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백석의 동화시 '개구리네 한솥밥'에 화가 오치근의 채색이 곁들여진 수묵화를 더해 그림책으로 펴냈다. 인간 세상을 빗댄 동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결코 가볍지 않은 묵직한 교훈을 전하고 있어, 생각이 깊어져가는 아이들에게는 풍부한 생각 거리를, 어른들에게는 현실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옛날에 가난하지만 마음이 착한 개구리가 한 마리 살았다. 개구리는 형편이 어려운지 쌀을 얻으러 형을 찾아가는 길에 발을 다친 소시랑게를 만나게 된다. 개구리는 바쁜 와중에도 소시랑게를 고쳐준다. 그다음에는 길 잃은 방아깨비를 만나 길을 알려주고, 구멍에 빠진 쇠똥구리를 끌어내주고, 풀대에 걸려 꼼짝 못하는 하늘소를 풀대에서 풀어준다. 이렇게 남들을 돕다 보니 그만 날이 저물고 마는데….
정겨운 우리 고유의 말과 리듬감 있는 시어를 사용해, 마치 돌림노래처럼 시구를 반복하는 백석의 장점이 살아있다. 길섶에서 자라난 우리의 들꽃, 들풀들을 수묵화에 채색을 더해서 풍부한 색감으로 담아냈다. 아름다운 자연 풍경 속에서 개구리의 다양한 표정과 초록빛은 살아 있는 듯 선명하다.
출판사 리뷰
발 다친 소시랑게 고쳐주고,
길 잃은 방아깨비 길 가리켜주고,
구멍에 빠진 쇠똥구리 끌어내주고,
풀에 걸린 하늘소 놓아주고,
물에 빠진 개똥벌레 건져내주고……
착한 일 하느라고 길이 늦은 개구리
어찌할까 걱정하며 주저앉아 있는데
도움 줬던 친구들 모두 나타나
개똥벌레 불 밝히고,
하늘소 짐을 들고,
쇠똥구리 길을 열고,
방아깨비 벼를 찧고,
소시랑게 밥을 지어서
모두모두 둘러앉아 한솥밥을 먹었네
재미있는 노래같이 흥겨운 백석의 동화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천재 시인으로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백석의 동화시 「개구리네 한솥밥」이 화가 오치근의 채색이 곁들여진 수묵화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정겨운 우리 고유의 말과 리듬감 있는 시어를 사용해, 마치 돌림노래처럼 시구를 반복하는 백석의 시는 소리 내어 읽으면 더욱 좋습니다. 또한 인간 세상을 빗댄 동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결코 가볍지 않은 묵직한 교훈을 전하고 있어, 생각이 깊어져가는 아이들에게는 풍부한 생각 거리를, 어른들에게는 현실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렇듯 오랫동안 빛바래지 않을 백석 동화시의 가치를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소년한길은 백석 동화시 그림책 시리즈를 기획했습니다. 2008년 출간되었던『오징어와 검복』은 그 첫 번째 책으로, 빼앗긴 뼈를 되찾으려는 오징어의 이야기를 선 굵고 개성 넘치는 수묵담채화로 그려냈습니다. 뒤이어 2009년에는 두 번째 책 『집게네 네 형제』가 나왔습니다. 연필만으로 집게와 다른 동물들의 모습을 세밀하게 그려, 전작과는 또 다른 기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책은 당당하게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는 막내 집게를 통해 진정한 아름다움과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두 권의 책은 어린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이번에 출간된 『개구리네 한솥밥』은 길섶에서 자라난 우리의 들꽃, 들풀들을 수묵화에 채색을 더해서 풍부한 색감으로 담아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 풍경 속에서 개구리의 다양한 표정과 초록빛은 살아 있는 듯 선명합니다. 길섶에 난 엉겅퀴, 개망초, 민들레, 벗풀, 여뀌, 삼백초 그리고 습지 주변의 창포, 개구리밥, 생이가래, 물달개비까지 다양한 식물들을 그림 속에서 찾아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이런 자연 풍경을 배경으로 개구리는 길을 가며, 어려움에 빠진 소시랑게, 방아깨비, 하늘소, 개똥벌레를 차례로 돕습니다. 모두 둘러앉아 한솥밥을 나눠 먹는 장면에서는 어려움을 이겨낸 작은 생명들의 기쁨이 가득합니다. 또한 오치근 화가가 뒷면지에 추가로 그려놓은, 밤이 늦도록 모닥불을 피우고 모여 노는 개구리와 친구들의 모습은 미소를 자아내게 합니다.
모두들 둘러앉아 한솥밥을 먹었네옛날에 가난하지만 마음이 착한 개구리가 한 마리 살았습니다. 개구리는 형편이 어려운지 쌀을 얻으러 형을 찾아가지요. 그런데 가는 길에 발을 다친 소시랑게를 만났습니다. 개구리는 바쁜 와중에도 소시랑게를 고쳐줍니다. 그다음에는 길 잃은 방아깨비를 만나 길을 알려주고, 구멍에 빠진 쇠똥구리를 끌어내주고, 풀대에 걸려 꼼짝 못하는 하늘소를 풀대에서 풀어줍니다.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웅덩이에 빠져 우는 개똥벌레를 건져주지요. 이렇게 남들을 돕다 보니 그만 날이 저물고 말았습니다. 형네 집에서 쌀도 아닌 벼 한 말을 얻어서 지고, 길도 어둡고 짐도 무거워 자꾸 넘어집니다. 그때 개구리가 도움을 주었던 친구들이 하나둘 나타납니다. 개똥벌레 나타나 불을 밝히고, 하늘소 무거운 짐을 들어주고, 쇠똥구리가 막힌 길을 뚫어주고, 방아깨비가 벼를 찧어줍니다. 마지막으로 소시랑게가 짜잔 나타나 밥 한 솥을 거품으로 지어냅니다.
백석은 왜 이런 이야기를 동화시로 지어냈을까요? 어려운 시대를 살았던 백석은 아마도 아이들에게 힘을 합쳐 어려움을 이겨내고 마음을 나누며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개구리가 저 혼자만을 생각하며 도움을 주지 않고 지나쳤다면, 절대 모두가 한솥밥을 즐겁게 나눠먹지 못했을 테니까요. 개구리 혼자서 벼를 찧어 밥을 해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럿이 도왔기 때문에 밥을 짓는 일이 가능해졌지요.
모두들 둘러앉아 한솥밥을 먹는 장면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커다란 의미를 던져줍니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서로를 돕고 함께하는 것이야말로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을요.
작가 소개
저자 : 백석
1912년 7월 1일(음력 추정) 평북 정주군 갈산면 익성동 1013호에서 부친 백시박(白時璞)과 모친 이봉우(李鳳宇)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난 시인 백석(白石)의 외모는 한눈에도 두드러진다.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사진을 봐도 그의 모습은 매우 모던하다. 서구적 외모에 곱슬곱슬한 고수머리. 빛바랜 흑백사진을 보면 그의 머리 모양은 참 특이하다. 1930년대에 그런 머리를 할 수 있는 감각이란 얼마나 현대적인가? 옛사람이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는 시쳇말로 외모와 문학을 새롭게 디자인한 모던 보이이자 우리말의 감각을 최대치로 보여 준 시인이다. 본명은 기행(夔行)으로 알려져 있지만 기연(基衍)으로도 불렸다. 필명은 백석(白石, 白奭)인데 주로 백석(白石)으로 활동했다.1918년(7세), 백석은 오산소학교에 입학했다. 동문들의 회고에 따르면 재학 시절 오산학교의 선배 시인인 김소월을 매우 선망했고, 문학과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1929년 오산 고등보통학교(오산학교의 바뀐 이름)를 졸업하고 1930년 ≪조선일보≫의 작품 공모에 단편 소설 <그 모(母)와 아들>을 응모, 당선되어 소설가로서 문단에 데뷔한다. 이해 3월에 조선일보사 후원 장학생 선발에 뽑혀 일본 도쿄의 아오야마(靑山)학원 영어사범과에 입학해 영문학을 전공한다. 1934년 아오야마학원을 졸업한 뒤 귀국해 조선일보사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인 경성 생활을 시작한다. 출판부 일을 보면서 계열잡지인 ≪여성(女性)≫의 편집을 맡았고 ≪조선일보≫ 지면에 외국 문학 작품과 논문을 번역해서 싣기도 했다. 1935년 8월 30일 시 <정주성(定州城)>을 ≪조선일보≫에 발표하면서 시인으로서의 창작 활동을 시작하는 한편 잡지 ≪조광(朝光)≫ 편집부에서 일한다. 1936년 1월 20일 시집 ≪사슴≫을 선광인쇄주식회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발간한다. 1월29일 서울 태서관(太西館)에서 열린 출판기념회 발기인은 안석영, 함대훈, 홍기문, 김규택, 이원조, 이갑섭, 문동표, 김해균, 신현중, 허준, 김기림 등 11인이었다. 1936년 4월, 조선일보사를 사직하고 함경남도 함흥 영생고보의 영어 교사로 옮겨 간다. 1940년 1월 백석은 친구 허준과 정현웅에게 “만주라는 넓은 벌판에 가 시 백 편을 가지고 오리라”라는 다짐을 하고 만주로 향한다. 1940년도에 들어와 백석은 한국 현대시 최고의 명편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서의 자리를 굳힌다. 시적 반경도 역사적·지리적·정신적으로 대단히 깊고 넓어지기 시작한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귀국해 신의주에서 잠시 거주하다 고향 정주로 돌아가 남의 집 과수원에서 일한다. 1946년 고당 조만식 선생의 요청으로 평양으로 나와 고당 선생의 통역 비서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948년 김일성대학에서 영어와 러시아어를 강의했다고 전해진다. 그해 10월 ≪학풍≫ 창간호에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을 발표한 것을 끝으로 남한 정부가 월북 문인 해금 조치를 취한 1988년까지 그의 모든 문학적 성과와 활동이 완전히 매몰되고 만다. 한국전쟁 직후 백석은 평양 동대원 구역에 거주하면서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외국 문학 번역 창작실’에 소속되어 러시아 소설과 시 등의 번역과 창작에 몰두한다. 1962년 10월 북한의 문화계 전반에 내려진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과 연관되어 일체의 창작 활동을 중단한다. 1996년 1월 7일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