뒤로 무거운 막이 내려졌다.
“바보 같은 년!” 누군가가 뒤에서 이를 갈았다.
“성녀다!” 응답하는 소리가 어디선가 울려 퍼졌다.
― 투르게네프, 「문지방」에서
투르게네프의 산문시 중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은 바로 「거지」였는데, 1910년~1930년 사이 최소 12회 반복하여 번역되었다. 가난이라는 시대의 현실 앞에서 민중에게 손 내밀고자 하는 공감과 연민의 휴머니즘이라는 주제는 당시 지식인들의 영혼에서부터 공명을 이뤄내었던 것이다. 이러한 공명은 투르게네프의 시를 번역하고 탐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창작으로 이어졌다.
가지고 나온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거지는 마냥 기다리고 있는데……
내민 손이 힘없이 떨린다.
어쩔 줄 몰라 당황한 나는 떨리는 그의 더러운 손을 꼭 잡았다…….
“형제님, 미안하오, 아무것도 가지고 나오지 못했소.”
거지는 충혈된 눈으로 나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그의 파리한 입술에 엷은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이번에는 그가 차디찬 내 손가락을 꼭 잡아 주며 속삭였다.
“형제님, 저는 괜찮아요.
이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형제님, 그 역시 적선이지요.”
그때 나는 이 형제한테 내가 적선 받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 투르게네프, 「거지」에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라고 노래했던 윤동주 역시 투르게네프의 산문시를 탐독하고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동주가 남긴 「투르게네프의 언덕」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투르게네프의 산문시 「거지」를 오마주한 것이다.
자신을, 남을, 모든 사람을, 짐승을, 새들을 불쌍히 여기노라……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불쌍히 여기노라.
불행한 자들과 행복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노라…… 불행한 자들보다 행복한 자들을 더 불쌍히 여기노라.
개선장군들과 위대한 화가들을, 사상가들과 시인들을 불쌍히 여기노라.
살인자들과 희생자들을, 추악함과 아름다움을, 압제자와 학대받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노라.
이 연민의 정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이 불쌍함 때문에 살고 싶은 마음조차 없는데…… 연민에 권태까지 더해진다.
오, 권태여, 지루함이여, 모두가 혼합된 연민이여! 인간은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다.
차라리 부러워하는 마음이라도 있다면…… 진짜 좋을 텐데!
그래, 나도 돌을 부러워한다!
― 투르게네프, 「불쌍히 여기노라……」에서
● "투르게네프의 시적 촉수는 언제나 그 풍경을 찢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세목들에 가장 민감한 바람과 풀잎처럼 반응한다." ―김행숙
투르게네프 특유의 “꿀과 기름처럼 완벽하게 유연하고 세련된 문장”으로 러시아의 풍경, 그리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섬세하고 아름답게 묘사하는 예술적 특징은 그의 시적 내면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또한 그의 소설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그의 산문시집에서도 역시 19세기 러시아의 가혹한 농노제 아래 일어났던 어두운 이야기들을 고발했던 리얼리즘 소설 대가로서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마룻바닥에 주저앉아 울었습니다. 손바닥으로 땅바닥을 치며 울었습니다. ‘이 욕심쟁이 땅 귀신! 아내를 잡아먹다니…… 나도 잡아먹어라! 아, 마샤!’”
그는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마샤!”라고 한 번 더 불렀다. 고삐를 쥔 채, 옷소매로 눈물을 닦아 옆으로 털어 버리고 어깨를 추어올렸다.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었다.
썰매에서 내릴 때, 나는 15코페이카를 더 주었다. 그는 양손으로 모자를 잡고 나에게 공손하게 인사했다. 회색빛 안개로 둘러싸인 텅 빈 정월의 눈길은 매섭게 추웠다. 그는 말을 몰고 천천히 걸어갔다.
― 투르게네프, 「마샤」에서
산문시집의 투르게네프의 목소리는 대체로 슬프고 다정다감하지만, 때때로 냉정하고 신랄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산문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인생의 막바지에 이른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삶의 불가해함에 대한 체념과 죽음에 대한 공포, 그리고 한편으로는 바로 그것이 선물처럼 가져다 줄 화해와 용서에 대한 기대이다. 투르게네프의 산문시를 읽는 것은 바로 독자들에게 투르게네프가 자신의 인생을 비춘 등불에 나의 얼굴을 비춰보고 그것이 역시 마찬가지로 보통의 부끄럽고도 슬픈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
나는 겁이 나 미사여구를 피한다. 그러나 미사여구에 대한 두려움 역시 일종의 불만이다.
그렇게 복잡한 우리 생활은 이 두 외래어 사이를, 불만과 미사여구 사이를 오가며 헤맨다.
― 투르게네프, 「미사여구」에서
그분의 얼굴은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다. 보통 사람들과 같은 그런 얼굴이다. 눈은 약간 위쪽을 주의 깊게 조용히 보고 있다. 입술은 다물었지만, 굳게 다문 것은 아니다.
(……)
다시 한번 힘을 냈다…… 역시 모든 사람들과 똑같은 얼굴이 보였다. 낯선 윤곽이긴 하지만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얼굴이었다.
그러자 갑자기 슬퍼졌고, 잠에서 깼다. 그때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바로 그런 얼굴, 보통 사람과 비슷한 얼굴, 그 얼굴이 바로 그리스도의 얼굴이라는 것을.
― 투르게네프, 「그리스도」에서
● 한국 시문학의 바탕을 마련한 세계시인선
1970-1980년대에는 시인들뿐만 아니라 한국 독자들도 모더니즘의 세례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때로는 부러움으로, 때로는 경쟁의 대상으로, 때로는 경이에 차서, 우리 독자는 낯선 번역어에도 불구하고 새로움과 언어 실험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러한 시문학 르네상스에 박차를 가한 것이 바로 세계시인선이다.
민음사는 1966년 창립 이후 한국문학의 힘과 세련된 인문학, 그리고 고전 소설의 깊이를 선보이며 종합출판사로 성장했다. 특히 민음사가 한국 문단에 기여하며 문학 출판사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바로 ‘세계시인선’과 ‘오늘의시인총서’였다. 1973년 12월 이백과 두보의 작품을 실은 『당시선』(고은),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김현),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검은 고양이』(김주연), 로버트 프로스트의 『불과 얼음』(정현종) 네 권으로 시작한 세계시인선은 박맹호 회장이 고 김현 선생에게 건넨 제안에서 비롯되었다.
“우리가 보는 외국 시인의 시집이라는 게 대부분 일본판을 중역한 것들이라서 제대로 번역이 된 건지 신뢰가 안 가네. 현이(김현)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 프랑스나 독일에 다녀온 이들 아닌가. 원본을 함께 실어 놓고 한글 번역을 옆에 나란히 배치하면 신뢰가 높아지지 않을까. 제대로 번역한 시집을 내 볼 생각이 없는가?”
대부분 번역이 일본어 중역이던 시절, 원문과 함께 제대로 된 원전 번역을 시작함으로써 세계시인선은 우리나라 번역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데 기여하게 되었다. 당시 독자와 언론에서는 이런 찬사가 이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요, 또 책임 있는 출판사의 책임 있는 일이라 이제는 안심하고 세계시인선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세계시인선은 출판 역사상 가장 오랜 수명을 이어 온 문학 총서의 하나이자 시문학계와 민음사를 대표하는 시리즈가 되었다.
● 지금의 한국 시인들에게 영혼의 양식을 제공한 세계시인선
“탄광촌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할 때 세계시인선을 읽으면서 상상력을 키웠다.” ―최승호 시인
“세계시인선을 읽으며 어른이 됐고, 시인이 됐다.” ―허연 시인
“나에게 세계시인선은 시가 지닌 고유한 넋을 폭넓고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기회였다.” ―김경주 시인
세계시인선은 문청들이 “상상력의 벽에 막힐 때마다 세계적 수준의 현대성”을 맛볼 수 있게 해 준 영혼의 양식이었다. 특히 지금 한국의 중견 시인들에게 세계시인선 탐독은 예술가로서 성장하는 밑바탕이었다. 문화는 외부의 접촉을 독창적으로 수용할 때 더욱 발전한다. 그렇게 우리 독자들은 우리시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시성들과 조우했고, 그 속에서 건강하고 독창적인 우리 시인들이 자라났다.
하지만 한국 독서 시장이 그렇게 시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시문학 전통이 깊은 한국인의 DNA에 잠재된 자신감이 아니었을까? 이러한 토대에서 자라난 시문학은 또 한 번의 르네상스를 맞이했다. 국내 출판 역사에서 시집이 몇 권씩 한꺼번에 종합베스트셀러 랭킹에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는 세상을 향해 보다 더 인상적인 메시지를 던져야만 하는 현대인에게 생략과 압축의 미로 강렬한 이미지를 발산하면서도 감동과 깊이까지 숨어 있는 시는 점점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 씨앗을 심어 왔던 세계시인선이 지금까지의 독자 호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리뉴얼을 시작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이반 세르게예비치 뚜르게녜프
1818년 11월 9일 중앙 러시아의 오룔 스파츠스코예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기병 대령, 어머니는 부유한 여지주였고 형 니콜라이, 아우 세르게이(16세에 사망)가 있다.1827년 온 가족이 모스크바로 이사한다. 베이덴간멜 기숙학교에 들어가 2년 남짓 지내고1829년 알메니야 전문학교(뒤의 라자료프 전문학교) 부속 기숙학교에 들어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 가정교사에게 배운다.1833년 9월에 모스크바 대학 문학부에 입학한다.1834년 가을에 페테르부르크로 이사했으므로, 페테르부르크 대학 철학부 언어학과에 편입한다. 11월에 아버지가 사망한다.1836년 6월에 페테르부르크 대학을 졸업. 셰익스피어의 〈오셀로〉, 〈리어 왕〉, 바이런의 〈맨프레드〉 등을 번역한다. 이 무렵 바이런, 하이네 등의 영향을 받아 시작에 몰두하며 그리스 고전을 연구한다.1838년 시 〈해질녘〉을 잡지 《현대인》에 발표한다. 베를린 대학에 유학. 헤겔 철학, 역사학 등을 공부한다.1839년 가을에 러시아로 귀국한다.1840년 1월에 외국으로 출발하여 이탈리아, 독일에 체류한다. 스탄케비치, 바쿠닌 등과 알게 된다. 베를린 대학에서 공부를 계속하여1841년 5월에 베를린 대학 과정을 마친다. 잡지 《조국잡지》에 단시를 발표한다.1842년 4월에 어머니의 침녀에게서 딸을 낳는다(폴리나라고 이름하고 나중에 파리로 데리고 갔다). 5월에 철학박사 시험에 합격하고 그해 말 페테르부르크에 정주한다.1843년 비평가 벨린스키와 알게 된다. 4월에 서사시 〈파라샤〉를 발표하고 《조국잡지》에 시와 희곡 〈경솔〉을 발표한다.1844년 11월에 중편소설 〈안드레이 콜로소프〉를 발표하고 네그라소프와 가까이 지낸다.1845년 페테르부르크에서 도스토예프스키를 알게 된다.1846년 희곡 〈돈이 궁하다〉를 발표한다.1847년 1월에 《사냥꾼의 수기》의 첫째 작품 〈호오리와 칼리느이치〉를 잡지 《현대인》에 발표하고 연초에 외국으로 떠나 7월까지 독일에 체류하다가 그후 비아르도 부인을 따라 파리로 가서 《사냥꾼의 수기》 집필을 계속한다. 이 무렵 상드, 메리메, 구노 등과 알게 된다. 비알드 부인의 남편과 함께 러시아 문학(고골리의 작품 등)을 프랑스어로 번역하여 소개한다.1848년 파리에서 게르첸, 바쿠닌 등과 만난다. 《사냥꾼의 수기》의 여러 편을 계속 《현대인》에 발표한다. 2월,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난다.1849년 2월, 〈시치그로프 군의 햄릿〉을 발표한다. 희곡 〈식객〉은 발표 금지 처분을 당한다.1850년 희곡 〈마을의 한 달〉, 중편 〈쓸모없는 인간의 일기〉를 발표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므로 귀국하여 이듬해 농노 해방과 인두세 제도를 고치는 등 이상주의적 귀족으로서의 신념을 실천으로 옮긴다.1851년 10월에 모스크바에서 배우 시추프킨과 함께 고골리를 방문한다. 11월에 고골리에 의한 〈검찰관〉의 낭독회에 참석한다.1852년 2월에 〈세 해후〉를 발표한다. 고골리의 죽음 즈음하여 발표한 추도문이 원인이 되어 스파츠스코예 마을에 연금당한다. 그동안 단편 〈무무〉를 쓴다. 8월에 《사냥꾼의 수기》의 출판을 허가한 검열관 리포프가 면직당한다.1853년 12월에 스파츠스코예 마을에서의 연금이 해제되어 페테르부르크로 온다.1854년 《사냥꾼의 수기》가 프랑스어로 번역 출판된다.1855년 1월에 모스크바 대학 기념 축전에 참석한다. 4월에 중편 〈야코프 파신코프〉를 발표하고, 여름에는 스파츠스코예 마을에서 장편 《루딘》을 집필한다.1856년 1~2월 《현대인》에 〈루딘〉을 연재, 8월 런던의 게르첸을 방문한다. 10월에 장편 《귀족의 보금자리》를 쓰기 시작한다. 페테르부르크에서 《투르게네프 저작집》 3권 발간한다. 연말 파리에 체류하며 프랑스 작가 루콘 드 리르, 빅토르 위고 등과 알게 된다.1857년 파리에서 네그라소프, 톨스토이, 페에토, 곤잘로프 등과 만나고 런던에서는 게르첸, 카알라일 등과 만난다. 중편 〈짝사랑〉을 쓴다.1858년 1월 〈짝사랑〉을 발표한다.1859년 1월 《현대인》에 《귀족의 보금자리》 발표하고 2월 모스크바 대학 부설 ‘러시아 문학회’ 정회원으로 선출된다. 가을에는 스파츠스코예 마을에 살며 장편 《그 전야》를 완성한다. 문예기금회의위원으로 선출된다.1860년 1월 문예기금을 위한 독서회에서 〈햄릿과 돈 키호테〉라는 주제로 강연한다. 잡지 《러시아 통보》에 《그 전야》를, 《독서문고》에 중편 〈첫사랑〉을 발표한다. 《그 전야》에 관한 도브로류보프의 논문 〈그날은 언제 오느냐?〉가 《현대인》에 게재된 것을 둘러싸고 발행자 네크라소프와 충돌한다. 표절 문제(《그 전야》 속에 곤잘로프의 미발표 작품 〈벼랑〉의 유명한 대목이 인용되었다고 비난)로 곤잘로프와 절교한다. 5월부터 꼬박 1년 동안 주로 파리에서 지낸다. 11월 과학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된다.1861년 2월에 농노해방령이 공포되어 이 개혁을 환영한다. 5월에 귀국, 톨스토이와 언쟁을 일으켜 그 후 17년 동안 절교한다. 7월에 장편 《아버지와 아들》을 완성하고 9월에 파리로 떠난다.1862년 3월 《러시아 통보》에 《아버지와 아들》을 발표한 후, 신·구 양 세대로부터 혹독한 공격을 받는다. 연말에 게르첸과의 서신 왕래가 위법이라 하여 32명이 고발당하고 재판을 받는다.1863년 푸슈킨의 운문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을 비아르도와 함께 프랑스어로 번역한다.1864년 1월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다. 원로원의 재판에서 32명을 위한 증언을 한다. 2월 잡지 《세기》에 단편 〈환영〉을 발표한다. 곤잘로프와 화해하고 3월에 외국으로 출발한다.1865년 딸 폴리나가 파리에서 프랑스인 가스톤 프류엘과 결혼한다. 5월 투르게네프가 프랑스어로 산문역한 레로몬도프의 서사시 〈무치리〉가 출간된다. 장편 《연기》에 착수하고 단편 〈충분하다!〉를 발표한다.1867년 잡지 《러시아 통보》에 《연기》를 발표한다. 니힐리스트 비평가 피사레프와 알게 된다. 피사레프에게 《연기》에 대한 의견을 구한다. 7월 작가로서의 사회적 견해 차이로 도스토예프스키와 충돌한다. 장편 《연기》를 메리메의 감수 하에 프랑스어로 번역한다.1868년 《유럽 통보》에 중편 〈여단장〉을 발표하고 〈문학적 회상〉을 집필한다.1869년 2월 《러시아 통보》에 중편 〈불행한 여인〉을 발표한다. 4월에 《유럽통보》에 〈벨린스키의 추억〉을 발표하고 11월에 〈문학적 회상〉 발표한다.1870년 보불전쟁이 일어난다. 6월 《유럽 통보》에 르포르타주 〈트로프맨의 사형〉을 발표한다. 8, 9월 《페테르부르크 통보》에 〈보불전쟁 통신〉을 게재한다. 10월 《유럽 통보》에 중편 〈광야의 리어 왕〉을 발표한다.1871년 1월 《유럽 통보》에 단편 〈돈, 돈!〉을 발표한다. 3월 ‘가르바르지 당원 구명운동’을 위해 페테르부르크의 예술가 클럽 ‘문학과 음악 모임’에서 〈여단장〉을 낭독한다. 4월에 중편 〈춘수〉를 집필한다. 8월에 W. 스코트의 ‘성탄 백년제’ 참석을 위해 에든버러에 간다. 11월 정주할 생각으로 파리로 돌아온다.1872년 이 한 해 동안 마지막 장편 《처녀지》 집필에 몰두한다. 1월 《유럽 통보》에 〈춘수〉를 발표한다.1873년 장편 《처녀지》를 구상한다.1874년 《유럽 통보》에 〈푸닌과 바브린〉을 발표하고 단편 〈살아 있는 유해〉를 써서 《사냥꾼의 수기》에 추가한다. ‘5인의 회식회’(투르게네프, 플로베르, 공쿠르, 졸라, 도데)가 시작된다.1876년 스파츠스코예 마을에서 《처녀지》를 발표한다. 프랑스어 번역판을 동시 출간한다.1877년 1, 2월 《유럽 통보》에 《처녀지》를 발표한다.1878년 틈틈이 《산문 시》를 노트에 써넣는다. 톨스토이로부터 화해 편지가 온다. 여름 귀국하던 중 야스나야 폴리야나로 톨스토이를 찾아간다.1879년 봄에 러시아로 돌아와 열렬한 환영을 받는다. 옥스퍼드 법학부로부터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받는다.1880년 프랑스의 신문 《19세기》에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소개한다. 모스크바에서 거행된 푸슈킨 동상 제막식에 참석하여 도스토예프스키와 더불어 〈푸슈킨에 관하여〉
목차
마을
대화
노파
개
맞수
거지
그대 들어라! 어리석은 자의 심판을
만족한 사람
처세술 1
세상의 종말
마샤
바보
동방의 전설
두 편의 사행시
참새
해골들
노동자와 흰 손
장미
Yu. P. 브레브스카야 부인을 추모하며
마지막 만남
문지방
방문
필요, 힘, 자유
자선
벌레
양배추국
하늘빛 왕국
두 명의 부자
노인
신문기자
두 형제
에고이스트
신의 향연
스핑크스
님프
적과 친구
그리스도
바위
비둘기
내일, 내일!
자연
그의 목을 달아매라!
무엇을 생각할까?
장미는 얼마나 아름답고 신선했던가
항해
N. N.
멈추어 주오!
수도사
또 싸울 날이 올 것이다!
기도
러시아어
만남
불쌍히 여기노라
저주
쌍둥이
지빠귀 1
지빠귀 2
둥지도 없이
잔
누구의 죄인가?
처세술 2
뱀
작가와 비평가
누구와 싸워야 하나
오, 나의 젊음! 오, 나의 생기!
K에게
높은 산들 사이를 걸었다
나 죽으면
모래시계
밤중에 일어나
혼자 외로이 있을 때
사랑으로 가는 길
미사여구
단순
브라만
그대가 울었지
사랑
진리와 정의
자고새
NESSUN MAGGIOR DOLORE
수레바퀴에 치여
응애, 응애
나의 나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