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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용성의 금강경 강의
벼락같이 진리를 꿰뚫는 통찰
어의운하 | 부모님 | 2019.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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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용성 스님이 삼장역회三藏譯會에서 1936년 9월 30일 발행한 순한글판 『신역대장경금강경강의』를 김호귀 교수(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HK교수)가 현대의 맞춤법과 뜻에 맞게 풀고, 각주를 새롭게 달아 출간한 것으로 저본은 구마라집본이다.

용성 스님이 일반의 대중에게 널리 보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존의 한문과 한글의 혼용본을 새롭게 개판한 것이다. 이런 까닭에 제명도 ‘신역대장경금강경강의’라고 순한글로 되어 있다. 즉 한글 원문이 실려있지 않고 번역문에 저자의 해설이 실려있다. 이런 형식은 이 책이 번역서가 아닌, 대중을 위한 강의서임을 알려준다. 또한 본문은 경문의 대목을 113단락으로 나누고 각각의 대목에 대하여 해설을 붙여서 누구나 경문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출판사 리뷰

경문을 113단락으로 구분하여 해설
질문과 답변의 형식으로 설명


신역대장경금강경강의는 용성 스님이 일반의 대중에게 널리 보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존의 한문과 한글의 혼용본을 새롭게 개판한 것이다. 이런 까닭에 제명도 ‘신역대장경금강경강의’라고 순한글로 되어 있다. 즉 한글 원문이 실려있지 않고 번역문에 저자의 해설이 실려있다. 이런 형식은 이 책이 번역서가 아닌, 대중을 위한 강의서임을 알려준다. 또한 본문은 경문의 대목을 113단락으로 나누고 각각의 대목에 대하여 해설을 붙여서 누구나 경문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 구성은 제일 앞부분에는 한글 번역에 붙이는 서문序文이 붙어 있고, 다음으로 경문의 본문이 ‘신역대장경금강경강의’라는 제명으로 붙어 있다. 이어서 경전의 제명에 대한 해석을 질문(疑問)과 답변(結答)의 형식으로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금강경의 개요를 설명한 서문을 통해서 용성 스님은 “부처님께서는 일체중생이 본래부터 지닌 깨달음의 자성을 금강과 같이 견고한 불심으로 간주하고 그것을 드러내어 성불하도록 해준다”고 말한다. 곧 불심의 본체는 집착이 없어 허공과 같고 그 지혜는 해와 달보다 밝다는 것이다. 또 용성 스님은 “부처님께서 일체중생이 자기의 청정심에 어두워서 무량겁 동안 생사에 윤회하는 것을 보시고 불쌍하게 여겨 수보리와 더불어 묻고 대답하여 낱낱이 그 의심을 모두 풀어주셨다”고 말한다. 곧 용성 스님은 일체중생이 본래부터 갖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드러내어 성불하도록 이끌어 간 것이 금강경이라고 이해한 것이다.

용성 스님이 본 『금강경』

의심을 없애주고 믿음을 일으키기 위해 금강경을 설했다
금강경의 대의는 금강과 같이 견고한 불심을 드러내려는 것


용성 스님은 금강경의 위상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곧 20년 동안에 모든 제자에게 아함부阿含部와 방등부方等部를 설법하여 근기가 점점 성숙한 연후에 금강경을 설하여 금강과 같이 견고한 불성을 바로 가르쳐서 의심을 없애주고 믿음을 일으키게 한 것이지 모든 중생의 번뇌를 없애준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용성 스님은 경전의 효용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곧 금강경의 진정한 가르침을 수용할 수 있으려면 대승의 근기와 최상승最上乘의 근기를 지닌 사람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소승의 근기와 의심을 지닌 경우에는 도저히 엿볼 수조차 없기 때문에 수보리와 같은 덕이 높은 스님이 출현함으로써 비로소 경전이 세상에 출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셋째는 금강경의 대의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경문의 대의는 본래부터 갖고 있는 금강과 같이 견고한 불심을 드러내려는 것이지 따로 중생의 번뇌를 없애주려는 것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용성 스님은 “부처님이 20년 동안 모든 제자를 가르쳐도 오히려 믿지 못하더니 오늘날에 와서 수보리가 처음으로 조금 깨달아 홀연히 세존을 찬탄하였다. 이에 부처님이 여래의 금강과 같은 진심 및 금강과 같은 불성을 드러내어 제자들로 하여금 모든 의심을 단절하고 천진면목을 분명하게 드러내도록 한 것이지 중생의 번뇌를 단절했다는 말씀이 아니다”고 말한다.

금강경은 용성 스님 대각교의 사상적 토대

경문의 대의를 중심으로 강의
세 가지 의심의 타파를 말하다


용성 스님은 금강경이 유통되고 전승되어가는 연기緣起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의심을 통하여 설명을 한다.
“무릇 이 금강경을 설할 때에 세 가지 의심이 있었다. 하나는 부처님이 형상 있는 색신과 형상 없는 법신을 말하시며 큰 몸과 작은 몸을 말하셨는데, 제자들은 어떤 것이 진정한 부처님인 줄을 알지 못한 것을 의심한 것이다. 둘은 있음(有)을 말하시다가 홀연히 텅 빈 것(空)을 말하시며 또 텅 빈 것을 말하시다가 홀연히 있지 않음(非有)을 말하시니, 이것을 의심한 것이다. 셋은 법은 알아 듣지만 그 법이 하도 엄청나게 크고 자기의 근기는 미약하여 그것을 감당하지 못할까 의심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부처님이 수보리의 질문에 따라서 의심을 결단해주신 것이다. 이로써 의심의 구름이 타파되면 자연히 금강과 간이 견고한 진심이 드러날 것이다.”
곧 세존의 설법에 대하여 중생은 색신과 법신 등의 다양한 신체를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의심하고, 유有와 무無의 활용에 대하여 의심을 하며, 중생 스스로의 근기에 대한 의심 등을 일으킨다. 이에 세존은 수보리와 다양하고 반복되는 문답을 통하여 그러한 의심을 제거해줌으로써 금강과 같이 견고한 진심이 드러나게 될 때 비로소 금강경은 널리 전승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용성 스님은 경문의 본문에 대해서는 각 대목마다 자세한 해설을 붙여서 강의하는 형태로 설명하고 있다. 경문을 상권과 하권으로 분류하고, 다시 전체적으로 32분과에 의거하면서 각 단락을 나누었다. 용성 스님은 각 단락마다 붙인 해설은 경문에 대하여 글자를 따라서 해석하는 것을 지양하며, 전체적으로 경문의 대의를 중심으로 일괄한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또한 대각교의 사상적인 토대가 되는 『금강경』에 대한 교재 형태의 번역서라는 점도 눈여겨 볼 점이다.

32분의 한글풀이

용성 스님은 경문의 본문에 대하여 분류한 32분과의 기존 명칭에 대해 최초로 다음과 같이 한글풀이를 한 점이 돋보인다.

1. 法會因由分 청정한 대중이 법자리에 모인 이유
2. 善現起請分 수보리가 일어나 법을 청하는 분
3. 大乘正宗分 큰 법 바른 종
4. 妙行無住分 묘행이 주함이 있는 분
5. 如理實見分 이치와 같이 실다히 보는분
6. 淨信希有分 정신하는 것이 희유한 분
7. 無得無說分 얻은 것도 없고 말할 것도없는 분
8. 依法出生分 법을 의지하야 출생하는 분
9. 一相無相分 상과 무상분
10. 莊嚴淨土分 정토를 장엄하는 분
11. 無爲福勝分 하염없는 복승한 분
12. 尊重正敎分 정교를 존중하는 분
13. 如法受持分 법다히 수지하는 분
14. 離相寂滅分 상을 여이여 적멸한 분
15. 持經功德分 경을 가진 분
16. 能淨業障分 능히 업장을 청정케 한 분
17. 究竟無我分 구경에 아가 없는 분
18. 一體同觀分 일체로 보는 분
19. 法界通化分 법계 통화하는 분
20. 離色離相分 색을 여이고 생을 여인 분
21. 非說所說分 설하되 설할 밥 없는 분
22. 無法可得分 법을 가히 얻을 것 없는 분
23. 淨心行善分 정심행선분
24. 福智無非分 복지가 비할대 없는 분
25. 化無所化分 화하야도 화하는 바 없는분
26. 法身非相分 법신이 상 아닌 분
27. 無斷無滅分 끈는 것도 없고 멸함도 없는 분
28. 不受不貪分 받지 않고 탐하지 않는 분
29. 威儀寂靜分 위의 적정한 분
30. 一合理相分 일합상분
31. 知見不生分 지견이 나지 아니한 분
32. 應化非眞分 응화신이 참이 아닌 분

백용성의 한문경전의 한글번역

용성 스님이 한문경전을 한글로 번역하게 된 이유는 잘 알려져 있다. 용성 스님은 『조선글 화엄경』 권12 「저술과 번역에 대한 연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서 발표의 대표 1인으로 경성 서대문 감옥에서 삼년간 철창 생활의 신선한 맛을 체험하게 되었다. 각 종교 신자로서 동일한 국사범으로 들어온 자의 수효는 모를 만치 많았다. 각각 자기들이 신앙하는 종교 서적을 청구하여 공부하며 기도하더라. 그때에 내가 열람하여 보니 모두 조선글로 번역된 것이오 한문으로 그저있는 서적은 별로 없더라. 그것을 보고 즉시 통탄한 생각을 이기지 못하여 이렇게 크고 큰 원력을 세운 것이다. --중략 내가 만일 출옥하면 즉시 동지를 모아서 경 번역하는 사업에 전력하여 이것으로 진리 연구의 한 나침반을 지으리라 이렇게 결정하고 세월을 지내다가 신유년 삼월에 출옥하여 모모인과 협의하였으나 한 사람도 찬동하는 사람은 없고 도리어 비방하는 자가 많았다.”
당시 용성 스님의 번역 사업에 대한 주변의 냉대와 무관심은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이런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용성 스님은 경전 번역 사업을 위해 <삼장역회>를 만들며(1921년) 불교 경전의 한글화를 통해 모든 중생이 정법을 깨달아 함께 성불하는 원을 세우며 묵묵히 걸어갔다. 스님이 번역한 『금강경』 서문 말미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빈도貧道가 재주가 없고 지혜가 얕으며 눈이 어둡고 손이 떨리지만, 오는 세상이 다하도록 모든 중생이 정법을 깨달아 함께 성불하기를 원하며 이 경전을 번역합니다.”
용성 스님이 『금강경』을 번역하면서 얼마나 굳은 원력을 세웠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경전의 한글화 작업은 온전히 용성 스님의 원력으로 움직였기에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는 백용성 스님이 <삼천리> 제8권 제12호(1936.12.1.)에 쓴 아래의 글에서도 나타나는데, 얼마나 힘겨운 상황이었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다.
“...나 혼자서 이 거대한 사업에 손을 대서 근 7, 8년 간을 뇌를 썩여가며 너무나 골몰하였든 탓으로 지금은 신경이 극도로 쇠약해지고 두뇌가 흐려져서 똑똑한 정신을 잃어버릴 지경에 이르고 보니 오직 죽을 날만이 멀지 않은 듯 싶으며 최후의 날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용성 스님이 서대문감옥에서 나와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이 바로 <삼장역회>의 설립이다. 스님은 삼장역회에서 역경사업을 조직적이며 체계적으로 진행했고, 또한 단순 법보시용이 아닌, 판매용으로 경전을 한글로 번역해 유포했다. 이를 통해 30여 종에 달하는 경전을 번역했고, 직접 쓴 불교서적도 약 30여 종에 이른다. 다행히 현재 용성 스님의 번역한 경전과 서적이 <백용성대종사총서>로 자료화되었으며, 약 20여 년 전부터 <대각사상연구원>을 중심으로 용성 스님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스승들의 스승인 용성 스님

용성 스님의 입적 후, 1941년 7월, 용성 스님의 행적비가 만해 한용운이 찬문을 써서 스님이 출가했던 해인사 경내에 세워졌다. 해방 이후 스님의 독립운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1962년 건국공로훈장을 받았고, 1990년 은관문화훈장을 추서받았다. 용성의 삶이 선사이며, 법사이며, 율사의 삶이었기에, 그의 제자들과 후학들은 이러한 용성의 발자취에서 드러난다. 근대 한국불교의 스승들인 동산(1890~1965), 동헌(1896~1983), 고암(1899~1988), 고봉(1900~1967), 동암(1904∼1969), 자운(1911~1992), 봉암(1909∼1975) 등은 모두 용성 스님의 제자(상좌)이며, 이 제자의 제자(손상좌)들은 지금 현대 한국불교의 전법과 사상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 90년대 이후에는 용성 문도의 문장이었던 성철, 대각회 이사장 광덕, 용성문도협의회 회장 정관, 대각사 주지 도문, 전 총무원장 지관 등이 1994년 해인사에 용성 스님 행적비를 다시 건립하게 된다. 특히 성철은 용성 스님을 “근세 불교사의 큰 광명”이라고 칭송했다.
“無明長夜와 같았던 근세 불교사에 큰 광명이셨던 先師께서 落草慈悲로써 萬世正法을 이같이 나타냄이여! 눈위에 모래를 뿌리고 그 위에 다시 눈을 덮음이로다. 해는 차게 하고 달은 뜨겁게 할지언정 세존의 참된 말씀만은 뭇 마구니가 부술 수 없다 하였으니 부처님의 正法眼藏을 선양함이 어찌 근세에 先師만한 분이 계셨으랴. 풍파에 흩어지고 먼지 티끌에 파묻혀 있던 선사의 어록이 다시 출간된다 함에 이는 마치 깨끗한 유리그릇 속에 보배달을 담은 것 같으니 밝기가 百千光明이로다. 일생을 淸淨律行으로 후학에게 본이 되시니…….”(용성선사어록, 1993)
현재도 용성 문도는 해인사, 범어사, 쌍계사, 화엄사, 신흥사 등 용성 문도 본사들과 (재)대한불교조계종 대각회와 대각사상연구원을 중심으로 용성 스님의 전법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정토회 법륜 스님은 용성 스님의 손상좌로 ‘백용성 조사 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아 스님의 뜻을 이어가고 있으며, 평택 명법사 화정 스님은 <용성진종장학재단>을 이끌며 용성 스님의 선양사업을 펼치고 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백용성
속명은 백상규白相奎이며 용성은 법호이며, 법명은 진종震鍾이다. 1864년 음력 5월 8일 전북 장수 출생, 14세에 남원 덕밀암으로 출가(19세 출가설도 있음), 16세에 해인사에서 사미계 수지했다. 1885년 송광사 삼일암에서 『전등록』을 읽다가 크게 깨닫고 멀리 환성지안의 법을 이었다. 이후 천장암, 정헤사, 해인사, 통도사, 화엄사, 선암사, 금강산 불지암 등에서 수행 정진했다. 48세인 1911년 서울로 상경해 우면산 대성초당에서 주석하며 대중에게 참선을 지도하고, 1912년에는 조선임제종중앙포교당을 열었으며, 1916년 종로에 선종포교당인 대각사를 창건하며 불교의 대중화를 위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919년 3·1 독립운동에 민족대표 33인으로 참여해,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 6개월 동안 수감됐다. 58세인 1921년 출감하며 역경사업을 위해 삼장역회三藏譯會를 조직, 『화엄경』 『원각경』 『금강경』 등 20여 권의 경전을 한글로 번역했다. 또한 대각교를 창립하며 불교의 대중화, 생활화, 지성화를 이끌었다. 1922년에는 간도 오지인 명월촌과 봉령촌에 700정보(210만평)씩 농장을 만들어 독립운동 후방 거점으로 삼기도 했다. 스님의 독립운동 지원은 해방 후 백범이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대각사를 방문했던 사진 기록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1925년 도봉산 망월사에서 만일참선결사회를 추진했고, 1926년에는 범계생활금지犯戒生活禁止를 내용으로 건백서建白書를 조선총독부에 제출하였다. 64세인 1927년에는 경남 함양의 백운산에 화과원을 설립해 선농불교禪農佛敎를 제창, 직접 농사하며 생활했다. 또한 이때 우리나라 최초로 찬불가를 작사 작곡하며 한국 불교음악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스님은 1940년 음력 2월 24일 서울 대각사에서 세수 77세로 입적했다.

  목차

서문
『금강반야바라밀경』 제목
『금강반야바라밀경』 상권
1. 청정한 대중이 법회에 모인 이유(法會因由分) | 24
2. 수보리가 일어나 법을 청하는 분(善現起請分) | 38
3. 큰 법 바른 종 분(大乘正宗分) | 52
4. 묘행이 주함이 없는 분(妙行無住分) | 64
5. 이치와 같이 실다히 보는 분(如理實見分) | 74
6. 정신하는 것이 희유한 분(淨信希有分) | 80
7. 얻은 것도 없고 말할 것도 없는 분(無得無說分) | 94
8. 법을 의지하여 출생하는 분(依法出生分) | 104
9. 일상과 무상분(一相無相分) | 118
10. 정토를 장엄하는 분(莊嚴淨土分) | 138
11. 하염없는 복승한 분(無爲福勝分) | 152
12. 정교를 존중하는 분(尊重正敎分) | 156
13. 법다히 수지하는 분(如法受持分) | 164
14. 상을 여의여 적멸한 분(離相寂滅分) | 178

『금강반야바라밀경』 하권
15. 경을 가진 분(持經功德分) | 220
16. 능히 업장을 청정케 한 분(能淨業障分) | 230
17. 구경에 아가 없는 분(究竟無我分) | 236
18. 일체로 보는 분(一體同觀分) | 248
19. 법계 통화하는 분(法界通化分) | 270
20. 색을 여이고 상을 여인 분(離色離相分) | 274
21. 설하되 설할 법 없는 분(非說所說分) | 278
22. 법을 가히 얻을 것 없는 분(無法可得分) | 284
23. 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 | 288
24. 복지가 비할 데 없는 분(福智無非分) | 292
25. 화하여도 화하는 바 없는 분(化無所化分) | 296
26. 법신이 상 아닌 분(法身非相分) | 300
27. 끊는 것도 없고 멸함도 없는 분(無斷無滅分) | 306
28. 받지 않고 탐하지 않는 분(不受不貪分) | 310
29. 위의 적정한 분(威儀寂靜分) | 314
30. 일합이상분(一合理相分) | 318
31. 지견이 나지 아니한 분(知見不生分) | 324
32. 응화신이 참이 아닌 분(應化非眞分) | 328

해제 ‘의심을 제거해 금강의 진심을 드러냄’이 용성 스님의 뜻 | 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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