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국립극단 세 번째 희곡선. 2013년부터 꾸준히 공연되어 온 <알리바이 연대기>는 작·연출을 맡은 김재엽 본인과 그의 가족에 대한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았다. 서울과 대구, 오사카를 오가는 이야기는 영어 교사로 평화롭게 퇴직한 아버지가 걸어온 뜻밖의 발자취를 따라가다가 개인의 역사 안에서 불가분하게 흘러가는 국가의 역사를 맞닥뜨린다.
일제강점기와 이후 아홉 명의 대통령이 거쳐간 시대를 지나온 아버지는 한국 정치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이상을 갖고 저항하지도, 현실에 완전히 적응하지도 않은 채 살아가는 ‘가운데의 삶’을 택한다. 역사 책에서 도드라지던 극단적인 인물들 대신, 언제나 이방인의 경계에 있고자 했던 지극히 평범한 개인의 번민에 대해 이 작품은 주목하고 있다.
출판사 리뷰
“진실과 함께 할 수 없으니 자꾸 알리바이를 꾸며대는 거야”
오늘 나는 아버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비밀을 알게 되었다
국립극단 회곡선 3 『알리바이 연대기』
2013 제50회 동아연극상 작품상, 희곡상, 연기상
2013 제6회 대한민국연극대상 연기상, 무대예술상
2013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올해의 연극 베스트3
2013 월간 한국연극 공연베스트7
2014 제35회 서울연극제 연기상
작품 개요
“이전 세대를 불러냄으로써 현재와 미래를 직시하는 눈을 갖게 하는 작품”
도서출판 걷는사람에서 국립극단의 세 번째 희곡선 『알리바이 연대기』가 출간되었다. 2013년부터 꾸준히 공연되어 온 『알리바이 연대기』는 작·연출을 맡은 김재엽 본인과 그의 가족에 대한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았다. 서울과 대구, 오사카를 오가는 이야기는 영어 교사로 평화롭게 퇴직한 아버지가 걸어온 뜻밖의 발자취를 따라가다가 개인의 역사 안에서 불가분하게 흘러가는 국가의 역사를 맞닥뜨린다. 일제강점기와 이후 아홉 명의 대통령이 거쳐간 시대를 지나온 아버지는 한국 정치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이상을 갖고 저항하지도, 현실에 완전히 적응하지도 않은 채 살아가는 ‘가운데의 삶’을 택한다. 역사 책에서 도드라지던 극단적인 인물들 대신, 언제나 이방인의 경계에 있고자 했던 지극히 평범한 개인의 번민에 대해 이 작품은 주목하고 있다.
소년 엉엉엉, 천황폐하가 항복했대요.
소년의 아버지 눈물을 뚝 그치래두!
소년 엉엉엉
소년의 아버지 너는 조선사람이니까, 울 필요가 없다.
소년 뭐라구요?
소년의 아버지 태용아, 너는 조선사람이니까, 울 필요가 없어. 얼른 가자. 엄마가 밥 다 해놓고 기다리겠다.
소년 예, 아버지.
소년의 아버지, 소년의 손을 잡고 무대 밖으로 나가려 한다.
소년, 아버지와 함께 나가려다 말고 문득 걸음을
멈추고 다시 주위를 돌아본다.
아버지 그날 아버지랑 집에 가는데, 기분이 이상해지더라고. 물론 내 그때까지 ‘카나오카 마사오’로 불렸지만, 내가 조선사람인지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근데 그날따라 갑자기 내가 조선사람이라는 게 굉장히 중요하게 느껴지는 거야. 기분 묘하데. 내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근데 말이야, 일본 땅에서 전쟁이 끝난 그날, 어쩌면 내 인생의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개인과 사회의 역사를 얽어내는 과정은 딱딱한 사실의 나열이 아닌 잔잔한 웃음을 선사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작·연출 본인이기도 한 극중 인물 ‘재엽’은 내레이터로서 관객들의 길잡이가 된다. 재치 있게 써 내려간 한 가족의 이야기 속에 우리 현대사의 뒤엉킨 실타래는 한 올 한 올 풀어진다. 할아버지의 역사는 아버지에게로, 그리고 그 역사는 다시 아들에게서 그 아들에게로 흘러간다는 세상의 이치를 전한다.
소년 (손가락 총을 만들어 보이며) 너, 이게 뭔지 알아?
재엽 그게 뭔데요?
소년 빵! 빵! 총 아이가, 총!
재엽 그냥, 손가락인데요?
소년 그때는 이 손가락 총이 진짜 총보다 더 무서운 거였다.
재엽 그게 무슨 뜻이에요?
소년 (손가락 총으로 관객들을 향해 가리키며) 저기 저 사람, 저기 저 사람, 그라고 저기 저 사람……. 빨갱이다. 남로당 세포다. (관객에게 다가가) 아저씨, 좀 이상한데, 빨갱이 맞지요? 눈빛이 빨간데? 빵! 이래 손가락 총으로 쏴버리면, 끌고 가서 진짜 총으로 쏴버렸다. (총소리가 들린다) 내 목숨 살리려면, 남한테 손가락 총질을 해야 했다. 이래 완성된 게 바로 반공국가다. (선글라스를 벗으며) 제주도에서도 그랬고, 거창에서도 그랬고, 여수 순천에서도 그랬고, 노근리에서도 그랬다. 전국적으로 다 그랬다.우익청년들이 호루라기를 위협적으로 불어댄다. 소년이 움찔한다.
“이전 세대를 무대 위에 오롯이 불러냄으로써,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고 싶다”고 말한 김재엽은 『알리바이 연대기』를 통해 '오늘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당신의 알리바이는 무엇인지, 그리하여 지금의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
제 이름은 ‘재엽’입니다.
연극 <알리바이 연대기>를 쓰고 연출한 김재엽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저와 형 그리고 아버지, 그러니까 1930년 일본국 대판시(현 오사카) 동성구 대금리정 556번지에서 태어난 故김태용 님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오래전 신병 훈련소 앞에서 저를 기다리던 아버지의 눈물이 떠오릅니다.
이상하게도 그날 아버지의 눈물을 두고두고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눈물을 이해하기까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아버지는 생애 마지막 순간에 하나의 알리바이를 알려주셨습니다.
흐려진 진실과 폭격의 굉음이 더 익숙한 세상을 살아온 아버지.
언젠가 인생의 알리바이를 고백할 순간이 찾아온다면 저도 아버지처럼 용기를 낼 수 있을까요.
- 작품 중에서
"아버지의 눈물을 이해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
"아버지는
유신시대 박정희 정권 아래 살고 있었다기보다는
자신이 대한민국 국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알리바이를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부지런히 외국서적을 모으면서,
여기가 아닌 다른 어느 곳에
자신이 뿌리내리고 싶은
미지의 세계가 펼쳐질지도 모른다는 알리바이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
"아버지는… 피하고 싶었다.
많이 억울했고…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누가 착한 놈인지, 누가 나쁜 놈인지 도대체 알 수도 없고 말이지…"
- 작품 중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김재엽
2002년 신춘문예 당선을 시작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극작가 겸 연출가. ‘혜화동 1번지’의 4기 동인으로 기반을 다져왔다. <알리바이 연대기>로 2015년 대산문학상 희곡부문, 2013년 동아연극상 작품상·희곡상을 수상했다. <알라바이 연대기>, <병동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와 같은 다큐멘터리극뿐 아니라 <배수의 고도>처럼 드라마가 강한 작품에서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19년 현재 극단 ‘드림플레이 테제21’의 예술감독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