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현대시세계 시인선 104권. 2007년 「시현실」 신인상으로 등단했고 2010년 첫 시집으로 <그날이 그날 같은>을 출간했던 최혜숙 시인이 9년 만에 출간한 두 번째 시집.
최혜숙의 시집 <몽상가의 등불>은 이 시집 제목으로 잘 어울린다. 최혜숙의 많은 시편들이 몽상에 그 바탕을 두고 있으며 몽상의 등불을 길잡이 삼아 먼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길 없다. 몽상은 비현실이기는 하지만 그 저변은 현실을 바탕으로 한다. 최혜숙의 시에 종종 등장하는 청각적 이미지의 구사도 몽상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몽상은 직접적인 자극보다 환상의 소리에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가장 절실한 곳에 귀가 있는 법이다.
"새와 나 사이 텅 빈 공간/ 소리만 들락거리는 허공 한 칸"('소리가 지나가는 길' 부분)에서처럼 시인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며 이를 통해 새로운 몽상을 꿈꾼다.
출판사 리뷰
인생의 비대칭성에 대해 진지한 탐구 펼치는 최혜숙 시인의 ‘몽상의 시학’
2007년 『시현실』 신인상으로 등단했고 2010년 첫 시집으로 『그날이 그날 같은』을 출간했던 최혜숙 시인이 9년 만에 두 번째 시집 『몽상가의 등불』을 출간했다.
최혜숙의 시집 『몽상가의 등불』은 이 시집 제목으로 잘 어울린다. 최혜숙의 많은 시편들이 몽상에 그 바탕을 두고 있으며 몽상의 등불을 길잡이 삼아 먼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길 없다. 몽상은 비현실이기는 하지만 그 저변은 현실을 바탕으로 한다. 최혜숙의 시에 종종 등장하는 청각적 이미지의 구사도 몽상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몽상은 직접적인 자극보다 환상의 소리에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가장 절실한 곳에 귀가 있는 법이다. ”새와 나 사이 텅 빈 공간/ 소리만 들락거리는 허공 한 칸“(「소리가 지나가는 길」 부분)에서처럼 시인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며 이를 통해 새로운 몽상을 꿈꾼다.
최혜숙의 시의 또 다른 특징은 가족사이다. 어머니에 대한 이미지는 그리움의 정서를 동반하며 맑고 깨끗하다. 반면 아버지에 대한 인상은 어둡고 우울하다. 어머니의 이장을 소재로 이 시는 어머니의 뼈를 수습하며 느낀 감정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 인간의 육탈 과정을 통하여 죽음과 죽음 이후의 과정이란 슬프거나 괴로운 그 무엇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원망”으로 압축된다. 그에 대한 인과적 이유를 시에서는 알 수 없지만 시대상과 맞물린 불우한 가족사와 연관을 맺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만 할 뿐이다.
최혜숙의 시 가운데 두드러진 현상은 인생의 비대칭성에 대한 탐구라 할 수 있다. 구부러지고 굴절된 일상이야말로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이며 동시에 그 순리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일반적 인생일 터이다. 자신이 마주한 현실에서 느끼는 이질성은 균형과 평화를 무너뜨리는 기제로 작동한다. 그 이질성과 불편함에 대한 응시야말로 최혜숙의 시가 주는 다른 매력이기도 하다. 또한 여러 시편들이 메타적 관점에서 시를 변주하는데 그 안에는 시를 향한 열망과 절망이 오롯이 담겨 있다. 사실 최혜숙의 몽상의 기원도 바로 시를 향한 열망과 절망에서 비롯된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몽상이라는 허공에 집을 짓는 자들이 시인이지 않은가.
어느 몽상가의 등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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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이여
내 혼을 관통하는 등불이여
날개 치며 일어나는 불꽃이여
내 생을 떨게 하는 힘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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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이여
내 혀끝에서 지워지는 신의 선물이여
사각의 모퉁이에서 흔들리는 기억이여
어둠 저편에서 머뭇거리는 이미지의 편린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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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이여
강물 위로 떠다니는 노래여
갈대숲에서 들리는 바람의 변주곡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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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몽상의 근원이여
침묵이여
안에서 타는 빛이여
나를 살게 하는 힘이여
내 영혼의 깊은 잠을 깨워다오
붉은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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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붉은 하늘과 마주앉아
사막을 마시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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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해진 햇살 하나가
모래 속에 존재하는 파장을 따라
사르르 사르르
내 가슴을 뚫고 들어온다
빨간 모래들이 만들어낸 둥근 언덕
여성의 둔부처럼 솟아오르고
매끈하게 뻗은 긴 다리
너울너울 오솔길 만든다
귓전에 들리는 바람의 거친 발자국 소리
포효하며 질주하는 사자 갈기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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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게 달구어진 붉은 사막
하찮은 생명체도 물의 기척을 찾아떠난 지 오래다
살아남은 자들이 끌어올리는 검은 액체의 기적
비옥한 초승달 지역엔 또 다른 풍요가 넘실거린다
보이는 것과 느끼는 것의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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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꽁지 빠진 닭처럼 도망을 쳤고, 세상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누군가는 표절을 했고, 누군가는 절필을 선언했다 나는 시 쓰는 일에 환멸을 느꼈으며, 가끔씩 은둔자의 삶을 질투하기도 했다 때론 내 시가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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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 십이일 국립극장에선 〈햄릿〉 공연의 막이 올랐다 원로 배우들이 총 출동한 야심작이었다 무대 조명이 켜지자 낯익은 아홉 명의 출연자들이 검은 망토를 입고 나란히 서 있었다 연극은 왕의 유령을 보았다는 호레이쇼의 등장으로 시작되었다 무대 장치 하나 없는 황량한 원형극장, 무대 위로 피어오르는 음습한 안개와 바람은 유령을 부르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령은 왔고, 햄릿의 독백 또한 사백 년의 시간을 거슬러 관객 곁으로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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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이는 것과 느끼는 것 사이에 선 낯선 관람객처럼 냉정해졌다 그러자 내게서 태어난 시가 내 것이 아니듯이 내가 사랑한 연극도 이미 나를 떠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최혜숙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았으며 서경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2007년 『시현실』 신인상으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그날이 그날 같은』이 있고 다수의 공저와 동인지가 있다. 2019년 현재 한국시인협회와 시우주 회원, 청미래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목차
시인의 말 5
1부
소리가 지나가는 길 · 13
봄나들이 · 14
추호(秋毫)의 끝 · 16
문득 · 17
발 없는 새 · 18
보이는 것과 느끼는 것 사이 · 20
한 생을 마시는 저녁 · 21
사월의 이별 · 22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 23
영원성이 존재하는 과거 · 24
어느 날 갑자기 · 25
가슴에 심은 길 · 26
잠들지 못하는 밤 · 27
생각 죽이기 · 28
나비의 시간 · 29
2부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명화 감상하기 · 33
어느 몽상가의 등불 · 34
죽음 한 마당 · 35
관념의 몰락 · 36
흔들리는 풍경 · 38
햇살에 대한 감정 · 40
아름다운 포로 · 41
그 여자가 사는 법 · 42
몽우도(夢牛圖) 1 · 44
몽우도(夢牛圖) 2 · 46
흔들리지 않는다는 건 거짓말이다 · 47
풍경에 편입되는 장소 · 48
꿈꾸는 자의 자유 · 50
언어의 능력 · 52
언어도 종종 길을 잃는다 · 54
3부
청동낙타 · 57
소멸과 불멸 · 58
다정함의 세계 · 59
화해의 시대 · 60
완벽한 가족 · 62
하늬바람 부는 날 · 63
별이 빛나는 밤 · 64
비 오는 날의 발작 · 66
사람 사는 일 1 · 67
사람 사는 일 2 · 68
사람 사는 일 3 · 69
오월의 저편 · 70
순천만 풍경 · 71
가족의 탄생 · 72
보이지 않는 소원 · 74
4부
석모도 노을 · 79
죽음에 이르는 병 · 80
바람의 노래 · 82
두 개의 기둥 · 84
모딜리아니가 있는 방 · 86
로마에 대한 과대망상 · 88
부하라의 달 · 90
사 킬로미터 · 92
실스마리아 · 93
윤회(輪廻) · 94
유식(唯識)한 여자 · 95
붉은 사막 · 96
사람아, 사람아 · 97
그림일기 2 · 98
시인의 칼 · 99
해설 발 없는 새의 몽상 / 우대식 · 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