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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의열단
김원봉, 이종암 등의 1920년대 의열 투쟁
국토 | 부모님 | 2019.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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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1920년대 최고의 무장 항일 투쟁 단체 의열단의 창립 과정과 독립운동을 세밀하게 다룬 작품이다. 작가는 이미 '의병의 후신, 의열단의 전신'이라는 부제로 <소설 광복회>를 저술한 바 있다.

흔히 대한광복회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광복회는 1910년대 최고의 무장 항일 독립운동 결사체였다. 친일파를 처단하고, 군자금을 모아 중국의 독립운동가들에게 전달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던 광복회가 끝내 일제에 의해 해체된 뒤 김원봉, 이종암, 김대지, 황상규, 윤세주, 장건상 등 많은 애국청년들은 그 정신과 방략을 이어받아 의열단을 창립했다.

1919년 11월 10일 이래 의열단은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종로경찰서, 부산경찰서, 밀양경찰서, 동경 일본왕궁 등 일제 기관에 폭탄을 던지고 일본군 육군대장 등 고관들과 친일파들을 살상했다. 이 소설은 의열단의 눈부신 활동을 세세히 소개한다.

뿐만 아니라 의열단의 창단에 큰 영향을 미친 광복회의 활동과 1919년 독립만세운동도 독자들에게 해설해준다. 그 당시 독립운동의 전반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 의열단의 활동에 감동을 받아 일본 육군대장을 처단한 조명하 지사 등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의 활동도 소개한다.

  출판사 리뷰

일제는 35년 동안 우리나라를 강점할 때 임시정부 주석 김구와 의열단 단장 김원봉을 체포하려고 무한히 노력했다. 김구에게는 요즘 돈으로 200억 원, 김원봉에게는 320억 원이나 되는 현상금을 걸었다. 320억 원은 미국이 빈 라덴에게 건 금액에 이어 세계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현상금이라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김원봉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았다는 정도에 머물 뿐 의열단의 다른 독립지사들에 대해서는 별로 알지 못한다.
이 장편소설은 1920년대 최고의 무장 항일 투쟁 단체 의열단의 창립 과정과 독립운동을 세밀하게 다룬 작품이다. 작가는 이미 ‘의병의 후신, 의열단의 전신’이라는 부제로 <소설 광복회>를 저술한 바 있다. 흔히 대한광복회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광복회는 1910년대 최고의 무장 항일 독립운동 결사체였다. 친일파를 처단하고, 군자금을 모아 중국의 독립운동가들에게 전달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던 광복회가 끝내 일제에 의해 해체된 뒤 김원봉, 이종암, 김대지, 황상규, 윤세주, 장건상 등 많은 애국청년들은 그 정신과 방략을 이어받아 의열단을 창립했다.
1919년 11월 10일 이래 의열단은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종로경찰서, 부산경찰서, 밀양경찰서, 동경 일본왕궁 등 일제 기관에 폭탄을 던지고 일본군 육군대장 등 고관들과 친일파들을 살상했다. 이 소설은 의열단의 눈부신 활동을 세세히 소개한다.
뿐만 아니라 이 소설은 의열단의 창단에 큰 영향을 미친 광복회의 활동과 1919년 독립만세운동도 독자들에게 해설해준다. 그 당시 독립운동의 전반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 의열단의 활동에 감동을 받아 일본 육군대장을 처단한 조명하 지사 등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의 활동도 소개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 1920년대 독립운동의 역사에 대해 많은 지식을 습득하게 된다. 88명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실제로 존재했던 사람들이다. 실존 인물이 아닌 사람은 이 소설에 등장하지 않는다. 이 소설은 단순한 허구에 불과한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 저술이이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충분히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창작된 참된 ‘역사소설’이다. 작가는 서문에 5개의 각주, 그리고 책 뒤에 428개나 되는 미주를 붙여 이 소설의 진정성을 증명하고 있다.

일제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김구 주석에게 내건 현상금은 60만원이었다. 살았건 죽었건 게의치 않는다. 누구든 김구의 목숨만 가져오면 오늘날의 시가로 200여억 원을 주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구의 목숨값보다 월등히 더 비싼 인물이 있다. 무려 100만원, 현 시세로 320여억 원의 목숨값이 매겨진 사나이는 바로 김원봉(金元鳳)이다.
일제가 김원봉에게 조선총독부의 현상금 사상 최고액을 내건 것은 김원봉이란 개인적인 인물보다, 김원봉이 이끄는 의열단(義烈團)이라는 저항무장단체를 붕괴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였다. 도대체 의열단이란 어떤 조직이기에, 또 무슨 활동을 하기에 이처럼 어마어마한 현상금을 내걸면서 김원봉의 체포에 나섰을까? 김원봉의 현상금은 의열단의 성격을 단적으로 상징한다.
우리 의병.독립운동의 80%는 일제의 검거에 의해 와해.실패한 것이 아니다. 현상금을 노리고 독립운동단체에 위장침투한 내부 밀정의 고발에 의해 스스로 붕괴됐다. 김구는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이어서 목숨을 보전했다 하더라도, 김원봉은 의열단이란 무장독립운동단체를 이끌면서도 체포되지 않았다. 이는 의열단과 김원봉이 얼마나 강고한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소설가이자 역사문화콘텐츠 전문 창작자로 활동 중인 정만진(丁萬鎭)씨가 『소설 광복회』에 이어 올해로 창단 100주년을 맞은 의열단을 추적한 소설집을 펴냈다. 정만진의 『소설 의열단』은 누구나 알기쉽고 재미있는 문학으로 복원해 그 역사를 들려준다. 의열단은 1919년 11월 10일 만주 심양에서 창단되어 1925년 11월 5일 부단장 이종암(李鍾岩)이 일제에 의해 체포됨으로써 사실상 막을 내린다. 의열단은 이후 단장 김원봉이 정치활동에 초점을 둔 단체로 노선을 변경하면서 의열활동은 중단된다.
의열단은 김원봉에 의해 조직되고, 운영되었으며, 활동했던 항일무장단체로 인식한다. 의열단의 중심에 김원봉이 핵으로 자리잡고 있었고, 그 나머지는 김원봉의 전공을 혁혁하게 돋보이게 하는 ‘액세서리 위성’으로 존재했다는 것이 지금까지 나온 의열단 및 김원봉과 관련한 역사서나 평전.소설 등의 한결같은 인식이었다. 이 책은 이와 같은 김원봉 1인 중심의 영웅사관을 거부한다. 그것은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원봉이 혁혁한 지도력으로 의열단을 이끈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의열단은 김원봉 외에도 부단장 이종암.김대지.김상옥.김시현.김익상.김지섭.나석주.류자명.박재혁.신철휴.윤세주.최수봉.황상규 등 무려 88명의 유.무명 독립투사가 조직하고, 맹렬한 항일저항투쟁을 전개하고 이끌어 갔음을 소설로 복원해 준다.
작가는 이와 같은 사실을 소설이라는 창작의 자유를 빌어 자신 임의대로 지어내지 않았다. 역사가 왜곡되는 일이 없도록 기 연구된 전공학자들의 저서나 논문 등을 뒷받침 자료로 삼아 사실(史實)을 사실(事實)대로 그려냈다. 433개의 주석이 소설에 붙은 것만 봐도 이 책은 소설이면서 동시에 우리 근대사의 정사(正史)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지금까지 나온 의열단 서적 가운데 가장 바르고 정확하게 의열단7년사를 정립했다고 할 수 있다. 의열단의 중심엔 김원봉이 있었지만, 기존 도서처럼 결코 의열단이 김원봉의 ‘원맨쇼’를 위한 단체라는 사실은 거부한다. 의열단 창단이 가능했던 것은 이종암이 창단자금을 전액 부담했기에 가능했다. 예나 지금이나 돈이 없으면 단체의 결성은 불가능하다. 자금줄을 이종암이 맡았다.
이종암은 자산가가 아니다. 거창하게 독립운동을 꿈꿨던 지사도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식민지 조선의 보통사람, 소시민이었다. 이종암은 단지 배움에 목말라 있었다. 미국으로 유학하여 신지식.신문물을 더 배워와 핍박받는 조선인들의 삶을 개선하는데 이바지 하고 싶은 소박한 꿈을 지닌 젊은이였다.
당시 영남 최대의 갑부였던 고모부 정재학(鄭在學)이 대구은행 두취로 취임하면서 이종암을 대구은행에 취직시켜 주었다. 이종암은 입행한 지 1년 만에 출납계 주임으로 승진할 만큼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1917년 12월 마침내 미국으로 유학 떠날 기회가 왔다. 이종암은 은행 공금 10,500원(현 시세 10억여 원 상당)을 들고 만주로 떠났다.
이종암의 미국행은 좌절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어서 미국이 국경을 폐쇄한 탓이다. 만주에서의 2년간 체류는 이종암으로 하여금 미국 유학보다는 조선의 독립이 먼저라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보통사람이 위대한 독립운동가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이종암은 7,000원을 구영필(具榮?)로 하여금 위장 독립운동기관인 삼광상회(三光商會)를 설립해, 운영케했다. 삼광상회는 무역상을 표방했으나 실제는 독립군들의 연락 거점이었다. 이종암은 3,000원을 의열단 창단자금으로 내놓다. 의열단은 이 돈으로 권총과 탄약 등 무기를 구입, 의열투쟁에 나설 수 있었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엮어져 있다. 의열단 창단의 지주였던 이종암.황상규.김대지.김원봉.윤세주가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된 배경과 의열단이라는 항일무장투쟁 조직의 필요성 등을 공감하며 만주에서 만나 의기투합하는 뒷배경을 들려준다. 의열단이라는 단체의 정체성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배려이다.
두 번째는 의열단 창단이념이었던 5당파(五撞破) 7가살(七可殺)을 실행한 의열단 무장투쟁사를 게재했다. 의열단은 조선이 독립하기 위해선 조선총독부.동양척식회사.매일신보사.각 경찰서.주요 왜적 기관을 때려 부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총독 이하 고위 관리.군부 수뇌.대만 총독.매국노.친일파 거두.밀정.악덕 지주를 처단할 것을 조직의 행동강령으로 삼았다.
이에 따라 의열단은 종로.부산.밀양 경찰서를 공격했다. 조선총독부와 동양척식회사에도 폭탄을 안겼다. 일본군 육군대장 다나카를 황포단에서 저격했으며, 일본 천황궁에도 폭탄을 투척했다.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초개처럼 버린 의열단 단원들의 피끓는 항일 무장투쟁사가 현실의 눈앞에서 전개되는 듯 생생하게 전개된다.
이 책은 소설로 배우는 한국현대사의 부교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자들에게 보다 쉽고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한 방편으로 소설이란 형식을 빌었지만, 실제로는 역사서이다. 역사란 모름지기 시대와 가까운 순으로 배워야 하지만, 우리는 정반대다. 문화선진 강대국은 하나같이 먼 역사보다는 가까이 있는 역사를 먼저 배운다. 이 책을 계기로 우리 역사교육도 바로 섰으면 한다.
올해는 1919년 만세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동시에 의열단 또한 창단 100돌이다. 이 책은 이 뜻깊은 역사의 숭고한 의미를 기리기에 손색이 없다. 더구나 지금은 한일경제전쟁으로 일본과 우리 자신을 다시금 냉철히 되돌아보고 한일관계를 재정립해야할 시대적 사명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 책은 그 길라잡이를 한다. 의열단 단원들이 기꺼이 자신을 버리고, 가족을 버리고, 나라와 민족의 자주독립이란 가시밭길을 마다 않았듯이 온 국민이 이 책을 읽고 의열단의 숭고한 자취를 따랐으면 한다.
모쪼록 의열단 단원들의 뜨거운 조국애를 가슴에 담아 우리는 한일경제전쟁에서의 승리를 기필코 쟁취하여야 한다. 이번 한일경제전쟁에서 일본에 패하면 구한말 나라가 망할 당시로 역사의 수레바퀴가 회귀한다. 제2의 ‘21세기형 일본 식민지 시대’가 도래한다. 따라서 우리에겐 “사느냐 죽느냐”의 선택만 남았다. 이 책을 통해 21세기 현재에 살아있는 의열단 단원들이 역사의 전면에 속속 등장하여야 하는 이유이다. 김영재(대구신문연구원 원장, 언론인)




김원봉은 압록강 너머 단둥에 다시 닿자마자, 고모부 황상규에게 들릴 리도 없는 말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도 왔습니다. 앞으로 부지런히 중국과 국내를 오가며 신명을 바쳐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겠습니다.”
그러나 김원봉은 그로부터 27년이 흐르도록, 1945년에 이르러 나라가 일제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나 독립이 되는 그날까지 단 한 번도 삼천리 금수강산을 거닐어보지 못했다. 본인도 그처럼 가혹한 시간이 자신에게 주어질 것이라고는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그저 가열차게 일제에 맞서 싸우다보면 언젠가는 독립된 조국에서 신명나게 살 수 있으리라 여겼을 뿐이다.
그 첫 투쟁이 바로 파리강화회의에 자객을 보낸 일이었다. 파리강화회의 참석차 파리에 온 일본 대표를 세계만방이 지켜보는 가운데,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듯이, 처단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거사를 진행하기 위한 회합은 금릉대학에 입학하고 다섯 달 뒤, 즉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두 달가량 지난 1918년 12월 말부터 가졌다.
“내년 정월 18일부터 승전국들이 파리에 모여 회의를 한다니, 우리 자객도 그 일정에 맞춰서 파리로 가야 해.”
“어떻게 파리까지 갈 것인가? 우리나라에서 파리까지 가는 데에는 두 달 이상이 걸려. 늦어도 1월 중에 출발을 해야 하는데, 강화회의에 가서 세계만방이 지켜보는 가운데 왜놈을 처단하는 일 자체가 지난한 것은 물론이지만, 파리까지 가는 일만 해도 어마어마한 난관이야.”
“권총도 준비해야 하고, 일제에 들키지 않고 무사히 도착해야 하니 생각만 해도 아찔하군.”
김원봉, 김약수, 이여성이 번갈아가며 걱정을 나누었다. 듣고 있던 김철성이 크게 웃으면서 호언장담을 했다.
“걱정하지 마라 카잖아(말하지 않느냐)! 부산 사나이 파리에 가서 기필코 왜놈을 사살하고야 말 끼다(것이다). 배만 타만(타면) 누버(누워)있어도 불란서끄지(프랑스까지) 가는데 무신(무슨) 걱정들이 그키(그렇게) 많노? 내가 이 나이 되도록 부산 바닷가에서 살았는데 배 타는 거야 귀신 아이가(아니냐)! 와(왜) 너거들이(너희들이) 걱정이고(걱정이냐)? 내가 반드시 안중근 의사처럼 왜놈의 명을 끊어놓고 말 끼다(것이다).”
김철성이 그렇게 큰소리를 내지를 때는 다들 덩달아 웃었다. 하지만 그가,
“근데(그런데) 우리 오늘 보는 것이 마지막이겠다! 내가 파리에서 거사를 성공하고 나면 꼭 자결을 할 꺼(것) 아이가(아니냐)! 왜놈들한테 붙재피서(붙잡혀서) 고문을 당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하였을 때는 모두들 저도 모르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품은 채 흥구공원으로 향할 때 백범 김구가 그에게 ‘저 세상에서 만납시다.’ 하며 눈물을 흘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탓에 김철성이,
“울지 마라. 울긴 와(왜) 우노(우느냐)? 장부출가(丈夫出家) 생불환(生不還)이라 했잖아? 금릉대학에 적을 걸치났으민서(걸쳐놓았으면서) 그런 것도 안 배안나(배웠느냐)? 내가 우리말로 옮기주까(옮겨줄까)? 대장부가 집을 떠나면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 명언도 모르면 대학 댕기자(다녀보았자) 다 헛일이다. 금릉대학 그만 두뿌라(두어버려라)!”
하고 억지 우스갯소리를 해서 김원봉, 김약수, 이여성의 비장한 마음을 달래려 했지만, 세 사람은 끝내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넷이서 모두 눈물을 흘리면서 헤어졌다.
김철성이 프랑스로 가는 배를 타려고 상해로 떠난 뒤 며칠 지나지 않아 만주와 노령 일대에서 활약하는 지사들이 중심이 되어 나라의 독립을 선언했다. 2월 1일에 발표된 ‘무오독립선언’은 망국 이후 최초의 독립선언이었다.

"저 두 사람은 오래 살 마음이 없는 것 같아······."

  작가 소개

지은이 : 정만진
대구시 교육위원, 역사진흥원 초대 이사장, 대구한의대학교 문화콘텐츠학부 외래교수, 대구외고 교사를 역임했다. 2019년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에 뽑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을 비롯하여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 <김유신과 함께 떠나는 삼국여행> 등의 역사여행서와 <소설 광복회>, <딸아, 울지 마라> <백령도> <기적의 배 12척> 등의 장편소설을 썼다. ‘국경’ 등 개인 사진전도 10여 회 열었다.

  목차

1부 - 압록강을 건너다
이종암, 압록강을 건너다 010
황상규, 압록강을 건너다 038
김대지, 압록강을 건너다 052
김원봉, 길림으로 가다 068
윤세주, 압록강을 건너다 093

2부 - 다섯 곳을 부수고 일곱 부류를 죽여라
제1차 암살 파괴 계획 107
부산 경찰서를 공격하다 147
밀양 경찰서를 공격하다 158
조선총독부를 공격하다 170
일본군 육군대장을 저격하다 178
〈조선혁명선언〉을 발표하다 185
종로 경찰서를 공격하다 195
제2차 암살 파괴 계획 202
제3차 암살 파괴 계획 207
김지섭과 김시현 213
동양척식주식회사를 공격하다 223
도쿄 폭탄 투척을 도모하다 228
장진홍과 조명하 234

3부 - 그 이후 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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